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50화 (50/202)

50. 나쁜 놈 vs 더 나쁜 놈 (1).

깡! 깡! 까강! 깡!

고동명은 쉼 없이 곡괭이질을 하며 후회했다.

‘도박만 아니었어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띠리리링-!

텅 텅-. 챙그랑.

점심 식사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방에서 도구를 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사람들은 좀비처럼 축 늘어진 채 배식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간다는 건 허무맹랑한 생각이라, 모두 희망 없는 눈빛으로 걸음만 재촉할 뿐이었다.

그건 이곳 던전 막장에 갇힌 지 4개월 차인 고동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목포라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씨드의 보고에 반문했다.

“네. 며칠 전 김미소 양에게 이자를 받은 후 터미널로 이동. 목포터미널에서 마지막 모습이 잡힌 후 행적이 끊겼습니다.”

“거긴….”

“송종혁의 아버지인 송병식이 마스터로 있는 해랑 길드의 근거지입니다.”

“고동명의 핸드폰이 꺼지기 전 마지막 위치 파악해 뒀지?”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목포시 상동 부근입니다.”

“거기에 뭐가 있지?”

“해랑 길드가 관리하는 양을산 A급 던전이 있습니다.”

씨드의 대답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잘못하면 길드하고 제대로 엮일 판인데….’

해랑 길드와는 이미 원수나 다름없는 관계라고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엮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직 해랑 길드 쪽에선 내 정보를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것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던전을 나오기 전, 기절시켜둔 놈들이 일찍 정신을 차렸다면 이미 정보가 들어갔을 수도 있다.

사실 놈들을 죽일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죽어도 싼 죄를 짓기도 했고.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살인이란 행위는 내가 그어놓은 선 밖에 있는 행위였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선물을 준비한 거다.

나는 놈들이 살아서 지옥을 맛보기를 바랐고. 놈들은 남은 삶을 내가 만들어준 지옥에서 살아가게 될 거다.

“병원 쪽 상황은 어때?”

“그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그쪽 길드에선 내 정보를 모른다는 소리였으니까.

“목포로 간다.”

결정을 내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새 가죽 갑옷’을 챙겨 입었다.

해찬이 녀석과 헌팅하기로 한 건 어젯밤 취소했으니 걸릴 것도 없었다.

“그럼 목포로 가볼까?”

갑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온 나는 일부러 소리를 높여 중얼거렸다.

강산호 회장과 구정철 전 대통령이 붙여 놓은 감시자들에게 들릴 수 있도록.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없는 것보단 났겠지.’

* * *

“하필이면….”

그림자의 보고를 받은 구정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왜, 이 시기에 목포를 가는 거지?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할 때라는 걸 모르는 건가? 경찰은 이런 큰 사건에 왜 피해자 보호 조치도 없이 저렇게 홀로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거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경찰의 행태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구정철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자신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각성자 센터와는 다르게 검경 쪽엔 그의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전화 한 통이 검찰과 경찰에 외압을 행사하는 걸로 비칠 수도 있는 일이니.

“싸울아비 쪽 반응은 어떤가?”

“일단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엔 여론이 너무 안 좋으니까요.”

“하-.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그가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고 있을 때였다.

따르릉!

그의 손목에 매인 헌터 와치가 울음을 토해냈다.

『강현』

발신자는 강현이었다.

순간 그렇지 않아도 찌부러져 있던 구정철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강현이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전화했을지 충분히 짐작됐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전화를 받지 않기엔 진 빚이 있었다.

그가 그림자를 통해 강현에게 건네준 정보는 천억짜리 정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빈약했으니까.

“후-.”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구정철이 헌터 와치를 터치하고.

“차의 효과는 확실하게 보셨습니까? 구정철 전 대통령님.”

이렇다 할 안부 인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오는 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 효과는 확실히 좋더군.”

“다행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님. 전 대통령님과 저 사이에 계산해야 할 게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강현의 말에 구정철은 두 눈을 지긋이 내리감았다.

“원하는 걸 말하게.”

“사람들을 좀 빌려주십시오. 이왕이면 잘 싸우는 분들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구정철은 강현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자신이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강현은 강산호 회장에게 연락할 것이고.

‘그럼 비현이 움직일 테지.’

대현 그룹의 드러나지 않은 칼. 비현이 강현을 도울 테니까.

그렇게 일이 벌어지고 상황에 이리저리 끌려다닐 바에야 지금 개입해 적절하게 중재를 한다면 사건이 더 커지는 걸 막을 수 있으리라.

“보내주지. 몇 명이나 필요한가?”

구정철의 물음에 수화기 너머의 강현은 무언가를 헤아리는 듯하더니 이내 밝은 목소리로 답해왔다.

“딱 200명만 보내주십시오.”

“…알겠네.”

“위치는 메시지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 전 대통령님.”

“우리 거래는 이걸로 끝난 걸세. 잊지 말게.”

“흠…. 구 전 대통령님의 십 년이라는 시간의 값어치가 고작 이 정도 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맹랑한 놈이군.’

구정철은 자신을 저울에 올려두고 계산을 하는 강현의 당돌한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걸로 구 전 대통령님과의 거래는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구정철은 그림자를 바라봤다.

정식으로 화랑의 힘을 사용하지 못할 이런 상황에 대비해 키운 그림자들이다.

“들었는가?”

“네.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강 회장 쪽 움직임도 수시로 확인하게. 나에게만 연락한 게 아닐 수도 있으니.”

대답을 마친 그림자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구정철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인가…. 잠룡인가….”

그는 싸울아비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강현을 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강 회장과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지금 당장은 길드 사이에서 벌어질 전쟁을 막는 게 중요했으니까.

* * *

“놈이 목포로 갔다고?”

