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알까기 (3).
다음날.
전용 던전에 입장한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새 많이 늘었네.”
저 먼 우주에 있던 별들이 땅 위에 내려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색색의 빛으로 땅 위에서 반짝이는 별, 저게 모두 아공간이라는 소리다.
던전을 나갈 때만 해도 100개 남짓이었는데. 이젠 그 숫자가 늘어 한눈으론 세기도 힘들었다.
그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건 푸른색.
검붉은 빛으로 위험스럽게 빛나는 것도 몇 개 눈에 들어왔지만, 그쪽으론 두 번 다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색깔만 봐도 불길한데. 저기 들어가면 결딴날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수가 많은 푸른색 아공간 중 하나를 고른 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특성 아공간 청소부가 발현됩니다.
-특성 공간시가 발현됩니다.
-특성 아공간 조작이 발현됩니다.
익숙한 메시지와 함께 푸른빛이 나를 감쌌다.
***
수많은 아이템이 부유하는 아공간.
내부는 처음 청소했던 ‘아쿨난의 아공간’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비슷한 크기의 공간에 비슷한 크기의 균열, 거기에 들러붙어 있는 크롤러까지.
크롤러들은 내가 아공간에 들어왔지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아공간 파편을 주워 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씨드 일단 방어 모드로 주변 경계해.’
‘네. 사령관님.’
저번에 저것들이 반응을 보인 건 내가 씨드를 불러들이기 위해 균열을 넓히려 할 때였다.
‘이번에는 조심해야지.’
오늘도 마찬가지로 놈들은 내가 샤이닝 에로우 50대를 꺼내 아공간에 띄울 때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비록 씨드의 공격이 놈들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진 못하겠지만, 방어 모드로 띄워 놓으면 공격해 오는 놈들을 차단할 수는 있으리라.
‘무기도 빵빵하게 준비했고….’
양손에 두 개의 밀대를 든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아공간의 주인이 기사였던 걸까?
유난히 쇠붙이로 된 아이템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투구와 견갑 같은 중갑부터 두꺼운 방패와 거대한 대검까지.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쩍였다.
‘여기 있는 아이템들을 수수께끼 알에게 먹일 수는 없나?’
분명 아공간을 떠도는 아이템을 건드릴 수 있는 건 청소부 전용 도구들뿐이었다.
빗자루나 쓰레받기 같은.
하지만 먹이는 건?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이미 내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는 아이템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시도해 볼 가치가 있어.’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 해도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사령관님. 그 괴물은 어째서 꺼내시는 겁니까?’
던전에 들어오기 위해 인벤토리에 함께 넣어두었던 그 잠깐 사이에 시달리기라도 한 걸까?
씨드는 내 손에 쥐어진 알을 보고 기겁을 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시험해 볼 게 있어. 씨드. 일단 인벤토리로 들어가 있어.’
괜히 지금 알을 풀어 뒀다가 샤이닝 에로우에 달려들면 머리 아프기에 나는 샤이닝 에로우를 모두 인벤토리로 집어넣었다.
‘크롤러들을 자극하는 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그 후. 수수께끼 알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자, 녀석은 미사일처럼 내 손아귀에서 튀어 나갔고.
나는 혹시 모를 크롤러들의 습격을 대비해 양손에 밀대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그리고 나는 왜 씨드가 녀석을 보면 치를 떠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물 만난 물고기가 저럴까?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가 저럴까?
녀석은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전환을 해가며 아공간 안에 존재하던 금속 아이템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풀어준 지 5분도 되지 않아 약 30여 개의 아이템을.
‘허어….’
변태 중갑 세트를 먹어치울 때 1분이 걸린 건 정말 천천히 흡수한 거였나 보다.
‘그래도 이걸로 아이템 구매비용은 굳었다.’
밖에 널린 게 아공간이고, 그 아공간 안에 있는 금속 아이템이면 충분히 저 녀석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씨드 말대로 한계점이 온 거라면 그 한계점이 터지도록 먹게 해 주지. 그럼 무슨 결과가 나와도 나오겠지.’
알이 터지던 등급 업을 하던 말이다.
청소부 전용 아이템으로만 만질 수 있던 아공간 속의 아이템을 무슨 수로 먹어치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수께끼 알은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템을 먹어치웠다.
그것도 너무 잘.
약 10분.
