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아빠 없는 하늘 아래 (2).
듣고 있자니 역겨워 내 입에선 거친 말이 쏘아져 나갔다.
감정이입이 되니 목소리가 저절로 날카로워졌다.
“듣자 하니까. 말을 재미있게 잘하네. 재능 살려서 다른 사람 즐겁게 하는 개인방송 같은 거나 하지. 왜 너보다 약한 사람 괴롭히면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냐?”
터벅터벅.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닌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로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는 김미소.
방구석까지 몰려 떨고 있는 모습이 처량했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방이 꽉 찼다.
세 평도 안 되는 좁은 방안에 커다란 장정이 셋이나 들어와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야 이건?”
김미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내 앞을 안경쟁이에게 싸대기를 처맞던 떡대가 가로막았다.
“나? 너희 고객님이랑 아는 사이. 그러니까 길 터. 이 버러지 새끼야.”
“뭐?! 이 X 만한….”
필터 없이 나간 내 말에 발끈한 떡대가 우람한 팔을 들어 올릴 때였다.
턱-.
어느새 일어난 안경쟁이가 떡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방 사원. 비켜 드려.”
안경쟁이의 말에 나를 가로막고 있던 떡대가 한쪽으로 물러서고.
나는 떡대를 지나쳐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안경쟁이에게 다가가 그가 들고 있던 대출 계약서를 낚아챘다.
탁.
“와-. 이 씨발롬들 봐라. 원금 1억이 6개월 만에 2억이 됐네?”
계약서를 보며 중얼거리는 사이 안경쟁이는 나와 거리를 벌려 문 쪽으로 이동을 했다.
“왜? 도망이라도 가게?”
떡대와는 다르게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아마 내 손목에 있는 헌터 와치를 본 모양이다.
“아하하. 아닙니다. 각성자님. 죄송하지만 저희 고객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여쭤 봐도 될까요?”
지금까지 거친 기세를 내뿜으며 김미소를 압박하던 때와는 다르게 놈은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말을 하는 순간에도 재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나를 스캔했다.
“나? 그냥 아는…지인?”
내 말에 놈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런데 지금, 너한텐 그게 중요한가 보지? 나한텐 너희가 불법으로 채권추심 하면서 이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내 지인한테 들이밀었단 사실이 중요한데.”
“아…. 그게,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건 저희가 고동명 씨에게 정당하게 인수한 채권입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 말 하면 니 혓바닥한테 미안하지 않냐? 주인 잘못 만나서 개똥 같은 말을 해야 하는데. 상속 포기했다는데 무슨 채권 추심? 백골징포 뭐 그런 거냐? 던전에서 네 백골 진토돼 볼래? 넋이라도 있고 없고…해 볼까?”
내가 법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니들 하는 짓거리가 누가 봐도 불법인데…. 불법이 정당한 거구나 너희한테는? 나도 갑자기 정당한 방법 한 가지가 떠오르는데. 그렇게 해줘? 정당하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두둑.
내 의미심장한 말에 안경쟁이는 창백해진 입술을 짓씹으며 살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 그랬군요. 회사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착오는 개뿔. 개수작 부리는 건 지나가던 강아지도 알겠구먼.’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를 안경쟁이에게 건네주고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뭔 일을 잘 알아보고 처리하셔야지.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처리하시면 되나…. 그죠?”
내가 그의 말에 동조해 주는 모습을 보이자 안경쟁이는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대답해 왔다.
“네. 각성자님. 제가 회사로 돌아가는 즉시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뭐. 그러시던가.”
“그럼….”
내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자 안경쟁이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쉽게 일을 마무리할 거냐고?
설마. 그럴 리가.
‘씨드. 샤이닝 에로우 한 대 비가시 모드로 저 녀석에게 붙여놔.’
‘네. 사령관님.’
‘놈들이 가는 곳, 나누는 대화, 실시간으로 녹화해서 내 헌터 와치로 전송해.’
각성자가 일반인을 패면 중범죄다.
내가 각성자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각성자 특별법은 그동안 무시돼 왔던 각성자의 인권을 보장해 주는 법이지 각성자를 특별하게 대우해 주는 법이 아니라는 것을.
일반인들은 그걸 모르기에 각성자 특별법이 각성자를 귀족으로 만드는 법이라고 여긴다는 것도.
그런데도 저놈들이 이렇게 쉽게 물러나는 이유?
