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60화 (60/202)

60. 덫.

“미안하네.”

대청마루에서 나를 맞이한 강 회장은 나를 보자마자 사과의 말을 던졌다.

“자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네에게 사람을 붙였었네.”

씨드 덕분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강 회장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청심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회장님은 왜 제게 사람을 붙이신 거죠?”

확실한 건 여기서 강 회장이 내게 사람을 붙였다는 것을 내가 모른 척해야 한다는 거다.

그 질문에 강 회장은 맞은 편을 가리켰다.

“일단 좀 앉지.”

강 회장의 권유에 나는 그가 앉은 다탁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나저나 황 집사가 안 보이네?’

언제나 강 회장의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황 집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한 것도 잠시.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연 강 회장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자네에게 사람을 붙인 건. 자네의 안전을 위해서였네….”

강 회장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처음 오천억이란 거금이 내게 생겼을 때 강 회장은 돈 냄새를 맡은 인간군상들이 내게 꼬일까 봐 걱정했단다.

돈은 사람을 바꾸는 요물.

혹여 내가 사치에 물들면 조언을 하기 위해 사람을 붙였는데.

“자네의 사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방향이 다르더군. 정말 놀랐다네. 그렇게 거금을 기부할 줄 몰랐거든.”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큰돈을 가진 내가 한 거라곤 각성자 스토어에서 아이템을 구매한 것과 기부가 전부.

그가 생각했던 사치는 내게 없었다.

청심원이 있으니 집도 안 샀고, 드론을 타고 다니니 차도 사지 않았다.

하다못해 최근까지도 던전에 살다시피 해서 갑옷만 입다 보니 옷 한 벌도 명품으로 사 입지 않았으니까.

“자네에게 흥미가 생겼네. 자네의 모든 행동이 내 예상을 벗어났거든. 그래서 좀 더 지켜보기로 했지.”

이제 강 회장이 내게 사람을 붙여놓은 이유는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궁금한 건 ‘왜 청심원이 그 꼴이 되었는가?’이다.

이대로 두면 한참을 강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아. 나는 그에게 물었다.

“청심원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겁니까?”

“아…. 그 이야기가 궁금한 모양이군.”

‘당연하죠. 회장님. 지금 졸지에 노숙자가 될 판인데요!’

물론. 노숙자가 될 일은 없다.

집을 구할 동안 호텔을 이용해도 될 일이니까.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어디 그런가.

“흠…. 욱일회라는 조직이 있네. 지금 그들이 자네를 노리고 있네.”

‘그러니까 왜요? 난 놈들하고 엮인 일이 없는데.’

“구가 놈이 그러더군. 욱일회는 자네에게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순간 나는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아공간을 볼 수 있다는 걸 들킨 건가? 어떻게?’

“바로 과거의 유물을 찾는 능력 말이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자네가 내 선친의 유품을 들고 나를 찾아온 걸 알고 있더군. 거기에 선친의 유해를 찾아준 것까지.”

‘아공간 능력을 들킨 게 아니라…?’

“그러던 와중에 자네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가지고 방문한 순간 확신을 했다는군. 자네에게 과거의 유물을 찾는 능력이 있다고.”

어이가 없었다.

“설마. 고작 그런 이유로 그 일본인들이 저를 노린 거란 말입니까?”

“자네에겐 고작이겠지만, 그들에게 자네의 능력은 꼭 필요한 능력이지.”

이후, 이어진 강 회장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건 말 그대로 평범한 일반인들은 모르는 뒷 세계의 이야기였으니까.

***

80년 전.

얼떨결에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

당시 사람들은 각성자들을 중심으로 뭉쳐 일본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초반엔 일본군과 친일파들이 가진 화력에 밀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곧 상황은 역전됐다.

보급이 끊긴 화약 무기는 더는 힘을 쓸 수 없었고, 그 와중에 등장한 각성자들 중엔 총과 대포의 위력이 통하지 않는 이들도 존재했으니까.

억눌러 왔던 분노와 증오.

일제강점기 30여 년간 누적된 그것의 힘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욱일회였다.

