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44화 (44/202)

44. 아빠 없는 하늘 아래 (4).

서울역 E급 던전 앞엔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킥.”

“크크크.”

갑자기 웬 웃음소리냐고?

내 직업을 확인한 놈들이 만들어 낸 소리였다.

F급과 다르게 E급 서포터로 활동을 하려면 기본적인 개인 정보는 오픈을 해야 했다.

이름과 나이, 직업 정보를 오픈하지 않으면 서포터로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놈들에게 내 정보를 오픈해야 했고, 내 직업을 확인한 놈들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쿡…. 큼. 직업이 청소부시네요?”

네 놈 중 리더 격인 송종혁이라는 놈이 웃음을 참으며 말을 건네 왔다.

중갑을 걸친 놈은 전형적인 탱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포터 일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 네. 그럴 것 같기는 하네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렇게 말하는 송종혁의 뒤로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다른 놈들이 보였다.

“대체 뭘 하면 각성자 직업이 청소부냐? 크큭.”

“그러게요. 저도 청소부란 직업은 처음 봐요. 형.”

“뭐 어때. 서포터가 깔끔하면 좋은 거지. 몬스터 몸에 마나석 남겨두는 일은 없겠네.”

들리게 할 심산은 아니었는지 자기들끼리 조용히 속삭였지만, 놈들의 위에 떠 있는 샤이닝 에로우 덕에 그 대화는 여과 없이 내 귀로 전송됐다.

심지어 힐러조차도 지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실실 쪼개고 있었다.

‘아놔…. 씨바 그냥 갈까?’

가슴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다.

누구는 제 목숨 하나 구하자고 이렇게 되지도 않는 서폿 연기를 하고 있는데 비웃고 있는 꼴을 보자니 심사가 뒤틀렸다.

“일단 물품 인계 먼저 하겠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쿵.

그때 송종혁이 내게 가방 하나를 건네 왔다.

꼴을 보아하니 건실한 파티 흉내를 내려는 것 같았다.

나는 놈에게 건네받은 물품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척하며 인벤토리에서 스파이캠을 꺼내 주변에 흩뿌렸다.

야구공만 한 크기의 스파이캠.

씨드의 통제를 받는 스파이캠은 비가시 모드로 허공을 날아다녔다.

개당 50포인트나 주고 시스템 상점에서 구매한 마나석으로 작동하는 스파이캠 열두 개.

거기에 ‘다차원 송수신기’라는 기계까지 구매하는 데 들어간 포인트가 모두 합해 천 포인트였다.

이는 상점 창에 각성자 스토어에서 구매한 E급 아이템들을 판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날밤을 새우기는 했지만 그렇게 포인트가 생기는 족족 상점 창에서 구매한 아이템들은 꽤 만족스러웠다.

‘수신기는 잘 설치해 뒀고.’

수신기는 놈들과 만나기 전 서울역 공중화장실에 들러 그곳에 설치해 뒀다.

‘송신기는 인벤토리에 들고 들어가면 되고.’

방송 채널은 서울역으로 오기 전부터 준비해 두었기에 걱정할 게 없었다.

전 세계적인 개인방송 플랫폼인 유튜브, 트위치, 한국 내에서는 나름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K-TV.

방송은 던전 밖에 남겨 놓을 샤이닝 에로우 NO. 50을 통해 씨드가 제어할 것이기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다차원 송수신기 덕분에 샤이닝 에로우의 물리적인 움직임은 불가하지만, 샤이닝 에로우를 송수신기 옆에 둠으로써 방송 제어 정도는 던전 안에서도 가능해졌다.

그렇게 놈이 건넨 아이템을 모두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을 때쯤이었다.

던전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헌터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슬슬 쇼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뭐. 오래 볼 사이는 아니니까 통성명은 안 해도 되겠죠 서포터님?”

건방을 떠는 송종혁의 얼굴에 죽빵을 날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으니까.

잠시 후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가 입구로 이동되어 나오고.

“송종혁 씨 파티! 입장하시겠습니다!”

게이트 키퍼의 외침에 파티는 던전 입구로 향했다.

먼저 던전에 입장하는 놈들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씨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방송 준비하자. 씨드. 카메라에 내 얼굴 안 잡히게 조심하고.’

‘네. 사령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입장할 차례는 제일 마지막이다.

일단 나는 서폿이니까.

놈들은 내가 물품을 들고 튈 염려 따위는 없이 던전으로 들어섰다.

