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전용 던전 (1).
던전 ‘늙은 연금술사의 무덤’에 입장하고 정확히 24시간 후.
번쩍-!
나는 황금빛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웅! 띠링! 우우웅!
그렇게 돌아온 나를 반기는 건 쉴 새 없이 울리는 헌터 와치의 진동과 알림이었다.
‘아. 해찬이하고 헌팅 가기로 했었지?’
발신자는 모두 이해찬.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이해찬에게 전화해 집에 급한 일이 생겨 연락을 못 했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했다.
그러자 연락이 안 돼 걱정했었다고 말하며 급한 일은 잘 처리했냐고 물어오는 해찬이 녀석.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서글서글하고 붙임성 있는 녀석이었다.
‘거짓말한 사람 미안스럽게.’
내일 헌팅 약속을 잡는 것으로 해찬과 통화를 마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스템 창을 열었다.
[퀘스트: 아버지의 유산]
……
[진행상태: 완료.]
[보상: 포인트 20. 무작위 아이템 1.]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락]
보상은 ‘늙은 연금술사의 무덤’이 끝이 아니었다.
‘이게 진짜 메인디쉬지.’
수락 버튼을 터치하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대단한 업적! 사용자 강현 님은 시스템을 사용하여 묻혀있던 억울한 이들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대단한 업적을 세운 강현 님께 10000의 선업 포인트와 무료 뽑기 이용권 1매가 지급됩니다.
선업 포인트를 얻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떠오르는 룰렛 판.
빠바바 빰빠 밤~!
뽑기나 룰렛이나 모두 사행성이 짙은 도박 같은 보상이었지만 그나마 룰렛에서 더 나은 보상을 얻어왔기에 이쪽이 더 끌렸다.
뽑기는 포인트만 투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거기도 했고.
“씨드. 주방에 가서 그릇에 물 좀 떠와.”
“…네. 사령관님.”
룰렛을 돌리기 전, 필요한 건 뭐다? 바로 기도.
나는 씨드가 중력제어를 사용해 떠온 물그릇을 앞에 두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천지신명 님께 비나이다…….”
제발 좋은 템이 나오게 해달라고.
그리고.
타라라라락-! 탁!
“떴다!!”
천지신명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룰렛의 화살표가 멈춘 칸은…. 황금색!
‘이 맛에 기도메타 타는 거지!’
하지만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낸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게 뭐야?”
“알…인 것 같습니다. 사령관님.”
“어…그런 것 같네…….”
[아이템: ???]
[등급: ???]
[설명: ???]
룰렛을 돌려서 받은 황금색 아이템.
그것은 바로 모든 게 물음표로 뒤덮인 하얀색 알이었다.
***
던전 연쇄살인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6월이 지나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7월이 되었다.
멤-. 멤-. 메엠-.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던전 연쇄살인 사건에 관한 이슈가 시들해진 7월 중순 무렵.
나는 드디어 100레벨을 달성했다.
“허억-. 허억.”
난 던전을 도느라 숨이 차 헐떡이는 해찬이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헉! 형 왜 그래요? 혹시 제가 힘들다고 징징거린 게 신경에 거슬리셨어요?”
100레벨을 달성한 기쁜 마음에 꺼낸 말에 해찬이 녀석이 기겁하고 놀랐다.
“그런 거 아니야.”
“근데 왜…. 오늘 겨우 두 바퀴밖에 안 돌았잖아요.”
근 한 달 가까이 최소 하루에 세 번 많으면 다섯 번 던전을 돌다 보니 그게 익숙해진 모양이다.
보통 헌터들이 하루에 한 번 도는 던전을 두 번이나 돌고도 ‘겨우’라고 말하는 걸 보면.
“집에 일이 좀 있어. 아마 며칠 동안 헌팅 못 할 거야. 그동안 좀 쉬어. 여행이라도 다녀오던지.”
“아…. 그래도 이렇게 끝내면 아쉬운데….”
처음엔 제발 하루만 쉬자고 징징대던 녀석이 이젠 내 헌팅 패턴이 익숙해졌는지 헌팅을 더 하지 못하는 걸 아쉬워했다.
하긴, 다른 헌터들보다 최소 세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는 셈이니 본인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 것이겠지.
“뭐. 정 심심하면 신규 파티원 영입이라도 하던가.”
“어?! 정말요? 이제 진짜 파티 만드시게요?”