처음엔 한국 사람들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지만 세월이 지나며 그 목적은 점점 변하였다.

폭력에 대한 대항이 아닌 한반도의 재점령을 위한 일본 제국주의의 교두보로.

그것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더욱 가속화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테러단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단체의 이름도 보일회(保日會)에서 지금의 욱일회로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테러를 일으키려는 욱일회와 그것을 막으려는 각성자들 사이의 전쟁이.

***

욱일회의 탄생 배경과 함께 그들이 나를 노리는 이유를 전해 들은 후.

‘씨바. 존나 위험한 놈들이었네.’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위험이 나를 노리고 있었단 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그들의 선조가 숨겨 두었던 유산을 찾는 거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보물이지.”

“그 유산을 찾기 위해 있지도 않은 제 능력이 필요한 거고요.”

“…그런 셈이지.”

은근슬쩍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걸 어필해 봤지만, 강 회장의 반응을 보니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퀘스트를 수행하다 보니 얻은 것뿐인데 말이다.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내게 있지도 않은 능력 때문에 나를 노리고 욱일회의 신풍대라는 놈들이 대거 움직였고, 그 과정에 나를 지켜보던 이들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이변을 알게 된 강 회장이 황 집사와 함께 비현을 파견했고, 거기에 싸울아비와 화랑의 그림자들도 참전.

신풍대란 놈들과 커다란 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신풍대의 대주라는 자가 무려 S급 각성자였으며, 무려 3명의 S급 각성자의 공격에서 살아서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부하들이 도주할 때까지 시간을 번 후에.

‘어…. 그럼, 나 X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때문에, 당분간은 외부활동을 자제해야 하네. 비현과 싸울아비와 화랑, 이 세 개 세력이 자네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으니 놈들은 자네를 더욱 중요한 인물로 판단할 걸세.”

“…….”

“이건 내 의견이네만. 놈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이곳에서 머무는 건 어떤가?”

강 회장의 말은 이제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원할 거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할 말을 잃었다.

아직 여자 손 한번 제대로 못 잡아 봤는데. 대한민국 10대 길드가 쫓는 테러단체의 표적이 되었단 소리니까.

거기다 신풍대라는 놈들의 대장은 S급 각성자 세 명의 추적을 뿌리치고 도망을 칠 정도의 실력자.

만일 청심원에서 놈을 마주쳤다면 내가 감당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씨드가 비가시 모드 상태에서 공격해도 놈에겐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B급 각성 자였던 유춘삼만 해도 감각으로 씨드의 공격을 회피하지 않았던가.

‘설마 애꿎은 사람들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놈들이 애꿎은 청심원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한다면 내 행동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 목숨이다.

하지만 청심원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이유가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꺼림칙했다.

천애고아인 나에게는 친어머니와 같은 원장 어머니, 그리고 비록 마법 성형으로 얼굴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를 친동생처럼 생각해 주는 정혜 누나.

그리고 아무 죄 없는 아이들까지.

적어도 나로 인해서 이들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쩌면 놈들이 청심원을 타깃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청심원은…….”

“청심원은 걱정하지 말게. 비현과 싸울아비 그리고 화랑에서 24시간 보호하기로 했네.”

내 마음이 삐뚤어진 걸까?

내 귀에 강 회장의 말은 청심원을 미끼로 놈들을 잡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게…최선이겠죠?”

의미 없는 물음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답은 정해져 있었다는 듯 강 회장의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최선이네.”

“…….”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다.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감금 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과연 이곳에서 머무는 게 내게 안전한 것일까?

무려 80년을 유지해 온 테러조직이 그렇게 쉽게 나를 포기할까?

‘청심원 사람들을 위험 속에 놓아둔 채 나 혼자 안전한 곳에 있으라고?’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결정을 내렸다.

“저는….”

***

다음날.

폐허가 된 구 청심원 건물 앞엔 건물잔해를 치우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파견 나온 대현건설 하청 인부들은 주변에 널린 전투 흔적을 보며 말했다.

“아니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하루 만에 멀쩡하던 건물이 이 꼬라지가 난 거야?”

