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62화 (62/202)

62. 알까기 (2).

-‘아이템: 수수께끼 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갑자기?’

지금껏 아무런 반응이 없던 시스템이 알의 사용 여부를 물어 왔다.

‘수수께끼 알’이라니 정말 극악한 작명센스다.

‘그래서 이름도 등급도 설명도 모두 물음표였냐?’

시스템 메시지를 밀어둔 나는 탁자 위에 굴러다니는 알을 집어 들었다.

[아이템: 수수께끼 알]

[등급: E급]

[설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알. 현재 성장형 아이템 쿠울란의 발톱을 흡수해 성장 중이다. 사용 시, 스킬: 금식충(金食蟲) E (LV 2)를 습득할 수 있다.]

“금식충…뭔 스킬 명이…….”

수수께끼 알에 이어 극악한 작명센스를 보여주는 스킬 명을 보고 조용히 중얼거린 나는 이내 아이템 설명에 집중했다.

‘요약하면 저 수수께끼 알이 성장형 아이템 쿠울란의 발톱을 흡수하고 쿠울란의 발톱의 성장 조건인 금속흡수를 사용해 인벤토리 안에 있던 아이템들을 처먹었다는 거군.’

무려 E급 스킬.

아무래도 저건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아이템들을 잡아먹은 결과일 것이다.

내가 보상으로 쿠울란의 발톱을 받았을 때 등급은 F.

하지만 수수께끼 알의 등급은 E.

아직 성장 중이라 했으니 금속류 아이템을 먹이면 스킬의 등급이 더욱 올라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중요한 건 그 스킬을 내가 흡수할 수 있다는 거고.’

설명대로라면 수수께끼 알을 S급까지 성장시키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그럼 S급 스킬 금식충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거고.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먹여야 하냐는 것과.

‘이게 과연 일회용 아이템이냐는 거지.’

재사용이 가능하다면 말 그대로 대박 아이템이다.

성장형 아이템만 구할 수 있다면 나는 직업과 관계없이 어떤 스킬이든 얻을 수 있게 되는 거니까.

‘확인해 볼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거실 수납장을 열어 다섯 부위로 나누어진 중갑을 꺼냈다.

늘씬한 검은색 표범을 연상케 하는 외관.

바로 바람새 가죽 갑옷을 얻기 전까지 입고 다녔던 300kg짜리 변태 중갑이었다.

‘일단 이 알을 성장시켜본 뒤에 결정하면 될 일이지.’

일회성 아이템일 지도 모르는데 고작 E급에서 스킬을 습득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부르르르.

자신의 앞에 있는 중갑을 느낀 것인지 알이 몸을 떨었다.

마치 침을 흘리며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일단. 먹어.”

“사령관님?”

“그냥 지켜봐. 확인할 게 있으니까.”

놀란 씨드를 만류한 나는 살포시 놈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 손을 떠난 알은 데굴데굴 굴러 중갑의 투구에 다가갔다.

그러곤.

주우욱.

수수께끼 알은 그 단단하고 탄력적인 몸을 늘여 순식간에 투구를 뒤덮었다.

‘무슨…. 한입만이냐?’

정말 딱 한입에 투구를 먹어치운 녀석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줄여 다시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데구루루.

그러곤 다시 몸(?)을 굴려 이동한 녀석은 중갑의 다른 파츠들을 먹어치웠다.

왜 씨드가 녀석을 괴물이라 불렀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중갑 한 세트를 먹어치우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으니까.

“씨드. 네 말대로 괴물은 괴물이네.”

중갑 세트를 먹어치운 녀석에게 변화가 생겼다. 금식충 스킬의 등급은 여전히 E급이었지만 레벨이 5레벨 오른 것.

‘더 많은 아이템이 필요하겠군.’

S급 아이템 하나의 최소 천억 원 이상.

그렇다면 S급 스킬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답은 측정할 수 없음이다.

한번 익힌 스킬은 자주 사용해 숙련도를 올리는 것 말고는 등급 업을 할 방법이 없으니까.

‘천억을 사용해 S급 스킬을 얻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지.’

비록 스킬 명은 영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전용 던전에 들어가는 건 미뤄야 할 것 같다.

