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아빠 없는 하늘 아래 (1).
쉬익- 퍽!
끼익!
정필중은 어이가 없었다.
쉬쉭-! 퍼퍽!
끽! 끼에엑!
쉴 새 없이 날아가는 화살과 그것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고블린들.
호기롭게 버스 운전기사를 자처했지만, 던전에 들어선 이후 정필중이 한 일이라곤 단 하나였다.
저벅저벅.
바로 고블린 거주지 외곽을 따라 걷는 것.
일명 ‘사과 깎기’라고 불리는 리딩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옆에서 함께 걷는 탱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그런 조건으로 파티를 구한 거야?’
흘끗.
그는 등 뒤로 고개를 돌려 이 사건의 주범을 바라봤다.
‘강현이라고 했던가? 이 정도 실력이면 어지간한 정규 파티에서도 에이스 소리를 들을 실력인데 왜 돈을 줘 가며 버스 운전을 부탁한 거지?’
던전을 한번 돌 때마다 1인당 2천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소리에 용돈 벌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달려온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파티원 3명은 모두 D급 승급을 앞두고 있었기에 E급 입문 던전으로 불리는 청계던전쯤은 세 명으로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버스비를 지급하는 혹 두 개를 달고 서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해찬아. 파이어볼 하나 큰 거로 준비해 봐.”
“네 형.”
“지금. 날려.”
후우웅. 콰아앙-!
키에엑!
정필중의 리딩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면, 고블린들은 채 달려들기도 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법사의 마법에 통구이가 되었고.
쉬익-! 퍼 벅!
혹여 살아남은 놈이 있더라도 이어 날아가는 강현의 화살 한 발에 사망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 백발백중의 솜씨였다.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확인한 개인정보를 보면 오늘 오전에 등급 업을 한 게 확실했다.
심지어 이해찬이라는 마법사는 던전 들어오기 두 시간 전에 등급 업 했다.
‘둘 다 이 정도 실력이면 욕심이 나는데…. 특히 저 강현이라는 사람은….’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는 아무런 오더를 내리고 있지 않았다.
파티의 리더인 자신이 리딩도 하지 않고 오더를 내리고 있지 않음에도 사냥은 무리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파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던전 안에서 리더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저 강현이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마치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현은 고블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화살을 날렸고.
그렇게 날아간 화살은 어김없이 고블린의 비명을 만들어 냈다.
쉬익-!
케엑!!
지금처럼.
‘예지안 같은 스킬인가? 정말 탐나는데…. 같이 파티하자고 한번 꼬셔볼까?’
그렇게 정필중이 강현의 실력에 반해 영입을 고려하고 있을 때, 강현은 씨드를 칭찬하고 있었다.
‘잘했어! 씨드.’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사실 강현이 무슨 재주가 있어 백발백중의 궁술을 선보일 수 있겠는가?
강현은 그저 씨드가 얘기한 방향으로 화살을 날릴 뿐 모든 것은 씨드가 알아서 했다.
비가시 모드로 날아가 고블린을 격살하는 것도, 애먼 곳으로 날아간 화살을 샤이닝 에로우가 박혔던 자리에 꽂아두고 돌아오는 것도 모두 씨드가 한 일이었다.
애초에 고아라서 군 면제를 받고 헌터 협회 소속의 던전 청소부로 일한 덕에 4주 군사훈련도 면제받은 강현이 200m 300m 밖의 몬스터를 명중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격과 활쏘기는 그 방법 자체가 다른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말이다.
‘역시 돈 들인 값을 하네 씨드.’
‘사령관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강현은 정말 씨드의 성능에 만족스러웠다.
봉인된 기능을 열기 위해 꽤 많은 마나석을 들였지만, 지금 사용하는 뇌파 통신도, 반경 500m 안에 모든 생물체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도 모두 마나석을 들인 값을 했으니까.
물론 정필중을 비롯한 일행들은 이것이 모두 강현의 능력이라 오해하고 있었지만.
“형 정말 대단해요. 저번에 탱킹 능력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어지간한 E급 궁수보다 실력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강현의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이해찬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당연히 씨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몬스터들이 어디 있는지 예측하시는 거, 그거 형의 서포터 스킬인 거죠?”
