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38화 (38/202)

38. 아버지의 유산 (2).

6월 15일 막 자정이 넘은 시간.

김미소는 무거운 걸음을 움직여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가 등에 업고 있는 동생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 스물, 만으로는 열아홉의 나이. 5개월 전 그녀는 갑작스럽게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다.

하루 18시간,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 3개.

든든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김미소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고졸에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분명히 한계가 있었고. 매일매일 편의점과 카페 그리고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너무 힘들어요…….’

이제 여덟 살.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동생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하나 남은 가족인 동생을 보육원에 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하아-.

오늘따라 하늘의 별이 유난히도 반짝인다.

그걸 바라보며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는데.

서울 외곽의 달동네.

재개발 사업 계획이 발표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추진위원회 구성조차 진행되지 않아 여전히 낡디 낡은 집들이 즐비한 이곳이 김미소 자신과 동생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싸구려 시멘트가 덧발라져 있는 길을 걸어, 얼기설기 얽힌 좁고 후미진 골목을 지나 집 앞 골목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

멀리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거뭇한 그림자 하나가 서성이는 게 보였다.

‘뭐야…. 무섭게. 동명 아저씨가 오신 건가? 이자 드린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동명 아저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동명 아저씨는 저 그림자보다 체구가 더 컸으니까.

‘설마. 범죄자나 뭐 그런 거야?’

김미소는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그렇지 않아도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 마치 누군가를 노리고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인영의 모습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신경이 쓰이던 것도 있고.

그리고 그 순간.

“김미소 씨?”

낯선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리며 그 불길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

6월 14일

오늘은 정말 바쁜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각성자 스토어에 들러 상점 창에 판매할 F급 아이템들을 구매해야 했고, 그 이후엔 상점 창에서 구매한 활성단을 콜팡에 재등록해야 했다.

이럴 때 보면 한 달 대여료 100만 원인 텔레포터 이용료가 그다지 비싼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제품을 텔레포터 위에 올려두고 콜팡 페이지와 연동만 시켜두면 알아서 배송해 주니까.

이후엔 점심을 먹고 다시 불암산 던전을 돌았다.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인벤토리 청소를 마무리할 겸.

던전이 리셋되더라도 유류 인벤토리는 여전히 같은 위치에 남아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헌팅 겸 청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씨드가 입을 열었다.

“찾았습니다. 사령관님.”

“응? 뭘 찾아?”

“김상욱 씨의 유족 말입니다.”

“벌써?”

기대하지도 않고 있던 소식을 가져온 씨드는 이내 김상욱의 가족들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것도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워가며.

“이런 기능도 있었어?”

내 질문에 씨드는 홀로그램으로 윙크하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허공에 띄웠다.

“그, 헌터 와치의 기능을 보고 저도 가능할 것 같아서 따라 해 봤습니다.”

뭔가 으쓱거리는듯한 말투.

‘능동형 인공지능이라서 그런가? 역시 학습능력이 굉장히 좋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씨드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 김상욱 씨는 1년 전 각성을 했고 지난 1월 사망하기 전까지 약 7개월 동안 F급 헌터로 활동을 했습니다.”

“7개월이라고?”

“네. 일반적으로 헌터들이 F급에 머무는 시간이 평균 5~6개월인 것을 고려하면 다소 긴 편입니다. 제 생각으론 지고 있던 채무를 갚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등급 업을 늦춘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

지갑에서 찾아낸 차용증과 영수증에 기재된 날짜를 보면 씨드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고 김상욱 씨의 채무 관계를 살펴보면…….”

씨드의 설명에 따르면 5년 전, 김상욱의 아내 진자영은 마나 중독 판정을 받았다.

마나 중독.

이 병은 던전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질병이라고 하던데 나도 뉴스에서나 접해본 병이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마나는 모든 생물에게 우호적이다. 지구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게 마나니까.

그리고 일반적으로 마나를 한계치 이상으로 받아들인 일반인은 신체의 변화를 체감하는 데 이를 각성이라 부른다.

내가 각성을 하게 된 것도 이렇게 마나를 한계치 이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하지만 마나 중독은 반대다.

체내에 마나를 한계치 이상으로 받아들였지만, 몸이 그 마나를 거부하는 현상.

전문가들은 우리 몸의 자가 면역 체계가 마나를 바이러스나 세균으로 인식하고 마나를 공격하는데 이에 반응한 마나가 우리 몸을 역으로 공격하는 걸, 마나 중독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각성자와 마나 중독 환자와의 차이점은 단 하나였다.

몸이 마나를 받아들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

환자 개개인의 증상은 서로 달랐지만, 그 끝은 하나였다.

죽음.

김상욱의 아내 진자영 또한 마나 중독에 걸려 1년의 투병 생활 끝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 1년간 들어간 병원비가 수억 원.

이는 김상욱이 아내 진자영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빚이었다.

보통 마나 중독 판정을 받으면 생을 포기하는 다른 환자, 그리고 보호자들과는 다르게 김상욱은 아내 진자영의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고, 1회 치료에만 수천만 원이 드는 마법 치료와 힐링 치료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 끝은 수억 원이나 되는 빚이었지만 말이다.

김상욱은 그때 생긴 빚을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갚아왔지만, 변화가 생긴 것은 1년 전 그가 각성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여기에서 현재 우리나라 은행의 대출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는데.