수수께끼 알이 아공간에 부유하던 금속성 아이템들을 모두 먹어치우는 데 걸린 시간이다.
녀석은 금속과 다른 재질이 섞여 있는 아이템 같은 경우 금속만 흡수하고 나머지 부분은 그대로 토해냈다.
마치 치킨 뼈를 발라내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금속 아이템을 흡수한 수수께끼 알은 내 앞으로 날아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이건 안돼.”
내가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에 식탐을 부리는 듯한 녀석의 모습에 서둘러 밀대를 놓고 녀석을 손아귀에 틀어쥐었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열어 샤이닝 에로우 들을 꺼낸 후 녀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 녀석 때문에 인벤토리엔 샤이닝 에로우를 제외한 금속 재질의 아이템들은 넣지도 못했다.
녀석이 다 먹어치울까 봐.
***
“씨드. 준비됐어?”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나를 뒤덮고 있는 50대의 샤이닝 에로우.
“함대. 능동방어 모드 전개합니다.”
씨드의 말이 끝남과 함께 매끄럽던 화살과 같던 샤이닝 에로우의 선체에 삐죽삐죽 가시와 같은 로봇팔들이 돋아났다.
크롤러들의 공격이 시작되면 저 팔들이 레이저를 발사할 거다.
약간의 방해물만 있어도 요리조리 비행 궤도를 비트는 크롤러들의 공격방식을 이용한 방어법이었다.
씨드와 함께 지난번의 싸움을 복기하며 나름대로 궁리 끝에 만들어 낸 방어법이었다.
공격은 내가, 방어는 씨드가.
하지만 잠시 후 나는 모든 계획을 취소해야만 했다.
“이건…. 또 생긴 게 왜 이래?”
약 40여 마리의 크고 작은 크롤러들, 내가 건드린 균열에 반응한 녀석들이 모두 나를 주시했다.
지금은 40여 마리지만 나중에 이 녀석들이 모두 뭉쳐 하나의 개체를 이룰 거다.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안이었다.
문제는 녀석들의 형태.
나를 인지한 녀석들이 변화를 시작했는데, 지난번 크롤러가 몽실몽실한 솜뭉치 같았다면 이번 녀석은 마치.
“고슴도치? 밤송이?”
삐쭉삐쭉 날카로운 가시가 온몸에 돋아난 크롤러들의 모습은 화가 나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꾸룩-꾸룩-꾸룩-!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쉬쉬 쉬 쉭!
녀석들이 그 날카로운 가시를 마치 미사일처럼 발사했다는 것이다.
“씨드! 막아!”
하늘에서 바늘로 된 비가 쏟아져 내리는 걸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도 모르게 씨드에게 막을 것을 명령했지만.
알고 있었다.
이것들을 모두 막는 건 불가능하다는걸.
“아…. X 같네! 진짜!”
근거리 타격계통의 적을 상정하고 몽둥이만 준비를 해왔더니 원거리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격이다.
한탄 섞인 목소리와 함께 나는 훌륭한 표적지가 되어 놈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표표표푝!
온몸으로.
날카로운 바늘이 비늘을 뚫는 것과 같은 소리와 함께 내가 입고 있던 갑옷은 넝마가 되었다.
치이이익-!
“크윽-!”
가시와 같은 놈들의 공격에 적중당한 갑옷은 순식간에 부식되어 떨어져 나갔고.
쉬쉬 쉬 쉭!
재차 이어진 놈들의 공격은 씨드마저 회피기동을 해야 할 정도로 거셌다.
하지만 화살이 아무리 빨라도 내리는 비를 피할 수는 없는 법.
샤이닝 에로우 몇 대가 회피기동 중에 놈들이 날린 가시에 맞아 외장갑이 부식되어 떨어져 나갔다.
“씨드! 인벤토리로 들어가!”
“하지만 사령관님!”
“잔말 말고 들어가! 전함 부서지면 수리할 재료도 없어!”
샤이닝 에로우가 파괴되는 걸 본 나는 기겁해서 외쳤고. 씨드는 반발했지만 이어진 내 말에 수긍한 듯, 인벤토리로 들어갔다.
물론 외장갑이 떨어져 나가 반파된 3개의 샤이닝 에로우는 내가 따로 챙겼다.
이대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면 수수께끼 알의 훌륭한 간식이 될 테니까.
