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아빠 없는 하늘 아래 (8).
온몸이 기괴하게 꺾인 낡은 인형과 함께 딸려온 날카로운 단도 한 자루.
그것들을 바닥에 놓고 뒤로 물러선 나는 복수 인형의 아이템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이템: 즈문디아의 복수 인형]
[등급: F급]
[설명: 행성 이플린의 제령사(祭靈士) 즈문디아가 만든 복수 인형. 인형에 대상의 피를 묻히면 대상에게 원한을 품은 원혼을 소환할 수 있으며 원혼이 그 한을 푸는 순간까지 소멸하지 않는다.]
[주의 사항: 원혼에는 눈이 없다. 사용 시 최대한 인형과 거리를 두도록 하자. 또한, 인형이 가진 힘이 극히 미약하므로 대상이 완전히 제압된 상태가 아니라면 사용을 자제하자.]
[참고: 제령사는 사자(死者)의 혼을 명계(冥界)로 인도하는 일을 한다.]
복수 인형은 말 그대로 대상에게 원한을 가진 혼을 소환한다.
저놈들에게 원한을 가진 혼이 많다면 단번에 김상욱의 혼이 소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난 복수 인형을 50개나 준비했다. 혹시나 내가 구매해서 판매자의 상점 등급이 오를지도 모르니 최대한 많이 구매해 뒀다.
‘그중 하나 정도는 김상욱의 원혼이 깃들겠지.’
부족하면 상점 창을 열어 또 구매하면 되니 걱정은 없었다. 던전 안이라고 상점 창이 열리지 않는 건 아니니까.
저벅저벅.
인형을 내려놓고 설수민을 이끌어 놈들에게서 10m 정도 멀어졌을 때였다.
“나한테. 왜! 그랬어어어어어어-!!!”
날카롭고 소름 돋는 외침과 함께 바닥에 뉘어있던 복수 인형이 발딱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탁.
그러곤 주변을 더듬어 단도를 손에 쥐더니.
킁. 킁킁.
마치 강아지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인형은 이내 긴고아가 주는 고통에 아직 신음을 흘리고 있는 천재원을 향해 뛰어갔다.
“천-재-워-언----!”
앙칼진 목소리로 보아 천재원에게 원한이 있는 여성인 듯했다.
“저…! 저게?!”
“왜요? 귀신 처음 보는 것도 아니실 텐데.”
복수 인형을 보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설수민 형사. 던전의 등장과 함께 귀신도 하나의 몬스터로 분류되는 세상이 되었는데 새삼 원혼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자니 조금 웃겼다.
‘설마 귀신을 무서워하는 건가?’
“끄아아아악!!!”
천재원에게 달라붙어 단도를 휘두르는 복수 인형.
하지만 천재원은 외적으론 어떤 변화도 없었다.
갑옷으로 보호를 받는 곳은 물론이고 피부가 노출된 곳에 단도가 적중돼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천재원은 단도가 몸에 닿을 때마다 영혼이 찢겨 나가는 것처럼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아악!!!”
아이템 설명엔 없었지만, 단도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도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곧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겠는데?’
벌써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지만, 복수 인형은 좀처럼 소멸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템 설명대로라면 원한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니까.
‘언제 김상욱의 원혼이 소환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결단을 내린 나는 구매했던 복수 인형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씨드. 이것들을 옮겨서 저놈들의 피를 묻혀.’
‘네. 사령관님.’
대답과 함께 30대의 샤이닝 에로우가 각기 한 개의 인형을 띄워 놈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후.
던전 안은 원한에 사무친 인형들이 질러대는 괴이한 고함과 네 놈의 비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
강현이 네 살인마에게 선물 아닌 선물을 주고 있는 동안 바깥 상황은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거 가볍게 끝날 일이 아닌데?”
“그러게 말입니다. 일이 너무 커졌어요.”
서울경찰청 각성자 범죄 전담팀 팀장 임중호와 병원에 가 있는 이 형사 대신 서폿으로 들어가려 했던 김 형사는 서울역 던전 앞에 나와 있었다.
“그나저나 막내 괜찮을까요?”
김 형사의 물음에 임 팀장은 물고 있던 담배를 깊이 빨았다.
“무사하기를 바라야지.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짙은 연기와 함께 한숨과 같은 말을 내뱉은 임 팀장은 쥐고 있던 담배를 내려다봤다.
