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40화 (40/202)

40. 청계천 E급 던전.

‘이게 왜 올라?’

분명 좋은 소식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상점의 등급이 올랐으니까. 하지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순간에 상점 등급이 오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에서 레벨업을 하던 중에 오른 것도 아니고…. 왜 오른 거지?

하다못해 던전에서 레벨업 중에 상점 등급이 오른 거면 레벨업 때문이라고 유추해 볼 텐데 쇼핑 중에 등급 업이 되다 보니 당혹스러웠다.

흘끗.

옆에서 대기 중인 직원을 곁눈질로 확인한 후 헌터 와치를 조작하는 척 시스템 상점 창을 열었다.

전투 중엔 생각하는 것만으로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는데, 일상생활 중엔 그게 안 된다는 게 아쉽다.

[상점 등급: E]

[검색: ]

[구매] [판매]

[보유 포인트: 1914.2]

‘…왜지?’

하지만 상점 창을 열어봐도 도통 등급 업이 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헌팅 중에 등급 업을 한 게 아니니까 레벨과는 연관이 없다는 소린데. 설마 상점 거래가 등급 업에 영향을 준 건가?’

그렇게 구매 창과 판매 창을 번갈아 눌러보며 확인을 하던 나는 곧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판매횟수: 100

구매 창과 판매 창 상단에 존재하던 구매횟수와 판매횟수.

구매횟수는 이미 100을 넘긴 지 오래였고 별다른 변화가 없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판매횟수가 100으로 변한 걸 보니 이것과 연관이 있는 듯싶었다.

‘아니면 구매횟수와 판매횟수가 모두 100을 넘기는 게 등급 업의 조건이었던가.’

생각을 정리한 뒤 시스템 창을 지우고 눈앞에 떠 있는 카탈로그를 바라봤다.

무겁기 그지없는 중갑.

옵션으로 경량화 마법이 달려있다 해도 중갑 마스터리 스킬이 없는 헌터가 입기엔 무겁다. 물론 300㎏짜리 변태 중갑을 입고 있는 나에겐 예외지만.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E급 아이템을 구매할 수가 있게 된 이상, 쿤타우리 족의 발모제나 겔로드 족의 탈모제를 구매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겔로드 족의 탈모제가 가진 성능을 확인했는데 굳이 무거운 중갑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1회 코팅할 때마다 물방과 마방 그리고 내구가 10%씩 올랐지 아마? 나중엔 효율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활동성이 좋고 단단한 가죽 갑옷을 구매해 탈모제로 코팅을 한다면 충분히 중갑 이상의 방어력을 가진 가죽 갑옷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액세서리들도 좀 더 실용적인 것들로 바꿀 수도 있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경갑을 입은 채 옵션이 좋은 로브 같은 걸 걸칠 수도 있고.

생각을 마친 후 E급 경갑과 로브 위주로 아이템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일단 들고 가서 상점 창에 등록해 아이템 정보를 생성시키고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뭐 내가 안 쓰는 건 상점 창에 판매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100개의 아이템을 구매했고, 내 계좌 잔액은 반 토막이 났다.

***

[아이템: 바람새 가죽 갑옷]

[등급: E급]

[물리방어: 127] [마법방어:145]

[내구: 100]

[기본옵션]

형상변환(페시브)

에어프레쉬(페시브)

[옵션]

민첩+15

윈드워크 E(사용 가능)

헤이스트 E(사용 가능)

[설명: 이탈리아의 가죽 장인 마르티나 안겔로스가 바람새의 가죽으로 만들어낸 명품 가죽 갑옷. 방어력을 제외한 모든 옵션은 D급으로 봐도 무방하다. 1시간에 1회, 착용자의 마나를 이용해 E급의 윈드워크와 헤이스트의 사용이 가능하다.]

바람새 가죽 갑옷, 기본옵션을 제외한 옵션이 무려 세 개나 달린 아이템이었다.

스토어에서 구매한 아이템들과 시스템 상점에 판매 중인 아이템들을 서로 비교해가며 고른 갑옷이다.

‘역시 카탈로그보다 시스템에 등록하는 게 더 직관적이네.’

카탈로그엔 총화기를 몇 발까지 무리 없이 막아내고 몇 등급의 마법을 막아낸다는 두루뭉술한 설명이 시스템에는 정확하게 수치화되어 기록되고, 옵션으로 부여된 마법의 사용 가능 여부와 재사용시간까지 표기됐다.

