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53화 (53/202)

53.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그날 저녁.

대한민국의 매스컴과 국민의 여론은 활화산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타올랐다.

‘방만한 지역 길드 운영 이대로 괜찮은가?!’

‘고금리 불법 대출과 연계된 해랑 길드의 막장 운영 실태.’

‘해랑 길드 마스터 긴급체포.’

‘던전 살인!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백 건의 의심사례 쏟아져.’

‘전국에서 빗발치는 제보들. 던전 살인은 전라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해랑, 나래, 영산, 백야. 이번 사건과 관련된 4개 길드. 길드 마스터 전격 구속.’

‘각성자 센터에 빗발치는 던전 살인 제보. 조사 착수.’

‘각성자 특별법 이대로 괜찮은가?’

마치 장마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기사의 홍수가 매스컴과 포털을 뒤덮었고, 국민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정부 또한 그에 반응해 특단의 대책들을 내어놓았다.

‘국민 여론. 각성자 특별법을 폐지하라!’

‘각성자 센터 칼을 뽑아 들었다! 내일부터 전국에 산재한 던전 실사 들어가.’

‘대통령. 특수본 설치와 특검 도입 명령. 던전 살인에 관련된 모든 의혹을 해소하라 지시.’

‘감찰의 사각지대에 있던 지방 중소길드 전면감사 들어가.’

그렇게 대한민국 매스컴과 포털이 불타오르고 있던 시각.

구정철은 자신의 숙적과도 같은 이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 구역 안을 그렇게 헤집고 다니더니, 거기에 내 손녀를 끌어들여? 지금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카랑카랑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구정철의 통화 상대는 싸울아비의 길드 마스터 서태촌이었다.

“뜻밖의 정보를 얻게 돼서 제대로 처리해 줄 사람에게 연결한 것뿐일세.”

“그래서 내 손녀딸에게 해랑 길드 사건을 넘겼다?”

“전라도 내에서 소연이 그 아이 만큼 길드 관련 사건을 확실하게 처리할 경찰이 없지 않은가.”

구정철의 말은 사실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전라도 내에서 서소연의 수사를 방해할 만한 간 큰 길드는 없었다.

싸울아비와 서태촌이라는 배경도 배경이지만, 서소연 또한 A급 각성자니 말이다.

“지금 그 말. 자네가 벌인 짓거리를 수습하는 데 내 손녀딸을 이용한 거라고 이해해도 되는 건가?”

헌터 와치를 통해 들려오는 서태촌의 목소리엔 순간 살기가 어렸다. 하지만 구정철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소연이 그 아이. 보니까 아직도 길드 물려받는 걸 거부하는 것 같던데. 이왕 경찰로 남을 거면 좀 높이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 이런 사건을 처리하면 전국적으로 이름도 알릴 테고, 승진에도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네.”

“허-!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것도 아니고 눈물이 나는구먼. 그려.”

서태촌의 까칠한 반응에 구정철은 한숨이 새어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설마. 내 손녀딸 걱정에 위대하신 구정철 전 대통령 각하께서 전화한 건 아닐 테고 왜 전화했나?”

‘나이 여든이 넘었는데도 태촌이 이놈 성질머리는 바뀌지가 않는구나. 관뚜껑에 못 박을 때나 돼야 성질머리가 고쳐지려나? 어휴-.’

속으로 한숨을 내쉰 구정철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태촌의 말처럼 안부 인사나 하려고 전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욱일회가 움직였네.”

“…….”

순간. 수화기 너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방금. 뭐라고 했나?”

헌터 와치를 타고 울려 퍼지는 낮고 음울한 목소리엔 진득한 살기가 배어 있었다.

“욱일회?”

짧고 간결한 물음에 담긴 원한과 증오는 절대 짧고 간결하지 못했다.

서태촌의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욱일회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장현이 수습해서 경주로 끌고 왔네. 신풍대 놈들이더군.”

