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66화 (66/202)

66. 장마 (1).

투두둑.

이슬비처럼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구름 가오리의 체구는 길이 15㎞ 폭 12㎞, 하지만 놈이 몰고 다니는 먹구름의 폭은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자랑했다.

어떤 마법적인 현상으로 저 재해급 몬스터가 하늘을 유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로 다음의 현상만큼은 인간의 눈으로고 관측할 수 있었다.

둥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구름 가오리가 몰고 다니는 먹구름에 붙인 이름이다.

좀 낭만적인 사람들은 운해(雲海) 혹은 구름 성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런 별명이 붙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영향권 범위가 약 20000㎢에 달하는 둥지의 영역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구름 가오리는 태풍의 눈이고 둥지는 태풍 그 자체다.

태풍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것과 태풍보다 심한 천둥벼락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추적추적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지며 캠핑카의 지붕을 두드렸다.

투두둑. 쏴 아-.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남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이 위를 지나가는 건 아니겠지?”

“기상청에서는 서울을 관통해 북동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 중입니다.”

씨드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울을 관통해 북동쪽으로 이동한다면 둥지의 세력권에 드는 건 물론이고 잘못하면 중심부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한마디로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 가오리와 직접 맞닥뜨릴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강수량은?”

“시간당 30mm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당 30mm.

일반적인 장마라면 폭우라 불리겠지만 구름 가오리라면 양호하다고 말해도 좋을 강수량이었다.

나는 저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먹구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준비를 해야겠어.”

구름 가오리가 올라온다는 예보를 보고 오전 내내 상점창과 헌터 마켓을 뒤적거려 준비한 아이템들.

이것들을 쓸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구름 가오리의 이동 경로를 보니 미리 설치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만약을 위해 준비한 아이템들이지만, 만일 내가 욱일회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고.

나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놈들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강 회장이 언급한 것처럼 놈들이 정말 미친놈들이라면 상상 밖의 일을 시도할 수도 있으니까.

“씨드. 방어 모드 전개해.”

그래서 나는 씨드와 함께 캠핑카 밖으로 나섰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이 비를 맞으며 싸움을 준비하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는 삽을 들었다.

***

“어? 저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은신을 한 채로 경계지역 주변을 순찰하던 이장현은 부하의 놀란 목소리에 소리가 난 곳으로 다가갔다.

수풀에 몸을 숨긴 채 캠핑카를 주시하고 있던 월화랑 하나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미친놈도 아니고 비 맞으면서 뭔 짓이야?”

은신하고 기척을 숨겨야 할 부하의 중얼거림.

이장현은 미간을 찌푸리곤 기척을 낸 월화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지?”

“아. 월, 월주(月主)님.”

이장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란 월화랑이 말을 더듬었다.

“무슨 일인데 기척을 숨기고 주변을 경계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네가 목소리를 높인 건지 물었다.”

싸늘한 이장현은 물음에 월화랑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 그게 말입니다.”

“말 못 하겠나?”

“아. 아닙니다. 다름 아니라 보호대상자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어서…….”

“엉뚱한 짓?”

이장현의 반문에 부하는 손을 들어 강현이 머무는 캠핑카 쪽을 가리켰다.

“그게…비를 맞으며 삽질을 하고 있습니다.”

부하의 손끝을 따라 캠핑카 쪽을 본 이장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저게…지금 뭘 파묻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 구덩이에 묻는 것 같은데, 움직임이 너무 빨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장현이 봐도 강형의 행동은 배수로를 파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파묻는 것 같은데 삽질이 워낙 빨라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거리가 멀기도 했고.

‘실력이 늘었군.’

강현의 삽질을 본 이장현은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강현의 경지를 파악했다.

‘D급? 아니, C급 초반 정도인가? 성장세가 정말 빠르군.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 던전을 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각성한 지 두 달 만에 C급 초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농담하지 말라고 할 정도의 성장세다.

각성자 센터에 등록된 강현의 정보는 아직 E급이었지만, 이장현이 보기에 강현의 움직임은 C급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처음 들었을 땐 졸부가 되더니 돈 지랄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삽질하는 힘과 속도만 봐도 그저 마나양만 늘린 게 아닌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여전히 재미있는 친구군.’

목포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은 이장현이 고개를 돌려 부하를 돌아보았다.

“일단 경계에 집중하도록 하게.”

“네. 월주.”

한 소리 들을 줄 알고 잔뜩 긴장하고 있던 부하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경계 자세로 돌아가자 이장현이 부하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자네 징계는 돌아가서 내리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이장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고, 그 말을 들은 월화랑은 울상을 지었다.

‘에이…. 새끼가 그냥 캠핑카 안에 처박혀 있지 괜히 비 오는 날 삽질을 하고 지랄이야….’

하지만 그는 감히 이장현에게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월화랑에게 있어 이장현은 그야말로 전설이었으니까.

그 시각. 그 원망의 대상인 강현의 삽질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네.’

구 청심원 부지와 현 청심원이 포함할 만큼 커다란 원을 그리며 이루어진 삽질.

강현은 이 아이템이 사용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만약을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막 마지막 삽질을 끝냈을 즘엔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장대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 아아-!

