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52화 (52/202)

52. 나쁜 놈 vs 더 나쁜 놈 (3).

컥.

끄윽.

타다시는 이를 악물고 주변을 살폈다.

전투의 여파로 터져나간 땅거죽과 부러져 쓰러진 나무들 사이.

어느새 그의 부하들은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대 일본 제국의 선봉이 되어야 할 신풍대가….’

힘들게 키운 부하들이 저렇게 초주검이 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타다시.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바닥을 구르고 이는 것이 그의 부하들만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였다.

‘빌어먹을 새끼.’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건 다름 아닌 강현이었다.

***

처음 해랑 길드원과 싸움을 시작했을 땐 명백히 타다시의 신풍대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독립한 지 80년.

아직도 제국주의의 야망을 버리지 못한 일본 정부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재한 일본인 과격단체 ‘욱일회’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신풍대는 한낱 중소길드원들에게 밀릴 만큼 나약하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타다시의 부하들을 압도하는 건 얼굴에 검상이 있는 사내. 유춘삼이 유일했다.

유춘삼을 제외한 해랑 길드원들은 파죽지세로 신풍대에 밀리기 시작했고, 타다시가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을 무렵이었다.

쉭. 푹.

“컥!”

바람 소리와 함께 날아온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맞은 신풍 대원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타다시가 그것이 허공을 자유자재로 선회하는 화살이라는 걸 안 것은 그를 제외한 신풍 대원 모두가 바닥에 몸을 뉜 후였다

그렇다고 해랑 길드원들이 유리했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해랑 길드 측이 승기를 잡을라치면 보이지 않는 화살은 마치 ‘균형의 조율자’처럼 그 화살촉을 해랑 길드로 돌렸으니까.

***

그렇게 해서 지금 상황에 이른 것이다.

신풍대는 타다시, 해랑 길드는 유춘삼, 오직 둘만 남아 서로를 경계하는 상황이.

“크윽….”

“으….”

해랑 길드도 신풍대도 진즉 힐링 포션을 모두 사용해, 신음만 흘릴 뿐 더 이상은 몸을 일으키는 사람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타다시와 유춘삼은 서로 거리를 벌린 채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 무서운 건 눈앞에 있는 적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강현의 샤이닝 에로우였다.

그렇게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고 서로 눈치를 살피던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부하들에게 달려가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쨍그랑.

소리 없이 날아온 샤이닝 에로우가 두 사람의 손에 들린 힐링 포션을 박살 냈다.

B급 각성자인 두 사람은 감각적으로 샤이닝 에로우를 막아 냈고 이에 강현은 그 둘을 직접 노리는 것이 아닌 견제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빌어먹을 새끼가!!”

깨진 포션 병을 보고 욕설을 내뱉은 유춘삼이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나와! 이 비겁한 새끼야! 뒤에서 수작질 부리지 말고 나와서 나랑 한판 뜨자!!”

풋.

타가시는 그런 유춘삼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래서 조센징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쪽수로 강현을 협박하던 유춘삼이 이제 와서 강현에게 비겁하다고 말하는 게, 타다시의 입장에서는 코미디로 보였다.

강현을 찢어 죽이고 싶은 건 타다시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넌 뭘 처 웃어? 이 쪽바리 새끼야.”

강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유춘삼의 분노는 웃음을 터트린 타다시에게 향했다.

“쪽…바리?”

“하고 다니는 꼬라지가 쪽바리 새낀데 뭘 발끈해? 아까 너네 부하가 부르는 거 들어보니까. 이름이 타다시? 타다끼? 이거 일본 이름 아니야?”

뿌득.

유춘삼의 이죽거림에 타다시는 이를 갈았다.

“감히. 대 일본 제국의 신풍대를 모욕하다니 죽고 싶은 거냐?”

“대 일본 제국? 신풍대?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야 이 새끼야 니가 서 있는 땅을 봐라. 여기가 어딘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도 못해서 남의 나라에 빌붙어 사는 주제에 아주 지랄 옆차기하고 있네.”

80년 전 몬스터에 의해 하늘과 바닷길이 막혀버린 뒤로 한반도 내에 있던 외국인들은 고립되었다.

남의 나라에 빌붙어 산다는 유춘삼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유춘삼의 신랄한 독설에 타다시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그의 몸에서 서늘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탁.