자기들이 하는 짓거리가 불법이라는 것과 지금 힘으로는 나를 제압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여기서 공권력이 개입하면 불리한 건 자신들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이렇게 물러서는 거다.
‘먼저 공격해 왔으면 정당방위로 쥐어박을 수 있었는데 아쉽네.’
아쉽지만 지금은 그냥 보내 줘야 할 때다.
하지만 놈들의 낌새가 이상해 샤이닝 에로우로 감시를 할 생각이다.
‘화살’로 사용될 때 순간 가속을 위해 마나석 반개 분량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것과 다르게 비전투 모드의 샤이닝 에로우는 비가시 모드에서도 마나석 반개로 일주일 이상을 비행할 수 있기에 놈들을 감시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저 안경쟁이 눈빛을 보니 쉽게 포기할 놈이 아니네.’
그렇게 놈들이 떠나가고.
“괜찮아요? 어떻게 된 사정인지는 대충 들어서 짐작이 가긴 하는데….”
“아…. 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비척비척 일어선 김미소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저놈들 보니까 쉽게 포기할 거 같지 않아 보이던데. 계속 여기 머물 생각이에요?”
내 물음에 김미소는 잠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생각이 많긴 할 거다. 사채업자 같은 놈들에게 시달렸는데, 계속 이곳에 머물기도 두려울 테고.
막말로 다음번에도 내가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퀘스트를 진행하려면 청심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던 김미소는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그게 내가 바라는 바야. 이 꼬마야.’
세상이 각박하니 사람이 호의를 가지고 다가가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힘들다.
참. 여러모로 살기 힘든 세상이다.
***
청심원.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새 건물은 어느새 그럴싸한 외형을 갖춰가고 있었다.
‘역시 대현건설. 괜히 안전하고 빠른 걸 장점으로 홍보하는 게 아니구나.’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그곳을 지나쳐 아직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청심원 건물에 다다르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정혜 누나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와. 너희가 미소랑 미나구나? 예쁘게 생겼네. 반가워 내 이름은 김정혜야. 그냥 정혜 언니라고 부르면 돼.”
아이들의 어색함을 풀어줄 요량인지 정혜 누나는 활기찬 목소리로 자매에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는 무슨…. 이모지.”
“뭐래-? 홉 고블린이 하는 말이라 잘 안 들리는데?”
“킥.”
장난스러운 내 말에 누나가 그렇게 대꾸하자 듣고 있던 미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홉 고블린은 미나 같이 어린아이까지 알 정도로 유명한 몬스터다.
못생긴 거로.
고블린은 이상하게 상위 개체일수록 못생겨지는데 홉 고블린은 그중에서도 유독 못생겼다.
그 못생김이 유별나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되었을 정도니 더 말해 뭣하랴.
“내가 어딜 봐서 홉 고블린이야? 이 정도면 준수하지.”
“웩. 좀 떨어져서 와 줄래? 우리 미녀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거든? 그리고 시간 나면 거울 좀 봐.”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참고 있는 미소, 미나 자매의 어깨를 감싸고 집안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어…가방.”
“괜찮아 쟤가 들고 올 거야. 각성자가 되더니 남는 건 힘밖에 없거든.”
짐가방을 챙기려는 김미소를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 정혜 누나.
나는 자매의 짐가방을 들고 걸음을 옮기며 웃었다.
이 또한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누나의 배려였으니까.
***
“슬슬 연락할 때가 된 건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까 전 강산호 회장이 보내온 메시지를 읽으며 미소 지었다.
『강산호 회장님: 이제 뜸 들일 만큼 들인 것 같으니 연락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그 친구들 기다리다 목이 빠질 것 같은데 말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내가 정보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네 전화번호쯤은 얼마든지 입수할 수 있는 이들이네. 그러니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마시게.』
마침 김상욱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기 위해선 돈이 아닌 다른 힘이 필요하기도 했고.
구매자들이 안달이 난 상태라면 유클리안 잎사귀 차의 가치는 매우 높아진 상태라고 봐야 했다.
“이분이 적당하겠네.”
강산호 회장에게 건네받은 리스트를 살피던 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보고 미소 지었다.
구정철.
대한민국의 13대 대통령이자 첫 각성자 출신 대통령.
