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전용 던전 (3).
크롤러의 움직임은 날카롭고 기괴했다.
‘아니. 무슨 탱탱볼이야?’
마치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탱탱볼처럼 아공간 내에 부유하는 아이템들과 아공간을 벽면을 이용해 방향을 트는데.
통-.
그 궤도와 속도가 아주 변칙적이고 이상했다.
‘젠장.’
씨드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동안 상대했던 적들의 기분이 조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크롤러는 집중하면 날아오는 형체라도 보이지, 씨드는 비가시 모드를 활성화하면 보이지도 않으니까.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하는 속도와 종잡을 수 없는 궤도.
빠른 속도로 쏘아져 오는 크롤러들의 공격은 스팩업을 하지 않았다면 피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웠다.
‘눈으로 보고 피하면 늦어. 감각에 의존해야 해.’
그렇게 감각을 갈았다. 날카롭게.
퍼엉!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크롤러 한 마리에게 옆구리를 가격당했다.
‘빌어먹을 몸뚱어리.’
스탯은 높아졌지만, 아직 그 스탯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몸뚱이가 문제였다.
내 옆구리를 가격한 크롤러는 제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그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크롤러들.
“이건 또 뭐야?”
사라락-.
크롤러에 적중당한 갑옷의 옆구리 부분이 검은색으로 변색 되며 먼지처럼 부스러져 내렸다.
옆구리에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버린 바람새 가죽 갑옷.
“이게 어떻게 만든 갑옷인데!!”
나는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품관에서 구매할 때 가격이 세트로 50억.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포인트로만 살 수 있는 탈모제를 고이고이 한참을 발라서 업그레이드시킨 갑옷이란 점이었다!
그렇다고 갑옷을 벗어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더욱 감각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라간 스탯에 몸뚱이를 적응시킬 필요가 있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몬스터들은 이처럼 내 한계를 끌어내지 못했지만, 이 크롤러란 녀석은 아니었다.
전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피할 수조차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안개처럼 흩어진 놈을 흡수하기 위해 달려든 다른 크롤러들의 공격이 잠시 멈췄다는 것.
그 틈에 인벤토리에서 재빨리 빗자루 두 개를 꺼내 양손에 틀어쥐었다.
“그래 어디 갈 데까지 가 보자 이 몽실몽실한 새끼들아!”
몽실몽실하다는 말은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옆구리를 가격당하는 순간. 전혀 타격감이 없었거든.
단지 적중당한 부위가 먼지로 흩어진 것 말고는 타격감은 제로였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저걸 맨살에 맞는다면 맞은 부위가 먼지처럼 흩날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내가 그렇게 전의를 다지고 있는 사이 동료를 흡수해 덩치를 키운 크롤러들.
주먹 크기에서 축구공 크기까지 그 크기도 다양했다.
“와봐! 이 새끼들아!”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걸까?
동족 포식을 마친 놈들이 삐쭉삐쭉 날카롭게 모양을 잡아갔다.
쐐엑!
그리고 다시 시작된 공격.
퍼엉!
“크윽-!”
사라락-.
이번에는 견갑이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과연 빗자루로 놈들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보상인데 죽으라고 떠민 건 아니겠지….’
쐐액-!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크롤러 중 한 개체가 날아드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쉴 틈을 안 주네! 망할 놈이!”
그 말과 함께 나는 배팅 자세를 잡고 빗자루를 휘둘렀다.
따악-!
퍼엉-!
다행히 정통으로 빗자루가 크롤러에게 적중하자,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터져 안개처럼 흩어졌다.
‘오. 효과 죽이네.’
곧이어 크롤러들이 화난 고양이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피하는 대신 빗자루를 휘둘러 쇄도해 오는 놈들을 하나하나 분쇄했다.
퍼엉!
퍼펑!
빗자루에 맞아 안개로 분화된 뒤 제 형태를 찾아 다시 공격해 오는 크롤러.
언뜻 보면 별다른 타격이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나는 확신했다.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가고 있어.’
손맛을 제대로 느꼈거든.
퍼퍼펑!
숨 쉴 틈도 없이 공격해 오는 크롤러들을 빗자루를 쥔 양손으로 분쇄해 나갔다.
***
강현이 크롤러들과 싸우며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 때. 아공간 밖에 남겨진 씨드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능동형 AI.
분명 자율성이 부여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이지만 씨드가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저에는 언제나 강현의 ‘명령’과 ‘허락’이 있었다.
