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아빠 없는 하늘 아래 (9).
심문을 마치고 최진기와 함께 돌아온 설수민은 의심 어린 눈으로 내게 물었다.
“그 아이템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어떤 아이템을 말씀하시는 거죠?”
“얼굴색이 신호등처럼 변하는 아이템이요. 거짓말을 하면 보라색으로, 진실을 말하면 빨간색으로 변하던데요?”
아무래도 ‘거짓말쟁이 피노키오의 일곱 색깔 가면’의 출처가 궁금한 모양이다.
‘하긴 처음 본 아이템이니 의심할 만하지. 거짓말 탐지기가 따로 필요 없으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헌터 와치 가져간 놈이 누구랍니까?”
내 물음에 설수민은 손을 들어 한 놈을 가리켰다.
‘천재원?’
이건 정말 의외였다.
네놈 중 유일하게 말수도 적고 진중해 보이던 놈인데. 자기가 죽인 사람의 헌터 와치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솔직히 나는 말투나 하는 행동으로 봤을 땐 나찬수가 컬렉션을 모았을 거로 생각했거든.
뭐 어찌 됐건 헌터 와치를 가지고 있는 놈을 알아냈으니 됐다.
‘문제는 저놈이 그걸 인벤토리에 가지고 다니느냐인데….’
천재원에게 다가간 나는 놈의 머리맡에 쭈그려 앉았다.
“너한테 선택권을 주지.”
“무슨….”
“헌터 와치 가지고 있지? 지금 내놓으면 내가 이 아이템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재원의 눈앞에, 줄에 매달린 귀여운 마리오네트를 들이밀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한테 사용한 아이템을 보면 이 인형이 절대 너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건 짐작되지?”
내 말에 마리오네트를 바라보던 천재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고민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천재원의 모습에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 인벤토리에 헌터 와치가 있다.’
그때 들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
“안돼! 그거 넘겨주면 나가서도 사형이야! 어차피 죽을 거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나아!”
“그,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집안에 피해를 주면 안 돼!”
나는 발악하며 소리치는 송종혁과 나찬수에게 다가가 그들의 옆구리를 발로 ‘톡’ 건드렸다.
“꺼으으으으….”
“커헉! 켁!”
아까 먹여 놓았던 ‘뼈가 부실한 스켈레톤의 눈물’ 역시 효과가 좋았다.
그저 가볍게 건드린 것만으로도 마치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알을 뒤집는 걸 보면.
앞으로 네 놈들 모두 평생 작은 자극에도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겪으며 살 예정이었다.
“살인마 새끼들이 가족은 존나게 위하네. 걱정하지마. 내가 너희처럼 살인마도 아니고 함부로 사람 안 죽이니까.”
말을 마친 나는 두 놈을 일별하고 다시 천재원에게 돌아왔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너희 안 죽여. 단지 사는 걸 지옥으로 만들어 줄 뿐이지. 그래서 지금 너에게 선택권을 주는 거야. 그 지옥에 고통을 하나 더 추가할 것인지 말 건지 말이야.”
“…….”
천재원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게 네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지.”
좀 쉽게 가려 했더니 사람을 꼭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천재원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아 마리오네트에 묶었다.
[아이템: 제페토의 보급형 마리오네트]
[등급: E급]
[설명: 3453지구의 인형사(人形士 ) 제페토가 만들어낸 마리오네트. 사용자가 원할 때 대상의 생각과 행동을 임으로 조종할 수 있다.]
[추가 설명: 인형사 제페토는 자신이 만들어낸 마리오네트를 이용해 3453지구의 인류를 지배하려 한 악당으로 히어로 이찬혁에게 토벌당해 감옥에 갇혔다. 히어로에게 쫓기기 싫으면 잦은 사용은 자제하자.]
[사용 방법: 지배하고자 하는 대상의 신체 일부를 마리오네트와 연결.]
아이템 사용 방법은 너무도 간단했다. 천재원의 머리카락을 마리오네트에 묶는 것만으로 아이템 사용은 완료되었으니까.
아이템 사용이 완료되자 마리오네트는 검붉은 연기를 뿜어내며 소멸했고 그렇게 뿜어져 나온 연기는 검고 붉은 가느다란 실이 되어 나와 천재원을 연결했다.
