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홈리스?
그간의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DH 미디어와 대현전자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강산호는 사업이 안정권에 오르자 다시 이천의 저택에 칩거했다.
거실에 앉아 보고서를 보고 있는 강산호에게 황 집사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음. 무슨 일인가?”
“조금 전 강현 군을 보호하고 있던 비현에게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연락이 끊겨?”
“아무래도 강현 군의 신병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황 집사의 보고에 강산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현을 보호하고 있던 비현에게서 연락이 끊겼다는 건 그만큼 심각한 일이었다.
“강현 군의 보호 등급이 어떻게 되지?”
“현재 1급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호 등급 1등급.
그건 대현 그룹 내에 강 회장 일가를 제외한 최고등급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최하 B급 이상의 각성자가 항상 강현의 주변에 머문다는 뜻이었으니까.
“상대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런 비현에게서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최소 B급 이상의 각성자 다수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뜻이고, 강산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건 당연했다.
“후속 조치는?”
“일현을 현장으로 급파했습니다.”
“그럼 조만간 보고가 들어오겠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현이 현장으로 갔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강산호는 뭔가가 불안했다.
“자네가 비현을 이끌고 가게.”
“회장님!”
강산호의 명령에 황 집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불안해. 적의 정체조차 보고하지 못하고 당할 정도면 상대가 보통 놈들이 아니란 소리네. 일현만으론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회장님의 경호가….”
강산호는 이어지려는 황 집사의 말을 끊으며 전에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직접 가. 명령일세.”
무겁고 단단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
오랜만에 듣는 힘이 가득한 강산호의 목소리에 황 집사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을 하고 물러났다.
과거 일현으로 불렸으며 비현의 수장이었던 황 집사. S급 각성자인 그가 다시 무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
“연락이 끊겨?”
구정철의 물음에 이장현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C급 둘에 B급 하나를 붙여 두었는데 10분 전 보고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설마 비현 놈들인가?”
“비현 쪽도 연락 두절 상태라고 합니다.”
“비현도?”
구정철은 이장현의 말에 더욱 얼굴을 굳혔다.
비현과 월화랑 모두 연락이 끊겼다면, 놈들의 목적은 강현임이 확실했고 그 말은.
“욱일회 놈들이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배제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확실할 거야. 강현이 원한을 많이 쌓았다곤 하지만 해랑 길드 같은 잡것들이 비형과 월화랑에 칼을 들이대는 미친 짓은 못 할 테니까.”
구정철의 목소리엔 확신이 어려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해랑 길드를 포함한 4개 길드는 전라도계에서 퇴출당했다.
한마디로 싸울아비의 그늘 밖으로 밀려난 것.
수뇌부라 불릴 만한 자들은 모두 구치소에 갇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고, 그들을 제외한 쭉정이들이 감히 월하랑에 칼을 들이대지는 못 한다.
그랬다간 말 그대로 몰살이니까.
그들을 배제하면 강현을 노릴만한 놈들은 욱일회밖에 없었다.
구정철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야수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꼬리를 밟으니 대가리가 튀어나온 격이군. 강현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어.”
월화랑이 연락조차 못 하고 제압 혹은 사망했을 정도면 지난번 잡은 타다시라는 놈보다 윗급일 게 확실했으니까.
“태촌이 놈에게 연락해. 신풍대의 몸통이 튀어나온 것 같다고.”
“네. 마스터.”
“그리고 자네가 월화랑을 이끌고 직접 가. 가서 그 몸통. 내 눈앞으로 끌고 와.”
“네. 마스터.”
그 말을 끝으로 그림자처럼 녹아 사라지는 이장현.
구정철은 창밖으로 보이는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꼬리를 밟으니 몸통이 튀어나왔다…. 그럼, 몸통을 밟으면 대가리가 튀어나오려나?”
그의 중얼거림엔 진득한 살기가 배 있었다.
강현이 아직 크롤러와 싸우고 있을 무렵.
싸울아비와 월화랑 그리고 비현의 가장 날카로운 칼들이 청심원으로 향했다.
***
“끝났다.”
기존에 청소하던 인벤토리보다 두 배는 넓은 아공간 청소를 마친 나는 쭉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
“왠지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기분이야.”
아무래도 청소부 일이 내 천직인가 보다. 숙련된 빗자루질은 전처럼 균열하나를 메꾸기 위해 두 번 세 번 손을 댈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깔끔하게 청소된 아공간.