각성자 특별법을 만들어, 근 60년 동안 특별관리 대상으로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따위는 없었던 각성자에 인권을 되찾아준 남자.
그리고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SS급의 각성자.
들리는 말론 아직도 각성자 센터에 그의 수족이라 불릴만한 자들이 요직을 꿰차고 있다고 했으니 도움을 받기에 제격이었다.
오후 6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망설이 없이 전화번호를 눌렀다.
지금이 아니면 내일 만나도 되는 거니까.
뚜르르.
잠시 신호음이 울리고.
“이제야 연락을 하는구먼, 강현 군.”
구정철 전 대통령은 이미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는 듯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구정철 전 대통령의 힘이 아직도 각성자 센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기분 나쁘지는 않냐고?
천만에.
오히려 좋다.
김상욱의 죽음에 관한 실마리를 찾을 확률이 늘었으니까.
***
“강 회장님 말대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 친구군.”
구정철은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가는 강현의 뒤통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제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김상욱이라는 F급 헌터의 죽음과 연관된 사건의 진실입니다.’
“대범한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자신의 앞에서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그런 것을 요구할 줄 몰랐다.
그것도 이제 겨우 서른이 된 젊은이가 말이다.
그래서 흥미가 생겼다.
강현이라는 젊은이에 대해서.
“들었나?”
구정철의 물음에 허공에서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김상욱이라는 각성자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정보 취합에서 보고해.”
“예. 마스터.”
“그리고 강산호 회장 몰래 저 친구에게 사람 하나 붙이고. 왠지 평범한 친구는 아닌 것 같거든.”
“네.”
대답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구정철은 탁자 위에 놓인 초록색 잎으로 만들어진 티백을 바라봤다.
‘이게 그렇게 쓰다 이거지….’
강 회장의 말대로라면 지금 마법 과학 기술로는 원리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뭐 마셔보면 알 일이지.’
구정철은 허공에 손을 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물방울들이 생성되더니 비어 있던 찻잔을 채웠다.
으흠.
그리고 붉게 달궈진 손으로 찻잔을 움켜쥐자 곧 찻잔 안의 물이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끌어 올랐다.
신위(神威)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나 운용.
다시 이어진 손짓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티백이 떠올라 찻잔 안으로 들어갔다.
사아아아.
그 순간 퍼져 나오는 숲의 향기.
폐부가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 청량한 그 향기에 구정철은 잠시 눈을 감고 차향을 음미했다.
‘향 하나만큼은 정말 일품이군.’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그동안 귀하다고 하는 차들은 다 접해 봤지만 이런 향을 가진 차는 단연코 처음이었다.
스윽.
그래서 그는 소파 깊숙이 몸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차가 조금 식을 동안 차향을 음미할 생각이었다.
***
‘와. 용담호혈이 따로 없네.’
구정철의 사저를 벗어나 드론에 올라탄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각성자 출신의 전직 대통령.
내가 아는 구정철이라는 사람의 정보는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와 거실에서 마주 앉을 때까지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호랑이같이 날카로운 눈매가 보통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냈으나 그뿐.
하지만 뇌파 통신으로 들려오는 씨드의 목소리에 나는 기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령관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현재 사령관님의 주변에 은신을 한 자들이 있습니다. 해당 공간에 존재하는 총인원은…514명입니다. 그들 중 20명이 거실의 사각지대에서 사령관님을 경계하며 여차하면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뭐?’
씨드가 말하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다.
구정철 전 대통령은 마당까지 마중을 나왔고 직접 거실까지 나를 안내했기 때문이다.
체격은 좋지만, 시골 할아버지와 다를 것 없는 얼굴로 허허롭게 웃기에 전 대통령답지 않게 소탈한 영감님이라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던 나에게 씨드의 보고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저에 몸을 숨기고 있는 514명의 사람 모두가 내가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오른 각성자라는 뜻이었으니까.
심지어 그중 스무 명이나 언제든 출수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씨드의 보고 후 어찌어찌 거래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까지 나는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정말 모르는 척하느라 혼났다.
그렇게 구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상도 경주를 떠나 서울에 있는 내 집에 도착하기까지 30분.
집에 도착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관문 아래 놓인 서류봉투.
그 안에는 내가 원했던 김상욱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의 프로필이 담겨있었다.
‘정말. 사람 놀라게 하는 데는 도가 튼 양반들이네.
일 처리 하나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내용은…조금 부실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