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57화 (57/202)

57. 전용 던전 (2).

3일은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갔다.

각성자 스토어에 들러 D급 장구류를 구매하고 상점 창을 뒤적거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온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함께 들어갈 파티원도 없다.

오직 나만을 위한 던전.

신규 던전과 다를 바가 없으니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기에 준비는 넘치게 해도 모자랐다.

정보가 없는 던전일수록 위험한 법이니까.

그리고 오늘.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빠져나가 휑한 구 청심원.

황금빛을 내며 반짝이던 물건들이 사라지니 더욱 눈부신 빛을 발하는 것 같은 새하얀 포털 앞에 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준비는 잘했어. 빗자루도 열 개나 구매했고.’

-아공간 청소부 전용 던전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Y/N

떨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눈앞에 뜬 메시지로 손을 가져가 Y 버튼을 눌렀다.

-던전에 입장합니다.

직후. 포털이 더욱 환한 빛을 뿜어내며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렸고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눈을 멀게 만들 것 같은 새하얀 빛에 두 눈을 감을 것도 잠시, 눈을 뜬 내가 마주한 것은 아주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허…….”

짙은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색색의 빛으로 반짝이며 존재감을 뽐냈다.

“…우주인가?”

그야말로 신비롭고 장엄하기 그지없는 광경.

나는 그 우주의 한편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저벅.

“이게…. 던전?”

딛고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넓이만 한 땅덩어리엔 나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딛고 있는 땅덩어리도 걸음을 옮길 때 먼지가 올라오지 않았다면 땅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사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나누곤 하는 ‘지구평평설’이 현실에 실현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씨드를 꺼내며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했다.

일단 던전인 이상 방심하다가 아차 하는 사이에 골로 갈 수도 있으니까.

“씨드. 주변 정찰 좀 부탁해.”

“네 사령관님.”

씨드에게 주변 정찰을 부탁한 후.

턱턱.

발을 들어 땅을 두드리자 풀썩 먼지가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일단 중력이 존재한다는 건데…. 이게 가능한 건가?”

‘고작 운동장 넓이만 한 공간에 지구 중력과 같은 중력이 존재할 수가 있나?’

내가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정찰을 끝낸 씨드가 보고를 시작했다.

“사령관님 해당 공간에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리고 샤이닝 에로우가 해당 공간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응? 그건 무슨 말이야?”

“레이더로 확인해본 결과 현재 이 땅덩어리는 지름 80m 정도 되는 원형의 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씨드의 말에 나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저기 보이는 별들이 다 가짜란 말이야?”

“정정하겠습니다. 벽이 아닌 투명한 막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해당 공간의 중력은 지구와 같으며 대기의 구성 또한 지구와 같습니다.”

“그 말은….”

“해당 공간은 누군가가 임의로 만들어 낸 공간일 확률이 높습니다.”

‘아공간 청소부 전용 던전.’

씨드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정말 나를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낸 던전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관리자일 확률이 높겠지.

나는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별들이 전부 가짜일 수도 있다니 조금 아쉽네….”

감성이라곤 메말라 버린 내가 감탄을 토해낼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인데 정말 아쉬웠다.

뭐. 진짜라고 해도 내 전용 던전이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도 없겠지만.

내가 그렇게 별들을 보며 아쉬워하고 있을 때 씨드의 경고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조심하십시오! 현재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어?”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본 나는 씨드가 말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혜성?”

푸른색으로 빛나는 별.

길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빛의 꼬리를 휘날리며 ‘그것’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어? 어어?”

그런데 좀 이상했다.

‘왜 저게 나한테 날아오는 것 같지?’

그렇게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눈 깜빡할 순간에 거리를 좁힌 혜성은 어느새 지근거리에 도달해 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씨드! 보호막이 있다며!!”

죽을 둥 살 둥 개고생해 가며 레벨업을 하고 스탯을 찍었는데 별똥별에 맞아 죽게 생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인벤토리에도 혜성을 막을 수 있는 아이템 같은 건 없었다.

***

“이곳으로 놈이 들어간 게 확실한가?”

