69. 장마 (4).
원래라면 샤워실 앞에 서 있었을 내가 앞으로 나선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사령관님. 암혈이라는 자가 들고 있는 무기. 아다만티움입니다.”
“저 칼이 아다만티움이라고?”
“아다만티움이 아닌 이상 평범한 무기가 샤이닝 에로우의 선체에 타격을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혈의 칼이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졌다는 씨드의 보고 때문이었다.
아다만티움.
주로 던전 광산에서 채굴되는 희귀금속.
같은 무게의 금보다 무려 백배나 비싼 아다만티움은 뛰어난 경도와 강도를 자랑해 주로 중갑의 재료로 쓰인다.
무기의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어마어마한 무게 때문에 잘 사용되지 않는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백배나 비싼 주제에 그 부피는 100분의 1도 되지 않으니까.
참고로 내가 1㎏짜리 아다만티움 바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쓴 돈이 10억이다. 마음 같아선 1톤 정도 구하고 싶었지만, 매물이 없었다.
거의 모든 던전 광산은 메이커들과 연계해 아다만티움으로 아이템을 제조, 판매해 이득을 보지, 주괴 형태로는 팔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겁고 비싸고 구하기도 힘든 아다만티움으로 도를 만들어 휘두르는 미친놈이 나타난 거다.
저런 장도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300㎏ 정도의 아다만티움이 들어갔을 거다.
‘어쩐지 이장현의 갑옷을 종잇장처럼 뚫고 들어가더라니.’
욕심이 났다.
그래서 놈을 도발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섰다.
그 와중에 방심한 경호원들이 상처를 입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설마 SS급 각성자를 앞에 두고 고개를 돌릴 줄은 몰랐지.’
하긴 방심을 하지 않았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거다.
SS급과 A급의 차이는 A급과 F급의 차이보다 더 크니까.
어찌 되었건 나는 또다시 놈을 도발하는 데 성공했고 캠핑카 안으로 끌어들였다.
놈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장 내 목숨이 위험하다는 판단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정성 들여 습격하지도 않았을 테지.’
거기에 놈이 나를 쉽게 죽이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다. 그러라고 그런 도발적인 말들로 일부러 놈의 어그로를 끌었으니까.
푸욱.
놈의 공격에 복부가 관통당하긴 했는데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두 번이나 이보다 더 심함 고통도 이겨냈으니까.
“컥.”
놈이 만족할 만한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끄으윽.”
되지도 않는 연기까지 하며 놈의 도를 손으로 붙잡는 데 성공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먹겠습니다!’
꾸우욱.
놈이 쥐고 있는 도를 더욱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킬 사용. 금식충.”
-스킬: 금식충 S (LV 1)이 사용됩니다. 아이템: 아다만티움 일본도를 흡수합니다.
-아이템을 흡수 중입니다. 해당 아이템과 접촉을 유지해 주십시오.
당연한 말이지만 매번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게 정말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아 이거 어떻게 수정 좀 안 되니?’
“음?”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걸까?
머리 위에서 암혈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자는 짓거리지? 이대로 할복이라도 할 셈인가?”
“…….”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놈은 칼자루를 쥔 손목을 비틀었다.
“끄으윽.”
내장이 뒤틀리며 토막 나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단장(斷腸)의 고통이라는 게 이런 걸까?
요 며칠 오만가지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차가운 날붙이가 생살을 가르는 느낌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머릿속에서 고블린 바르와 던전 바닥을 뒹굴던 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그땐 칼날이라도 짧았지. 시바.’
“설마. 너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죽이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거냐?”
가만 보면 이 새끼는 개소리를 참 정성스럽게 지껄이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정상이 아니니까 아직도 일제 강점기를 잊지 못하고 이 지랄을 하는 거겠지.’
꾸욱.
“끄윽.”
대답이 없자 놈은 또다시 칼자루를 비틀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라. 조센징. 아까 잘도 나불거리던 주둥아린 어디로 간 거지?”
“네 말대로 팔다리는 자르더라도 내 목을 치지는 못하겠지. 이 쪽바리 새끼야. 너네 선조들이 꿍쳐둔 거 찾는데, 내가 필요하다며?”
일부러 놈을 도발하기 위해 날린 말에 목덜미가 서늘하다.
놈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칼날이 닿은 것처럼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꽤 많은 걸 주워들은 모양이구나.”
‘조금만 더 버티면….’
“강산호인가? 아니면 구정철? 진작 죽었어야 할 늙은것들이 쓸데없는 말을 나불거렸나 보군.”
‘녀석의 도는 내 것이 된다.’