보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한결 쉬워진 것이다.

‘여기에 열 번 정도 코팅을 하고 위에 로브를 겹쳐 입으면 변태 중갑의 방어력도 뛰어넘는 거지.’

나는 가죽 갑옷 세트의 옆으로 구매한 겔로드 족의 탈모제를 주르륵 늘어놨다.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탈탈 털어 모두 21병의 탈모제를 구매한 나는 그것을 뿌듯한 얼굴로 바라봤다.

개량된 쿤타우리 족의 발모제가 눈에 밟히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단 중요한 게 내 목숨 아니겠는가.

흐흥-.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붓을 들어 올렸다.

어떤 게임에서든 강화는 즐거운 법이니까.

성공확률이 100%에 수렴하는 강화라면 더더욱.

“자랑할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D급 C급? 난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

하아-.

이해찬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헌터 와치를 내려다봤다.

‘연락…안 오네….’

강현이 연락처를 받아간 지도 벌써 3일, 하지만 연락을 주겠다던 강현은 3일째 메시지 하나 보내지 않고 있었다.

‘내가 먼저 연락할까?’

잠시 고민하던 이해찬은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먼저 파티 제안까지 했는데 이번에도 먼저 연락하면 완전히 숙이고 들어가는 거야.’

그렇게 되면 곤란했다.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헌팅 파티도 어느 한쪽이 너무 굽히는 건 좋지 않았다.

불협화음은 항상 파국을 만들기 마련이니까.

‘아…. 헌팅 스타일이 길드 멤버로 삼기에 딱 맞았는데…. 돈도 좀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길드 초창기 멤버로 낙점하고 파티를 맺어 같이 성장하며 유대감을 쌓을 계획이었는데, 강현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

‘포기해야 하나?’

원래라면 최형석, 이루미와 유대감을 쌓으며 성장해 나갈 계획이었지만, 최형석이 태산 길드로 스카우트되어 가 버리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다.

‘이미 형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쩝.’

문제는 자신도 이제 등급 업을 해야 할 시기라는 점이었다.

물론 등급 업을 늦추고 강현과 F급 던전을 돌 생각이었지만 연락 자체가 없는데 더 기다리는 건 무의미했다.

그렇게 이해찬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우웅.

나직한 헌터 와치의 울림과 함께 기다리던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강현』

***

“현이 형!”

나는 저 멀리서 뛰어오며 손을 흔드는 이해찬을 보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참 쓸데없이 해맑은 녀석이네.’

붉은색 로브를 입고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모습이 판타지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소년 마법사를 연상케 했다.

물론 거기엔 저 잘생긴 얼굴이 한몫했고.

헉헉.

“안녕하세요 형. 잘 지내셨어요?”

“응. 급한 일이 좀 있어서 연락이 늦었네. 기다렸어?”

내 물음에 해찬은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엄지와 검지를 조금 벌려 보이며 말했다.

“조금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싱긋 웃어 보이는 녀석.

역시 필요 이상으로 해맑다.

“그나저나 왜 여기서 보자고 하신 거예요. 형?”

해찬의 물음에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수많은 인파가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한가운데.

내가 해찬과 만난 곳은 세운상가 옆에 자리한 광장이었다.

“던전에 가려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등 뒤를 가리켰다.

“등급 업은 하고 왔지?”

“네. 형이 말씀하셔서 하고 왔어요. 등급 업 할 시기가 되기도 했고…. 그런데 E급 던전 들어가시려고요? 등급 업 하셨어요?”

해찬이 녀석이 눈을 휘둥그레 뜨곤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하긴 놀랄 만도 했다.

내가 각성한 건 불과 삼 주 전이었으니까.

“응. 그렇게 됐어.”

“헐….”

그렇게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탱커와 검사 그리고 힐러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중 검사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물어왔다.

“강현 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하하.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요. 돈을 받고 던전을 돌아달라니….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과 마나석 그리고 부산물의 소유권도 넘기시는 거 확실하죠?”

“원하시면 그 부분도 계약서를 써드릴 수 있습니다.”

“뭐.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네요.”

남자는 내 장비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그렇게 말하며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이해찬이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형. 무슨 말이에요? 돈을 준다니?”

사내새끼가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에 거리낌이 없는지 모르겠다.

