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알까기 (1).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방.
암혈은 그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오늘 작전을 곱씹었다.
‘분명 실패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실패했지. 왜지?’
그의 생각처럼 오늘 작전은 실패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강현을 발견했다면 작전 시작 후 10분 안에 종료될.
하지만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강현은 그 자리에 없었고, 사라진 강현을 찾기 위해 시간이 지체된 탓에 비현과 화랑 그리고 싸울아비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정보가 샜나? 하지만 어디서?’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놈은 혼자였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놓쳤을 리가 없어.’
‘텔레포트를 한 흔적도 없었다.’
암혈은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심했다.
‘덫이었나? 하지만, 어떻게 알고?’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결국엔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강현은 어떻게 신풍대의 기습을 알았으며, 어떤 방법으로 건물에서 자취를 감췄는가?
‘원점이군….’
그렇게 암혈이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풀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대주. 산월입니다.”
“들어와.”
끼익.
삐걱거리는 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한 줄기 빛과 함께 한 남성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신풍대의 부대주 산월이었다.
“포션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주.”
“음…. 아이들은?”
“모두 치료를 마치고 회복 중입니다.”
암혈이 놈들의 공격을 막는다고 막았지만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이번 작전의 실패로 사망한 이가 다섯. 부상자는 그보다 많았다.
공들여 키운 부하들의 죽음.
그들의 시체는 적들이 가져갔을 터다.
놈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 부하들의 시체를 이용해 신풍대를 추적하려 할 것이다.
암혈이 다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산월은 묵묵히 암혈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렇게 암혈의 몸에 난 상처가 사라지고.
“애들을 준비시켜.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어딜….”
“주석원이 얼굴 좀 봐야겠다.”
고민 끝에 암혈은 처음부터 되짚어 보기로 했다.
처음 강현의 정보를 얻게 된 계기.
그건 바로 대상그룹의 테마파크 부지건 이었다.
산월이 물러가고, 홀로 남은 암혈은 악귀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넌 곱게 죽긴 그른 것 같구나. 주석원.’
그 미소의 끝엔 섬찟한 살기가 매달려 있었다.
암혈에게는 강현이 관련된 일 말고도 주석원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
“왜 그랬지?”
어둠 속을 울리는 무감정한 목소리.
“뭐, 뭘 말이야?”
주석원은 사지가 결박된 채 어딘지 모를 공간에 갇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발뺌할 셈인가?”
그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은 암혈의 목소리가 오히려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유를 알아야 대답을 할 게 아닌가!”
절규에 가까운 주석원의 외침이 공간을 울렸다.
늦은 밤 자택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을 뚫고 그를 찾아온 암혈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를 기절시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어둠 속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 할 것 아니야!’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큰돈을 주고 고용한 각성자 경호원들은 암혈의 침입을 막지 못했고.
지금, 이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좋아. 질문을 해 주지.”
여전히 무감정한 목소리지만 주석원은 암혈의 말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정말 영문도 모른 채 목이 잘리는 줄 알았으니까.
대화의 여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암혈을 설득할 수 있다고 주석원은 생각했다.
“강현이란 놈. 네가 꾸민 짓인가?”
하지만 이어진 암혈의 말에 주석원은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게 누군데?”
그는 정말 강현을 몰랐으니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오밤중에 끌려 나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그 이유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 때문이라니.
주석원의 입장에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청심원.”
“처, 청심환?”
그리고 이어진 암혈의 말은 그를 더욱 환장하게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청심환은 왜…?”
주석원의 반문에 암혈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모르는 건가, 모르는 척하는 건가?’
둘 중 어느 쪽이어도 문제였다.
정말 모르는 거라면 대상그룹 회장으로서 자질이 없는 거고, 모르는 척하는 거라면 이번 일과 주석원이 연관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암혈의 침묵에 주석원은 잔뜩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이보게 암혈! 청심환 일은 난 정말 모르는 일이야! 제약회사 쪽엔 정말 아무 짓 안 했다고!”
주석원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다.
그래야만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을 테니까.
“정말, 모르는 모양이군.”