슬쩍 눈동자를 움직여 차오르는 게이지를 확인했다.
[흡수율: 94%]
이제 남은 건 6% 남짓.
그 순간 놈이 칼을 뽑아 들려는 듯 힘을 주었다.
“아무래도 넌 교육이 좀 필요하겠어. 일단 손끝부터 잘게 썰어주마.”
진짜 미친놈이다.
생사람을 회 치겠다는 말을 하는데 저렇게 즐거운 목소리라니.
꾸욱.
나는 놈의 칼을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가진 능력이 고작 그 정도였다면, 강 회장과 구 전 대통령이 이렇게 사람들을 보내서 나를 보호하려고 했을까?”
“음?”
놈이 흥미 있어 할 만한 말을.
이제 남은 건 4%.
내겐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능선 위.
한 그루 대나무처럼 삐쩍 마른 체형의 노인이 싸움이 한창인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유인을 하는 게 아니라 숫제 밀려나는 꼴이군. 쯧. 수련이 부족했나 보군.”
전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차는 노인의 이름은 서태촌이었다.
비현과 은검, 월화랑.
노력은 했지만 끝내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강현이 있는 캠핑카 쪽으로 밀려나는 중이었다.
“저긴 또 왜 저 모양이야?”
전황을 눈으로 훑던 서태촌의 시선이 멈춘 곳엔 반파된 캠핑카가 있었다.
“호오-.”
못마땅한 눈으로 캠핑카 주변을 훑던 서태촌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튀어나왔다.
“저놈이 신풍대 대주란 놈이겠군.”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짙은 피 냄새를 풍기는 사내.
암혈을 발견한 서태촌의 눈에 붉은 광기가 일렁였다. 귀기가 일렁이는 두 눈에 삐쭉 올라간 입꼬리.
“넌. 내꺼다.”
살기 어린 말을 짓씹어 뱉은 서태촌의 신형이 산 능선을 따라 바람처럼 내달렸다.
***
하남시 북부.
남양주와 하남을 연결하는 다리 앞에 선 구정철은 불어난 강물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서가 놈은 이미 도착했겠군.”
자신 혼자라면 무리 없이 건널 수 있었지만, 문제는 뒤에 늘어선 길드원들이었다.
“비 그치거든 천천히 오라니까….”
“아버지. 어떤 아들이 위험한 전장에 아버지 혼자 가시게 둔답니까.”
구정철의 타박에 구지석은 불퉁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진짜 비 그치고 출발했으면 쥐잡듯이 잡으셨을 거잖아요. 제가 아버지 성격을 몰라요?”
50이 넘은 아들이 되려 아버지를 타박했다.
‘쩝…. 자식이 나이를 먹더니 눈치만 늘었어. 어릴 땐 귀여웠는데.’
짧게 입맛을 다신 구정철이 구지석에게 물었다.
“그래서 현 화랑 길드장께서는 이 사태를 어찌 처리하시려나?”
폭우에 불어난 강물이 다리를 집어삼킨 상황.
일반인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각성자들도 건너기 힘든 상태였다. 거기다가 지금도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강을 건너는 것은 더 힘들어질 게 자명했다.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지금쯤 시작했겠네요.”
말을 마친 구지석은 손가락으로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강변 한쪽을 가리켰다.
“마법진?”
그곳엔 이제 막 준비를 마친 듯 마법진과 연결된 기계 앞에 길드원들이 늘어섰다.
“길드장님. 시작하겠습니다.”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보고에 구지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우웅.
기계 앞에 선 마법사들이 마나를 불어넣자. 낮은 시동음과 함께 전원이 꺼져 있던 기계에 불이 들어오며 작동을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손에서 뿜어진 마나가 기계를 통과해 지름 10m 정도 되는 마법진으로 스며 들어가고.
후우웅.
마나를 공급받은 마법진이 푸른빛을 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투투퉁.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 역장에 쏟아져 내리던 빗줄기가 튕겨 허공으로 흩날리고.
쩌저적.
마치 두껍게 언 호수의 표면에 금이 가는 것과 같은 파열음과 함께 얼음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생성되어 강 건너를 향해 느린 속도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구지석이 손짓하자 마법사들의 등 뒤에서 대기 중이던 길드원들이 마나포션의 뚜껑을 열어 기계의 투입구에 쏟아부었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마법진이 더욱 짙은 빛을 뿜어내며 얼음 다리의 생성이 가속되었다.
쩌저저적.
팅. 티티팅.
얼음 다리가 뿜어내는 한기에 내리던 빗방울이 얼어붙어 맑은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허-.”
구정철은 생전 처음 보는 기현상에 놀라 탄성을 내질렀다.