으드득.

순간 어금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헌터 와치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 버러지들을 모두 내게 넘기게. 그럼 이번일 없던 거로 해주지.”

“그럴 순 없네.”

“왜!!”

“알고 있잖나. 놈들에게 원한이 있는 건 자네뿐만이 아닐세.”

“그럼 절반.”

더는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단호한 어조의 서태촌.

구정철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기다리겠네. 되도록 빨리 놈들을 넘겨받았으면 싶군. 오늘 밤이 꽤 길 것 같거든.”

“오늘 중으로 보내도록 하지.”

“이 사실 소연이도 알고 있나?”

“소연이는 모르네.”

“그건…고맙군.”

그렇게 서태촌과 통화를 끝낸 구정철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전쟁은 막은 셈이군. 싸게 먹혔어.’

서태촌에게 넘겨진 신풍대 놈들이야 어찌 되건 구정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의 입장에서 욱일회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좀먹는 암 덩어리 중 하나였고. 반드시 사라져야 할 쓰레기였으니까.

“그나저나 이놈들이 대가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다는 말이지?”

구정철의 물음에 그의 등 뒤에 시립 해있던 이장현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놈들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했는지 자백제도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꼬리를 잡았을 때 타고 올라가 대가리를 잘라내야 하는데 아쉽군.”

구정철의 아쉬움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아는 이장현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수를 쓰던 놈들의 입을 열겠습니다.”

욱일회에 증오를 품고 있는 건 구정철도 이장현도 마찬가지였다.

***

보육원 철문 앞.

“미안하다.”

저녁 8시 청심원을 찾아온 커다란 체구의 남자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김미소는 그 남자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어릴 적 믿고 따랐던 삼촌. 아버지 김상욱이 죽고 나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어른.

그런 고동명이 김미소에게 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정말 돈 때문에?”

“미안하다. 미소야….”

김미소의 물음에 고동명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도박에 빠져 재산을 날리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친구의 딸을 등쳐먹다가 위험에 빠트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고동명을 내려다보는 김미소의 눈동자는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공허하게.

그때였다.

“이만 가주시면 좋겠네요. 애들도 많은 곳인데. 다 큰 어른이 이렇게 무릎 꿇고 우는 모습. 그다지 보기 안 좋아요.”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정혜가 다가서며 말했다.

“그리고 잘못을 했으면 경찰서 가서 조사받고 합당한 벌을 받으셔야죠. 여기서 되지도 않는 눈물 연기를 하실 게 아니라.”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에 고동명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미소한테 사기 치려 했던 그 MB 캐피탈인가 뭔가도 공갈 협박 사기로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이참에 사이좋게 콩밥 드시면 되겠네요.”

“뭐? 이 씨…….”

발끈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고동명. 그는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강현의 얼굴에 그의 무릎은 다시 땅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미소야. 그래도 내가 네 아빠랑 20년 지기 친구인데…선처해 주면 안 될까? 아저씨가 돈이 급해서 실수한 거야. MB 캐피탈 놈들이 그렇게 악독한 놈들인 줄 알았으면 그놈들한테 차용증을 넘기는 일 없었을 거다. 정말이야.”

그는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김미소를 바라보며 선처를 부탁했지만, 그 말을 받은 건 김미소가 아닌 김정혜였다.

“네-. 네.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구구절절한 사연 잘 들었구요. 사는 게 힘드셔서 친구 딸 등쳐먹었던 분답게 뻔뻔하기 그지없으시네요. 부디 감방 가셔서 몸에 좋은 콩밥 많이 드시고 속죄하시길 바랄게요-?”

똑 부러지게 말하며 김미소의 어깨를 감싸고 몸을 돌려버린 김정혜는 보육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컹!

“미소야 들어가자. 저런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 말 들으면서 귀 더럽힐 필요 없어.”

“언니….”

김미소는 김정혜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흐윽. 언니-.”

