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51화 (51/202)

51. 나쁜 놈 vs 더 나쁜 놈 (2).

방창주는 걸음을 옮기며 앞서가는 강현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불안한데….’

선두에서 앞서가는 박선창과 그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형 동생 사이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백수로 지내던 그를 MB 캐피탈에 소개해 준 것도 박선창이었고, 해랑 길드원이라는 든든한 빽이 되어주기도 했다.

여느 지방 길드가 그렇듯 방창주의 고향 목포에서는 해랑 길드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방창주는 그렇게 든든했던 형님의 등이 오늘따라 못 미더워 보였다.

‘아무래도 형님들에게 연락해야겠어.’

박선창 덕분에 알고 지내는 해랑 길드의 형님들. 그들이 달려온다면 자신의 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강현도 쉽게 무릎 꿇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실장님이 그렇게 조심할 정도면 분명 뭔가가 있는 녀석일 테니까.’

그날 방창주와 함께 김미소를 협박하던 안경쟁이 안 실장은 MB 캐피탈 내에서 레이더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워낙 위험한 인물과 상황을 잘 파악한다고 해서 붙은 그 별명은 방창주가 몸소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안 실장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물러났으니 방창주는 강현에게 분명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앞서가는 박선창 몰래 그가 아는 해랑 길드원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나중에 혼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게 맞아.’

***

강현과 방창주 일행이 편의점 앞을 떠나고 1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온통 검은 옷으로 칭칭 감싼 일단의 무리가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확실해?”

타다시의 물음에 추적술을 펼치며 일행을 이곳으로 이끌었던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강현의 체취가 진하게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 잡다한 인물들의 체취도 섞여 있긴 했지만, 이곳에 머물렀던 게 확실합니다.”

“그래서 어디로 갔지?”

“흔적만 봤을 때, 일단의 무리에 섞여. 저곳으로 향했습니다.”

“산?”

부하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 타다시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곳엔 양을산 등산로 입구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

앞에서 길을 걷던 문신남이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길이 아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익숙하게 수풀을 헤치고 걸음을 옮기는 걸 보니 한두 번 가본 길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나무가 무성한 숲의 한가운데 널따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열 명의 사내들.

“여어-. 선창이! 외지인이랑 시비 붙었다며?!”

그중 얼굴에 칼자국이 가득한 사내가 손을 흔들며 박선창이란 놈을 아는 척해 왔다.

“어? 춘삼이 형님. 지금 근무시간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박선창의 물음에 춘삼이라 불린 칼자국 사내는 턱짓으로 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쩐 일은. 우리 창주가 좋은 구경거리 있다고 해서 보러 왔지.”

“그래도…. 근무시간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애들 남겨 놓고 왔으니까 신경 쓸 것 없어. 어차피 대가리들은 다 서울 올라갔는데 뭐. 그냥 광부 놈들 감시하는 일인데 무슨 일이 있겠어? 그나저나 저 아저씨야? 안 실장 수금 방해했다는 아저씨가.”

‘광부?’

그의 입에서 나온 ‘광부’라는 단어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박선창이 나를 돌아보며 빙긋 쪼갰다.

“네. 창주 말로는 그렇다고 하던데. 안 실장도 감이 요즘 한물갔나 봐요. 딱 봐도 별것 없어 보이는 새끼 때문에 수금 못 해 온 거 보면.”

건들건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박선창이 나를 보며 손짓을 했다.

마치 지나가던 강아지를 부르는 것처럼.

헌터 와치만 아니면 어디 조폭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와꾸를 가진 놈이 그리 말하니 정말 내가 별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흠…. 서울 양반이 이 목포 촌 동네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을까?”

춘삼의 물음이 끝나자 담배를 물고 있던 사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내 주위를 포위했다.

“굳이 목포까지 왔으면 다른 데 볼 것도 많을 텐데 우리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 주변에 알짱거리는 것도 수상하고….”

말끝을 흐리던 춘삼은 이내 두 눈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봤다.

“아저씨. 어디서 보냈어?”