인류가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 겨우 80년이 지났다.
하지만 인류는 어느새 기계와 마법진을 결합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요즘은 손으로 마법진 그리면 상병신 취급받아요. 아버지. 애플리케이션도 좋은 게 많이 나와서 기초마법은 헌터 와치에 마나만 불어넣어도 수식 계산 끝내고 마나 배열까지 해준다더라고요.”
“어…. 그러냐…?”
구정철은 떨떠름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자신이 현직에서 물러난 지 15년.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
“네. 능력?”
내 말에 반응한 암혈이 칼에 주던 힘을 풀었다.
‘걸렸다.’
놈의 반응에 쾌재를 부른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놈이 혹할만한 이 세계의 아이템들이 내 인벤토리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흡수율: 97%.]
그중 하나를 꺼내 잠깐만 놈의 관심을 끌면 그것만으로도 계획은 성공이다.
내가 인벤토리에 손을 넣고 아이템을 꺼내려던 순간.
“허튼짓하면 그 목을 날려주지.”
살벌하기 그지없는 암혈의 경고가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
이 새끼는 누가 테러리스트 아니랄까 봐 틈만 나면 사람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한다.
잠시 멈칫했던 내가 다시 아이템을 꺼내려 할 때였다.
“복날에 뒤지지도 않은 개새끼가 잘도 설치고 다니는구나.”
신경질적이고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늙은이가 낄 곳 못 낄 곳 분간을 못 하는군. 관짝에 들어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면 곱게 뒷방에 처박혀 죽을 날이나 기다릴 것이지….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건가?”
고개를 돌린 암혈은 노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슬쩍 노인을 쳐다봤다.
대나무로 사람을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온몸이 비쩍 말라 살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노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암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재롱도 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어디 한 번 더 떠들어 보아라. 그게 네놈의 유언이 될 테니.”
그리고 그 노인의 얼굴은 내게도 꽤 익숙했다.
‘서태촌!’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인 싸울아비의 길드 마스터.
대한민국에 단 10명뿐인 SS급의 각성자.
그를 표현하는 말은 많지만 그를 대표하는 별명은 단 하나였다.
검왕(劍王).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그보다 검을 잘 쓰는 사람이 없다 해서 붙여진 별호.
절대강자의 등장에 긴장한 듯 암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미세한 근육의 떨림이 놈이 쥐고 있는 칼을 손잡이를 타고 내게 전해졌다.
[흡수율: 99%.]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들고 서태촌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된다.
“어르신. 잠시만 이 새끼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음?”
“…뭐?”
그러자 서태촌과 암혈 두 사람의 눈이 나를 향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을 것 같군. 내가 저놈들에게 묵은 원한이 많아서 말이야.”
서태촌의 말에 암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큭. 아들과 그 아비가 같은 칼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노괴.”
그 말을 들은 서태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당신 아들 이름이 서준영이었던가? S급치곤 참 별 볼 일 없더군.”
“네놈…이었구나.”
순간. 내리던 비가 다시 하늘로 치솟았다.
암혈의 칼질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던 이들과 그들을 치료하던 이들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끔찍한 살기와 투기가 주변의 모든 것을 짓누르며 해일처럼 밀려와 캠핑카를 덮쳤다.
퍼엉! 콰과광!
단지 기파에 불과함에도 나와 암혈이 있는 공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찢겨 파편이 되어 튕겨 나갔다.
“큭. 같잖은 재주를 부리는군. 노괴. 설마 이런 재주로 검왕이라는 별호를 얻은 건가? 하긴, 그 아들놈의 아비니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이런 잔재주뿐이겠지.”
분명 열세인 상황임에도 암혈은 끊임없이 말을 던지며 서태촌을 자극하려 했다.
서태촌의 평정심을 깨기 위한 수작질로 보였는데.
문제는 그게 너무 잘 먹혔다는 거다. 아니 서태촌은 애초에 평정심을 지킬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혓바닥. 잘라내 주마.”
암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태촌은 이미 자리를 박차고 쏘아져 오고 있었다.
암혈은 그런 서태촌을 맞아 내 복부에 박혀있는 검을 뽑아 들려고 했다.
“응-. 안돼-.”
하지만 놈의 손은 그저 허공을 움켜쥘 뿐이었다.
“…뭐?”
놈은 텅 빈 자신의 손을 허망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흡수율: 100%.]
-아이템: 아다만티움 일본도를 흡수하셨습니다.
놈의 검은 내가 먹어치웠으니까.
당황한 듯 떨리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놈에게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줬다.
“패드립은 선 넘었지 이 새끼야.”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라고 못 배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