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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55화 (55/202)

55. 상(賞)과 벌(罰) (2).

처음 경찰 조사를 받고 온 후로 지난 일주일간 나는 미친 듯이 던전을 돌며 레벨업에 힘썼다.

목포에서 유춘삼이란 헌터와 마주한 후 나는 내가 아직 약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씨드까지 없었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했다.

해랑 길드에 잡혀가거나 타다시라는 일본인에게 잡혀가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테니까.

씨드로 놈들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장현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나의 나약함을 깨달은 후, 일주일 동안 정말 미친 듯이 던전을 돌았다.

하루 최소 3타임 최대 5타임.

쉬지 않고 던전을 도니 같이 헌팅을 하던 해찬이 녀석이 제발 하루만 쉬자고 사정을 할 정도였다.

빡세게 사냥한 효과는 확실했다.

어제 60레벨을 찍었거든.

이름: 강현

종족: 인간

직업: 해피니스 청소부

레벨: 60

힘:166 민첩:100 체력:100

마력:104 내구:30 지혜:1

보유 스탯 포인트: 0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2)

공간시 F (LV3)

아공간 조작 F (LV2)

[스킬]

언어의 마술사 F (LV2)

작은 마력의 샘 F (LV2)

묘약을 먹은 힘과 마력은 진작에 100을 넘었고 민첩과 체력에 스탯 포인트를 투자해 100을 만든 후 지금은 내구 스탯을 올리는 중이다.

인벤토리를 청소하지 않아 특성의 성장은 멈췄지만, 언어의 마술사와 작은 마력의 샘 스킬은 레벨업을 하였다.

작은 마력의 샘의 부가효과 덕분에 마력 스탯이 3개 오르기도 했고.

솔직히 조금 뿌듯했다.

각성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이뤄낸 성과가 이 정도니 뿌듯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겠지.

퀘스트를 진행하며 놈들에게 선물할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포인트를 많이 소모해서 보유 포인트가 바닥인 것만 제외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벨업을 멈출 생각은 없지만.

“자 그럼. 이제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보상을 받아볼까?”

[퀘스트: 아버지의 유산]

[등급: F]

……

[진행상태: 완료.]

[보상: 포인트 20. 무작위 아이템 1.]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락]

고동명이 김미소에게 사과하는 순간 퀘스트는 완료됐지만, 나는 선뜻 퀘스트 보상을 수령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타인의 죽음으로 진행된 퀘스트를 깨고 보상을 얻는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괜찮을 것 같네.’

하지만 놈들에게 선물한 지옥을 확인한 오늘이라면 김상욱에게 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톡.

그렇게 보상수령 버튼을 클릭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사용자 강현 님. 강현 님은 퀘스트의 기존 목표를 초과하여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추가보상이 지급됩니다.

‘어? 추가보상?’

아무래도 김상욱 사건뿐만 아니라 묻혀있던 다른 피해자들의 사건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 추가보상의 원인이 된 듯싶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추가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보상 산정에 관리자가 개입합니다.

-퀘스트 진행 중 강현 님이 보여준 아이템 응용능력에 관리자가 감탄합니다.

-관리자가 관리자 권한을 사용해 추가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해피니스 시스템 사용자 전용 던전 ‘늙은 연금술사의 무덤’ 1회 이용 권한이 부여됩니다.

-10초 후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10. 9……

“뭐?! 던전?”

빠르게 줄어드는 카운트.

나는 무언가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다급하게 허공에 떠 있는 씨드를 부여잡았다.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 거실 한구석에 내가 벗어놓은 바람새 가죽 갑옷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준비할 시간 좀 주면 덧나냐!!”

그렇게 방을 뛰쳐나가 바람새 가죽 갑옷을 손에 쥐는 순간.

-…1

-던전 ‘늙은 연금술사의 무덤’으로 이동됩니다.

번쩍.

새하얀 빛과 함께 나는 어둡고 음습한, 정말 무덤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에 내던져졌다.

***

음습하고 축축한 공기.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콧속 점막을 자극하는 순간 나는 서둘러 갑옷을 챙겨 입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끌려온 터라 상갑을 제외한 다른 파츠는 가지고 오지 못했지만.