나는 헌터 마켓에 접속했다.

사용감이 있는 중고품이라 해도 아이템인 건 다르지 않은데, 알에 먹일 아이템이 굳이 새 제품일 필요가 있을까?

시스템 상점 창에서 구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손해였다.

그 포인트로 발모제나 활성단 같은 아이템을 구매해 콜팡에 판매하는 게 더 이득이었으니까.

이날 오전, 내 계좌 잔고는 또다시 반 토막이 났다.

***

강현이 이사를 마친 날 오후.

강현이 머무는 구 청심원 외곽의 산등성이.

수풀에 몸을 숨긴 채, 구 청심원을 주시하고 있던 사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뭔…. 퀵서비스가….”

강현의 경호를 맡은 비현 소속 직원은 마치 일개미의 행렬처럼 구 청심원을 향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와 트럭의 행렬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저 인간은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인지를 못 한 거 아냐? 배달 기사 중에 욱일회 놈들이라도 섞여 있으면 어쩌려고 저러는 거야?”

그 직원의 말에 옆에 있던 직원이 그의 말을 받았다.

“말 마라.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팀장님이 연락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러라고 지금 제가 미끼 역할을 하는 중인데요.’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딱 이렇게 말했단다.”

“허…. 고작 E급 각성자가 간땡이가 부었네.”

“그 말 듣고 팀장님 혈압 올라서 뒷목 잡으시더라. 왕회장님 특별지시니 욕도 못 하시고 답답한 것 같으시더라고.”

“근데 왕회장님은 왜 저런 핫바리 헌터한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시는 거냐?”

“쉿!”

사내의 물음에 동료가 기겁한 얼굴로 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너 비현 제1 수칙 잊었어? 팀장이라도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냐?”

비현의 제1 수칙 그건 ‘오너의 명령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였으니까.

행여 팀장이 듣기라도 했다면 당장에 짐 싸고 퇴사 당할뻔했다.

동료에게 감사의 눈인사를 건넨 사내는 다시 강현이 머무는 청심원을 주시했다.

‘그나저나 대체 뭘 주문했길래 저렇게 끝도 없이 배달이 오는 거야?’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는 또 한 가지 의문.

‘그나저나 저 많은 물건이 저 버스 안에 다 들어간다고?’

지금까지 왔다 간 택배와 퀵서비스만 해도 100건이 넘었다.

건수도 건수지만 그 부피도 만만치 않았는데. 캠핑카 밖엔 빈 포장 상자만 가지런히 쌓일 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저게…. 가능해? 안에 무슨 불가살이(不可殺伊)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사내의 의문을 뒤로하고 퀵서비스와 택배의 행렬은 온종일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

‘와 씨…. 대체 얼마를 처먹어야 하는 거야?’

주먹만 한 크기의 알.

녀석이 오늘 하루 흡수한 아이템의 수는 물경 300개가 넘는다. 들어간 금액은 거의 천억.

이것도 헌터 마켓에서 중고로 구매했기에 가능한 개수였다.

아마 각성자 스토어였다면 200개 남짓 구매하는 게 한계였으리라.

덕분에 헌터 마켓 앱의 VVIP가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유는.

[아이템: 수수께끼 알]

[등급: A급]

[설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알. 현재 성장형 아이템 쿠울란의 발톱을 흡수해 성장 중이다. 사용 시, 스킬: 금식충(金食蟲) A (LV 10)을 습득할 수 있다.]

바로 수수께끼 알이 A급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것 때문이었다.

“왜 더 등급이 오르지 않는 걸까?”

금식충 스킬이 A 10레벨에 올라간 이후에 알이 먹은 아이템이 B급으로 3개.

마지막에 먹이려고 아껴두었던 아이템들이다.

하지만 녀석은 B급 아이템 세 개를 꿀꺽 삼키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S급만 되면 들어간 돈이 아깝지 않을 텐데. 마치 무언가에 막힌 듯 녀석은 S급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한계점에 도달한 게 아닐까 합니다.”

“한계점?”

“탈모제를 떠올려 보십시오. 사령관님.”