그런 걸 막으라고 게이트 키퍼가 있는 거니까 걱정은 없을 거다. 놈들의 경호원들도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탱커와 검사가 먼저 들어서고 잠시 뒤 그 뒤를 따라 궁수와 마법사, 힐러 순으로 입장을 마치자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포탈.

나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를 악물었다.

‘네놈들의 가면, 오늘 이곳에서 모조리 벗겨주마.’

잘나가는 중견 길드의 후계자.

대외적으로 비치는 건실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신진 헌터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벗겨줄 차례였다.

그동안은 그들의 부모가 가진 돈과 힘으로 그들이 저지른 사건이 커지는 걸 막아 왔겠지만, 오늘은 그게 안 될 테니까.

‘수습할 시간이 없게 태풍처럼 몰아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강산호 회장에게 연락을 넣어 두었다.

솔직히 구 전 대통령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놈들의 배경이 각 지역의 중견 길드인 것을 알면서도 건네준 정보는 고작 기본적인 프로필에 불과했지.’

그래서 그나마 신뢰 관계가 쌓인 강산호 회장을 선택했다. 비록 내게 감시자를 붙여놓긴 했지만 그나마 믿을 만했으니까.

물론 이번 일이 끝나면 도움받은 것에 대해 보답을 해야겠지만, 지금 내가 아는 힘 있는 이들 중 믿을 만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씨드의 목소리와 함께 포탈을 넘었다.

‘방송 시작합니다.’

참고로 방송 제목을 얘기하자면 ‘던전 연쇄살인마들의 민낯’이었다.

***

서울역 E급 던전.

이곳은 E급 헌터들 사이에서 오크 던전이라고 불렸다.

정확히는 오크가 보스 몬스터로 나오는 던전.

D급에서 일반 몬스터로 나오는 오크가 보스 몬스터로 나오기에 D급 승급을 앞둔 헌터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주로 찾는 던전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오크지만 던전을 구성하고 있는 일반 몬스터는 고블린과 코볼트 그리고 슬라임, 히든 보스인 오크 전사가 뜨지 않는 이상 보스인 오크는 보스 방인 중앙 천막을 벗어나지 않는다.’

헌터 협회에서 발행한 가이드의 내용을 상기하던 내 등 뒤로 포탈이 닫혔고.

먼저 던전에 들어서 있던 놈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독 안에 갇힌 쥐새끼라 이건가?’

흘끗.

놈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12개의 스파이캠.

‘씨드. 방송상태는 어때?’

‘모두 정상적으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얼굴이 나오면 안 된다.’

지금도 강 회장과 구 전 대통령이 붙인 감시자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이것도 씨드가 아니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은밀하고 먼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이목을 더 끌어봐야 좋을 게 없겠지.’

그 감시자들이 호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기분이 나쁜 것이 사실이었다.

“서포터 아저씨. 빨리빨리 오세요.”

잠시 스파이캠을 작동상태를 둘러보느라 걸음이 느려지자 송종혁이 재촉해 왔다.

“아. 넵!”

아무래도 처음부터 그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

먼저 외곽의 슬라임을 정리하고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동굴 코볼트를 상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길드의 후계자라고 불리는 게 괜한 말은 아닌 듯 놈들의 헌팅은 정석적이었고 그만큼 안정적이었다.

“후우-. 서폿 아저씨 포션하고 소모템 좀 줘봐요. 다 써서 없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아저씨. 나도 좀 줘요. 보스전 돌입 전에 미리 챙겨 놔야지.”

“네.”

그렇게 던전의 보스인 오크가 머무는 천막을 앞에 두고 놈들은 내게 맡겨두었던 포션과 소모템들을 다시 가져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파티였다면 당연한 과정이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내게 아이템을 받아가는 놈들의 눈빛을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되었군.’

놈들이 기다리던 사냥의 시간이 되었다는 걸.

그때 힐러와 네 놈 중 막내인 마법사 최진기와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어머-. 그럼 네 분 모두 길드 후계자들이신 거예요?”

“네. 저기 있는 탱커 형님이 목포에 있는 해랑(海狼) 길드 후계자고 저는 나주 영산 길드 후계자죠.”

“정말요? 그런데 왜 헌터 협회가 관리하는 던전을 다녀요? 보통 길드는 자신들이 관리하는 던전이 따로 있지 않아요?”

“하하. 그건 저희가 사정이 있어서요.”

“무슨 사정인데요?”