“언제까지 던전을 버스 타고 돌 수는 없잖아. 슬슬 D등급 올라갈 준비도 해야 하고.”
내 말에 이해찬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괜찮은 사람들로 추려 볼게요. 나중에 형이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뽑으세요.”
고등급 던전을 안 돌 거라면 모르지만 나중에 A등급 이상의 던전을 돌려면 지금부터 파티원들을 모집하는 게 맞았다.
어차피 알짜배기는 길드들이 차지하고 있어, 지금처럼 각성자 센터에서 관리하는 자투리 던전밖엔 돌지 못하지만.
고등급에 올라가면 파티가 아닌 공대 단위로 공략해야 하는 던전들도 수두룩하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솔직히 지금도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대형길드들이 만드는 공대는 F급부터 파티끼리 구성원을 바꿔 가며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하니까.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나중에 공대를 만들었을 때 좀 더 끈끈한 팀워크를 발휘한다고 한다.
“그래. 되도록 내 직업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들로 뽑아.”
“아. 넵! 잘 가려서 뽑도록 하겠습니다!”
난 해찬이 녀석의 힘찬 대답을 뒤로하고 드론 정류소로 걸음을 옮겼다.
‘특성 퀘스트: 던전을 확보하자.’
장장 한 달 보름이 넘게 걸린 퀘스트가 드디어 완료됐다.
하지만 퀘스트는 보상을 수령하지도 않았는데 퀘스트 창에서 사라졌다.
일단 청심원에 가 볼 생각이다.
‘그곳에 던전이 생긴다고 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겠지.’
***
“그럼. 이삼일 내로 공사가 마무리되는 건가요?”
“네. 회장님 특별지시로 내부 인테리어에 좀 더 신경을 쓰느라 공기가 조금 더 늘었습니다.”
내 물음에 현장 소장님이 처음보다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대답했다.
“아…. 강 회장님이 그러셨군요.”
“네 회장님께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이들의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되는 보육원을 지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남은 공사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장님.”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 사장님!”
이 양반 군기가 들어가도 너무 바짝 들어갔다.
‘하긴 대현 그룹 왕회장의 지시를 직접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현장소장과의 대화를 마친 뒤 청심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살인마들 문제로 강 회장에게 도움을 받은 나는 그 보답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스파이캠 10대와 다차원송수신기를 넘겼다.
그리고 불과 3일도 안 돼 대현 전자에서 시제품이 나왔고, 그 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양산품이 MC 캠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풀렸다.
불도저라는 말이 어울리는 강 회장의 행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DH 미디어라는 회사를 설립해 다차원송수신기를 기반으로 한 동영상 플랫폼을 만들었다.
MC 캠을 사용해 찍은 동영상과 라이브 스트리밍은 오직 DH 미디어에서 만든 플랫폼을 통해 시청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한 수로 강 회장은 10대 길드를 포함한 모든 길드를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게 되었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던전 헌팅에 MC 캠 사용을 의무화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였다.
이는 당연했다.
마나 캠을 개발해 던전 범죄를 감소시키겠다는 발표를 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욕을 먹는 상황이었는데 대현 전자에서 떡하니 MC 캠을 내놓았으니 정부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밖에.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동안 나 또한 의도했던 대로 달달한 과실을 기다리고 있다.
스파이 캠과 다차원송수신기를 건네주는 것으로 거래가 끝난 줄 알고 있던 내게 연락해 온 강산호 회장은 특허와 로열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특허권과 그것을 사용하는 데 따른 로열티.
그것들을 내게 주겠단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챙겨주시는 겁니까?’
강산호 회장이 이토록 나를 챙기는 이유가 궁금해 던진 질문에 강 회장은 의외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게 거래이기 때문이지.’
‘…네?’
‘거래라는 건 어느 한쪽이 손해를 봤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는 걸세. 물건을 파는 쪽이든 사는 쪽이든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잘못된 거래지.’
‘만약 내가 자네에게 특허권과 로열티를 주지 않고 꿀꺽 삼켰다고 가정해 보세. 대현전자가 만든 제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면 자네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좋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래. 당연히 좋지 않겠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네와 나의 관계도 지금과 같지 않을 테고.’
‘상호 신뢰가 깨진 관계란 오래갈 수 없는 법이거든. 그렇기에 난 자네에게 당연히 주어야 할 것을 주고 신뢰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뿐이니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게나.’
한마디로 강 회장의 말은 나와의 신뢰 관계를 위해 더 많은 이득을 포기했다는 말이었다.
