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아빠 없는 하늘 아래 (5).
“야! 이 씨바! 뭐야! 너 이거 안 놔?!”
갑작스러운 최진기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아아악! 놓으라고 이 쌍년아!!”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향한 그곳엔 의외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최진기와 그 등위에 올라타 팔을 꺾고 있는 힐러.
“아아-! 정말 부러질 것 같다고. 이것 좀 풀라고!”
힐러는 인벤토리에서 수갑을 꺼내 최진기의 손목에 채우며 외쳤다.
“서울 경찰청 각성자 범죄 전담팀 설수민 경위다! 너희를 던전 연쇄살인 용의자로 긴급체포한다! 모두 무기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에 송종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미친년 뭐라고 하는 거냐?”
“크큭. 지가 경찰이라고 우리 보고 바닥에 엎드리란다. 크크크크.”
송종혁의 말을 받은 나찬수가 키득거리며 웃음을 토해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아악! 형들 지켜보고 있지만 말고 좀 도와달라고요!! 어떻게 된 건지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요!”
최진기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다른 일행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E급 각성자란 새끼가 수갑 하나 못 풀어서 저 지랄이냐?”
“각성자 범죄 전담팀이라잖아. 수갑을 마나철로 만들었나 보지.”
“아-. 그렇겠네. 그런데 이 던전에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우리 다 체포하면. 오크는 혼자 잡으실 건가? E급 힐러가? 킥킥.”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중 설수민 경위는 최진기에게 수갑에 연결된 족쇄까지 채운 뒤 몸을 일으켰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대가리 박아라. 이 범죄자 새끼들아.”
정체를 드러낸 설수민은 지금까지 연기해 왔던 야리야리한 힐러의 모습을 벗어던진 채 거친 말로 놈들을 압박했다.
그런데 그게 통했냐 하면, 글쎄다?
내가 보기엔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와-! 거친 언니-! 존나 쌔끈한데-!”
나찬수 녀석은 당장이라도 바지춤을 풀고 달려들 것처럼 발정이 난 상태였고.
“그래서 너 혼자서 우리 셋을 상대하겠다고? E급 힐러 따위가?”
송종혁은 방패와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서며 그녀를 압박했다.
그리고 존재감 없던 궁수 천재원은.
쉬쉭!
설수민에게 빠르게 화살을 날리며 공격을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냐고?
몸은 이미 회복됐지만,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사령관님. 표적 제압 시작할까요?’
‘아니. 대기해.’
어느 정도 증거를 모으면 방송을 끊고, 놈들을 제압할 계획이었는데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으로 상황이 틀어졌다.
그리고 씨드에게 보고를 받은 바로는 지금 내 채널은 아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단다.
동시 시청자 수가 10만이 넘었고, 중계방송을 하는 방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라니 놈들은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범죄자다.
‘일단은, 저 경찰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도록 하자.’
‘네. 사령관님.’
***
설수민은 머리가 아팠다.
그녀의 나이 스물여섯.
순환보직을 마치고 각성자 범죄 전담팀에 배속된 지 4개월 된 형사다.
송종혁, 나찬수, 천재원, 최진기.
각성자 범죄 전담팀에서 이들의 범죄행각을 알아채고 행적을 좇은 지 3개월.
하지만 놈들의 범죄를 증명할 증거를 찾을 수 없었던 전담팀에선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언더커버.
놈들의 범죄 대상이 여성이라는 점과, 주로 힐러와 서포터가 희생자들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이 작전은 1주일 전부터 실행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언더커버로 투입된 오늘, 마침내 놈들이 마각을 드러냈지만, 작전은 시작부터 틀어져 버렸다.
‘하필이면 이 형사님이 사고가 나서….’
함께 서폿으로 투입되기로 했던 사수가 서울역으로 오던 중 사고가 나서 응급실로 실려 가 버린 것.
졸음운전을 하던 대형 트레일러와 정면충돌.
이 형사는 급히 몸을 피했지만, 트레일러 바퀴에 다리가 끼었고.
응급실로 실려 가 포션으로 일차적인 치료를 마쳐 몸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작전에 투입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해서 원래라면 파트너이자 사수인 이 형사와 함께 투입되어야 할 일을 그녀 혼자 급하게 오게 된 것인데.
‘하아-. 어떻게 한다. 서폿 급구할 때 김 형사님이 투입되었어야 했는데.’
플랜 B로 김 형사님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중간에 민간인이 끼어드는 통에 일이 한 번 더 틀어졌다.