그 안을 부유하는 아이템은 단 하나.
[아이템: 아쿨난의 발톱]
[등급: S급]
[설명: ‘니오넴’의 전사 아쿨난의 발톱. 획득 시 귀속.]
[추가 설명: ‘철을 먹는 전사’ 아쿨난이 남긴 발톱이다. 금속을 먹으며 성장한다. 획득 시 등급이 초기화된다.]
아쿨난의 발톱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은 내가 파괴했고.
씨드는 이미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다. 혹시라도 이곳에 씨드를 두고 가면 답이 없다.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파괴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만에 하나 보상으로 아이템을 받게 된다면 또 랜덤일 테니까. 훈민정음 해례본을 받을 때처럼 이렇게 준비해 두는 게 좋다.
‘물론, 보상을 줄 거라고 100%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설마 이 고생을 시켜 놓고 양심이 있으면 입을 닦지는 않겠지.’
시스템의 사용자로 선택된 지 두 달. 나는 점점 시스템 사용법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상은 항상 랜덤이라는 것도.
잠시 후 내 몸을 감싸는 푸른빛과 함께 나는 던전으로 되돌아왔다.
띠링.
그리고 나를 반기는 시스템의 알림음과 함께 떠오르는 메시지.
-아공간 청소를 마쳤습니다. 결과를 집계 중입니다.
-아공간 청소율 100%. 보상이 지급됩니다.
-무작위로 해당 아공간의 아이템 하나가 인벤토리로 지급됩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 주세요.
-보상으로 인벤토리가 확장됩니다.
-200→201.
-인벤토리 무게 한도가 증가합니다.
-200㎏→201㎏
‘오…. 개꿀.’
나는 아공간 아이템을 흡수하는 것 말고도 인벤토리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아공간 아이템이 죄다 B급 이상이라 구매도 못 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늘릴 수 있게 될 줄 몰랐네.’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를 흡수했을 때처럼 한꺼번에 확 늘지는 않았지만, 이거라도 어딘가.
열심히 청소하면 아공간의 크기와 한계 중량이 늘어난다는 소리니까.
보상으로 아이템 하나 받으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인벤토리에 아쿨난의 발톱도 잘 들어왔고.
“저 위에 떠 있던 게 확실히 별은 아니었구나.”
방금 청소를 마친 아쿨난의 아공간은 이곳으로 날아왔을 때처럼 푸른색 빛의 꼬리를 만들며 저 너머 어딘가로 날아갔고.
아쿨난의 아공간이 떠난 자리엔 색색의 빛으로 반짝이는 수십 개의 아공간이 대신하고 있었다.
“설마 별처럼 반짝이는 저것들이 전부 아공간이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눈으로 봐도 대충 수억 개는 넘을 것 같은 별.
나는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중얼거렸지만,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모두 내가 청소를 해야 하는 아공간이라는 것을.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으니까.
준비해야겠다.
‘아공간 기생 생명체 크롤러’라는 놈을 계속 빗자루를 들고 상대할 수는 없다.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다.
‘분명 놈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도 상점 창에서 구할 수 있을 거야. 아공간 청소부 전용 빗자루도 상점 창에서 구매가 가능했잖아.’
나는 상점 창을 뒤져보면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관리자가 삐져서 알려주지 않은 거지 분명 전용 아이템이 있다.’
그래도 힌트는 주지 않았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엔 빗자루가 유일하다고.
그 말은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템 중에 크롤러를 상대할 무기가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던전에 빛나고 있는 수십 개의 빛 중 유독 새하얀 빛으로 반짝이는 출구로 걸음을 움직였다.
‘일단 돌아가서 재정비하고 다시 오자.’
하지만.
“이게….”
던전을 빠져나온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은.
“…뭐야?”
폐허가 되어버린 청심원 건물이었다.
“내 집…어디 갔어?”
지금 사는 집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기 위해 짐도 다 싸고 계약도 끝냈는데.
집이 사라졌다.
휘이잉-.
간헐적으로 바람이 통과하는 소리만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올 뿐.
휑하니 뚫린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아련하다.
기둥 몇 개만 남기고 벽과 지붕 하다못해 문짝까지, 모든 게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병장기와 아이템들이 떨어져 있고. 혈흔이 흩어져 있는 거로 봐서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이게 뭔…. 전쟁이라도 난 거냐?”