힐러는 벌써 최진기와 죽이 맞은 듯 휴식을 취하는 순간에도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힐러의 말처럼 길드는 보통 자신들이 관리하는 던전에서 헌터들을 육성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놈들이 이렇게 헌터 협회에서 관리하는 던전에서 헌팅을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첫 번째는 저놈들의 부모들이 마스터로 있는 길드가 지역 길드이기에 그 던전이 수도권과 거리가 있다는 것과.

“우리 취미가 좀 독특하다 보니 길드에서 관리하는 던전에서는 취미생활을 하기가 힘들거든요.”

두 번째는 길드에서 관리하는 던전은 외부 헌터들이 지금처럼 사용료를 내고 출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놈들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사냥감이 없는 거다.

아무리 살인에 미쳤다고 해도 부하가 될 길드원들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취미생활이요?”

“네….”

최진기는 말끝을 흐리며 힐러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짐승이 먹잇감을 살펴보는 듯한 눈빛.

입술을 핥는 혓바닥이 유난히도 붉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갑자기 변한 최진기의 분위기를 느낀 힐러가 한 발짝 물러서는 순간, 나는 그들을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어디 가세요? 서폿 아저씨?”

그러자 내 앞을 가로막는 송종혁.

붉게 충혈된 눈이 흉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아. 저 마법사분과 힐러분께도 아이템을 드리려고요. 보스 방이 바로 앞이니 지금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송종혁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입꼬리만 끌어올려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이 괴기스러워 보였다.

“아…. 그럴 필요 없어요.”

“네? 그게 무슨…?”

“어차피 쓸 일이 없을 테니까.”

놈이 말을 마치는 순간.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뇌파 통신으로 들려오는 씨드의 외침과 함께.

푸욱!

날카롭고 뜨거운 무언가가 내 등과 배를 관통해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컥.

“왜. 왜….”

새빨간 피가 묻은 은색의 검.

검사인 나찬수라는 놈이 사용하던 검이다.

그리고 지금이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다.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검이 빠져나가고, 나는 복부에서 치솟는 붉은 핏줄기를 양손으로 틀어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씨드. 방송은 반응이 어때?’

‘폭발적입니다. 처음엔 던전 내에서 방송한다는 사실에 사기라고 말하던 이들이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모습에 폭발적인 반응을 드러내며 추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시청자들 수는?’

‘3개 플랫폼 총합 3만 명 정도입니다.’

3만 명이라니 나쁘지 않았다. 방금 그 장면을 본 목격자가 3만 명이 생겼다는 소리니까.

‘방금 그 장면으로 신고가 들어갔는지 K-TV는 관리자가 채널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두 개 플랫폼은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괜찮으십니까. 사령관님?’

지금 나는 배에 칼침 하나 맞고 쓰러져 기절한 척 연기를 하는 중이었다.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내 모습에 씨드가 걱정된 모양이다.

‘괜찮으니까. 샤이닝 에로우, 표적 설정하고 방송에 집중해.’

그렇게 씨드를 안심시키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아저씨 눈 떠요-. 안 죽은 거 아는데 왜 눈을 감고 있어요?”

내 뒤에서 칼을 찌른 나찬수 놈의 목소리였다.

“잠깐 놔둬 봐.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싶은가 보지. 키킥.”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정신 차리셔야지-.”

그렇게 송종혁과 장난스러운 대화를 나누던 나찬수가 검으로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컥-!”

끔찍한 고통에 부릅뜬 두 눈에 비열하게 웃고 있는 나찬수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이쿠. 정신 차리셨네. 역시 잠 깨는 데는 칼침이 최고라니까.”

이 새끼들은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좀 더 시간을 끌며 증거를 확보하려던 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씨드. 포션 주입해.’

내가 인벤토리를 열도록 두고 볼 놈들이 아니니 포션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그 용액만 따로 샤이닝 에로우의 적재함에 채워 넣어 놓았다.

최상급 힐링 포션이니 이런 칼침 한두 개쯤은 순식간에 회복시킬 것이었다.

‘네. 사령관님. 지금 포션 주입 시작합니다.’

비가시 모드로 떠 있던 샤이닝 에로우 하나가 내 발 부근으로 이동해 포션을 주입하기 시작하고.

‘표적들 제압 시작한다.’

‘네. 사령관님.’

내 명령과 함께 움직인 샤이닝 에로우가 움직이며 놈들의 치명적인 급소를 겨누기 시작했을 때였다.

“야! 이 씨바! 뭐야! 너 이거 안놔?!”

마법사 최진기의 분노에 찬 고함이 던전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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