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상(賞)과 벌(罰) (1).
서울 경찰청에 마련된 특별수사본부.
전날 임중호 팀장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특수본을 찾은 나는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형사와 마주 앉았다.
이도윤 형사.
분명 피해자 조사임에도 나를 대하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적의를 느꼈다.
“피해자 김상욱 씨와는 어떤 관계이시죠?”
“지…인….”
“김상욱 씨의 유품은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하시게 된 겁니까?”
“우연히….”
“피해자의 딸인 김미소 양의 거주지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죠?”
“어쩌다 보니….”
“서울역 던전은 어떻게 가게 되신 겁니까?”
“드론 타고…?”
“방송 제목이라던가 카메라를 준비한 점으로 봐서 놈들의 계획을 알고 계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정보를 입수하신 겁니까.”
그의 질문들은 하나같이 내 논리의 빈틈을 파고드는 질문들이었고 그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우연히, 어쩌다 보니.
해피니스 시스템과 씨드를 공개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던전 청소부로 일하던 중에 우연히 김상욱 씨를 알게 되었고, 우연히 김상욱 씨의 유품을 찾아 보관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김미소 양의 거주지를 알게 되어 유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김미소 양에게 연락처를 알려 주셨고, 다음날 김미소 양의 도움 요청에 달려가셔서 MB 캐피탈의 불법 추심 행위를 막아주셨다는 거네요?”
내가 들어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네.”
분명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건 맞는데.
“그런데 강현 씨. 보통 이런 상황이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
이 형사 왜 이렇게 나한테 적대적이지?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이도윤 형사.
“어쩌다 보니 인터넷으로 외국 친구를 사귀었고 그 친구가 보내준 카메라를 테스트해 보기 위해 던전을 찾아갔는데 우연히 그게 서울역 던전이었고, 우연히 송종혁 파티가 서포터를 구하는 걸 보고 서폿 지원을 하셨고요.”
“네….”
그 눈빛은 마치 나를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로 대하는 것 같았다.
“방송 제목을 자극적으로 지은 이유는 시청자들 유입을 위한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또 우연히 놈들이 김상욱 씨를 죽인 던전 연쇄살인마였네요?”
“네…….”
“강현 씨. 우연이라는 게 이 정도로 겹치면 보통 사람들은 필연이라고 합니다. 그럼 형사는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의도적이었다.’라고 말하죠.”
말을 마친 이도윤 형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내 눈을 직시했다.
“강현 씨가 봐도 우연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싸늘한 눈빛이 마치 칼날처럼 나를 압박해 왔고.
“여기 김미소 양이 도움을 요청한 대목만 봐도 그래요. 왜 이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신 거죠?”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내 부실한 논리를 난도질해 하나하나 해부했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던전에 들어가신 것도 이해가 안 되네요. 강현 씨는 그들이 던전 연쇄살인마인 줄 몰랐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강현 씨가 그놈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거든요.”
반론의 여지가 없는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고작 과거의 인연 때문에 죽음의 위험을 감수했다는 사실이죠. 하지만 하나의 전제만 바꾸면 모든 게 논리적으로 귀결됩니다. ‘의도적이었다.’ 전 강현 씨가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놈들에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닌가요?”
잠시 말을 멈춘 이도윤 형사는 내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며 내 얼굴을 훑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피해자 조사를 받으러 와서 이런 심문을 당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서 어이가 없었다.
“고작이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형사님?”
화가 났다. 배꼽 아래 어딘가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형사님이 말씀하신 고작 과거의 인연. 그게 없었다면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여자아이는 2억이 넘는 대출 계약서에 서명했겠죠. 실제로 2억은 손에 쥐지도 못하고 연이율이 45%가 넘는 말도 안 되는 계약서에.”
이런 상황을 겪은 사람이 김미소 이전에도 분명히 존재했을 텐데 경찰은 MB 캐피탈에 대해 그 어떤 수사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경찰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습니까?”
그 버러지 같은 것들이 피해자들의 유가족들을 압박해 유가족들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막고 있는 동안 이들이 한 건 단언컨대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송종혁 일당이 처음 던전 살인을 벌인 게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한 거로 알고 있고요. 그때 경찰은 뭘 하고 있었죠?”
