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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65화 (65/202)

65. 금식충.

톡.

떨리는 손으로 누른 예스 버튼.

-아이템: 수수께끼 알을 사용하셨습니다. 스킬: 금식충 S (LV 1)을 습득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황금색 빛을 뿜어내는 수수께끼 알.

알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마치 오로라처럼 흘러 허공에 빛으로 된 문양을 새겼다.

황금색 빛으로 이루어진 문양.

거대한 산맥 같기도 단단한 방패 같기도 한 그 문양은 점점 그 크기가 압축되더니, 엄지손톱만 한 빛 덩어리가 되어 내게 쏘아져 왔다.

그 황금색 빛 덩이가 내 가슴을 파고드는 순간.

-축하드립니다. 스킬: 금식충 S (LV1)을 습득하셨습니다.

-사용자 강현 님께 스킬이 적용됩니다.

-스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스킬 탭을 눌러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자 떠오르며 심장 어림에서 끔찍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끄…어억.”

심장을 붉게 달궈진 인두로 지지는 것과 같은 고통.

나는 제대로 된 신음조차 내뱉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몸을 뒤틀었다.

문제는 고통이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끄으으….”

심장에서 시작된 고통은 혈관과 뼈 그리고 근육과 신경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갔다.

마치 심장 어림에서 화산이 터져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서서히.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다급한 씨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크롤러의 공격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웬만한 고통엔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살덩어리가 부식되어 먼지로 흩어지는 고통쯤은 새 발의 피였다.

용암이 끓어 오르는 것처럼 온몸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주변을 달궜다.

뼈와 근육이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지는 것만 같은 아득한 고통.

“끄르륵…….”

결국, 내 정신은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기절하는 것을 택했다.

‘세상에…공짜는 없다더니…….’

***

“으…윽.”

짧은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수께끼 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절하기 전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수수께끼 알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일회용이었던가?’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자 씨드가 말을 걸어 왔다.

“정신이 드십니까. 사령관님?”

“응. 그런데 알이 안 보이네. 일회용이었나 봐.”

내 목소리엔 진한 아쉬움이 섞여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각성자가 스킬을 습득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이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아쉬워하고 있을 때 씨드가 눈앞으로 날아왔다.

“알이라면 제가 챙겨두었습니다.”

중력제어로 수수께끼 알을 들고서.

“사령관님께서 쓰러지시고 이 괴물이 아공간 쪽으로 굴러가기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내가 스킬을 흡수한 후 알은 활동성을 잃은 듯 보였지만. 씨드는 여전히 알이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알이 활동을 멈춘 상태에서도 저렇게 멀리 떨어트려 놓은 걸 보면 말이다.

“잘했어 씨드! 하하.”

나는 씨드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지만, 이제는 든든한 동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씨드에게 알을 건네받은 나는 기쁜 기색을 그대로 표출하며 그것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이것으로 또 다른 스킬을 얻을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성장형 아이템을 얻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테지만.’

이제 남은 건 획득한 스킬 확인을 할 차례.

상태창을 열자 찬란한 S급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스킬 명. 금식충(金食蟲).

그대로 직역하면 금을 먹는 벌레라는 뜻이지만 시스템 스킬 설명은 약간 달랐다.

[금식충 S (LV1)

금속을 흡수해 몸의 경도와 강도를 해당 금속의 경도와 강도로 변환시킬 수 있다.

스킬의 유지시간은 흡수한 금속의 질과 양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흡수한 금속: 0/3]

그와 함께 이어진 시스템 메시지.

-스킬: 금식충 S (LV1)의 각성이 가능합니다. 스킬 각성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보통 S급 스킬의 스킬 각성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고 하던데 내가 직접 S급까지 올린 스킬이 아니라서 그런지 시스템이 각성 여부를 물어왔다.

‘각성은 직접 하라는 거지?’

순간 온몸의 근육이 부르르 떨렸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거다.

금식충 스킬을 습득할 때 느꼈던 그 끔찍한 고통을 말이다.

만일 스킬 각성을 한다면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 겪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까짓거 죽지만 않는다면 못할 것도 없지.’

무려 S급 스킬의 각성이다. 각성 없는 S급 스킬은 엔진 없는 람보르기니와 같다.

차가 아무리 뽀대 나면 뭐 하겠는가? 달릴 수가 없는데.

후-.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떨리는 손을 들어 시스템 창으로 가져갔다.

예스 버튼 앞까지 간 손가락이 덜덜 떨리며 멈춰 섰다.

이건 몸이 거부하는 거다.

내 뇌는 버튼을 누르라고 명령을 내리는데 손가락이 버튼 누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고통을 기억하는 육체의 정직한 반응이었다.