내가 알던 재벌의 이미지와는 다른 강 회장의 행보에 침묵하는 내게 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네와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게 대현에 더 큰 이득일 것 같았다네. 지금까지 자네와 관계를 유지하며 대현이 얻은 것들을 보게.’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질렀다.
‘로열티나 특허권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좀 더 얹어 주십시오. 회장님.’
‘음?’
‘특허권이나 로열티 외에, 사외이사나 마나 아이템 개발부 고문 같은 자리를 주시면 어떠실까요?’
‘…….’
‘당장은 아무런 권한이 없는 자리여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현 소속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내는 게, 대현에게 그리고 회장님과 저의 신뢰 관계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흠…. 대현을 등에 업겠다는 거군……. 생각 좀 해 보지.’
역시. 강 회장.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단 몇 마디 말로 내 의중을 정확히 꿰뚫었다.
강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말이 없었고, 잠시 후 전화가 끊겼다.
‘너무 세게 불렀나? 그냥 로열티 비율이나 더 높여달라고 할 걸 그랬나?’
로열티와 특허권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지 몰라, 냅다 자리하나 달라고 지르고 본 건데 이게 강 고민이 될 만한 사항이었나 보다.
‘설마. 기분 상해서 이상한 데 처박아 버리고 입 닦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래도 로열티는 주겠지.’
명색이 대현 왕회장인데 설마 한 입으로 두말하겠는가?
그렇게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달달한 보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
청심원 신축 대지를 지나 지금 사용 중인 청심원 건물로 들어선 나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당황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당황했다.
“이게 뭐야…?”
아이들이 뛰어노는 거실 한복판에 자리한 새하얀 포탈.
“어? 현아. 왔어?”
“아저씨 오셨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정혜누나와 미소가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내 신경은 온통 포탈에 쏠려 있었다.
“누나 저거 뭐야?”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포탈을 스쳐 지나오는 정혜누나에게 묻자 누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곤 말했다.
“저거? 니가 사준 티비. 왜? 설마 이제 와서 뺏어 가려는 건 아니지? 안돼 못 줘!”
“저기 미소 씨. 저거 보여요?”
“아 저거 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라 켜 놓은 건데 좀 시끄러운가요?”
나는 포탈을 가리키며 물었지만, 김미소에게 들려온 대답은 전혀 생뚱맞은 거였다.
정혜누나와 김미소의 반응을 본 나는 저 새하얀 포탈이 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씨드. 저 포탈 보여?’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어떤 포탈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씨드에게도.
아공간 청소부 전용 던전이라더니 내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현아 너 요즘 일 많이 힘들어? 체력 달리면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 먹어.”
“…사주는 게 아니라?”
“내가 돈이 어딨니? 너 돈 많이 버니까 셀프로 해.”
그렇게 말한 누나는 혀를 삐죽 내밀고는 아이들 간식 챙겨줘야 한다며 김미소와 함께 주방으로 사라졌다.
‘아….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넷플릭스 자동결제를 취소해서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알려줘 말아?’
나는 심각한 고민을 뒤로하고 걸음을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던전 입구에서 보던 것과 다른 새하얀 빛이 일렁이는 포탈.
그 앞으로 다가서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공간 청소부 전용 던전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어쩐지 퀘스트 창을 열어도 퀘스트 내용이 확인되지 않더라니, 이번 퀘스트 보상은 자동지급되는 거였나 보다.
황금색 빛이 일렁이는 가전제품과 가구 사이에 떠 있는 새하얀 포탈.
당장이라도 던전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주변에 뛰어다니는 꼬맹이들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삼일 후면 내부 인테리어까지 끝난다고 했지?’
이제 나도 슬슬 이사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신축 건물로 모두 이사를 하면 구 청심원 건물은 나 혼자 사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선 일단 준비가 필요했다.
던전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각성자 스토어도 들르고 시스템 상점 창도 털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이템을 구매해 둬야겠다.
발모제와 활성단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항의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내 목숨이 먼저인걸.
아. 참고로 말하자면 활성단도 고객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경매장에 입성했다.
탈모제도 슬슬 입소문이 타기 시작했는지 매진이 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덕분에 내 계좌는 또다시 빵빵해졌다.
‘강 회장님이 현찰 박치기 해주면 더 빵빵해질 텐데…. 아직 안 주나? 로열티?’
생각 해보겠다던 강 회장에게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그냥 이사나 고문 말고 팀장 시켜 달라고 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