거실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구 청심원 건물 앞.

신풍대의 수장 암혈은 살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그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들어간 지 30분 정도 되었으며 현재 건물 안엔 놈을 제외한 다른 인원은 없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암혈은 으드득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작전을 위해 소음을 차단하는 막을 치지 않았다면 인근의 누군가가 그 소리를 듣고 튀어나왔을지도 모를 만큼 큰 목소리였다.

“고작 E급 헌터 하나 잡지 못해서 신풍대 한 개 조가 연락 두절이라니, 이는 신풍대의 수치다.”

음산하고 끈적한 살기가 어린 그의 말에 주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신풍대 대원들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이곳에 S급 각성자인 그의 기파를 견뎌낼 만한 신풍대 대원은 없었으니까.

“오늘 놈을 잡고, 행방불명이 된 타다시와 그 조원들의 행방을 파악한다. 알겠나?!”

“하이!”

“방심하지 마라. 놈은 비록 혼자지만 신풍대 한 개 조를 상대한 실력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이!”

“가라. 반항한다면 사지를 잘라 내도 좋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내 앞에 끌고 와.”

“하이!”

암혈의 명령에 소리높여 대답한 신풍대 대원들이 빠른 속도로 건물로 스며들어 갔다.

강현을 쫓아 목포로 간다는 보고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겨버린 타다시와 그 조원들.

암혈은 강현을 잡기 위해 신풍대 5개 조를 이끌고 직접 이곳에 왔다.

‘비현과 너를 주시하던 다른 놈들도 모두 처리했으니, 오늘 너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강현.’

강현을 확보하기 위해 피를 좀 흘려야만 했지만 괜찮았다.

모든 게 회를 위한 희생이니까.

암혈도 회의 수뇌부들도 강현만 확보한다면 선조들의 유산을 찾는 게 조금 더 쉬워지리라 판단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강현만 확보한다면 회의 운영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지금 본국에서 지원받는 돈으로는 분명 한계가 존재했으니까.

암혈이 그렇게 희망찬 미래를 떠올리고 있을 때 건물에 잠입했던 부하 중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강현은?”

“그, 그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부하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는 암혈.

그 얼굴을 본 부하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거, 건물 안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

으득.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암혈이 살기를 뿜어내며 사라지고 보고를 했던 부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았다…….”

암혈은 부하에게 가차 없이 손을 쓰는 거로 유명했으니까.

잠시 후.

“이 새끼 어디 갔어!!”

콰광! 펑!

분노에 찬 암혈의 외침과 함께 건물의 한쪽 벽면이 터져 나갔다.

***

세상에.

별똥별에 맞아 죽다니. 내 죽음이 이럴 거라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가는구나. 아직 계좌에 있는 돈도 다 못 썼는데. 거기다 난 아직 모쏠….’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방황했던 어린 시절. 성인이 되고 보육원을 나와 개고생을 했던 기억.

‘그때 아르바이트비 떼먹은 사장 새끼 아구창을 날렸어야 했는데…. 기적 형님 안 만났으면 정말 인생 꼬일 뻔했지….’

그렇게 나는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반추했다.

‘그나저나 이번 주마등은 꽤 기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씨드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사령관님 뭐하십니까?”

“응? 씨드 너도 죽었어?”

“아닙니다.”

“아…. 너도 주마등이구나. 이제 와서 말이지만 처음 너 뽑고 나서 똥템이라고 막대한 거. 정말 미안했다.”

“…그러셨습니까?”

“어. 내가 너 똥망템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똥망템이라고 직접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막대하긴 하셨지만요. 그나저나 사령관님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눈을 뜨라고?’

씨드의 말에 눈을 뜬 나는 내 앞에서 번쩍이는 빛 덩어리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나…. 안 죽었네?”

“네, 멀쩡히 살아 숨 쉬고 계십니다.”

왠지 씨드의 말투엔 살짝 아쉬움이 담겨 있는 느낌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찌 됐건 살아 있으면 된 거지.

“이건 뭐지?”