씨드를 강화하기 위해 발라왔던 겔로드 족의 탈모제는 지금은 씨드의 내구성과 방어력을 올리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발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씨드는 이걸 두고 겔로드 족의 탈모제가 가진 한계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씨드의 말대로라면 수수께끼 알이 가진 한계점이 A급까지라는 의미였다.

‘좀…. 아쉬운데.’

A급 10레벨의 스킬.

S급보다 낮은 것뿐이지 분명 어디 가서 무시당할 만한 스킬 레벨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런데도 아쉬웠다.

‘S급만 되면 스킬 각성(覺醒)이 될 텐데.’

S급 스킬의 스킬 각성.

이건 각성자들 사이에서 두 번째 로또라고 불리는 이벤트다.

콜팡을 설립하고 ‘텔레포터’라는 아이템을 만들어 세계물류의 판도를 뒤바꾼 다비드 미첼도 S급 스킬 각성 덕에 그게 가능했고, 드론을 만들어 세계 10대 부자 중 한 사람이 된 메이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로또에도 꽝이 있는 것처럼 스킬 각성을 한다고 해도 모두 그렇게 부자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노력 없이 얻는 건 한계가 있는 건가?’

무려 천억이라는 돈을 쓰긴 했지만, 내가 한 거라곤 포장 상자를 까서 녀석에게 아이템을 던져준 것뿐이었다.

‘고작 하루 만에 S급 스킬을 얻으려 했으니, 욕심이 과했지.’

남들은 10년, 20년을 걸려 이뤄낸 스킬 각성을 하루 만에 이루려 한 내 욕심이 과하긴 했다.

‘당분간은 여유를 두고 좀 지켜봐야겠군. 쿠울란의 발톱은 분명 S급까지 성장했던 아이템이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시스템 상점 창을 열었다.

이젠 크롤러를 상대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을 차례였다.

언제 S등급이 될지 모르는 알에 시간을 허비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언제 욱일회가 나를 노리고 습격해올지 모른다.

그게 당장 오늘 밤일 수도, 내일일 수도 있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는 좀 더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어.’

지금 당장 S급 각성자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무사히 도망을 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상점 검색창을 연 나는 그곳에 ‘아공간 청소부 전용’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에 붙어 있는 문구들이니 이렇게 검색하면 나올 줄 알았지만, 결과는 허탈했다.

[아이템: 아공간 청소부 전용 빗자루]

[아이템: 아공간 청소부 전용 쓰레받기]

언제나처럼 단 두 개의 아이템만 떠올랐으니까.

‘흠…. 분명 크롤러를 상대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을 거야. 그때 시스템 메시지의 뉘앙스가 그랬어.’

시스템이 숙제를 내줄 때를 돌이켜 보면 항상 해답은 근처에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를 되새김질하며 떠올려 보던 나는 이내 해답을 찾아냈다.

직업: 해피니스 청소부.

시스템 상태창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나의 직업.

“검색. 해피니스 청소부.”

내 말이 끝나자 상점 창은 주르륵 아이템 리스트를 출력했다.

[아이템: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빗자루]

[아이템: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쓰레받기]

말총 빗자루 형태에서 벗어난 더 크고 길어진 빗자루와 쓰레받기.

그리고.

[아이템: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먼지떨이]

[아이템: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작업복]

……

그 밑으로 쭉 이어진 청소 용품들.

그 끝에는 내가 그토록 찾던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템: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밀대]

[등급: E 급]

[설명: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밀대. 마대 걸레와 결속해 사용할 수 있다. 단품으로 사용 시 크롤러를 상대할 때 효과가 좋다.]

약 20여 가지가 넘는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아이템 중 크롤러가 언급된 아이템은 이게 유일했다.

‘하…. 이건 걍 몽둥이로 쓰라는 얘기지?’

나는 정성이라고는 1도 안 들어간 무성의한 설명글을 읽으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는가? 효과가 좋다니 일단 사 보는 수밖에.

그래도 솔이 닳아 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빗자루보다야 더 유용하지 않겠는가.

가격은 무려 열 배 차이였지만 말이다.

“그나마 이게 젤 낫네….”

해피니스 청소부 전용 아이템 중 유일하게 겉으로나마 무기처럼 보이는 건 이것뿐이었다.

밀대.

이거면 봉이라고 우겨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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