“사령관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걱정스러운 씨드의 목소리에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씨드를 보며 말했다.

“씨드. 나 또 기절할지도 모르니까. 잘 지켜줘.”

비록 아공간밖에 없는 던전이지만 또 모르는 거니까.

왜 위험한 던전 안에서 이러냐고?

지금 내겐 오히려 던전 밖이 더 위험하다.

내가 기절했을 때 그 욱일회라는 놈들이 습격해 온다고 생각해 봐라.

강 회장과 다른 이들이 붙여 놓은 감시자 겸 경호원들이 있다지만, 그들이 정말 목숨을 다해 나를 지켜 줄까?

결론은 내가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최고다.

그렇게 씨드에게 경계를 부탁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버튼을 눌렀다.

-스킬 각성을 시작합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왠지 시스템의 메시지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끄아아악!!”

그와 함께 끔찍한 고통이 다시 심장 어림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느낀 고통은 아까와는 또 달랐다.

심장에서 생겨난 초저온의 미세 고체 알갱이가 알알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

즉, 또 다른 의미에서 불타는 듯한 고통이 이어진 것이다.

“끄르륵…….”

결국, 나는 또다시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

“으음….”

낯선…아공간 천장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사령관님?”

씨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어째 요즘 이 말을 참 많이 듣는 것 같다.

“괜찮아. 그동안 별일 없었지?”

“아공간의 개수가 늘어난 것 빼고는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확인해 본 결과, 씨드의 말대로 아공간 개수가 조금 더 늘어날 것 빼고는 던전 안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내가 던전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지?”

“23시간 21분이 경과 되었습니다.”

거의 하루를 꼬박 던전 안에서 보낸 셈이었다.

전날 미리 연락해 두긴 했지만, 이 정도로 두문불출하면 지켜보는 자들의 걱정을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확인할 건 해야지.’

아무리 급하더라도 스킬 각성의 효과는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꿀꺽.

목울대 너머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절로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스킬 각성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헌팅 방식이 바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어 스킬을 확인했다.

“흠…이것 참….”

그리고 스킬을 확인한 나는 조금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금식충 S (LV1)

금속을 흡수해 몸의 경도와 강도를 해당 금속의 경도와 강도로 변환시킬 수 있다.

스킬의 유지시간은 흡수한 금속의 질과 양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흡수한 금속: 0/3

스킬 각성: 난 아이템도 먹어.

액티브 스킬이 내장된 금속류 아이템을 흡수해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흡수 스킬: 없음. (0/10)]

‘액티브 스킬이 내장된 아이템만 흡수 가능한 거면 패시브 스킬은 안된다는 거고. 거기에 금속류 아이템만 흡수할 수 있다…. 저 숫자는 스킬 사용 가능 횟수야? 아니면 흡수할 수 있는 스킬이 열 개라는 건가?’

분명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도움이 되는 각성 효과였다. 하지만 내 표정이 아리송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전용 던전에서 이 각성효과가 쓸모가 있을까?’

바로 전용 던전에서 이 스킬이 과연 쓸모가 있느냐 하는 것.

‘일단 사용을 해 보면 알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씨드를 인벤토리에 챙기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

강현의 캠핑카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하-. 이틀 전엔 벌집에 드나드는 꿀벌처럼 택배를 가지고 들락날락해서 사람을 걱정시키더니 이젠 아예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서 걱정시키네.”

비현의 요원인 사내는 강현의 캠핑카를 내려다보며 작게 투덜거렸다.

“시간 좀 지나니 겁이 나나 보지. 어제 아침에 버스 안에서 마나 수련할 거라고, 연락 안 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 왔었잖아.”

동료의 말에 사내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려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아? 밥도 안 먹고 샤워실에 24시간이 넘게 처박혀 있는데? 애초에 팀장님이 관찰카메라 설치하자고 했을 때 설치했으면 이런 걱정 안 하지.”

강현의 경호를 맡은 비현의 팀장은 캠핑카 내부에 카메라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강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덕분에 답답한 건 그를 경호하고 있는 비현과 두 개 길드의 인원들이었다.

내부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으니까.

“프라이버시가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뭐야? 젠장.”

“네가 왜 그런 걱정을 해?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걱정하지 말고 주변 경계나 잘해 욱일회 놈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하긴 우리한테 중요한 건 미끼가 아니라 미끼를 노리고 덫에 들어올 놈들이지.’

동료의 핀잔 어린 말이 끝날 즈음이었다. 그들이 주시하고 있던 캠핑카의 문이 열리고 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저 사람도 양반은 아닌가 보다. 저기 문 열고 나오네.”

“그러네…. 어?!”