“쉿. 조용해 이 사람아. 저기 핏자국 보면 몰라? 각성자들끼리 싸움이라도 났나 보지.”

“그러니까. 왜 하필 여기냔 말이지. 대한민국이 아무리 콩알만 하다고 해도 널린 게 산인데, 왜 보육원에서 이 지랄을 한 거냐 이거지. 애들이라도 있었으면 어쩔뻔했어?”

“그러게. 어제 이사 안 끝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그렇게 인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현장소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어이 김 씨. 이 씨. 일 빨리빨리 해. 이따가 오후에 이사 들어온대.”

“네? 소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폐허에 누가 이사를 와요? 건물 다 무너져서 기둥 몇 개밖에 안 남았는데.”

“아 몰라도 돼. 암튼 빨리빨리 치워 저 기둥도 굴착기 불러서 허물어 버리고.”

말을 마친 현장소장은 바쁘게 걸음을 움직여 다른 인부들에게도 같은 말을 전달했다.

“아니 근데. 건물도 없는데 뭔 이사를 온다는 거야?”

“그러게. 여튼 빨리빨리 하자고 늦으면 또 저 잔소리쟁이가 뭐라고 할지 모르니까.”

그날 오후.

대현 건설 직원들이 정리를 마친 구 청심원 부지에 커다란 버스 한 대가 등장했다.

그렇게 마당 한가운데 주차된 버스의 문이 열리고 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대현 강 회장님. 일 추진력 하나는 끝장나네.’

강현은 깔끔히 정리된 부지를 바라보았다.

전날 있었던 전투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부지 위엔 오직 강현의 눈에만 보이는 새하얀 던전 포탈이 허공에 뜬 채로 빛을 내고 있었다.

강현이 대형면허가 없는 관계로 이곳까지 버스를 운전해 준 대리기사가 떠나가고.

잠시 후 거대한 크레인이 도착해 버스를 들어 집터 위에 올려놓았다.

강현의 계획은 간단했다.

대형버스를 개조해 만든 캠핑카를 던전의 입구 위로 올려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던전을 드나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던전 입구를 어느 곳에 둘지 위치를 잘 선택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캠핑카 내부를 돌아다닐 때마다 던전 입구를 지나쳐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샤워실이 두 개인 캠핑카를 구한 건 신의 한 수였지.’

버스가 자리를 잡자 강현은 버스에 올라 캠핑카의 구석에 자리한 샤워실의 문을 열었다.

샤워실의 문을 열자 모습을 드러낸 건 새하얀 포탈.

‘미끼가 되기를 자처했지만 이런 때일수록 성장을 멈출 수는 없지.’

강현이 위험한 상황에 버스형 캠핑카까지 구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청심원 사람들을 위험한 일에 휘말려 들게 할 수도 없고.’

청심원 식구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고 강산호 말처럼 자신도 안전한 곳에 숨는 방법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놈들이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지. 애들이 분산되면 경호 인력도 분산되니 그게 더 위험하기도 하고.’

자고로 경찰 열이 도둑 하나를 못 막는 법이다.

‘경호 인력이 분산되면 놈들에겐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어. 가장 뚫기 쉬운 곳을 고르면 될 일이니까.’

그래서 강현이 선택한 방법이 이거다. 차라리 놈들이 자신을 노릴 수 있도록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근처에 청심원을 지키고 있는 인원들과 강현 자신을 경호하는 인원들을 합쳐 경호를 두껍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기로 결정한 뒤부터, 불편하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정 위험하면 던전으로 도망가면 될 일이니까.’

강현은 욱일회가 한 방에 자신을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샤워실로 도망갈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강현은 전용 던전을 레벨업과 아이템을 얻는 장소이자. 도피처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전날 이곳을 왔던 모든 이들이 전용 던전의 입구를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전용 던전의 안전은 확인된 셈이니까.

‘놈들이 이걸 봤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테지.’

한마디로 이건 덫이었다.

강현이라는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설치해 둔, 뻔히 보이는 덫.

강산호는 전용 던전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강현의 이 과감한 계획을 말렸으나 강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강현은 변화하고 있었다. 그 자신은 느끼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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