한마디로 씨드는 강현의 명령과 허락 없이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사령관님은 분명 나를 불렀다. 그렇다는 건 사령관님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씨드는 고민해야 했다.
강현이 아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의 외침.
‘씨드!!’
단말마의 비명에 가까운 그 외침을 강현의 명령으로 인식해야 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곳에 대기해야 하는가.
씨드는 결정하고 행동을 해야 했다.
‘사령관님의 그 외침은 분명 도움을 바라는 외침이었다.’
씨드는 판단했고.
‘사령관님을 구하러 간다.’
결정을 내렸으며.
‘가용 가능한 전력을 파악한다.’
행동으로 옮겼다.
‘현재 가용 가능한 전함 30척. 샤이닝 에로우 블래스트 모드 해제.’
그동안 에너지원 부족으로 실행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블래스트 모드를 해제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새로운 사령관인 강현 덕이었다.
자신을 똥망템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미우나 고우나 사령관. 그의 위험을 외면할 수 없었다.
‘최우선 목표 설정. 사령관 구출.’
블래스트 모드를 해제하자 30척의 전함이 한곳으로 모여 변화하기 시작했다.
씨드의 본체가 머무는 샤이닝 에로우 NO 1을 비롯한 모든 전함의 선체에서 지네 다리와 같은 로봇 팔들이 빠져나와 전함끼리 서로를 단단하게 결속했다.
‘잔여 마나석 체크.’
전함 내 적재 실에 실려있는 마나석 양까지 점검한 씨드.
‘버닝 썬(Burning Sun) 발사준비.’
씨드의 명령에 커다란 원통처럼 하나로 뭉친 샤이닝 에로우의 로봇팔을 타고 푸른색 마나가 전류처럼 흘러 한곳에 모였다.
파지지직.
푸른 불꽃을 튀기며 응집된 마나가 한계치를 넘어 일렁거리는 순간.
‘발사.’
지이잉- 번쩍!
30척의 샤이닝 에로우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응집된 마나를 통과하며 증폭되었고.
쿠쿵!
증폭된 레이저는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아공간의 입구를 관통했다.
빠지직.
레이저에 적중된 입구 일부에 균열이 생기며 자그마한 틈이 생긴 순간.
쐐 엑-!
한 몸처럼 모여있던 전함들의 중앙, 한발의 화살이 빗살처럼 쏘아져 나가 균열의 틈을 통과해 사라졌다.
후드득. 탱그렁.
그렇게 씨드가 사라지고.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씨드의 통제마저 사라진 샤이닝 에로우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능동형 AI 씨드가 처음으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이었다.
***
쿠쿵!
쩌적.
한참 크롤러와 전투를 벌이고 있던 강현은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들러붙는 크롤러를 밀어내고 거리를 벌렸다.
‘무슨 일이지? 공간이 흔들린 것 같았는데.’
강현이 의문을 품은 그 순간.
퐁. 덩그렁.
귀여운 소리와 함께 화살 한 개가 날아와 강현의 발치에 부딪혔다.
“씨드?”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어. 난 괜찮은데. 네가 어떻게?”
“사령관님이 위험에 처한 것 같아 가용 가능한 전력을 사용해 공간의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씨드의 말에 강현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뒹굴고 있는 씨드를 주워 들었다.
크롤러도 갑작스레 씨드가 만들어 낸 균열에 신경을 빼앗긴 상황이라 잠깐의 여유가 있었다.
잠시지만 숨돌릴 틈을 찾은 강현은 씨드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바닥을 뒹굴어? 혹시 균열을 통과하는 동안 선체에 무리가 간 거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령관님. 선체는 괜찮습니다. 단지 에너지원이 고갈된 상태일 뿐입니다.”
씨드의 대답에 순간 강현의 표정이 굳었다.
“에너지원이 고갈돼?”
“네 사령관님. 혹시 괜찮으시면 마나석을 보급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만약을 대비해 적재 실에 쟁여놓았던 것까지 전부 소모한 거야?”
“네. 사령관님. 공간의 틈을 만들기 위해서는 샤이닝 에로우 서른 대의 모든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씨드의 대답에 강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샤이닝 에로우 한 대에 비축해 놓은 마나석의 E급 열 개.
총 서른 대를 아공간 밖에 두고 왔으니 E급 마나석 300개를 사용해 공간의 벽을 뚫었다는 말이었다.
‘던전 학자들이 들으면 기함할 일이겠군.’
던전이 나타나고 최근 20여 년 동안 수많은 마법사와 공학자들이 연구한 것이 바로 던전의 소멸.