일단 한 놈을 제압하기는 했지만, 아직 세 놈이나 남아 있었다.
흘끗.
거기에 복부와 등,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피해자까지 있는 상황.
빨리 포션을 사용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사실 놈들이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조용히 던전을 돌다가 빠져나갔을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놈들과 부딪치게 될 경우, 보스 방으로 그냥 달릴 생각도 하고 있었고.
하지만 대화를 나누던 최진기가 갑작스럽게 살기를 드러낸 순간,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가 버렸다.
‘애초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도 이미 늦은 거지.’
설수민은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최근 개발된 강력한 무기를 지급받았으니까.
‘저 사람까지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 봐야지.’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피해자를 버려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잠깐 설수민의 시선이 강현에게 향하는 순간.
쉬쉭!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그녀에게 쏘아져 왔고.
“큭!”
그녀는 경호성을 발하며 몸을 뒤틀어 화살을 피했다.
하지만.
쿵쿵쿵. 콰앙!
“커억!”
그 틈을 노리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쇄도해온 송종혁의 실드 차지가 그녀의 몸을 강타했고.
서거거거걱!
빠르게 흩뿌려진 나찬수의 검격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던 로브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콰당.
바닥으로 쓰러진 설수민은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나찬수를 향해 겨눴다.
“어이구. 우리 언니 무서운 거 들고 다니네?”
그리고 그것을 본 나찬수는 몸을 틀어 그것의 사선(射線)에서 벗어났다.
‘마나건을 알고 있어?!’
마나건.
이는 각성자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개발돼 한 달 전 일선에 보급된 대 각성자 전용 무기였다.
화약 대신 마나석의 에너지를 사용해 탄두를 발사하는 형식의 이 총은, 한 발의 총알을 발사하는 데 F급 마나석 한 개를 소모해서 일선 형사들 사이에선 돈 잡아먹는 총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 마나건을 나찬수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설수민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놀래? 우리가 그 정도도 모를 거로 생각했어? 저기 입만 산 새끼가 다 말해 줬잖아. 우리 길드의 후계자들이라고.”
나찬수의 말을 들은 설수민은 기밀로 처리되었어야 할 마나건의 개발이 이미 길드들에 흘러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꽤 준비 많이 했네? 로브 안에 경갑까지 챙겨 입고. 갈기갈기 찢어주려고 했는데. 아쉽게.”
츄릅.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검날을 혀로 핥는 나찬수.
그런 나찬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설수민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나….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여기서 죽으면 너희들도 무사하지 못해. 너희는 이미 각성자 범죄 전담팀의 주목을 받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죽으면, 니들이 아무리 든든한 빽을 가지고 있어도 쉽게 빠져나가기 힘들걸?”
악에 받친 설수민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던전을 울렸다.
“와-! 우리 형사님이 범죄자들 걱정을 다 해 주시네. 씨바 존나 영광스럽게. 킥킥.”
쿵쿵.
송종혁은 육중한 걸음으로 설수민에게 다가가면서 키득거렸다.
“그런데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형사님. 우리도 다 계획이 있으니까.”
어느덧 마나철로 만든 수갑과 족쇄를 착용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최진기에게 다가간 송종혁이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멈, 멈춰!!”
“어, 어…형!! 왜 이러세요?!”
송종혁의 실드 차지에 멀리 날아가 버린 설수민이 소리를 치고 놀란 최진기가 몸을 버둥거렸지만, 송종혁의 검은 무심하게 떨어져 내렸다.
푹!
컥.
“혀, 형…. 사, 살려…….”
“그러게. 진기야…. 형이 평소에 입 좀 조심하라고 했잖아. 그렇게 주댕이를 나불대고 다니니까 이런 꼴을 당하지……. 쯧.”
최진기의 등판에 검을 꽂아 넣은 채로 그렇게 중얼거린 송종혁이 검을 뽑기 위해 이리저리 휘저었다.
컥. 커 컥.
“새끼. 갑옷 좋은 거 입었네?”
푸슉!
그렇게 그가 검을 뽑아 들자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 오르며 그의 얼굴을 적셨다.
주륵.
붉은 핏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송종혁은 희열에 찬 얼굴로 미소지었다.
“아,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니네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으면 뭐? 뭐가 달라지는데? 나주에서 C급 던전 몇 개 가지고 빌빌대는 니네 아버지가 과연 우리한테 뭘 할 수나 있을까?”