그 순간, 마치 씨드와 뇌파 통신이 연결될 때 느꼈던 느낌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뇌를 자극했다.
‘이런 느낌이군.’
직관적이고 선명한 뇌파 연결과는 다른 뭔가 몽롱하고 둔탁한 느낌.
나는 그 느낌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명령했다.
‘천재원. 인벤토리를 열어 네가 수집했던 헌터 와치를 꺼내라.’
철컥철컥!
내가 명령을 내리자 초점이 풀린 눈을 한 채 말 그대로 질곡(桎梏)에 묶인 몸을 뒤척이는 천재원.
“형사님. 이 녀석 수갑 좀 풀어주시죠.”
“아?! 네, 넵!”
이것으로 던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끝났다.
보스 몬스터인 오크쯤이야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남은 건 던전을 나가서 처리해야 할 문제인데. 강 회장님이 일 처리는 확실하게 해 주신 것 같네.’
씨드를 통해 전해 받은 소식을 보면 지금 서울역 던전 앞은 개판 오 분 전이 따로 없었다.
경찰과 길드, 그리고 방송사와 기자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나 마찬가지란다.
그렇게 내게는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어떻게든 저 사람들에게 붙잡히지 않고 빠져나가야 해.’
출입 명부에 버젓이 내 이름이 올라가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저기에서 발목을 잡히면 다음 연계 퀘스트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니까.
[퀘스트: 아버지의 유산]
……
즈문디아의 복수 인형을 사용해 김상욱의 원혼 소환(완료)
고동명과 MB 캐피탈의 진실(진행 중)(제한시간: 11:07분)
제한시간이 열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퀘스트를 처리하기 위해선 저곳에서 발목을 잡힐 수 없었다.
***
“범인들은 어떻게 제압하신 겁니까?!”
“아직은 범인이 아니라 용의자일 뿐입니다.”
“용의자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과잉진압 논란이 있는데 한 말씀 해 주시죠!”
“수적열세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중소길드를 노린 표적 수사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임중호는 방금 질문을 던진 기자를 노려봤다.
‘그놈의 각성자 특별법 때문에 3개월간 뼈 빠지게 고생해서 겨우 용의자를 특정했는데. 표적 수사? 저 씨벌놈이….’
속에서는 울화가 끓어올랐지만, 그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질문은 여기까지 받겠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난리가 났다.
“팀장님!”
“임 팀장님 한 말씀만 더 해 주시죠!”
“던전 연쇄살인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까?!”
“재판까지 가더라도 용의자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 기자의 질문에 임중호는 방송국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경찰의 명예를 걸고 죄가 있다면 낱낱이 밝혀낼 겁니다. 그럼.”
그 말을 끝으로 기자들에게서 등을 돌린 임중호는 밉살스러운 얼굴 하나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뿌득.
‘빌어먹을 새끼.’
‘증거’를 손에 쥐고 당당하게 거래를 청해온 남자.
임중호가 칭한 빌어먹을 새끼는 바로 강현이었다.
임중호는 인터뷰가 있기 전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던전의 입구가 열리고.
그 입구를 들어선 경찰들을 맞이한 건 설수민과 나찬수의 칼에 찔려 쓰러졌던 피해자 강현이었다.
이에 임 팀장이 의구심을 품은 것도 잠시, 강현은 임 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방송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놈들 제가 제압한 게 밝혀지면 여기 계신 설 형사님이나 경찰분들 욕 많이 드실 겁니다.’
강현이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설수민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경찰이 제압하지 못한 범죄자를 민간인이 제압했다.
아마 이 사실이 기사로 나가면 그 밑엔 설수민과 경찰에 대한 오만가지 악성 댓글이 달릴 것이었다.
무능하다는 둥, 이래도 안 잘리는 철밥통이라는 둥 얘기하겠지만, 실상은 부족한 인력을 동원해 범죄 사실을 특정하고, 유력가 집안의 자제인 범인들을 현장에서 체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직접 상황을 겪어보지 않는 이상 그 상황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강현이 요구한 것을 요약하면 단 두 가지였다.