끈적한 암혈의 목소리.
이제껏 담담했던 목소리완 다르게 지금 그의 목소리엔 살기가 담겨 있었고.
꽈드드득.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석원의 사지를 결박하고 있던 밧줄이 움직여 당장이라도 그의 사지를 찢어버릴 것처럼 옥죄었다.
“크윽…. 왜…. 왜?”
“꽤 앙큼한 짓거리를 구상 중이던데…. 회에서 모를 거라 생각했나?”
암혈의 목소리에 살기가 깃든 이유, 그건 강현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길드를 만들 생각이었더군.”
“그, 그건, 그냥…. 구상만, 구상만 한 거야. 회에 도움이 될까 해서. 자네도 알지 않나. 내가 얼마나 회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지!”
어디서 새어 나갈 걸까?
자신이 길드를 만들려 했다는 건 동생과 조카밖에 없다.
암혈의 말을 들은 주석원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토사구팽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세력을 키우려 한 것일 뿐인데.
암혈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길드에 영입하기 위해 접촉했던 헌터들 쪽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건가?’
어느 쪽에서 새어 나갔던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도움이 되었지. 충분히. 네 덕분에 신풍대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방법이 떠올랐거든.”
말투는 호의적이었지만, 그 말과 함께 뿜어지는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
꽈드득
그와 함께 주석원의 몸을 옥죄던 밧줄이 팔과 다리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끄악-! 이, 이렇게 나를 죽이면 회주님이 가만히 계실 것 같아?! 대상그룹이 통째로 붕 뜨게 될 텐데!”
절규와 같은 주석원의 외침에 돌아온 것은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웃음이었다.
“큭. 왜 그렇게 생각하지? 우리에겐 너보다 충실한 개가 있는데?”
“…뭐?”
“주철원이 그러더군, 젊은 시절 네가 자신의 약혼자를 강간하고 죽여서 산에 묻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석원은 사지를 옥죄는 고통도 잊을 정도로 놀랐다.
그 일은 자신밖에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동생인 주철원이 알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우리가 너를 개라고 부른다고 해도 그렇게 개새끼처럼 X 대가리를 함부로 놀리면 쓰나. 주철원이 아주 너한테 이를 갈던데?”
“끅…. 끄윽.”
주석원은 어느새 팔과 다리를 타고 올라온 밧줄에 입을 틀어막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키킥. 그러게 개새끼가 주인 허락도 없이 목줄을 풀고 함부로 날뛰니까 그 꼴을 당하는 거 아냐. 주 회장.”
톡톡.
암혈은 육식초의 뿌리에 입이 막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주석원의 볼을 건드리곤 빙그레 웃었다.
육식초.
F급 식물형 몬스터.
각성자들에겐 고블린보다도 약한 몬스터지만 일반인인 주석원에겐 달랐다.
주석원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육식초에게 영양분을 빨리며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다.
아주 느리게 오랫동안.
“아. 내가 고맙단 말을 했던가? 네가 만들려 했던 길드는 우리 신풍대가 잘 사용하도록 하지. 고마워.”
암혈은 대답하지 못하는 주석원에게 고맙단 말을 남긴 후 몸을 돌려 빛 속으로 걸어갔다.
***
“그나저나 이건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
던전에 들어가기 전 인벤토리를 정리하던 나는 애물단지와 다를 바 없는 아이템을 꺼내 노려봤다.
새하얗고 매끄러운 껍질.
주먹만 한 크기의 말랑말랑하고 단단한 그것의 정체는 바로 알이었다.
김상욱의 퀘스트를 완료하고 룰렛을 돌려 얻은 아이템.
황금색 칸에 걸려 나온 아이템이지만 이름부터 모든 게 물음표 투성이인 애물단지.
‘황금색 칸에서 나온 아이템이라 버리지도 못하겠고….’
알을 얻고 난 후, 난 이놈을 부화시키기 위해 꽤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다.
일단 외형이 알이니 부화기를 사다 안에 넣고 부화를 시도해 보기도 했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부화기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후엔 망치로 두드려 깨 보려고도 해 봤다.