다행히 다른 부위는 상점 창에 판매하기 위해 각성자 스토어에서 구매해 둔 아이템이 있었기에 그것들을 착용했다.

덕분에 중갑과 경갑이 뒤죽박죽 섞인 이상한 꼬락서니가 되었지만 일단 방어구는 다 착용한 셈이니 그래도 안심이 됐다.

“후. 씨드 괜찮아?”

바람새 가죽 갑옷을 챙길 때 워낙 정신없이 뒹군 탓에 손에 쥐었던 샤이닝 에로우에 무리가 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나의 물음에 씨드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사령관님.”

다행히 그동안 여유 있을 때마다 발라둔 탈모제가 제값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 다행이네. 레이더에 걸리는 것 좀 있어?”

“반경 10m 내에는 생명체라 불릴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씨드의 보고에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몸을 풀었다.

“후-.”

‘관리자란 새끼는 도대체 뭔 생각인 거냐?’

설마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사람을 덜컥 던전에 집어넣을 줄은 몰랐다.

시스템이나 관리자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앞에 있으면 죽빵이라도 한 대 갈겨주는 건데.’.”

당연히 눈앞에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어쩌면 신과 같은 존재일지 모를 관리자를 내가 무슨 수로 상대한단 말인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여유를 되찾은 나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가로세로 10m 높이 3m쯤 되는 석실.

한쪽 벽에 걸린 횃불 하나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며 통로의 입구를 비추는, 특이할 것도 없는 전형적인 던전이었다.

“씨드. 정찰 좀 부탁할게.”

“네. 사령관님.”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나머지 샤이닝 에로우를 꺼내자 씨드는 통로 안으로 샤이닝 에로우 열대를 들여보내 정찰을 시작했다.

“바람도 안 부는데 횃불은 왜 일렁이는 거야?”

애초에 각성자는 던전에 들어오는 순간 암적응이 완료된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마나 라이트가 없이도 던전 내에서 사냥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도 사냥에 도움이 안 되는 횃불이라니.

‘던전을 만든 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취향이 꽤 올드하네. 고전소설에나 나올 법한 던전이라니.’

“사령관님. 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던전 제작자의 확고한 취향을 파악하고 있을 때 씨드가 몬스터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해왔다.

“종류는?”

“오크로 보입니다.”

씨드에게 던전 가이드를 숙지시켰더니 확실히 정찰 효과가 좋아졌다. 처음 고블린을 보고 ‘거대 몬스터’라고 부르던 씨드였는데 이젠 오크를 안다.

“음…? 오크라고?”

이 던전을 만든 이는 고전에 근거해서 던전을 만든 게 확실했다.

“오크는 필드형 던전에서만 나오는 거 아니었나?”

“확실히 헌팅 가이드상에서도 이런 무덤형 던전에서 오크가 나온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지구의 던전과는 다른 던전일 경우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씨드의 조언을 들으며 횃불이 일렁이는 통로 안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오크가 강해 봐야 오크다.

일주일 전 서울역 던전 보스인 오크를 잡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보다 더 강해졌고, 나에게는 최종병기나 다름없는 씨드도 챙겨 왔으니까.

***

헉! 헉!

“빌어먹을.”

거친 숨과 함께 욕설이 튀어나왔다.

“좀 죽어라 이 새끼야!”

취! 취이익.

내 가슴에 등을 기댄 오크의 몸부림이 서서히 약해졌다.

뭘 하고 있냐고?

오크를 사냥 중이다.

내가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오크와 엎치락뒤치락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놀랍게도 샤이닝 에로우가 놈의 가죽을 뚫지 못했다.

서울역 던전에서 상대한 오크는 분명 무리 없이 관통할 수 있었는데, 이 오크의 가죽은 뚫지 못했다.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야. 이 오크의 방어력이 말도 안 되게 높은 거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방어력을 제외한 힘과 민첩은 평범한 D급 오크와 같다는 점이랄까.