송종혁은 그렇게 말하며 쭈그리고 앉아 검 끝으로 최진기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진기야. 넌 어차피 죽어. 이럴 때를 대비해서 급도 안 맞는 너를 데리고 다닌 거야…. 설마 니가 우리랑 동급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개…씨바알….”
“너 죽이고 저 형사년 죽이고 서포터까지 깔끔하게 끝낸 다음에 우린 서로 몸에 검상 몇 개 새기고 탈출하면 되는 거야. 그럼 다 해피엔딩. 히든 보스인 오크 전사의 등장으로 동료인 너까지 잃고 탈출했으니 경찰도 의심을 덜 하지 않을까?”
푹.
“컥! 크륵.”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최진기의 등판에 검을 박아넣는 송종혁.
바닥에 쓰러진 채 입에서 피거품을 게워내던 최진기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마치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과 같은 꼴이 된 게 억울하다는 듯이.
“멈춰! 이 개새끼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설수민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쉬쉭!
또다시 날아온 화살에 그녀는 서둘러 몸을 바닥에 굴렸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킨 그녀가 서둘러 송종혁에게 마나건을 겨누는 순간.
“넌…. 아까부터 너무 시끄러워.”
화살을 날리며 그녀를 견제하던 천재원의 목소리가 진득한 입김과 함께 그녀의 귓불을 간질였다.
‘어. 언제?!’
주륵.
그리고 그녀의 목에 겨눠진 날카로운 단도를 타고 흐르는 핏물.
“총 버려. 씨X년아.”
설수민은 나직한 천재원의 목소리에 힘없이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형사가 된 지 고작 4개월에 불과한 그녀는 놈들을 상대하기에 경험도 연륜도 너무 부족했다.
***
‘와…. 저건 신종 발암캐인가?’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는 허무하게 제압되는 형사를 보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형사라지만 이런 범죄현장에 딸랑 혼자 투입되는 게 맞아?’
하아.
‘그리고 총을 버리나 안 버리나 어차피 죽을 건데 총을 버리란다고 그냥 버리는 건 뭐야? 병신이야?’
설수민이라는 형사의 행동을 보면 고구마 백만 개를 한꺼번에 먹은 듯 가슴이 답답했다.
형사의 등장에 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나로서는 허무하기 그지없는 결과였다.
‘씨드, 방송 종료해.’
‘네. 사령관님. 방송 종료됐습니다.’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움직이는 놈은 무조건 요격한다.’
‘명령대로 실행하겠습니다.’
뇌파 통신으로 씨드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있다간 최진기 놈이 곧 죽을 판이다.
‘범죄자 놈이 죽는 거야 내 알 바 아니지만, 죽더라도 법의 심판을 받고 죽어야지.’
“어어? 아저씨. 가만히 있어도 뒈질 건데 굳이 일어나서 사람 귀찮게 하지 마요.”
내가 몸을 일으키자 나찬수가 위협적으로 검을 들어 겨누며 말했다.
“어? 아저씨. 상처는 어떻게 회복했어? 그새 포션이라도 사용한 거야?”
건들건들한 태도에 껄렁하기 그지없는 말투.
이죽거리는 저 주둥이를 이제 다물게 해 줘야 할 시간이었다.
“주둥이 다물어 썩은 내 나니까.”
“뭐?”
“귓구멍에 X 대가리를 처박았나. 한국말 못 알아들어? 아가리 다물라고. 씹새야.”
“하! 아저씨 죽을 때가 돼서 미친 거야? 응? 그런 거야? 가만히 있으면 곱게 죽여줄 텐데 왜 나대고 지랄이야?!”
저벅저벅.
내 말에 화가 난 듯한 나찬수가 내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푹!
컥!
나찬수의 가슴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아. 내가 움직이지 말라곤 말 안 했나?”
“이게 무슨…….”
나찬수는 자신의 가슴에 생긴 구멍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부터 시작해 등까지 뚫린 지름 1㎝가 조금 넘는 구멍에선 핏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그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저게 다 샤이닝 에로우가 레이저로 지지면서 관통해서 그런 거다.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움직이는 새끼는 모두 저런 구멍 하나씩 가지게 되는 거야. 좋겠지? 몸통 피어싱이라니.”
바닥에 주저앉아 상처에 포션을 들이붓는 나찬수, 최진기의 몸에 박아 넣었던 검을 회수하는 송종혁, 그리고 설수민이라는 형사의 목에 단도를 들이대고 있는 천재원.
놈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움직임을 멈춘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비가시 모드를 해제한 샤이닝 에로우 30발이 그들의 급소 바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