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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47화 (47/202)

47. 아빠 없는 하늘 아래 (7).

나는 이 설수민이라는 형사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적인 복수는 용납할 수 없어요. 칼 내려놓고 물러서세요.”

경고와 함께 내게 겨눠진 총구.

나는 그것을 본 순간 울화가 치미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미친 거야?”

“뭐, 뭐라고요?”

그래서 내 입을 통해 내뱉어진 말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아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싶어서. 형사님, 아니 당신.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죽을 뻔했어. 그것도 아주 험한 일을 겪고 죽을 뻔했지. 그런데 그걸 구해줬더니 나한테 총을 들이댄다고?”

내 말이 이어질수록 설수민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이게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주는 목숨값인가?”

나는 말을 마치고 다시 물끄러미 설수민을 바라봤다.

솔직히 설수민에게 이렇다 할 악감정은 없다. 단지 귀찮을 뿐.

악질 범죄자를 잡기 위해 던전에 뛰어드는 위험을 감내한 경찰에게 무슨 악감정을 품겠는가?

그 능력이 부족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그, 그래도 안 돼요. 용의자 심문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설수민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이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건…….”

“증거도 증인도, 하다못해 피해자들의 시체도 없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설수민에게 다가가 마나건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제대로 할 수 없으면, 그냥 지켜봐. 난 꼭 저 새끼들이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할 거니까.”

“…….”

그렇게 설수민을 지나친 나는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네놈을 끌어다 한군데에 모았다.

“크윽! 이거 놔! 이 새끼야!”

팔과 다리를 등 뒤로 한 채 수갑과 족쇄에 묶여 버둥거리는 놈들의 꼴이 정말 버러지 같았다.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는 줄 알아? 던전 밖에 우리 경호원들이 쫙 깔려있어! 넌 우리가 던전만 나가면 죽은 목숨이야 이 새끼야!”

샤이닝 에로우에 의해 뚫린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을 뒹굴던 나찬수가 악에 받친 듯 소리를 질러 댔다.

“그래? 그럼 일단 너부터 시작하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최진기,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는 다른 두 녀석과 다르게 나찬기는 결박을 당한 상태에서도 분을 참지 못한 채 제 성질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풀어. 그럼 나가서도 아무 일 없을 테니까. 난 그냥 니가 서포터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안 들어서 칼침 몇 방 놓은 거뿐이야. 죽이려는 생각 따위 없었다고! 포션으로 치료해 주려고 했다니까?”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하면서도 당당한 놈의 태도에 손뼉을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형이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게 꽤 많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도 않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도 돼.”

이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정말 놈들을 위해 날밤을 새우면서까지 준비를 했다.

상점 창에 올려두었던 E급 아이템이 팔리는 족족 탈모제를 구매해 샤이닝 에로우를 업그레이드했고, 다차원 송수신기와 스파이캠을 구매했다.

그리고 내가 놈들을 위해 준비한 건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해피니스 시스템이 제공하는 상점 창에 올라오는 물건의 종류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다양했고 그중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벗어난 물건들도 존재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 말이야.”

인벤토리에서 준비한 물건을 꺼내 놈의 눈앞에 들이댔다.

[아이템: 보급형 긴고아(緊箍兒)]

[등급: E급]

[설명: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통제하기 위해 씌웠던 긴고아를 흉내 낸 모조품. 다운그레이드된 모조품으로 사용자가 긴고주를 외우지 않아도 비정기적으로 착용자에게 두통을 유발한다.]

[주의 사항: 본 아이템은 마법 아이템으로 사용 후 두개골에 마법진이 새겨지며 한번 사용하면, 마법진을 도려내지 않는 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말 원한이 깊은 상대가 아니라면 사용을 자제하자.]

내가 나찬수의 투구를 벗기자 놈이 머리를 흔들며 반항했다.

“뭐 하려는 거야! 이 개새끼야!”

“너 정말 참을성이 없구나? 기다려봐. 형이 좋은 선물을 준비했다니까?”

거칠게 반항하는 나찬수.

나는 놈의 귀를 틀어쥐고 조심스럽게 놈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웠다.

놈은 계속해서 머리를 흔들며 반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악!”

내 손이 놈의 귀를 잡아 뜯을 듯 틀어쥐었으니까.

내 힘은 이미 D급.

이건 각성자 센터가 인정해 준 수치였다. 아직 E급에 불과한 놈이 반항해 봤자 벗어날 수 없다.

놈이 힘을 기르는 데 주력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나찬수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울 때였다.

“그건 뭐죠?”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설수민이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물어왔다.

“긴고아. 이놈이 죽을 때까지 고통을 줄 물건이야.”

“긴고아라면…. 그 서유기에 나오는…….”

“맞아. 그거.”

설수민과 대화를 나누며 인벤토리에서 한 장의 부적을 꺼내 들었다.

누런색 종이에 붉은색으로 형이상학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이 부적이 보급형 긴고아와 함께 세트로 온 일종의 긴고주다.

굳이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이 이 부적을 나찬수가 쓰고 있는 긴고아에 붙이는 것만으로도 긴고아의 착용은 완료된다.

그렇게 내가 긴고주 부적을 긴고아에 붙이자 긴고아가 황금빛 빛을 내며 나찬수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스악-.

외관상으로 보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긴고아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꽈악-!

“아악! 아파! 아프다고! 이것 좀 풀어줘! 아아악!”

사지가 묵인 채로 격한 몸부림을 치며 던전 바닥을 구르는 나찬수.

놈은 이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긴고아의 만족스러운 효과를 확인한 나는 남은 세 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때? 재미있겠지?”

한 손엔 새로운 긴고아를 든 채로.