순간 그 눈빛에 실린 날카로운 살기가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형님?”

박선창의 물음에 춘삼은 살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앞으로 나섰다.

“MB 캐피탈의 수금을 방해한 서울놈이 목포까지 와서 우리 길드 영역에서 얼쩡거린 이유가 뭐겠어? 캐피탈과 우리 길드가 연관돼 있다는 걸 파악했다는 거고, 그 말은 어디서 소스가 샜다는 소리지.”

그 말에 박선창이 나를 노려보며 윽박지른다.

“너 뭐야? 씨바 경찰이야?”

가뜩이나 얼굴도 험상궂은 놈이 인상을 쓰며 우악을 지르니 솔직히 조금 쫄렸다.

‘씨드.’

‘네 사령관님. 타겟팅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공터에 도착하기 전, 이곳에 사람들이 있다는 씨드의 보고에 미리 샤이닝 에로우를 뿌려 놨었다.

덕분에 무려 열한 명의 각성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당당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눈빛만으로 살기를 날려 보낼 정도의 강자라는 사실은 씨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실 이었지만.

“왜 대답이 없어? 인제 와서 쫄려? 아까 편의점 앞에선 후까시 이빠이 잡더니만.”

박선창이 이죽거리며 당장이라도 나를 때려잡을 것처럼 다가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상대는 오직 하나였다.

춘삼이란 이름의 칼자국 사내.

지금까지 있었던 헌터들과의 싸움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했기에 나는 조금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칼자국 사내, 춘삼이 드러낸 존재감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확실한 건 근접 전투계열. 등급은? C급? B급? 저놈에게도 씨드의 공격이 통할까?’

지금까지 내가 싸워 왔던 헌터들은 다수이긴 했으나 모두 나와 동급이었다.

하지만 춘삼은 내가 느끼기에 나보다 2등급 혹은 3등급 이상 높은 헌터였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아이템 빨로 찍어 누를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 씨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이곳으로 접근하는 인원들이 있습니다.’

‘설마 추가 인원인가?’

지금 상태에서도 이길 확률이 0에 수렴하는데 추가 인원이 오는 것이라면 이기는 것은커녕 도망치는 것도 힘들어진다.

‘은밀하게 기척을 죽이고 접근 중입니다.’

‘기척을 죽여? 그렇다면 저놈들과 일행이 아니라는 소린가?’

‘간혹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가 아니라 일본어입니다.’

‘일본어?’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조합해 보면 그들은 사령관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엥?

일본놈들이 나를? 왜?

***

“모두 기척을 숨기고 접근한다.”

타다시의 명령에 조원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공터를 향해 접근했다.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온 이유가 저들을 만나기 위함인가?’

시간상으로만 보면 강현이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이들이 저들이기에 생긴 오해였다.

설마 목포에 오자마자 시비에 휘말렸을 거라곤 타다시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조장. 지금 덮칩니까? 만약 놈들의 인원이 여기서 더 늘어나면 강현을 확보하는 게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부하의 물음에 타다시는 고민했다.

‘분위기가 강현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분위기인데….’

기척을 들키지 않기 위해 꽤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중이라 대화를 엿들을 수 없었지만, 타다시의 눈에 강현을 둘러싼 이들의 분위기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지켜본다.”

“하지만 곧 있으면 강산호 회장이 붙인 감시자들이 따라붙을 겁니다.”

부하의 반론이 있었지만, 타다시는 다시 한번 그냥 지켜볼 것을 명령했다.

‘한패라고 보기엔 저들 사이의 분위기가 미묘하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

씨드의 보고를 들은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일본인들이 나를 노리고 있다. 정확히는 ‘확보’하고자 한다.

그 말은 일본인들이 원하는 건 내 목숨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는 의미였고, 결코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보통은 사람을 두고 ‘확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기척을 숨기고 접근을 했다는 것 자체도 수상하기 그지없었고.

“야. 왜 대답을 안 해? 너 경찰이냐니까?”

내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덧 내 앞까지 다가온 박선창이 인상을 쓰면서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우야. 이건 좀….’