“네.”

“갑자기 목포는 왜 가는 거지?”

타다시의 물음에 부하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신풍대 대주의 명령을 받아 강현이라는 놈을 감시하기를 며칠.

던전과 각성자 스토어를 다녀오는 것만을 반복하던 놈이 갑작스럽게 드론을 타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목포로 향했다.

‘그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분명 강 회장과 연결고리가 있었다. 놈이 자란 보육원이 테마파크 부지에 포함되어 있던 것도 확인했고.’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강 회장이 무엇 때문에 고작 당시 F급에 불과한 각성자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냐는 것이었다.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강 회장의 움직임과 강현의 방문 시기를 대조해 본 회의 수뇌부는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강산호 회장이 아버지 강기영의 유해를 발견한 것과 강현이 연관되어있다는 결론이었다.

‘강현에게 과거의 흔적을 좇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이런 결론을 내린 회의 수뇌부들은 강현을 확보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그들이 대상그룹의 테마파크 부지를 개발하려 했던 이유 또한,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조선인들에게 쫓겨 몸을 피해야 했던 그들의 선조가 숨겨놓은 막대한 양의 보물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강산호 회장이 강현에게 붙여놓은 감시자들이 걸림돌이 되어 지난 며칠간 타다시를 포함한 신풍대 1조는 그저 강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장.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강현이 갑작스럽게 목포로 향하면서 그를 지켜보는 시선에 빈틈이 생겼다.

한마디로 강현을 확보할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조원들을 소집해라. 우리도 목포로 간다.”

그렇게 강현이 모르는 사이 강현을 노리는 무리가 그의 뒤를 좇아 목포로 향했다.

* * *

목포 상동.

드론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오후 4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시간.

해랑 길드의 구역인 이곳에서 나는 고동명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와! 이런 죽일 놈들. 그러니까 저놈들이 사람을 몇이나 죽였다는 거야? 열 명? 스무 명?”

“지금까지 밝혀진 게 열 명이라잖아. 경찰은 스무 명 정도 예상한다는 거고.”

“저거. 해랑 길드장 아들놈 아니여?”

“맞네. 아까 보니까 해랑 길드장도 길드원들 우르르 끌고 저기로 달려가는 것 같더구먼.”

“저 씨불놈들이 아주 목포 망신은 다 시키고 있네.”

“해랑 길드 애초에 소문이 원체 안 좋았자너. 뒤가 구리다는 말도 있었고.”

산림욕을 하기에 딱이라는 양을산 등산로 근처 편의점 앞.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뉴스를 보고 있던 중년 남성 둘이 침을 튀기며 대화를 나눴다.

드론을 타고 오며 확인해 본 결과 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태풍이 되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었다.

‘해랑 길드장이 자리를 비웠단 말이지.’

하긴 아들놈의 이름이 매스컴에 대서 특필되고 있는데 여기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터였다.

‘괜히 200명을 빌려달라고 했나?’

편의점을 끼고 도니 저 골목 끝에 양을산 등산로의 입구가 보였다.

그렇게 편의점 의자에 앉아 등산로 입구를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편의점 유리문이 열리면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제법 단단해 보이는 체구를 가진 남자들과 함께 걸어 나왔다.

‘어…?’

“어?!”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놈도 나를 알아본 듯 눈을 크게 떴다.

안경쟁이와 함께 김미소를 협박하던 놈.

떡대였다.

“응? 창주야 무슨 일이야? 뭐. 아는 사람이야?”

떡대의 일행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선 떡대의 옆구리를 찌르며 나를 힐끗거렸다.

“저놈이 그놈이에요. 형님.”

“응?”

“며칠 전에 안 실장님이랑 수금하는 거 방해한 놈이요.”

떡대의 말에 놈의 일행들이 눈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봤다.

‘곤란한데.’

MB 캐피탈 사장과 해랑 길드 마스터가 형제라더니 직원들도 공유하나 보다. 서울에 있어야 할 녀석이 여기 있는 걸 보면.

“아. 그 각성자라는 새끼가 이 새끼야? 그런데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어? 서울 산다며.”

형님이라고 불린 놈이 팔뚝의 문신을 드러내며 건들건들 내게 다가왔다.

그러자 남은 놈들이 주변을 둘러싸며 내 퇴로를 차단한다.

‘손목에 채워져 있는 헌터 와치를 보니 각성자인 것 같은데.’

놈이 풍겨대는 살벌한 기운에 조금 전까지 편의점 앞에서 해랑 길드를 욕하던 중년 남성들이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안 실장 그 새끼도 이제 감 많이 떨어졌네. 고작 이런 놈한테 위협을 느끼고 수금을 멈춰?”

‘곤란해.’

아직 구 전 대통령이 보낸 인원들이 오지 않은 상황.

샤이닝 에로우가 있는 이상 고작 세 놈을 상대하지 못할 리는 없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어이. 형씨. 우리 조용한 데 가서 진솔하게 대화 좀 나눠볼까?”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문신남이 웃음 같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꾸욱.

딴에는 힘을 준다고 준 것 같지만 강화한 바람새 가죽 갑옷의 방어력을 뚫지 못했다.

나는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 문신남의 힘을 이겨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조용한 곳? 좋지. 안내해.”

자신이 짓누르는 힘에도 꿋꿋이 일어나는 내 모습이 의외였을까?

문신남의 눈썹이 크게 꿈틀댔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이 이젠 흉악해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곤란해하던 이유는 이 장소였을 뿐이다.

‘조용한 곳이면 나도 좋지. MB 캐피탈과 관련된 각성자라면…. 해랑 길드이려나?’

벌건 대낮에 주택가 한가운데서 쌈박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괜히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벌이기 싫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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