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39화 (39/202)

39. 아버지의 유산 (3).

천장에 슬은 곰팡이.

빗물이 흘러내린 것인지 여기저기 얼룩진 벽지.

지하실에서 날법한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이곳이 바로 자매의 보금자리였다.

‘너무 열악한 것 아닌가?’

가족이기에 함께 하는 것이겠지만, 두 자매가 사는 이곳은 내가 자랐던 보육원보다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죄송해요. 아빠 지인이신 줄은 몰랐어요.”

방안에 자리한 김미소는 골목에서 보여주었던 앙칼진 모습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말을 했다.

“괜찮아요.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제가 실수한 거죠.”

그녀의 오해를 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상욱의 지인이라는 말과 함께 건넨 유품들만으로도 김미소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자신이 그린 그림과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 김미나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아직 죽음이 무언지 잘 알지 못하는 8살 꼬마는 ‘아빠가 보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무려 한 시간 동안 대성통곡을 했고 김미소는 그런 동생을 달래기 위해 진땀을 뺐다.

“흐으응. 아빠아…….”

좁은 방 한쪽에 펼쳐진 이부자리 위에 잠든 김미나가 몸을 뒤척이며 잠투정을 한다.

그리고 그 잠투정을 들은 김미소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만 19세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

소녀는 그리움을 밖으로 내보이기보단 속으로 감추는 법을 먼저 배운 모양이다.

“그나저나. 사는 곳이 좀 열악하네요. 아이가 지내기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말머리를 돌렸다.

굳이 아픈 곳을 찌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해야 할 말이었다.

내가 이곳에 지내봐서 안다.

이곳은 사람이 지낼 만한 곳이 아니었다.

특히 보호자가 없는 어린 소녀 둘이 지내는 건 더더욱.

싼 월세 때문에 이곳에 방을 구한 것일 테지만 치안의 사각지대인 이곳은 두 자매에게 절대 안전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조만간에 이사 갈 생각이었어요. 원룸 보증금 모을 때까지만 여기 있을 생각이었거든요.”

오지랖 넓게 꺼낸 말이었지만 김미소 본인도 이곳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나보다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필요하시다면 제가 두 분이 지낼 곳을 알아봐 드릴 수도 있습니다.”

내 제안에 김미소는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양할게요. 아버지 유품을 전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어요. 그리고 초면에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조금…부담스럽구요.”

당연한 거절이다. 하지만 난 그녀의 대답 속에서 그녀가 아직 고생을 덜 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라면 하나로 이틀을 버티면 저렇게 단호하게 거절하진 못할 텐데.’

만일 내가 보육원에서 막 나왔을 때 누군가 저런 제안을 했다면 나는 그곳이 어딘지 정도는 물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물론 내 제안이 초면에 할만한 제안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김미소에게 김상욱의 유품을 건네주는 순간 퀘스트는 갱신되었고.

[진행상태: 진행 중]

1. 김상욱의 가족에게 유품전달(완료)

2. 김미소와 김미주 자매의 거처를 청심원으로 옮기기(진행 중)

보다시피 퀘스트는 어떤 이유에선지 아이들을 청심원으로 보내기를 내게 종용하고 있었으니까.

“김상욱이 던전에 들어간 날, 함께 들어간 파티원들이 누군지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귓속에 울리는 씨드의 목소리도 한몫했고.

아무리 씨드라 해도 각성자 센터의 보안을 뚫는 것은 아직 무리인 듯싶었다.

그렇기에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선 김미소의 도움이 절실했다.

각성자 특별법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그 유가족에게까지 정보를 비공개로 하진 않을 거란 얄팍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제 연락처를 드릴 테니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가시를 세우고 나를 경계하는 아이에게 선을 넘어 다가서기보단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 이게 내가 택한 차선책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도 같고.’

각성자 센터의 보안을 뚫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꽤 비싼 값을 치러야 할 테지만, 이를테면 천억 원 정도.’

“오늘 아버지의 유품을 전해 주신 것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밥이라도 대접할게요.”

대문 앞까지 마중 나온 김미소의 말에 나는 싱긋 웃었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저녁도 안 먹고 기다려서 지금도 배가 몹시 고픈 상태거든요.”

***

아버지의 지인이라는 남자 강현이 떠나가고 김미소는 집안으로 들어와 아빠가 남긴 유품들을 바라봤다.

낡은 지갑과 사진, 그리고 그림 한 장.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별것 아닌 물건들이지만 자신과 동생에게 정말 큰 추억이 담긴 것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아빠가 돌아가신 지 반년이 다 돼가는 지금 아빠의 유품을 들고 나타난 남자.

좋은 의도로 가지고 온 것일 테지만 김미소는 강현이라는 남자가 의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빠는 분명 던전 안에서 돌아가셨다고 했어.’

그래서 장례조차 빈 관으로 치러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난데없이 강현이 아버지의 유품을 가지고 오자 그녀로서는 강현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던전에서 돌아가신 분의 유품을…. 대체 어떻게 가지고 온 거지?’

그리고 그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던전에서 죽은 사람의 물건은 가지고 올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니까.

더군다나 던전이 리셋된 이후라면 더더욱.

하지만 김미소는 그런 의심을 한쪽으로 미뤄두고 조심스럽게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빠….”

환하게 웃는 세 얼굴.

그립고 그리운 아빠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다른 사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사진은 조금 특별했다.

아빠가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활짝 웃은 날이었으니까.

사진을 보던 김미소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아빠. 나 약해지지 않을게. 동명 아저씨도 많이 도와주고 있고…. 미나가 꼭 다시 웃을 수 있게 열심히 살 거야. 지켜봐 줘.’