새빨간 불빛과 함께 타들어 가는 담배가 지금 그의 속마음과 같았다.
“하필이면 그때 방송이 끊길 건 또 뭐랍니까.”
“그러게 말이다. 아 참! 그 채널 주인 알아봤어?”
“일단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해 놨는데 추적이 어려울 것 같답니다.”
“응? 왜?”
“채널이 만들어진 지 하루밖에 안 됐고요. 해외 아이피를 거쳐서 추적이 힘들답니다.”
“그 말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단 말이야?”
“그것도 특징지을 수가 없다고….”
“젠장! 대체 사이버 수사대 놈들은 하는 일이 뭐래? 그런 거 하나도 못 알아내면서 월급 받아가는 게 부끄럽지도 않대?!”
불같이 화를 내는 임 팀장을 보며 김 형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채널 주인은 못 찾더라도 적어도 방송을 진행한 놈은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안에서 찍은 놈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은 김 형사가 들고 있는 태블릿으로 향했다.
방송이 종료되고 다시 보기로 틀어져 있는 화면은 강현이 나찬수에게 검에 찔리는 장면에서 멈춰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 같지?”
“방송 제목도 그렇고, 노리고 찍은 것 같은데. 일단 막내는 아니고, 저 네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자기들 범죄현장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공개하지도 않았을 테니, 칼 맞은 이 사람밖엔 없죠.”
“강현….”
임 팀장은 던전 출입명부에서 확인한 강현의 이름을 되뇌며 턱을 쓰다듬었다.
“강현의 정보는?”
“그게…. 각성자 특별법 때문에 영장 없이는 힘들답니다.”
“씨발! 좆도! 빌어먹을 각성자 특별법!”
그렇게 욕설을 내뱉은 임 팀장은 고개를 돌려 서울역 광장을 바라봤다.
경찰특공대와 대치 중인 이십여 명의 사람들.
바로 용의자인 네 놈의 경호원들이었다.
‘이거 시간 더 끌면 골 아파지는데.’
거기에 더 문제는 그 네 놈의 부모가 운영하는 길드의 길드원들이 달려오고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놈들이 나오더라도 현장 체포가 불가능해질 수가 있었다.
경찰특공대가 아무리 마나건으로 무장하고 있어도 상대는 각성자니까.
무력에서 밀리면 답이 없는 거다.
“김 형사. 본청에 지원 요청해.”
어쩐 일인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주목하고 있는 지금, 수많은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놈들을 놓아주면 정말로 전 국민에게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을 기세였다.
그렇게 김 형사가 자리를 비우고, 임 팀장은 포탈이 생성될 자리를 돌아봤다.
‘제발 살아서만 돌아와라.’
그는 마음속 깊이 설수민의 생환을 기도하고 있었다.
***
그 시각 임 팀장이 그렇게 걱정하는 설수민은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채 멍한 눈으로 강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던전이 생기고 80년.
마법과 과학기술이 함께하는 세상이지만, 정말 이런 마법 같은 아이템들을 그녀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문제는 그게 모두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아이템들뿐이라는 거지만.’
강현은 긴고아와 복수 인형 말고도 일곱 개의 아이템을 더 사용했다.
그리고 그 일곱 개의 아이템은 하나같이 특이한 효과를 가진 아이템들이었다.
강현이 아이템을 사용하며 그들에게 말한 내용을 들어보면, ‘잠들지 못하는 몽마의 꿈’이라는 아이템은 저들에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악몽을 선사할 것이고 ‘뼈가 부실한 스켈레톤의 눈물’이라는 아이템은 바람만 불어도 뼈가 시린 고통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 외의 아이템들 하나하나가 모두 저들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들어줄 아이템들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준비했던 선물 세트를 모두 풀어버린 강현은 홀가분한 얼굴로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들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이제 한(恨)은 조금 풀리셨습니까?”
뜬금없는 강현의 말에 설수민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때.
“가.암사 합.니다.”
어딘가 뚝뚝 끊기는 기괴한 목소리가 그의 발치에서 들려왔다.
“헉!”
깜짝 놀란 그녀가 걸음을 물리자 모습을 드러낸 건 날카로운 단도를 든 사지가 기괴하게 꺾여있는 복수 인형이었다.