그것에 반응한 유춘삼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집어 들었을 때였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건졌군.”

뜬금없이 들려온 굵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채 170이 안될 것 같은 키. 날카로운 눈매에 거칠게 자란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인.

구정철의 명령에 강현을 돕기 위해 수하들을 이끌고 목포에 온 월화랑(月花郞)의 수장. 통칭 그림자로 불리는 이장현은 유춘삼과 타다시에게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강현 씨. 설마 이놈들 때문에 우리를 부른 겁니까?”

강현에게 질문을 던지며 걸음을 옮기는 이장현.

우웅-.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묵직한 기운이 유춘삼과 타다시를 짓눌렀다.

“큭.”

“으윽.”

두 사람은 이장현의 기운에 저항하며 버텨보려 애썼지만, 이미 여러 차례의 전투로 체력이 다한 그들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큭. 최소 A급 어쩌면 S급일지도.’

S급 각성자.

대한민국을 통틀어 채 백 명이 안 되는 강자의 등장에 바람마저 멈춰버린 숲속엔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저 일본인. 위험인물인가요?”

이장현은 강현의 물음에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아주 위험한 버러지들이죠. 우리 선조들이 자비를 베풀어 목숨을 부지하게 해 줬더니 그 은혜도 모르고 테러를 일삼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고 어디선가 기어 나오는 버러지들입니다.”

이장현. 그에게 욱일회란 그런 존재들이었다.

30년이 넘게 월화랑으로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싸워야만 했던 대한민국의 암 덩어리 중 하나.

그는 증오 어린 눈으로 타다시를 노려보며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 따윈 꿈도 꾸지 마라. 즉사만 아니라면 네놈 하나 되살리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 말과 함께 쏘아져 온 끔찍한 살기에 입안에 숨겨둔 독단을 깨물려던 타다시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를 멈춘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니게 될 것만 같다는 극한의 공포가 그의 정신을 잠식해 들어갔다.

***

나는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것처럼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타다시라는 일본인을 압박하는 이장현의 곁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며 말했다.

“그럼…. 제가 볼일이 있는 쪽은 이쪽이라….”

내 말에 이장현은 흘끗 나를 돌아봤으나 이내 다시 타다시라는 일본인에게 집중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아릿할 정도의 살기를 뿜어내는 거 보면 저 일본인이 속한 단체에 대한 원한이 지독한 듯싶었다.

그렇게 이장현을 지나친 내가 향한 곳은 춘삼이라는 아주 올드한 이름을 가진, 해랑 길드원의 앞이었다.

“으윽.”

아직도 이장현이 뿜어내는 기운에 짓눌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춘삼 씨의 앞에 선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춘삼 씨.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 줄래요?”

내가 말을 걸자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춘삼 씨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끄으…져.”

“대답만 잘해주면 저기에 있는 아저씨한테 잘 말해서 살려는 드릴게요. 지은 죄가 있으면 죗값은 치러야겠지만.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요.”

나는 부들거리며 몸을 떠는 유춘삼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고동명이. 어디 있어?”

순간 유춘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춘삼 씨 고동명이 누군지 아는 모양이네? 이름만 들었는데도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보면?”

내 말을 들은 춘삼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다시 물었다.

“어디 있어? 고동명. 내가 저기 있는 아저씨를 부르기 전에 입을 여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은데.”

타다시를 초주검으로 만들고 있는 이장현을 향했던 춘삼의 눈이 제자리를 찾고.

“고동명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굳게 닫혀 있던 춘삼의 입이 열렸다.

***

춘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진실은 놀라웠다.

양을산 A급 던전.

해랑 길드가 소유한 이곳은 일반적인 던전과 다르게 던전 광산이라 불려야 할 던전이었다.

보통의 던전이 헌팅을 해 몬스터에게서 마나석과 아이템을 얻고 부산물을 채취하는 구조라면 이곳은 조금 다른 구조였다.

한 달에 한 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까지 시간을 꽉 채워 광부들을 동원해 채광을 한다.

이는 한 달 내내 헌팅을 해 얻는 수익보다 광산을 돌려 얻는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데. 솔직히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접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양을산 던전에서 채광하면 극소량이지만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루콘 그리고 미스릴이 나온다고?”

“그래.”