이해찬의 물음에 강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해피니스 시스템의 존재를 밝힐 수 없는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
“저. 강현 씨. 잠시 대화 좀 하실 수 있을까요?”
헌팅이 끝나고 던전 밖으로 나오자 리더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내 물음에 리더는 같이 온 파티원들을 흘끗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혹시 파티를 구하시는 거면 우리 파티와 함께 헌팅을 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뭔가 기대에 찬 남자의 눈빛.
같은 남자로서 조금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리더의 말에 나는 이해찬을 바라봤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돌려야 했다.
‘얜 뭐가 그렇게 좋은 거지?’
이해찬은 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로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거든.
“흠…. 그건 아무래도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잠시간 고민을 한 끝에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아…. 역시 정해진 파티가 있으셨군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정규 파티가 아니야. 그저 머릿수를 채워줄 사람들이지.’
정규 파티를 맺기 위해서는 상태창 공개가 필수다.
파티원들에게 내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것.
하지만 이들이 과연 내 직업과 아무것도 없는 스킬 창을 보고도 이처럼 나와 파티를 맺으려고 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F급 던전처럼 입장 인원 제한이 풀려 있었다면 이들을 고용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해찬과 나의 일방적인 딜링에 고블린 들은 파티의 근처까지 오지도 못한 채 쓸려나갔으니까.
이는 해찬과 나의 딜링 능력이 E급에서도 수준급이라는 뜻이었다. 리더도 그걸 알기에 내게 영입 제안을 해 온 것이고.
나는 아쉬워하는 리더를 뒤로 한 채 해찬에게 말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시간에 여기 괜찮지?”
“네. 형.”
“그럼 내일 보자.”
“네 형.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봬요-!”
나는 파닥거리며 손을 흔드는 해찬을 뒤로하고 드론 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던전을 나오는 순간 계약이 종료되었고 나는 그들에게 버스비를 입금했다.
거기에 정산도 포기했으니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맘 같아서는 한두 바퀴 더 돌고 싶지만 급한 일이 생겼다.
『김미소: 아저씨. 도와주세요.』
김미소에게서 예상보다 빠르게 메시지가 왔거든.
그것도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
김미소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어젯밤.
강현이라는 남자가 다녀가고 김미소는 오랜 고민 끝에 고동명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따져 물었다.
왜 그랬냐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뒤 믿고 따랐던 유일한 어른이 준 배신감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렇게 전화로 한참을 고동명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우리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리고 김미소의 절규를 듣던 고동명은 짧은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다. 알았구나. 그럼 이제 어쩔 수가 없네….’
뭔가 의미심장한 그 말을 들었을 때 김미소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고동명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김미소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아르바이트하는 가게들에 전화해 하루를 쉬겠다고 말했다.
어찌어찌 동생을 학교에 보내고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덧 오후 세 시가 되어 있었고.
쾅쾅쾅!
집 밖에선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김미소 씨.”
김미소의 앞에 쭈그려 앉아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
“서명이 귀찮으시면 지장을 찍으셔도 되고요. 야 인주 가져왔냐?”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김미소는 그런 남자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왜요…?”
“음? 아이고. 우리 고객님 하도 말씀이 없으셔서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말할 줄 아시네. 하하.”
“제가 왜 여기에 사인을 해요?”
김미소가 다시 한번 그렇게 되묻자 남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 우리 고객님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없으셔서 설명을 잘 이해를 못 하셨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요. 고객님.”
남자는 손을 들어 안경을 추켜올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릴 테니까. 이번엔 잘 들으세요. 고객님. 고객님의 아버지 김상욱 씨가 고동명 씨한테 1억 원을 빌렸는데 돌아가셨어요. 그죠? 이 고동명 씨가 우리한테 대출을 받으셨단 말이에요. 근데 고동명 씨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이 차용증을 우리한테 넘기는 조건으로 대출 상환을 하셨다는 거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회사에서 고동명 씨에게 돈 대신 채권을 넘겨받은 거죠. 그러니까 고객님이 빚을 갚아야 할 곳은 고동명 씨가 아니라 우리 MB 캐피탈이라는 겁니다.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그렇게 말을 마친 사내는 다시 등 뒤의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야. 목마르다. 물 좀 가져와.”