생긴 것만으로 흉기라 불러도 무방할 놈이 인상까지 쓰니 그야말로 흉악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얼굴에 흠칫 놀란 내가 뒷걸음질을 치자 놈은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어 춘삼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님. 제 얼굴만 보고도 쪼는 이런 새끼가 경찰 일리가 있겠습니까?”

박선창의 말에 춘삼은 피식 웃었다.

“야. 니가 그렇게 얼굴을 들이대는데 가만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집에서 거울은 보냐?”

“큭큭.”

“하하하.”

춘삼의 말에 공터는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아니, 형님 저 이래 봬도 어릴 때는 잘생겼단 소리 듣고 자랐습니다.”

“시꺼. 내가 너 어릴 때 모습을 아는데 뭔 개소리야?”

그 말과 함께 걸음을 옮겨 내게 다가오는 춘삼.

“그나저나 우리 아저씨. 그냥 던진 미끼에 이렇게 반응하면 정말 경찰 같잖아.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아저씨 정말 짭새야?”

말을 하는 춘삼의 손은 어느새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를 향하고 있었다.

내 대답 여하에 따라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처럼.

“경찰이면?”

“와-. 이 아저씨가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하시네?”

창.

“아저씨. 분위기 파악 못 해? 지금 아저씨가 그렇게 뻗댈 상황이 아니라는 느낌. 안 들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뽑아 든 놈의 검이 내 목젖을 겨눴다.

“내가 경찰이면 상황이 달라지나?”

날카로운 살기를 뿌리며 나를 압박하던 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매달렸다.

“킥. 솔직히 달라질 건 없지. 아저씨가 경찰이든 아니든, 오늘 여기서 죽어.”

나는 놈을 보며 똑같이 웃어 주었다.

“네 생각대로 될까?”

“뭐?”

“네 말대로 내가 경찰이든 아니든. 이런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곳에 오는데. 과연 혼자 왔을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놈의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잡아!”

내 등 뒤에 있던 녀석을 들이받는 순간, 서늘한 무언가가 내 등을 할퀴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카가각!

다행히 갑옷이 그 공격을 막아냈고.

“크윽.”

탄력을 받은 나는 나를 막아서는 놈들을 밀쳐내고 몸을 날리며 외쳤다.

우당탕.

내게 밀쳐진 두 놈이 바닥을 나뒹굴고 그사이를 빠져나온 나는 숲속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마치 동료들이 있는 것처럼.

“들켰다! 공격해!”

“뭐해 새끼들아 쫓아!!”

등 뒤에서 춘삼의 외침과 함께 나를 쫓는 발소리가 들려왔지만, 급할 건 없었다.

애당초 내 목적은 도망치는 게 아니었으니까.

‘사령관님, 우측 전방 10m 나무 위입니다.’

씨드가 말하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나무와 동화된 인영 하나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듯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인영.

‘두건에, 복면까지…. 지가 무슨 닌자야 뭐야?’

초여름에 덥지도 않은지 온몸을 검은색 일색으로 차려입은 놈을 보고 미소를 날려 줬다.

씨익.

“뭘 쳐다보고만 있어 이 새끼야! 막아!!”

내 입에서 내뱉어진 고함에 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마도 내게 은신이 들킨 것이 당황스러웠나 보다.

“여기야! 나무 위에 놈의 일행이 있다!!”

“씨발! 조심해! 여기도 하나 더 있다!”

뒤쫓던 놈들도 나무 위의 닌자 놈들을 발견한 것인지 큰소리로 외쳐댔다.

그 순간.

“ちぇっ! 攻撃しろ!!(치잇! 쳐라!).”

닌자 놈들의 대장인 듯한 놈이 내린 명령에 해랑 길드원들의 머리 위에서 수리검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복장만 닌자인 게 아닌 모양이었다.

캉! 카각!!

해랑 길드와 닌자들이 맞붙으며 고요했던 숲속에 때아닌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이런 게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

너무 양아치 같은 것 아니냐고?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놈들인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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