그렇게 다짐을 하며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쓰다듬은 김미소의 손이 지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갑 안에서 나온 물건을 본 김미소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뭐야?”

차용증과 영수증.

차용증은 김미소 본인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고동명이라는 아빠의 친구가 그녀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와 함께 나온 영수증은 그녀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빠가 이미 빚을 다 갚았다고?’

알았다면 매달 50만 원이라는 이자를 고동명에게 주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

고동명은 김상욱의 20년 지기 친구이며 어릴 적 김미소가 삼촌이라 부르며 따랐던 인물이다.

거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산 상속을 포기해서 빚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동명 아저씨가 왜 나한테 거짓말을….’

지독한 배신감에 영수증을 쥔 김미소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유는 짐작되었지만, 김미소는 쉽사리 그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김미소의 가슴속에 불신의 씨앗이 피어올랐다.

***

웅성웅성.

여전히 수많은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각성자 센터를 벗어난 나는 헌터 와치를 조작해 상태 창을 띄웠다.

『이름: 강현

나이: 30세

직업: 청소부

등급: E

스텟

힘:D 민첩:F 체력:F 마나:E

스킬: 없음』

해피니스 시스템의 상태 창과는 다르게 단출하기까지 한 헌터 와치의 상태 창은 정확한 스텟을 표기하지도 못했다.

각성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E급을 달았다.

직업이 조금 거슬리는 것만 제외한다면 이 또한 기록적으로 빠른 등급 업이었다.

‘이제 E급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록적으로 빠른 등급 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었다.

등급이 높은 던전이 더 경험치를 많이 주는 건 국룰 아니겠는가.

‘그 전에 아이템부터 맞추고.’

물론 그전에 아이템 세팅을 E급으로 모두 바꿔야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각성자 센터를 떠난 내 발길은 강북이 아닌 강남에 있는 각성자 스토어 명품관으로 향했다.

각성자 스토어 명품관.

땅값 비싼 강남에 자리한 스토어답게 건물 외관부터 휘황찬란했다.

입구 전면에 설치된 홀로그램 패널에선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제품광고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고, 들어가는 입구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웅장했다.

‘아주 돈으로 처발랐네.’

명품관이란 이름으로 불릴 만하달까?

그리고 이곳 명품관이 다른 각성자 스토어와 차별되는 점이라면.

“죄송합니다. 고객님. 본 명품관은 각성자 스토어 VIP분들께서만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확인할 수 있으실까요?”

바로 이것이었다.

오직 각성자 스토어 멤버십 VIP 이상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점.

한마디로 다른 스토어들과는 다르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는 입구 직원의 말에 헌터 와치를 내밀었다.

이윽고 스캐너로 헌터 와치를 스캔한 직원이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VIP 강현 님. 즐거운 쇼핑 되시기를 바랍니다.”

절도있는 인사와 함께 직원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입구를 통과한 나는 비로소 명품관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어-.’

좀 전에 내가 돈으로 처발랐다고 했던가?

취소다.

‘이건 뭐 전부 금으로 처발라놨네.’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벽면.

천장에서 별처럼 빛을 내는 건 마나석이요.

그 사이사이 놓여있는 금빛의 조각상들과 고객들을 위해 마련된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소파는 비싸기로 유명한 요정목(妖精木)이었다.

진정한 돈 지랄이 어떤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 나는 탄성을 토해냈다.

“와아-.”

‘어우야…. 이런 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 집엔 못하겠다. 부담스러워서.’

그렇게 내가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는 셀러 이진혁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고객님의 쇼핑을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정갈한 양복을 입고 가슴엔 이진혁이란 명찰을 단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저희 명품관은 고객님께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혀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객님.”

직원의 말을 들은 후 주변을 둘러보자 그의 말처럼 소파에 앉아 카탈로그를 보는 사람들 옆에 대기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였다.

“혹시 담당 셀러가 없으시다면 제가 안내를 드려도 괜찮으실까요. 고객님?”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간 곳에는 예의 요정목으로 만든 소파와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혹시 찾으시는 제품이 있으실까요?”

“일단 E급 갑옷 종류를 보고 싶네요.”

내게 최우선 아이템은 뭐니 뭐니 해도 방어구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중갑의 방어력은 E급 던전에서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었지만, 또 모르는 일이니까.

내 요구에 직원이 능숙하게 테이블을 조작하자 이내 테이블 위로 홀로그램이 떠 올랐다.

중갑과 경갑, 그리고 마법사나 힐러들이 입는 로브까지.

‘과연 명품관이라 이건가? 기본적인 옵션부터 차이가 나네.’

물론 옵션이 좋은 만큼 가격부터가 넘사벽이었다.

‘무슨 E급 아이템이 파츠 하나가 10억씩 하냐.’

참고로 내가 지금 입고 다니는 검은 중갑은 세트가 20억이었다.

다섯 부위로 나누어 부위당 가격은 4억 정도인 셈인데, 지금 보고 있는 중갑은 부위당 가격이 10억이니 세트는 50억인 것이다.

‘옵션은 괜찮은데. 방어력은 별로네.’

옵션은 정말 화려했다.

기본옵션 마법인 경량화와 프레쉬에어는 물론이고 마법방어와 물리방어 마법에 힘, 민, 체, 3대 스텟을 올려주는 버프까지.

한마디로 돈값은 하는 물건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물리방어 마법까지 있는데 방어력이 약하네.’

옵션까지 사용해도 물리방어력이 지금 사용하는 갑옷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어쩐다…이걸로 갈아타?’

그렇게 갑옷 하나를 띄워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사용자 강현 님의 상점 등급이 올랐습니다. 상점 창을 확인해 주세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해피니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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