‘씨드도 뚫지 못했지.’
망치도 두드려도 깨지지 않아 씨드로 부숴 보려 했는데 실패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은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한마디로 저 알껍데기의 경도와 강도가 ‘내구의 오크’를 뛰어넘는단 소리였다.
그땐 얼마나 황당하던지.
이후론 그저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래도 황금색 칸에서 나온 아이템인데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결론적으로 그렇게 했는데도 깨지지 않는다는 것은 비범한 무언가라는 의미이기도 했고.
그렇게 내가 애물단지 알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고 있을 때였다.
“사령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중에 꺼내 놓은 씨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
“아이템 개수를 확인해 주십시오. 사령관님.”
“응? 아이템 개수는 왜?”
잠시 의문을 표했던 나는 이내 씨드의 말대로 아이템 개수를 확인해 봤다.
“어? 왜 비지?”
전날 콜팡에 제품등록을 할 때 아이템을 확인했었기에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아이템 개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템 개수가 비었다.
그것도 무려 다섯 개나.
그보다 중요한 건.
“…쿠울란의 발톱 어디 갔어?”
어제 아공간 청소를 완료하고 보상으로 받은 쿠울란의 발톱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무려 S급까지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성장형 아이템이.
“씨드 니가 먹었냐?!”
내 물음에 씨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닙니다. 사령관님. 해당 아이템은 그 괴물이 먹어 치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내가 쥐고 있는 알을 가리키는 샤이닝 에로우의 화살촉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치 공포에 질린 것처럼.
“그건…. 알이 아니라 괴물입니다. 사령관님.”
이어진 씨드의 말은 정말 놀라웠다.
그러니까 어제 강 회장과 대화가 끝난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 이사 박스에 챙겨 두었던 아이템들을 챙겨 인벤토리에 넣었다.
가구와 가전제품이야 다시 사는 게 부담되지 않았지만, 아이템은 달랐으니까.
그때 알도 함께 챙겨 넣었는데.
씨드의 말대로라면 내가 잠든 후 인벤토리 안에선 전쟁이 시작되었단다.
모든 금속 아이템을 처먹은 이 알 괴물과 샤이닝 에로우 50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그리고 그 추격전은 내가 인벤토리에서 이 아이템을 꺼내기 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아공간 청소부 특성으로 인벤토리를 들어가 본 나는 안다. 겉으로는 100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실제로 그 안은 하나의 커다란 방과 같은 공간이란 걸.
“그러니까 이 새끼가 금속제 아이템 네 개에 쿠울란의 발톱까지 처먹었다는 소리네?”
처음 멋모르고 샀던 D급 아이템 두 개와 시스템 상점 창에 올리기 위해 준비했던 E급 아이템 두 개 거기에 쿠울란의 발톱까지.
아이템 네 개의 값어치는 20억이 조금 넘고, 얼마 전에 얻은 성장형 아이템 쿠울란의 발톱은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없다.
“허. 허허허….”
웃음이 났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몸소 체감하니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톡. 데구르르.
거실 탁자 위에 내려놓은 알이 조금 구르다가 멈췄다.
나는 거실 한편에 자리한 수납장을 열어 공구함을 꺼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뭐다?
망치다!
‘내가 오늘 이 빌어먹을 타조 알을 깨부수고 만다!!’
그렇게 망치를 주워든 내가 탁자 위의 알을 향해 풀스윙을 휘두를 때였다.
통!
힘 스탯 400이 넘은 내가 풀스윙을 휘둘렀음에도 탁자 위의 알은 귀여운 소리와 함께 망치를 퉁겨냈다.
“아악-! 열 받아!!”
바로 이게 씨드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유였다.
총알보다 빠른 씨드의 공격도, 나의 풀스윙 망치질도, 알은 마치 스펀지처럼 모든 충격을 흡수했다.
뿌지직.
화가 난 나의 손아귀에 쥐어진 망치 자루가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순간이었다.
띠링.
시스템 알림음과 함께.
-‘아이템: 수수께끼 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