지난 80여 년 동안 신규로 만들어진 던전은 있어도 소멸한 던전은 없었으니까.
학자들은 걱정했다.
언젠가 이 지구가 던전에 뒤덮이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던전이 생성되어 인류의 안전이 위협당할 거라는 불안.
그래서 시작된 연구가 던전이란 공간의 소멸에 관한 연구였다.
분명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는.
어쩌면 인벤토리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인벤토리나 아공간으로 보기에 던전은 지나치게 크고 넓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씨드는 불과 E급 마나석 300개로 공간을 부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나야 특성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대체 어떻게?’
강현의 머릿속엔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 의문을 해소할 시간이 없었다.
씨드가 만들었던 균열이 사라지자 그 균열에 관심을 보이던 크롤러가 다시 강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씨드. 혹시 크롤러라는 몬스터에 대해 아는 정보 있어?”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해당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쩝.”
강현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애초에 고블린조차 ‘거대몬스터’라고 불렀던 씨드이기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말이다.
시스템 메시지는 말했다.
크롤러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아이템은 빗자루가 유일하다고.
그 말은 샤이닝 에로우도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 싸움 끝까지 혼자 해야겠네.’
어느새 모든 동족을 포식해 2m 크기의 단일 개체가 된 크롤러.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놈을 보며 강현은 다시 한번 전의를 다졌다.
‘쥐어패다 보면 지가 소멸하겠지. 빗자루야 상점창에서 구매하면 그만이고.’
***
헉헉.
‘어째 묘약도 먹고 레벨업도 했는데 사냥하는 게 더 힘들어지는 것만 같냐?’
추가보상 던전도 그렇고 전용 던전도 그렇고 시스템을 통해 들어온 던전은 하나같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후.
‘그래도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은데.’
2m에 달하던 놈의 육체는 내 빗자루질에 쓸려나가 주먹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물론 내 꼬락서니도 놈 못지않게 개판이 되어 있었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바람새 가죽 갑옷은 넝마나 다름없었고. 유일한 무기인 빗자루는 단 한 개만 남았다.
걸치고 있던 로브는 이미 쓰레기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고.
쒸익.
크롤러는 그 덩치가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그 공격성을 버리지 못하고 먼저 공격을 해 왔다.
종잡을 수 없던 놈의 공격패턴도 이젠 익숙해졌고, 내 감각도 전에 없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퍼엉!
미세한 공기의 흐름마저 느낄 정도로 날카로워진 감각 덕분에 난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놈을 향해 일도양단의 기세로 빗자루를 내리칠 수 있었다.
푸시시.
타격을 입고 안개처럼 흩어지는 크롤러.
나는 긴장한 눈으로 놈을 바라봤다.
소멸할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다시 뭉쳐서 날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안개로 변화되었을 땐 빗자루로 공격해도 통하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안개처럼 변했던 크롤러는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아공간 파편처럼 푸른빛으로 물들어 사라져 버렸으니까.
“끝났나…?”
말을 꺼내놓고도 아차 싶었다.
이 말은 죽었던 몬스터도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마법의 주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씨드. 내가 던전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지?”
“던전에 들어오신 지는 5시간 43분 경과되었으며, 아공간 속으로 빨려들어 오신 지는 5시간 38분 되었습니다.”
‘빌어먹게도 오래 걸렸네.’
누가 청소부 아니랄까 봐. 무려 여섯 시간 가까이 크롤러랑 뒹굴며 빗자루질을 해댔단 소리다.
그리고 그 빗자루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겨우 시작이다.
푸른빛의 아공간 파편을 흩날리는 균열.
이걸 다 메꿔야 하니까.
하-.
한숨이 나왔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청소를 마무리해야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거 아닌가.
‘명색이 아공간 청소부 전용 던전인데 청소 끝내고 입 닦는 건 아니지?’
던전의 인벤토리처럼 청소해도 겨우 특성 레벨만 올려주는 거라면 전용 던전에 올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일 시키고 보상 안주면 그거 노동법 위반이다! 알지?’
나는 기대를 품고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크롤러와 싸움 중에 내 빗자루에 맞아 부서진 아이템들이 많았지만, 아직 멀쩡한 것들도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지구에선 찾을 수 없는 아이템들이 대부분이니 어찌 기대되지 않을까.
그중 가장 탐나는 건.
[아이템: 아쿨난의 발톱]
[등급: S급]
바로 이 아이템이었다.
‘그러니까 꼭 이걸 달라는 건 아니고….’
나는 꼭 이걸 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고생했는데 저 정도 보상쯤은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