***

설수민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긴고아라는 아이템이 만들어낸 광경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끄으으으.”

“제바알…….”

“잘못…잘못해스미다.”

툭 불거진 혈관, 시뻘겋게 붉어진 얼굴.

당장이라도 피눈물을 쏟아낼 듯 붉게 충혈된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입술에선 새빨간 핏물이 침과 뒤섞여 흘러내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던전 내부를 뒤흔들던 네 놈의 신음이 서서히 잦아들고.

“말할게! 말할 테니까 제발 이것 좀 풀어줘!”

가장 먼저 고통에서 벗어난 나찬수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어떻게든 강현에게 다가가기 위해 굼벵이처럼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 나찬수를 본 강현이 보인 반응은 설수민의 예상 밖이었다.

“응?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야?”

강현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찬수를 내려다봤다.

“뭐든! 뭐든 다 말하겠다고! 네가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우리한테 이러는 거 아냐!”

“원하는 거 없는데.”

“뭔 개 X 같은 소리야 이 새끼야!! 돈이야? 돈 때문에 이러는 거야? 얼마면 돼?! 얼마면 이 엿 같은 짓거리를 멈출 거냐고!!”

그런 나찬수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강현은 이내 그의 머리맡에 쭈그려 앉았다.

“지공수 김혜미 김수연 이미란 김상욱…….”

숨도 안 쉬고 내뱉는 스무 개의 이름.

그 이름들을 말한 강현은 싸늘한 목소리로 나찬수에게 말했다.

“던전 살해 10회, 피해자 20명. 내가 파악한 것만 이 정도니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그걸 어떻게?!’

잠시 말을 멈춘 강현과 머리가 복잡해진 나찬수.

강현은 아무 말이 없는 나찬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넌…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이들을 죽였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누가 누굴 죽였다는 거야?!”

입에 거품을 물며 부정하는 나찬수였지만 강현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설수민도 나찬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던전 살해 10회, 피해자만 20명? 우리가 파악한 건 고작 3회에 불과한데 더 있었단 말이야?’

설수민은 경악 어린 눈으로 강현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경찰도 파악하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이 남자. 대체 정체가 뭐지?’

강현이 평범한 서포터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체감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의 정보력에 새삼 놀라는 설수민이었다.

그렇게 설수민이 강현이라는 남자의 정체에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나찬수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어디서 새나간 거지? 최진기 저 새낀가? 아니면 경호원? 아니야 긴장할 필요 없어. 어차피 증거도 증인도 사체도 없어. 법으로 우릴 처벌하는 건 불가능해!’

그런 나찬수를 내려다보던 강현은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뭘 그렇게 긴장을 하고 그래. 난 정말 너희들한테 원하는 거 없다니까.”

강현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바쁜 나찬수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으윽!”

그리고 우악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려 나찬수의 두 눈동자를 직시했다.

“잘 들어.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싸늘한 눈빛과 살기 어린 목소리.

“난 이곳에서 너희를 죽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봐. 아까 말했지? 형이 너희들을 위해 선물을 많이 준비했다고.”

강현의 눈빛을 마주한 나찬수의 눈동자가 두려움에 물들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지 말고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회개하고 속죄해 봐야 소용없을 거야. 내가 주는 선물은 네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라 느끼게 해 줄 테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강현은 나찬수의 머리칼을 놓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보셨죠 형사님. 이 새끼들 법정에 세워봤자 어차피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납니다. 아시죠?”

“그건…. 그렇죠.”

“이 녀석들이 자백한다 해도 증인도 증거도 사체도 없이 용의자의 자백만으론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죠.”

강현의 말에 설수민은 고개를 숙였다.

강현의 말이 모두 맞았으니까.

현 대한민국 법으론 이들을 심판할 수 없었다.

설수민은 모르고 있지만, 이놈들은 감방에 가긴 갈 거다.

나찬수가 내게 검을 찔러넣는 것도, 송종혁이 최진기를 죽이려 한 것도, 그를 말리려던 설수민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던 천재원의 모습도 모두 스파이캠에 찍혔고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봤다.

이 사건에 대한 증거도 증인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10건의 던전 살인에 대한 처벌은 받지 않을 확률이 99%지.’

그래서 강현은 E급 아이템을 판매하고 얻은 포인트까지 모두 털어 놈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현 지구상에는 없을, 고통스럽고도 잔인하다면 잔인할 선물을.

“그래서 제가 이러는 겁니다. 형사님은 형사님의 일을 하시는 거겠지만, 저는 인간 같지 않은 녀석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 줄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말한 강현은 인벤토리를 열어 또 다른 아이템을 꺼냈다.

기괴하게 사지가 꺾여 있는 낡은 인형.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설수민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또 뭐죠?”

설수민의 물음에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템: 즈문디아의 복수 인형]

이건 강현이 원해서 구매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퀘스트: 아버지의 유산]

[등급: F]

……

[진행상태: 진행 중.]

김상욱의 가족에게 유품전달(완료)

……

즈문디아의 복수 인형을 사용해 김상욱의 원혼 소환(진행 중)

즈문디아의 복수 인형은 시스템이 요구한 아이템이었다.

아니, 어쩌면 김상욱이 원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것을 구매한 강현도 당사자들이 이렇게 모두 모여 있을 때 사용하게 될 줄 몰랐지만 말이다.

‘어쩌면 지금이 이걸 사용하기엔 적기 일지도 모르지.’

강현은 복수 인형의 사용 방법대로 네 놈이 흘린 핏물을 복수 인형에 묻힌 뒤 놈들의 곁에 인형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이게 내가 준비한 두 번째 선물이야.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

짤막한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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