구름 가오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번쩍-!

우르릉 콰쾅!

천둥 번개와 함께 말이다.

***

“준비는?”

나지막한 암혈의 물음에 옆에 있던 산월이 대답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대주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름 가오리가 이 위를 지나가는 것은 천운이다. 하늘이 우리 신풍대와 ‘대 일본제국’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자신들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에 천운과 일본을 들먹이는 암혈이었지만 산월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대 일본제국’이라는 단어가 암혈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쏴아아아.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암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풍대 총원 300명.

현재 결원 15명을 제외한 285명이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가 잃은 것이 있으면 네놈들도 잃는 게 있어야지.’

오늘 신풍대가 노리는 것은 강현만이 아니었다.

싸울아비와 월화랑 그리고 비현.

‘오늘 모두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될 거다.’

저렇게 버젓이 대놓고 미끼 역할을 하는 강현을 보고 함정임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들의 계획은 강현이 저곳에 캠핑카를 가져오는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던 중 구름 가오리의 북상 소식이 전해졌고, 거기에 더해 이동 방향마저 맞아떨어졌다.

이게 천운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쏴아아아.

‘혈향이 진하지 않을 것 같아 아쉽군.’

암혈이 아쉬운 것은 단 하나였다. 적들의 피로 강을 만들고 싶으나 그러지 못한다는 것.

복수는 잔인할수록 좋으니까.

그는 오늘 계획이 성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 이곳에 온 것이 신풍대만이 아니었으니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복수를 다짐하는 암혈.

그의 등 뒤에서 암혈을 바라보는 산월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

번쩍!

우르릉- 쾅!

쏴 아아-.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먹구름과 함께 몰려온 어둠이 주위를 잠식하고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천둥 번개가 합주를 시작했다.

구름 가오리가 만들어낸 광경은 왜 녀석을 한낱 몬스터로 치부하면 안 되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우르릉 쾅!

우지직.

떨어져 내리는 낙뢰에 맞은 아름드리나무가 폭발하듯 터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비산했다.

동시에 햇빛을 막은 거대한 먹구름 덩어리가 늦은 밤과 같은 어둠을 몰고 와 주변을 뒤덮었다.

“거, 습격당하기 딱 좋은 날씨네.”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이런 날 밖에서 죽으면 시체를 찾는 건 불가능하리라. 내리는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저 먼 서해 어딘가에서 떠오를 테니.

‘그전에 수중몬스터들의 밥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지.’

“걱정되지는 않으십니까. 사령관님?”

씨드의 물음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왜 걱정이 안 되겠는가.

그저 여유를 가장하고 있을 뿐. 내 심장은 지금 풀 악셀을 밟은 스포츠카 엔진보다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다른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적당히 개인주의적이고 적당히 이기적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시민.

그게 나다.

그리고 그 소시민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의 나는 그저 세금을 내는 것으로 국가에 대한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저 이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처럼 나는 의무를 다했고 그렇기에 누려야 할 것을 누린다고 생각했을 뿐.

내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누군가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니었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고 있던 것들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강기영 어르신 같은 분들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려 다져놓은 토대 위에 대한민국이라는 건물이 세워진 거다.

사는 게 바쁘다고.

삶에 여유가 없다고.

갖은 핑계를 대며 외면해 왔던 것들이 시스템이 준 퀘스트를 수행하며 하나둘 눈에 밟히기 시작했을 무렵.

사건이 터졌다.

던전에 들어갔다가 나왔더니 집이 날아가고 생판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나를 노리고 있단다.

이후 강 회장에게 전해 들은 뒷 세계의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욱일회로 대두되는 테러 단체들, 그리고 북쪽 끝 함경도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는 공산주의 반정부 단체.

내가 멋모르고 누려왔던 평화와 자유의 이면에는 그것을 수호하기 위한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그런 대단한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그저 가족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미끼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마저도 전용 던전이라는 믿음직스럽고 확실한 탈출구가 있었기에 계획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

한숨을 내쉰 나는 캠핑카에 처져 있던 커튼을 모두 열어젖혔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캠핑카 내부의 모습이 밖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쏴아아아.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어둑한 오후.

이 빛은 나를 지키는 자들에겐 등대이며 나를 노리는 놈들에겐 미끼가 될 것이다.

커튼을 모두 열어젖힌 후 커피믹스 한잔을 타서 소파로 되돌아왔다.

바스락거리는 소파의 소리가 마치 내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 것을 보니 구름 가오리가 가까이 온 모양이다.

“씨드, 지금 강수량은 어때?”

“현 시간 서울의 강수량은 시간당 50mm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구름 가오리의 이동 경로가 서울을 지날 때면 매번 있는 일이다.

전문가들 말로는 800m가 넘는 각성자 센터가 구름 가오리의 심기를 건드려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누가 알 것인가?

본인이 구름 가오리가 아닌 이상에야.

하여튼 그 덕분에 이곳에도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후륵.

쏴아아.

그렇게 빗소리를 BGM 삼아 커피를 한 모금 넘겼을 때였다.

아악!

우르릉- 쾅!

천둥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작은 비명이 바람에 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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