24시간 동안 매스컴에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것, 그리고 24시간 동안 자신에게 시간을 줄 것.
‘그 뒤엔 피해자 조사든 증인 조사든 참고인 조사든 달게 받겠습니다.’
나머지 열 개는 내일 조사받을 때 건네준다는 말과 함께 강현이 내민 것은 열 개의 헌터 와치.
천재원이란 놈이 인벤토리에 가지고 있던 강현이 빼앗았다고 했다.
‘분명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범죄자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 특이한 놈이었다.
‘두고 보면 알겠지.’
강현의 요구에 같이 들어간 형사 중 하나가 강현으로 변장해 병원에 실려 가야 했다.
경찰로 변장한 강현은 유유자적하게 현장을 빠져나갔고 말이다.
‘일단은 피해자니까.’
***
‘씨드. MB 캐피탈에 대한 정보는?’
서울역 화장실에 설치했던 다차원 송수신기와 샤이닝 에로우를 회수한 나는 빼곡한 인파를 가로질러 현장을 벗어났다.
‘현재 샤이닝 에로우 NO. 34가 MB 캐피탈 사무실에서 정보를 수집 중입니다. 현재까지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말씀드리자면 일반적인 대부업체라 보기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대부업체가 아니면?’
‘MB 캐피탈의 진짜 사장인 송명훈이 해랑 길드 마스터인 송병식과 형제 관계입니다.’
‘응?’
난데없는 씨드의 말에 나는 바삐 움직이던 걸음을 멈췄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MB 캐피탈이 고동명에게서 차용증을 입수한 시기도 이상합니다.’
‘언젠데?’
‘김상욱의 장례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고동명을 찾아가 2천만 원의 현금을 주고 차용증을 매입했습니다.’
‘매입? 샀단 말이야?’
‘네. 거기에 MB 캐피탈은 차용증을 매입할 때부터 이미 김상욱이 고동명에게 빚을 갚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MB 캐피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를 이천만 원이나 주고 산 셈이었다.
‘이거…. 냄새가 구린데?’
아무래도 MB 캐피탈에서 김미소가 김상욱의 죽음에 의문을 품지 못하도록 손을 쓴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정리를 해 보자.’
김상욱이 사망하고 소식을 들은 고동명이 빈소를 찾아와 장례를 도왔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 김미소에게 김상욱이 은행권과 자신에게 진 빚이 있음을 밝혔고 상속 포기를 하면 그 빚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법적 절차를 도왔다.
이 시점에서 김상욱은 이미 고동명에게 빚을 갚고 영수증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고동명은 김미소에게 이자만이라도 줄 것을 요구했지. 순진한 김미소는 아빠의 친구이자 어린 시절부터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던 고동명의 말을 믿고 매달 이자를 갚았고.’
하지만 고동명이 김미소에게 이자를 요구한 시점엔 그와 MB 캐피탈의 접점은 없었다.
‘그럼 고동명은 왜 친한 친구의 딸에게 그런 사기를 친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단 정말 원금을 못 받은 상태라면 모르지만, 원금을 이미 다 돌려받고 영수증까지 써준 상태에서 친구의 딸에게 사기를 칠 이유가 있을까?
‘진짜 돈 때문인가?’
머릿속에 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답을 찾기는 힘들었다.
‘고동명에 대한 정보는?’
‘현재 통신사를 해킹해 통화 내역과 위치정보를 파악하고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왜?’
‘김미소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단말기가 꺼진 상태입니다.’
점점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다 큰 어른이 하루 넘게 핸드폰을 꺼 놓고 생활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아마 일반인이라면 단 한 시간만 꺼 놓아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 될 것이었다.
요즘 세상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세상이니까.
‘그럼, 고동명이 처한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걸음을 움직이며 씨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씨드. 고동명 프로필 입수해서 전국에 있는 모든 CCTV에 찍힌 사람들 대조해서라도 위치 확보해.’
차용증에 기재 돼 있던 고동명의 기본 정보가 있으니 사진이나 체격, 걸음걸이 등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렇게 걸음을 움직이던 나는 코끝을 문질렀다.
점점 구린내가 심해졌다.
코끝이 아릿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