아버지는 던전에서 살해당했다.

철석같이 믿었던 아빠 친구는 그렇게 아빠를 잃은 딸을 등쳐먹었고.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 가족들이 사망한 피해자의 사건에 신경을 쓸 수 없도록 작업을 친, MB 캐피탈이란 놈들에게 돈을 받고 차용증을 팔기까지 했다.

김정혜가 보기에 고동명이란 인간은 앞으로 보고 뒤로 봐도 인간쓰레기 그 이하였다.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힘든 거 있으면 말해. 언니가 도와줄게.”

그런 정혜의 말에, 김미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꾹 눌러놨던 설움이 폭발한 듯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김정혜는 서럽게 우는 김미소를 품에 안고 그녀를 다독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녀는 그 별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주르륵.

어느새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하아-. 괜찮아. 울어 미소야. 언니가 옆에 있을게. 괜찮아. 울어도 돼.”

왜 세상은 유독 없는 사람들에게 더 혹독한 것인지 모르겠다.

힘이 없고.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지옥과 다름없다.

스무 살에 보육원을 떠나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야 했던 김정혜. 그녀 또한 적지 않은 마음에 상처를 안고 청심원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보육원에 돌아온 그 날.

주체할 수 없이 터져버린 그녀의 눈물에 원장 어머니는 그녀를 안고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었다.

‘괜찮아. 정혜야. 울어도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을게.’

그리고 지금 그녀는 김미소를 똑같은 말로 다독였다.

삶이 힘든 사람에겐 가끔 눈물을 흘릴 시간이 필요하니까.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별빛 아래.

김미소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김정혜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스무 살.

소녀는 이제 아빠 없는 하늘 아래에서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했다.

***

“안타깝게도. 아저씨는 용서받지 못했네?”

청심원 입구 밖.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고동명의 옆에 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심원의 철문 안에서 들려오는 서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강현은 싸늘한 눈으로 고동명을 내려다봤다.

“이제 당신이 한 짓이 무슨 짓인지 좀 알겠어?”

“난…그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네. 변명하려는 거 보니까.”

한겨울 얼음장보다 차가운 강현의 목소리에 고동명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당신 같은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지. 그래서 내가 선물을 준비했어. 물론 당신한테는 그다지 반가운 선물은 아닐 테지만.”

말을 마친 강현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제, 제발….”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 하지만 이 나라의 법이 저 아이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까지 고려해서 벌을 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선물을 준비해 봤어.”

말을 마친 강현은 솥뚜껑처럼 커다란 고동명의 손에 아이템을 쥐여주었다.

뭔가 위험한 아이템이라 생각하고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강현을 바라보던 고동명은 의아한 눈으로 손에 들린 편지봉투를 바라봤다.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낡은 편지봉투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어…?”

고동명의 손에 들려있던 편지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현은 새하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디 당신의 삶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랄 게 고동명 씨.”

그 말을 끝으로 강현은 고동명에게서 등을 돌려 멀어져 갔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진 강현의 뒷모습을 확인한 고동명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에이. 씨발롬. 각성자만 아니면 한주먹거리도 안 될 새끼가….”

김미소 앞에서 사죄의 눈물을 흘리던 그는 한껏 인상을 쓰며 바짓단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하. 고년. 그래도 내가 지 아빠 친군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바짓단의 먼지를 털어낸 고동명은 굳게 닫힌 청심원의 대문을 두드릴 것처럼 팔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대책 없이 대문을 두드리기엔 강현이라는 각성자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에이 씨발. 그냥 감빵 몇 달 갔다 오고 말지. 어차피 초범이라 형량도 약할 텐데.”

카악-퉤!

그렇게 중얼거린 고동명은 청심원의 대문을 향해 가래침을 뱉고는 걸음을 움직였다.

강현이 그의 손에 쥐여준 아이템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그리고 샤이닝 에로우를 통해 그 모든 말을 듣고 있던 강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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