나를 노려보는 이도윤 형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때 제대로 수사가 진행됐다면 김상욱 씨가 던전에서 살해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죠. 스무 살 미소와 이제 여덟 살인 미나도 아빠를 잃지 않았을 테고요.”
이도윤 형사는 경찰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몰아붙였다. 마치 내가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지금 특수본에 제보된 던전 살인 의심 신고만 수백 건, 그 피해자가 수천 명이라죠?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경찰은 뭘 한 겁니까?”
진짜 죄를 지은 놈들은 저 밖에서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데 말이다.
“형사님이 말씀하신 내용 충분히 이해됩니다. 정황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하지만 절 이렇게 몰아붙이시는 게 이해가 되지 않네요. 형사님 앞에 앉아있는 저는 지금 피해자입니까. 피의자입니까? 혹시라도 제게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말씀해주시죠. 지금이라도 부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잘못한 것이라면 분명히 있었다. 통신사를 이용해 놈들의 대화 내용을 해킹했고, 범죄를 지은 놈들에게 상점 창에서 구매한 아이템들로 위해를 가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사적 제재를 가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나는 똑같이 행동할 거다.
싸늘한 침묵이 나와 이 형사 사이에 내려앉고. 날카로운 칼끝과 같은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이 형사. 강현 씨 피해자 조사 얼추 끝난 것 같은데 이만 보내드리지?”
“팀장님?!”
“보내드려. 피의자도 아니고 피해자 붙잡고 뭐하는 거야.”
나와 이 형사의 눈싸움은, 지켜보고 있던 임 팀장의 개입으로 끝이 났다.
왜 임 팀장이 내 편을 드냐고?
그야 아직 내 인벤토리에 있는 10개의 헌터 와치를 받지 못했으니까.
***
“쉽지 않지?”
임중호는 경찰청을 걸어 나가는 강현의 뒷모습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옆에선 이도윤에게 말했다.
“네. 쉽지 않은 친구네요. 그렇게 코너에 몰아붙이면 주눅들 법도 한데 그런 게 없어요.”
손에 들린 커피를 마시며 이도윤은 멀어지는 강현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확실히 팀장님 말처럼 특이해요. 의심 가는 정황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요. 근데 정말 이대로 접으실 겁니까? 전라 지청에서 온 공문 못 보셨어요? 거기에도 저 친구 이름이 나오던데.”
이도윤의 물음에 임중호는 쓰게 미소지었다.
“그럼 어쩌겠냐. 저 위에서 강현에 관한 건 덮으라는데.”
“그 위가 어디길래 팀장님이 이렇게 덮으시는 겁니까? 지청장님 지십니까?”
“더 위.”
“설마…. 경찰청장님?”
“지청장님 말로는 대한민국 대빵 지시란다.”
“네?”
“푸른 집에 사시는 분이 지시했다고 인마.”
“대통령이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임중호의 모습에 이도윤은 멍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강현을 바라봤다.
“대체…. 정체가 뭐야?”
***
일주일이 흘렀다.
그간 대한민국은 던전 연쇄살인 사건으로 들썩였고. 과거 행적이 의심되는 이들은 모두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이번 사건의 첫 피의자들인 송종혁 일당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되었다.
기자들이 쫙 깔린 서울지방경찰청 정문 앞.
나는 수많은 기자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경찰청 로비를 빠져나오는 네 놈을 지켜봤다.
잠을 자지 못한 듯 거뭇한 눈두덩이와 충혈된 두 눈, 창백한 안색에 허옇게 부르튼 입술.
수갑을 찬 손을 옷으로 가린 네 놈의 몰골은 경찰의 과잉 수사가 의심될 정도로 초췌했다.
“야 이 살인마 새끼야! 내 남편 살려내!!”
“사형시켜라. 사형! 저런 새끼들은 콩밥이 아깝다!!”
“왜 죽였어?! 대체 우리 아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이고- 아이고-. 내 딸 살려 내라아-!”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피해자 유가족들의 절규와 아우성이 청사 앞을 뒤덮었다.
모자를 쓰고 깊이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옮기는 살인마들.
“송종혁 씨 피해자 유가족분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
“피해자들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10건의 연쇄살인 외에도 추가 범행이 있었다는게 사실입니까?!”