동료의 말에 강현을 바라보던 사내가 놀라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왜?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소리는 왜 질러?”

“아니 방금 저 사람하고 눈 마주친 것 같아서.”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하고 있어. E 급이 무슨 수로 우리 은신을 꿰뚫어 보냐? 거기다가 거리가 1㎞는 떨어져 있는데.”

“아니. 정말 눈 마주친 것 같은데….”

“실없는 소리 말고 경계에 집중해. 팀장한테 걸리면 너만 아작나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무렵 강현의 시선이 다시 두 사람을 향했지만, 이번엔 둘 중 누구도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

‘지금 경계 중인 인원이 총 몇이라고?’

‘적외선 레이더에 확인된 인원만 총 120명입니다.’

씨드의 레이더에 걸리는 인원이 120명이라면 씨드가 감지하지 못하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라는 소리였다.

‘더 늘었네?’

‘네. 하루 전보다 30명 늘었습니다.’

경호를 시작한 지 3일째가 되었으니 좀 느슨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인원을 보강했다.

아마도 욱일회 놈들이 나를 습격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 지금 올라오고 있는 구름 가오리 때문이겠지.’

구름 가오리.

등급외 몬스터로 지정된 12마리 괴물 중 하나.

한반도의 장마는 구름 가오리와 함께 시작한다. 이는 놈이 등장하고 지난 70년간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구름 가오리가 한반도를 지나가며 놈이 흘리고 간 비구름이 뭉쳐 장마 전선이 형성되고, 그렇게 15일 정도 비가 내리고 나면 장마가 끝난다.

그 뒤에 진짜 여름이 시작되는 거다.

문제는 놈이 지나갈 때 가끔 정말 어마어마한 비를 쏟아낸다는 거다.

폭우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비를.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듯이 아무리 방비를 해도 놈이 뿌리는 빗방울을 막아낼 수 없다.

그래서 인류는 구름 가오리를 등급외 몬스터로 규정했다. 자연재해와 동급인 몬스터로.

이건 정부와 사람들이 아무리 방비를 해도 소용이 없다.

놈이 어느 방향으로 진로를 잡느냐는 말 그대로 놈의 마음이었고, 놈이 얼마나 많은 비를 뿌릴지는 예측할 수 없으니까.

막말로 목포 쪽으로 상륙해 백두산을 찍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아니면 지그재그로 한반도를 훑으며 올라올 수도 있고.

그건 정말로 최악의 경우지만 말이다.

이런 위험한 녀석을 왜 그냥 놔두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그야 잘못 건들면 주옥 되니까.’

40년 전쯤인가, 구름 가오리가 한반도를 타고 올라가 방향을 틀어 중국 쪽으로 내려갔는데 중국 쪽 SS급 각성자 하나가 놈을 사냥할 계획을 세우고 길드와 군대까지 동원해 공격한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놈이 여전히 살아 있는 걸 보면 답은 나와 있지 않은가.

그 각성자가 구름 가오리에게 공격을 시도했던 산둥성 웨이팡시 인근은 지금도 사람이 살지 못한다.

‘매년 장마철만 되면 시간당 1000㎖를 쏟아붓는데 사람이 살면 그게 이상한 거지.’

거기다 구름 가오리가 매년 한 번 이상은 꼭 들르는 루트가 되었으니 그 물난리를 겪고 누가 그곳에 살겠는가.

덕분에 웨이팡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가 되었고, 던전 브레이크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의 천국이 되었다.

그리고 구름 가오리를 공격했던 그 각성자는 물론, 그 레이드에 참여했던 길드와 군대는 중국 역사에 인민의 역적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교과서에까지 실릴 정도라니 말 다 했지.’

아프리카 북부의 어떤 물 부족 국가에서는 신으로 추앙받는다는 구름 가오리가 중국에선 재앙으로 불린다니 참 아이러니다.

하여튼 일기예보에 따르면 구름 가오리가 오늘 새벽에 목포에 상륙했다고 한다.

예상진로는 북쪽.

그러고 보니 저 먼 남쪽 하늘로 거뭇한 먹구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놈이 언제 이곳까지 올지. 아니 올지 안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만약, 구름 가오리가 이곳까지 오면 놈들의 습격은 오늘 이뤄질 거다.’

구름 가오리는 항상 거대한 먹구름 덩어리와 함께 다니니까.

햇빛을 가리는 짙은 먹구름,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 몰아치는 천둥벼락.

무슨 일이 벌어지기 딱 좋은 날씨 아닌가?

“준비해야겠네.”

비가 내리기 전에 헌터 마켓부터 털어야겠다. 구름 가오리가 올라오면 배송이 안 될 테니까.

그렇게 나는 욱일회라는 적을 맞을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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