급하게 헌터 와치로 포털에 접속해 기사들을 찾아봤지만, 현재 1심 공판이 진행 중인 연쇄살인마 사건에 관한 기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어디에도 전쟁 기사는 없었다.
“씨드. 주변 정찰 부탁해.”
위험을 감지한 나는 씨드를 포함한 샤이닝 에로우 50대를 전부 꺼내 주변 정찰을 지시했다.
인벤토리 내에 있는 마나석으로 자체적으로 에너지 충전을 마친 샤이닝 에로우가 50대가 나를 호위함과 동시에 주변 정찰을 시작했다.
건물이 폐허가 될 정도로 큰 싸움이 있었는데 기사 한 줄 없다?
말이 안 된다.
인가가 드문 곳도 아니고 개발이 취소된 후 다시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는 동네다.
이 정도 소란이 났으면 하다못해 경찰이라도 출동해 이곳을 통제해야만 했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군가 언론을 통제하며 상황을 제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니면 언론이 아닌 이곳을 통제하고 있다거나.
그리고 그런 힘을 가진 사람 중 내가 아는 사람만 두 명이다.
‘강 회장과 구정철, 설마 두 세력이 싸움이라도 붙은 건가?’
바로 나에게 감시자를 붙인 두 사람.
어찌 됐건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전투의 흔적이 나와 관련이 있다는 것 말이다.
‘다행히 아이템은 여유가 있어.’
갑옷은 넝마가 됐지만, 전용 던전 사냥을 대비해 준비한 아이템들이 인벤토리 가득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됐다.
잠시 후.
“주변 정찰 결과 보고하겠습니다. 전투의 흔적은 있지만, 반경 100m 이내에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청심원은?”
“이상한 일이지만, 평상시와 다름없습니다.”
씨드의 말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신축 청심원 건물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 봐야 고작 200여 미터 거리.
‘이렇게 건물이 파괴될 정도면 큰 소리가 났을 텐데 평상시와 다름없다니…. 말이 돼?’
하지만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우웅-.
『대현 그룹 강 회장님』
헌터 와치 위로 떠 오르는 이름.
강산호 회장이었다.
***
“강현 군. 괜찮나?”
솔직히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씨드의 말로는 강 회장이 붙여 놓은 감시자들과 구정철 전 대통령이 붙여 놓은 감시자들도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그 보고를 통해 두 세력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고 판단한 난, 강 회장과 통화하기가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나마 나한테 우호적인 세력이 강 회장 쪽이지.’
그렇기에 전화를 받았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전해 들었다.
“욱일회가 자네를 노리고 있네.”
욱일회라는 재한 일본인 테러단체에서 나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그제야 나는 이장현이라는 구 전 대통령이 수습해 간 일본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도 나를 ‘확보’하려고 했다고 했지.
‘그놈들이 욱일회라는 단체 소속이었나 본데. 왜 나를 노리지? 그때 그놈들은 이장현이 데리고 갔는데….’
당시엔 이장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들의 정체를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아니 애초에 놈들이 내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나를 노리는 거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일본인들과 엮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재한 일본인들은 일본과 가까운 부산에 거주지를 세우고 그곳에 그들만의 자치구를 만들어 생활한다.
그런 이들과 서울에 사는 나와 엮일 일이 뭐가 있을까? 살면서 부산에 내려가 본 일이 없는데.
그날 놈들과 조우한 후, 나는 일본인 조직에 대한 조사를 씨드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씨드의 보고는 별게 없었다.
씨드의 보고는 내가 살아오면서 접한 일본인 테러와 관련된 기사 몇 개뿐.
그 어디에서도 ‘욱일회’라는 명칭이 거론된 적이 없었던 것. 그래서 욱일회라는 명칭도 강 회장에게 처음 들었다.
“그래도 자네가 무사하다니 다행이네. 내가 곧 사람을 보낼 테니 그곳에서 잠시만 기다리게.”
강 회장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뭐랄까. 궁금하지만 일부러 묻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강 회장과의 통화를 끝낸 후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등급이 어떻게 돼야 이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거야? A? S?”
내 안락한 보금자리가 돼야 했을 구 청심원 부지는 포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건물과 마당, 그리고 마당 한구석에 있던 낡은 그네까지.
이게 내가 전쟁을 떠올린 이유였다.
인간이 힘으로 만들어 냈다곤 생각할 수 없는 흔적들이었으니까.
‘직접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욱일회란 놈들이 나를 노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왠지 강 회장이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