촤라라라락!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와 너도나도 고함을 치는 기자들.
놈들이 청사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봇물이 터진 듯 쏟아내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막이 나갈 것 같았다.
“무슨…고문이라도 한 거야? 하나같이 몰골이 왜 저래?”
내 옆에 선 기자는 네 놈의 얼굴을 보고 중얼거리더니.
“송종혁 씨 경찰 수사 중에 가혹행위가 있었다는데 사실입니까?!”
이어 기레기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질문을 던졌다.
‘21세기 대한민국 경찰이 고문을? 그럴 리가.’
저건 내가 놈들에게 사용한 아이템의 효과 때문인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던전에서 놈들에게 사용했던 아이템 중 화룡점정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흐음. 지금 시간대가 아니었나? 대충 오후 1시쯤에 사용한 거로 기억하는데.’
내가 그렇게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억!”
쿠당탕.
멀쩡하게 잘 걸어 나오던 송종혁이 갑자기 미끄러지며 바닥에 나자빠졌다.
“뭐야 저거?”
어이없는 듯한 기자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펼쳐진 광경은 더욱 가관이었다.
넘어지는 와중에 놈의 모자가 벗겨지고 놈의 뒤통수로 새똥이 날아와 들러붙었다.
촤라라락!
본능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기자와.
“아…. 방금 송종혁의 머리 위로 새…똥이 떨어졌네요….”
방송용 카메라를 보며 어이없는 멘트를 치는 방송국 기자.
하기만 이어진 광경은 그 기자마저 입을 다물게 했다.
“아아악!!”
바닥에 넘어진 송종혁이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었기 때문이다.
“뭔…. 다리가 수수깡이냐? 고작 넘어진 것 때문에 다리가 부러진다고? 각성자가?”
부러진 채 덜렁거리는 종아리를 보면 오버액션은 아닌 게 확실하니 더욱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현상은 송종혁으로 끝나지 않았다.
청사 유리문에 부딪혀 부러진 손가락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는 천재원.
어디선가 날아온 나뭇잎에 눈을 찔려 피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나찬수.
얼굴 앞에 들이 밀어진 마이크 묶음에 코를 찔려 코피를 쏟고 있는 최진기.
그 모습을 본 유가족 중 한 할아버지가 놈들에게 달걀을 집어 던지며 외쳤다.
“천벌을 받는 거다! 이놈들아!!”
그리고 할아버지가 던진 달걀은 피눈물을 흘리는 나찬수의 사타구니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아악!”
입에 게거품을 무는 걸 보니 저기 있는 알 세 개 중 두 개는 깨진 듯싶었다.
저분의 말처럼 천벌은 아니지만, 앞으로 놈들의 삶은 지옥보다 더 괴로워질 거다.
[아이템: 럭키보이의 행운의 편지]
[등급: E급]
[설명: 행성 ‘바란’의 모든 행운을 거머쥐고 태어났다는 말을 듣는 럭키보이. 행운아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자신의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만든 아이템이다.]
[추가 설명: 럭키보이의 행운의 편지를 받은 이가 일주일 이내에 일곱 명에게 행운의 편지를 선물하면 럭키보이의 행운을 공유할 수 있다.]
[주의 사항: 행운의 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다른 이에게 편지를 보내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소소한 불행’이 당신을 덮칠 것이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아이템이다.
그저 일곱 명에게 자신이 받은 편지와 같은 ‘행운의 편지’를 선물하면 럭키보이라는 자와 행운을 공유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의 사항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소소한 불행이 덮친다는 문구 말이다.
‘행운의 편지와 내가 사용한 아이템들이 결합하면 소소한 불행은 더는 소소한 불행이 아니게 되지.’
그리고 그 결과가 저거다.
문틀에 발가락을 찧으면 발톱이 뽑혀 날아갈 거고, 밥 먹다가 숟가락이라도 잘못 씹으면 이빨이 아작날 거다.
애초에 놈들이 감옥에 갈 걸 상정하지 않고 사용한 아이템들이지만, 감옥에 간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더는 살고 싶어지지 않겠지.
놈들에겐 이제 살아있는 것이 지옥일 테니까.
“굿럭.”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네놈을 보고 걸음을 돌려 경찰청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번 퀘스트의 완료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