“이제 가실 때가 되셨나 보군요.”
“할.만큼 했으.니 이제.가.야.지요.”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 있는 복수 인형은 먼저 소멸한 다른 인형들처럼 원한을 모두 풀고 소멸을 앞둔 듯싶었다.
“따님들은 안전한 곳에서 머물고 있으니 크게 걱정 않으셔도 될 겁니다.”
강현의 말에 복수 인형에 깃든 김상욱은 크게 허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저놈들. 이곳을 나가면 충분하진 않겠지만 죗값을 받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좋은 곳으로 가세요.”
강현의 말을 들은 김상욱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말했다.
“그것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소멸이 임박한 듯 복수 인형에서 나오는 빛이 더욱 환해지며 기괴했던 김상욱의 목소리가 한결 듣기 좋게 변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죽기 전. 누군가가 제 헌터 와치를 가져갔습니다.”
“네?”
“혼미한 정신이었지만 분명히 들었습니다. 컬렉션이 하나 늘었다며 희희낙락한 놈의 목소리를.”
김상욱의 말을 들은 강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쩌면 이게 중요한 증거가 될 수도 있어.’
강현의 시선이 설수민을 향하고.
그 시선을 받은 설수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설수민과 눈빛을 교환한 강현이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땐 김상욱이 소환되었던 복수 인형은 빛으로 화해 사라진 이후였다.
“어떤 놈이 가졌는지 이름을 듣지 못했지만 상관없겠죠?”
강현과 함께 시선을 돌렸던 설수민은 이내 바닥을 뒹굴고 있는 넷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하죠. 어차피 저놈들 중 한 놈이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어떻게 인벤토리에 있는 걸 꺼내게 하느냐인데….”
설수민의 말에 강현이 상점 창을 열며 말했다.
“일단 기다려 보시죠. 제게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설수민이 듣기에 강현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실려있었다.
그건 당연했다.
강현이 아는 한 시스템 상점 창엔 없는 물건이 없었고. 만일 찾는 물건이 없다면 그건 자신이 제대로 검색기능을 이용하지 못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이토록 목적이 확실한 물건이라면 못 찾을 리 없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설수민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휘젓는 강현의 손을 바라봤다.
‘대체 뭘 하는 거지? 무슨 마법 같은 걸 사용하는 건가?’
하지만 마법을 모르는 그녀가 보기에도 강현의 손짓은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수인이라고 보기에 어려웠다.
‘저건 마치 스크롤을 내리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을 허공에 손짓하던 강현은 이내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하나는 크기가 10㎝ 정도 되는 관절 인형이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였고 다른 하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색 액체가 층층이 쌓여 찰랑거리는 주먹만 한 크기의 유리병이었다.
‘던전을 도는 동안 아이템이 팔려서 다행이야. 하마터면 아이템 못 살 뻔했네.’
양손에 두 개의 아이템을 쥔 강현은 설수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사님. 심문은 좀 하시나요?”
강현의 물음에 설수민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는 몰라도 심문은 그녀가 자신이 있는 분야였으니까.
***
원한을 푼 복수 인형들이 모두 빛으로 화해 사라지고.
“끄으으으.”
“꺼억. 끅!”
네놈이 흘리는 신음이 던전 안을 나직하게 울렸다.
“어떤 놈이 그나마 솔직하려나….”
바닥을 뒹구는 네놈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나는 이내 한 놈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그래도 네가 입이 제일 가벼울 것 같은데. 어때? 어차피 이제 이놈들한테 지킬 의리도 없잖아.”
“끅! 끄르륵.”
내가 선택한 놈은 칠공토혈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최진기였다.
송종혁에게 등판에 칼까지 맞은 놈이니 다른 놈들에게 지킬 의리 따위는 없을 거란 판단이었다.
“잘 생각해. 혹시 알아? 설 형사님께 협조 잘하면 형량이 낮아질지.”
‘그 형량이 감형된다고 해도 사형에서 무기징역이겠지만.’
나는 아직도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녀석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아까 봐두었던 통로로 걸음을 움직였다.
물론, 가는 중간에 아까 구매했던 포션을 놈에게 먹이는 걸 잊지 않았다.
[아이템: 거짓말쟁이 피노키오의 일곱 색깔 가면.]
이게 좀 특이한 포션이거든.
설 형사가 심문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