푸른색으로 빛나는 빛 덩어리.

자세히 바라보자 곧 빛 덩어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쿨난의 아공간]

푸른빛으로 빛나던 혜성의 정체는 바로 아공간.

지금까지 던전에서 보았던 사망자들이 남긴 인벤토리의 녹색 빛과는 다른 푸른빛을 내는, 아공간이었다.

-특성 아공간 청소부가 발현됩니다.

-특성 공간시가 발현됩니다.

-특성 아공간 조작이 발현됩니다.

내가 아공간을 인식하는 순간 가지고 있던 특성이 자동으로 발현되며 아공간이 빛을 냈고.

“씨드!”

나는 푸른빛에 파묻혀 아공간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허공에 떠 있던 씨드는 그곳에 놓아둔 채.

‘이러면 나가린데….’

***

지금 내가 가진 전력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씨드를 놔둔 채로 아공간에 들어온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기존에 청소했던 인벤토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것 같은데.’

허공을 부유하는 아이템들과 균열, 그리고 균열에서 뿜어져 나와 허공으로 흩어지는 푸른색 아공간 조각들.

여기까지만 봤을 땐 균열과 흩어지는 아공간 조각의 색깔만 제외하면 다른 게 없어 그냥 청소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저건 뭐지?’

균열에 들러붙어 꾸물거리는 검은 그림자와 같은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처음엔 부유하는 아이템들의 그림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원래 아공간엔 광원이랄 게 없었다.

기존에 청소했던 각성자들의 인벤토리도 그랬고.

빛이 없는데 그림자가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것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것은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고 또 다른 것은 마치 안개처럼 확장과 수축을 반복했다.

‘아공간 안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다고?’

보통 헌터들이 사용하는 인벤토리 안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집어넣을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아공간은 인벤토리와는 다른 구조인가?’

지구의 인벤토리와 아공간이 구조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기본적인 구조는 인벤토리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럼. 저건 뭐야? 생명체이긴 한 거야? 설마 스펙터나 고스트 같은 유령계열 몬스터인가?’

처음엔 유령계열의 몬스터인 줄 알았으나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유령이라고 보기엔 그 형체가 너무 명확했거든.

‘일단 씨드를 들어오게 만들어야겠군.’

씨드라면 혹시 놈들의 정체를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그것들이 들러붙어 있지 않은 균열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빗자루를 꺼내 들었다.

아공간 조작 특성을 사용해 균열의 틈을 넓혀 그곳으로 씨드를 들어오게 할 생각이었는데.

움찔.

빗자루에 마나를 불어넣고 균열을 쓸어내리는 순간 나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

무어라 불러야 할지 이름도 모르는 그것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렸다.

말 그대로다. 무어라 표현하기도 힘든 기괴한 그것들이 눈도 없는 주제에 마치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검은 형체와 같은 것들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오싹.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나 좆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검은 그림자와 같은 그것들이 들러붙어 있던 균열에서 몸을 떼어 내 화살처럼 나에게 쏘아져 왔다.

쐐액-!

그리고 그 순간.

띠링.

-아공간 기생생명체 ‘크롤러’와 조우하셨습니다.

-크롤러는 일반적인 무기로는 타격을 줄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사용자 강현 님의 무운을 빕니다.

“허-.”

지난 3일간 준비한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허탈한 한숨을 내뱉는 순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강현 님이 가지고 계신 아이템 중 크롤러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고작 ‘빗자루’ 뿐이네요. 행운을 빕니다.

전투 모드로 전환돼 귀속을 울리는 시스템의 마지막 메시지에선 뭔가 빈정이 상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기존의 시스템 메시지와는 뭔가 다른 ‘감정’이라고 부를만한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거… 왠지 시스템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시스템 메시지도 관리자가 개입할 수 있는건가?’

생각해 보니 ‘퀘스트 아버지의 유산’ 추가 보상을 지급받을 때도 관리자의 개입이 있었다.

‘설마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하지만 생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쐐엑!

쉬익!

사방에서 크롤러라는 놈들이 쇄도해 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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