그리고 이어진 크롤러와의 전투는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놈의 가시에 적중된 피부와 근육이 녹이 슨 쇳조각처럼 부식되어 떨어져 나가고.
“으윽. 젠장.”
핏방울이 송골송골 솟아올라 허공으로 부유했다.
온몸에 가득한 크고 작은 상처에 힐링 포션을 발라 치유하기 무섭게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 그 자리를 채웠다.
지금까지 치러왔던 그 어떤 싸움보다 처절한 싸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나는 겨우겨우 중요한 급소만을 방어한 채로 놈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노출되었다.
크롤러들은 정말 영악하게 나와 거리를 벌린 채로 공격을 했다.
내가 피해를 무릅쓰고 다가갈라치면 유기적으로 움직여 거리를 조절하며.
‘빌어먹을 일이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이 전용 던전에선 나에겐 최종병기나 다름없는 샤이닝 에로우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 기껏 새로 장만한 전용 아이템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뭘 맞힐 수가 있어야 타격을 입히든 말든 할 게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크롤러가 가시를 발사할수록 크롤러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일까?’
크롤러에게 지금 나는 맞추기 쉬운 과녁일 뿐이다.
‘내 힐링 포션이 먼저 떨어지느냐 녀석이 가시를 발사하다 소멸하느냐인가?’
하지만 이대로 놈의 샌드백이 되어 처맞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힐링 포션은 정말 넉넉하게 준비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가장 소중한 건 내 목숨이니까.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단련해야 해.’
처음 크롤러를 상대할 때 깨달았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방법.
저번에 상대했던 놈이 탱탱볼과 같이 움직이는 시속 200㎞ 야구공이었다면 이 녀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다.
‘눈으로 보고 피하면 늦는다.’
온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세포 하나하나에 마나를 불어넣어 예민하고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큭.’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을수록 가시가 박힐 때 느끼는 고통도, 살점이 부식되어 떨어져 나갈 때의 고통도 더욱 선명해졌다.
“끄으….”
앙다문 입술 밖으로 신음이 새어 나오고 가시가 박힐 때마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마나를 머금고 수십 배 예민해진 감각과 신경은 가시가 날아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고통도 수백 배 증폭시켜주었다.
온몸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며 감각을 예민하게 키우는 것을 극렬히 반대해 왔지만, 나는 무시했다.
‘당장의 고통 때문에 멈춘다면, 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잠깐 사이에 수천 개나 되는 가시가 쏘아져 와 내 몸에 적중했다.
‘흐으….’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공격을 당했던 전과는 다르게 피부에 닿기 전 잠깐이지만 가시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부식돼 떨어져 나가는 살덩어리들과 꽃잎처럼 붉게 피어오르는 핏방울.
뇌를 태우는 새하얀 고통 속에서 나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감각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쉬쉬 쉭!
표표표표푝.
티티팅!
나를 둘러싼 모든 방위에서 쏘아져 오는 가시들의 공격을 받으며 나는 팔을 움직였다.
피부 주변에서만 느껴지던 감각의 범위가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갔다.
티팅.
쏘아져 오던 가시 몇 개가 한 손에 쥐고 휘두른 밀대에 맞아 튕겨 나갔다.
우연인가?
모르겠다….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드는 고통에 그런 것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0㎝, 20㎝,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초인적인 감각의 범위가 내 몸을 중심으로 지름 2m 크기의 원을 이루는 순간.
티티티팅!
나는 급소를 노리고 날아오는 가시들을 몸으로 막는 것이 아닌 밀대를 휘둘러 튕겨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막지 못한 부분은 고스란히 가시 공격에 내어줘야 했다.
‘아직 몸이 감각을 못 따라가고 있어.’
그러나 감각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마치 내 주변의 공간이 나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모든 게 선명하고 또렷하게 느껴졌다.
가시가 날아오며 일으키는 미세한 공기의 파동까지 모든 게.
콸콸콸
텅.
나는 포션 병을 기울여 생수처럼 온몸에 들이부은 후 싱긋 웃었다.
웃었다고 말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라 말할지도 모를 미소.
포션 병을 집어 던진 나는 허공을 부유하고 있던 밀대 하나를 손에 그러쥐었다.
“이제…. 너도 좀 맞자.”
마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
이 또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참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었다.
샌드백 놀이는 이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