오리하루콘과 아다만티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희귀금속이다. 그보다는 못하지만, 미스릴은 대 언데드 아이템을 만들기에 최적인 금속이라 인기가 많았고.

“허…. 그래서 고동명은 지금 광부로 열심히 채광 중이시고?”

내 물음에 유춘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적합성 검사는 받고 일하는 건가?”

도리도리.

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젓고 있는 유춘삼을 노려봤다.

“그 모가지 꺾어버리기 전에 입으로 말해 주실래요. 춘삼 씨?”

“그러지.”

“그러니까 마나 적합성 검사도 안 받은 일반인들을 던전에 집어넣고 채광을 시키고 있는 거네?”

“맞아.”

이건 정말 막장이었다.

마나 적합성 검사. 이건 던전에서 일하고 싶은 일반인들이라면 무조건 통과해야 하는 검사였다.

그리고 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일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던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

불치병인 마나 역류증에 걸리기 싫으면 말이다.

그런데 이 해랑 길드 놈들은 마나 적합성 검사도 하지 않은 일반인 백여 명을 던전에 집어넣고 굴리고 있는 거다.

이게 막장이 아니라면 뭐가 막장이란 말인가.

하물며 마나 적합성 검사를 통과한 던전 청소부들도 마나 차폐복을 입지 않으면 던전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데. 꼬라지를 보아하니 이놈들이 그런 장구류를 지급해 줬을 리도 없고.

“와…. 너희 길드 정말 막장이구나?”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불법일 것이 분명했다.

정부에 신고하고 정식 채광허가를 받은 던전 광산이라면 이런 식으로 채광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유춘삼의 질문은 나를 향했지만, 그의 눈이 향한 곳은, 피 칠갑을 한 타다시가 이장현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너도 저 꼴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

내 물음에 유춘삼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를 살려줄 건가?”

“하는 거 봐서. 일단 고동명에게 안내 좀 부탁할까?”

지금 시간은 오후 여섯 시. 퀘스트 제한시간 6시간이 남은 상황.

아직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

깡. 까강! 깡!

쉴새 없이 휘둘러지는 곡괭이가 만들어낸 소음이 울려 퍼지는 막장 안.

“아. 씨펄! 이거 너무한 거 아니요?!”

광부 하나가 쥐고 있던 곡괭이를 집어던지면 언성을 높였다.

“아니 씨벌! 일을 시킬 거면 밥을 먹여가며 시키던가! 밥때가 지난 지가 언젠데 씨벌 밥을 안 주는 거야!”

다른 광부들 또한 앞으로 나서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 광부의 말에 찬성하는 듯 곡괭이질을 멈추고 해랑 길드원들을 쳐다봤다.

까랑까랑하게 울려 퍼지던 곡괭이질 소리가 멎은 던전 안은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사실 광부들을 감시하던 해랑 길드원들도 죽을 맛이었다.

뜬금없이 던전에 들어와 잠시 마실 좀 다녀온다며 감시원 중 절반을 이끌고 나간 조장 유춘삼이 아직도 복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대체 뭔 좋은 구경을 하러 갔길래 아직도 복귀를 안 하는 거야? 구경하러 갈 거면 혼자 갈 것이지 괜히 애들까지 끌고 가서 광부들 밥도 못 먹이게 하고, 씨벌. 이러니까 B급 헌터씩이나 돼서 막장 관리나 하고 있지.’

길드원 하나가 이 사태를 만든 원흉 유춘삼을 떠올리며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였다.

우웅-.

광부들이 도망칠 수 없도록 입구를 막아놓은 차폐막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던전 안으로 진입해 왔다.

“전라도 지방 경찰청 각성자 범죄 전담팀 팀장 서소연 경감이다. 너희를 불법 감금, 불법 던전 채광, 인신매매 및 존나게 많은 혐의로 체포한다. 전부 무기 버리고 엎드려.”

음의 고저가 없는 평이한 목소리.

들려서는 안 될 내용이 들려오자 던전 입구 쪽을 바라본 해랑 길드원들은 온몸에서 푸른 불꽃을 두른 채로 자신들을 바라보며 살벌한 미소를 짓는 미녀를 보고 기겁을 했다.

“서소연?!”

“시바 좆됐다….”

서소연. 그녀는 전라도 내에서는 꽤 유명했다.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 싸울아비.

그곳의 길드 마스터 서태촌의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자 꼴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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