“그러니까. 제가 그 돈을 왜 갚아요. 그 돈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동명 아저씨한테 갚았는데.”
덜덜 떨리는 김미소의 목소리.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 항변했다.
안 그러면 졸지에 2억이라는 큰돈을 갚아야 할 판이었으니까.
그런 김미소의 항변에 안경 사내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
“하-. 우리 고객님 똑똑하게 생기셨는데 영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끙.
“아. 시발 다리 저려.”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안경 사내는 일어서며 등 뒤에서 있던 남자를 쳐다봤다.
“야 이- 시발 새끼야.”
짜악-!
그러곤 난데없이 남자의 싸대기를 후려치는 안경 사내.
“내가!”
짜악!
“인주 챙겨 다니라고!”
짜악!
“했어!”
짜악!
“안 했어!”
짜악!
“니가 인주를 안 챙겨서 다니니까!”
짜악!
“우리 고객님이 계약서에 지장을 못 찍으시잖아!!”
짜아악!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안경 사내는 다시 얼굴에 서글서글한 웃음을 띠며 김미소를 돌아봤다.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아, 그,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돌변한 사내의 태도에 김미소는 부들부들 떨며 말을 더듬었다.
“아. 그렇죠. 채무를 갚으셨다고 하셨었죠?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고객님의 아버지가 빚을 갚으셔야 할 대상이 고동명 씨가 아니라 저희 MB 캐피탈이세요. 한마디로 빚을 잘못 갚으셨다는 거죠.”
“그게 무슨….”
“그건 뭐. 고객님께서 고동명 씨랑 해결하셔야 할 문제시고. 고객님께서 저희 MB 캐피탈에 연락도 주지 않고 거주지를 바꾸시는 통에 안내가 늦어졌는데. 덕분에 이자가 좀 연체되셨어요. 그래서 고객님께 좋은 방향으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자는 건데…. 이제는 이해가 좀 되셨을까요?”
안경 사내의 물음에 김미소는 창백해진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저희 상속 포기했어요. 그, 그럼 빚도 상속이 안 되는 거로 알고 있고요….”
“아…상속 포기….”
김미소의 말을 곱씹던 안경 사내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피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은 비열한 웃음.
“우리 고객님 혹시 1 금융 2 금융 이런 거 아시나?”
“…네?”
“우리 MB 캐피탈은 4 금융이에요.”
“…….”
“왜 4 금융인지 알아요?”
새파랗게 빛나는 안경 사내의 눈빛에 김미소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돈을 빌려 가서 안 갚으면 뒤진다고 해서 사(死)금융이라고 불러요. 뒈지면 장기라도 털어서 갚아야 하니까.”
안경 사내는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김미소에게 물었다.
“고객님 아버지는 던전에서 뒈져서 그게 안 됐는데. 우리 고객님 아직 스무 살이라 장기도 싱싱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해 드릴까요. 고객님?”
스윽.
안경 사내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대출계약서를 집어 들곤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김미소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뒈지기 싫으면 빨리 지장 찍어. 이 고객년아.”
흐끅.
당차다고 해도 이제 겨우 스무 살.
이런 일을 당해도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이, 한없이 든든했던 아빠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김미소는 저곳에 지장을 찍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절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두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스윽.
“거참. 서로 번거롭게 이러지 말자고. 얼굴도 곱상해서는.”
사내는 김미소의 얼굴 가까이로 손을 가져갔다.
“이런 곳에서 험한 꼴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하. 이 동네 경찰도 순찰 안 돌죠? 고객님.”
사내의 말을 들은 김미소는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꽉 채우기 시작했고,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덜덜덜.
“자아-. 깔끔하게 지장만 찍어 주시면 아무런 일 없이, 저희는 물러갑니다. 고객님.”
김미소의 볼에 있던 사내의 손이 그녀의 뒤 춤에 있던 손으로 옮겨갔다.
김미소가 아무리 당차다고 해도, 사내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제, 제발….’
“야! 인주!”
‘누가 좀….’
“여기 있습니다. 실장님.”
‘도와주세요.’
“자. 고객님 인주 여기 있습니다.”
안경 사내가 다시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얼굴로 뚜껑이 열린 인주를 그녀 앞에 내밀 때였다.
드르륵. 콰앙-!
낡은 미닫이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