샤이닝 에로우뿐만 아니라 인벤토리에 있던 무기들로 이놈을 공격해 봤지만 긁힌 자국도 생기지 않았다.

샤이닝 에로우는 생채기 정도는 만들었는데 말이다.

덕분에 나는 헐벗은 채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던 이놈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내가 기껏 생각해 낸 방법은 목을 졸라 죽이는 것. ‘교살’이었다.

어쩌다가 몇 번 본 게 다인 이종격투기 동영상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 몰랐다.

‘빽 초크라고 했던가?’

키힉! 킥….

놈의 숨소리가 점점 옅어지고, 팔을 풀어내기 위해 팔뚝의 완갑을 긁어 대던 놈의 손이 느슨하게 늘어졌다.

꾸욱.

하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고 더욱 팔뚝에 힘을 줘 놈의 목을 졸랐다.

다 끝났다고 방심하고 풀어 줬다가 불사조처럼 살아난 놈과 다시 이런 스킨십을 하는 건 정말 사양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령관님. 오크의 생명 반응이 멈췄습니다.”

씨드의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팔을 풀었다.

털썩.

헉.헉.

‘와씨! 이거 보상 맞아? 엿 먹이는 게 아니라?’

버프 포션과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잡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오크의 가죽은 질기고 단단했다.

몸이 늘어진 오크를 밀쳐내고 그 자리에 등을 대고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였다.

“사령관님. 오크의 사체가 사라졌습니다.”

씨드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오크의 사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자그마한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쩝.

‘아깝네. 가죽으로 방어구 만들면 끝내줄 것 같았는데.’

샤이닝 에로우마저 뚫지 못하는 가죽으로 방어구를 만들면 최소 C급 이상의 방어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말 아쉬웠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유리병을 집어 든 나는 이곳이 왜 추가보상 던전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템: 내구의 묘약]

단단하고 질기기 그지없는 가죽을 지니고 있던 오크가 드롭한 아이템이 바로, 내구의 묘약이었으니까.

‘이거…. 잘하면 어마어마한 스탯 업이 가능하겠는데?’

가죽이 단단한 놈이 드롭한 게 내구의 묘약이라면 다른 스탯을 올릴 수 있는 오크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을까?

거기다가 레벨업까지. 그야말로 일거양득.

잠시 장비를 점검하고 포션을 마셔 체력과 마나를 회복한 나는 다음 통로를 향해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퀘스트 아버지의 유산.’ 그 길고 긴 연계 퀘스트의 끝엔 달달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

“씨드. 내가 던전에 들어오고 얼마나 지났지?”

“23시간 17분 지났습니다.”

잠도 안 자고 하루를 꼬박 던전에서 보낸 나는 몹시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몸은 힘들지만 얻은 보상이 좋아 몸이 힘든지 모를 정도였다.

처음 만났던 내구의 오크(내구의 묘약을 드롭해서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와는 다르게 힘의 오크나 민첩의 오크 등 다른 오크들은 샤이닝 에로우 한 방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고 놈들은 그 이름에 걸맞은 묘약을 드랍했다.

드랍 확률이 100%는 아닌지 그냥 사체만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두세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는 묘약을 드랍했다.

그리고 한 번의 사냥을 끝낼 때마다 나의 스탯은 뻥튀기가 되었고 나중엔 버프를 쓰지 않고도 내구의 오크를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레벨: 70

힘:366 민첩:300 체력:400

마력:404 내구:380 지혜:201

그렇게 늙은 연금술사의 무덤에서 꼬박 하루를 사냥한 나는 레벨이 10이 올랐고 더는 E급 헌터라 볼 수 없는 스탯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 이게 보상이지. 아 달달하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그저 상태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는 걸 보니.

던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오크를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건 던전을 빠져나가는 것뿐이었다.

‘근데 좀 불안한데? 다음엔 뭔 퀘스트를 주려고 이렇게 막 퍼주는 거야?’

갑자기 든 불길한 생각만 제외하면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추가보상이었다.

‘아. 관리자님. 어제 했던 죽빵 이야기는 농담인 거 아시죠?’

늦었지만 사과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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