나는 슬쩍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말 그대로야. 한 타임 도는 데 한 사람당 이천만 원씩 주기로 하고 고용했어. 우리 안전까지 책임지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왜요? 형 정도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무리 없이 E급 던전 정도는 클리어할 수 있잖아요. 더군다나 여기 청계천 던전은 E급 중에서도 가장 난도가 낮은 던전이고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이해찬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말 없이 쓰게 웃었다.

이 모든 게 내 직업 때문이니까.

정상적으로 파티를 맺고 던전을 공략하려면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의 정보공개가 필수인데 내 직업은 청소부, 어느 정도의 정보를 서로 간에 교환한 뒤 파티를 구성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파티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찾은 게 이 방법이다. 저 세 사람처럼 E급을 졸업하고 D급 승급을 앞둔 파티에 버스를 부탁한 것.

그들로서도 나쁠 것은 없으리라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과 마나석, 부산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면서 거기에 더해 한 사람당 2천만 원씩 버스비를 주는 조건이니까.

현재 E급 헌터들이 던전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버는 돈이 평균 900~1000만 원 사이니 말이다.

“아…. 혹시 형이 서포터라서 그래요?”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해찬이 녀석이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여러 변수를 고려해 봤을 때, 처음 E급 던전을 들어가는 이번 한 번은 안전하게 돌고 싶었다.

그래서 돈으로 사람들을 고용해서 파티를 구성하기로 한 것.

‘가지고 있는 돈이 아무리 많아봤자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내가 그런 생각과 함께 던전을 들어가기 위해 마침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띠링-,

헌터 와치에 연락이 왔다는 알림이 떴다.

회장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

청계천 E급 던전. 통칭 ‘청계던전’으로 불리는 이곳은 필드형 던전이다.

필드형 던전의 특징은 일반 동굴형 던전보다 던전의 넓이가 조금 더 넓다는 것과, 기후라고 불릴 만한 것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날씨는 좋네요.”

먼저 들어와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검사 사내가 나와 해찬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날씨가 좋은 건 다행인 점이었다. 이런 던전에선 날씨마저도 변수니까.

우리의 뒤를 이어 힐러와 서폿이 들어서고 던전 입구가 사라지며 던전이 닫혔다.

“그럼 출발해 볼까요? 계약대로 리딩은 제가 맡되 데미지 딜링은 두 분이 책임지시는 겁니다.”

“네. 혹시나 딜링이 마음에 안 드시면 개입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그들이 개입할 건더기를 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괜찮은 석궁도 하나 준비했고, 화살은 뭐…. 어지간한 궁수들보다 위력적인 화살이 대기 중이니까.

물론 샤이닝 에로우 말고도 꽤 많은 화살을 인벤토리에 준비해 두었다.

탈모제로 갑옷을 강화하느라 아직 샤이닝 에로우 NO. 1 말고는 강화를 못 했거든.

내가 그렇게 말하며 석궁을 꺼내 들자 리더는 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미노타우로스 석궁인가요? 꽤 명품이네요. 구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리더의 말처럼 힘들게 구했다. 정확히는 비싸게 구했다는 게 맞았다.

강남 명품관에서 샀으니까.

C급 보스 몬스터인 미노타우로스의 뿔과 힘줄을 이용해 만든 이 석궁은 장력이 대단해서 어지간한 힘으로는 당기기조차 힘들어서 E급 판정을 받았다.

메이커가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부가옵션이 모두 석궁의 파괴력과 관통력을 높이는 데에만 집중이 돼 있기도 했고.

‘그 변태 중갑을 만든 놈이랑 같은 놈인 것 같은데.’

이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사용자의 편의성은 고려하지 않은 이런 변태적인 아이템을 만드는 사람이 둘 이상이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뭐 덕분에 나는 싼값에 좋은 아이템 얻었으니 된 거지.’

석궁 하나에 20억.

E급치곤 비싼 금액이었지만, 명품임은 분명했다.

한마디로 만족스러웠다.

내 힘은 이 석궁을 당기기에 충분했으니까.

“자 그럼 우리 고객님들이 원하시던 E급 던전 헌팅을 시작해 봅시다. 이 버스 기사만 믿고 따라와 주시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죠.”

리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미소를 지었다.

‘복수의 시작이다. 이 새끼들아.’

E급의 입문 던전이라 불리는 청계던전.

이곳의 주인은 바로 고블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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