그가 각성하고 난 이후에 그에게 대출해 준 은행에서 대출금의 전액 상환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었다.

당연했다.

각성자는 서포터, 헌터, 메이커 등 직업군을 막론하고 고위험군 직종으로 분류되고.

던전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대출을 유지해줄 은행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으니까.

물론 보험도 마찬가지고.

이는 헌터 특별법이 발의되었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각성자에 대한 차별이었다.

듣기론 다른 나라 사정은 각성자를 좀 더 우대하는 쪽이라고 하던데,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은 반대로 역행했다.

정치하는 이들이야 어차피 사람들이 이민도 못 가니 신경도 쓰지 않았고, 결국 피 보는 건 김상욱처럼 각성한 지 얼마 안 되는 각성자들이었다.

하여튼 상황이 그렇게 되자 김상욱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각성자에게도 대출을 해주는 제3금융권으로 대출을 갈아탐과 동시에 추가 대출을 받아 장비를 마련해 헌터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

거기에 지인에게 돈까지 빌려서 말이다.

씨드의 보고를 들으며 내 머릿속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저게 SNS 좀 턴다고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씨드의 보고는 세세했다.

“김상욱 씨의 사망 당시, 제3 금융권에 아직 수억 원에 달하는 채무가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김상욱 씨 사망 후, 자녀들이 상속 포기를 해 채무는 모두 사라졌으나 살던 집이 담보로 잡혀 있어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살아있는 유족들은 누구고 거주하고 있는 곳이 어디야?”

“김상욱 씨와 부인인 진자영 씨는 25년 전 일어났던 빅 웨이브 당시 가족들을 모두 잃어 이렇다 할 친인척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현재 남은 유족은 김미소 양과 김미나 양입니다.”

지끈.

‘빅 웨이브….’

머리 한쪽 구석을 무언가 날카로운 바늘이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이어지는 씨드의 말에 집중했다.

“두 자매가 현재 거주 중인 곳은 노원구 중계본동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중계본동?”

“네 그렇습니다.”

중계본동이라면 나도 잘 아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살았던 곳이라고나 할까?

‘설마 거긴 아니겠지?’

그리고 나는 오게 되었다.

서울에 몇 안 남은 달동네 중 하나인 104번지, 백사마을을.

***

“여긴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가파른 언덕길, 낡고 허름한 골목, 부서진 가로등과 곳곳에 무너져 가는 듯 보이는 집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이 집 확실해?”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곧 무너질 것 같은 집 앞이었으니까.

지붕을 보면 비 내리는 날이면 방안에서 워터파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눈앞의 집은 주변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낡고 허름했다.

하긴, 곧 재개발돼 허물 집을 누가 수리하겠는가,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그냥 살다가 가는 거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난 1월 김상욱 씨의 장례절차가 끝나자마자 법적으로 상속 포기 과정을 마친 김미소 양은 이곳으로 전입신고를 마쳤습니다. 이곳이 확실합니다.”

샤이닝 에로우 50대를 모두 수리한 씨드는 남은 마나석을 이용해 비활성화되어 있는 기능들을 하나하나 깨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바로 비가시(非可視) 모드.

지금 씨드는 내 오른쪽 어깨 위에 떠 있지만, 비가시 모드 덕분에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비가시 모드 기능을 열기 위해 F급 마나석을 10개나 소모했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다른 이에겐 보이지 않는 경호원을 옆에 둔 느낌이랄까?

씨드는 플리피에서는 마나석이 워낙 귀하다 보니 만들어만 놨지 기능을 오픈해 본 적도 없었다며 좋아 죽는시늉을 했다.

남은 49대까지 비가시 모드를 작동시키려면 억 소리가 나지만 일단 진행 중이었다.

이미 콜팡에 F급 마나석 10억 원어치를 주문했다.

전날 활성단을 팔아 번 돈이 10억인데, 그 돈을 고스란히 샤이닝 에로우에 투자했다. 세금과 수수료를 빼면 순이익이 10억이 안 되니, 더 들어간 셈이다.

나는 귓가에 울리는 씨드의 말에 눈앞의 집을 다시 바라봤다.

“근데 왜 아무도 없어?”

내가 이곳에 도착한 게 밤 9시쯤.

초인종이 없어 대문을 두드렸으나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집엔 불이 꺼져 있고 인기척도 없었으며, 지금까지 3시간이 다 되도록 집 앞을 지켰으니 집안엔 사람이 없는 게 확실했다.

“김미소 양 명의의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알려드릴까요?”

씨드의 물음에 나는 고민을 해야 했다.

낯선 이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불쾌할까? 전화로 만나자고 하는 게 더 불쾌할까?

그렇게 내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씨드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10미터쯤 떨어져 있는 골목 어귀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등 뒤에 누군가를 업고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가녀린 체구의 여성.

내가 그녀를 바라본 순간 그 여성이 가로등 밑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씨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캔 결과 김미소 양과 그 동생 김미나 양입니다.”

나는 씨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 오도카니 서 있는 김미소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미소 씨?”

그리고 들려온 건 돌고래도 울고 갈 초음파 공격이었다.

“꺄아악-!! 꺼져! 이 변태 새끼야!!”

***

그 그림자가 입을 여는 순간 김미소는 확신했다.

저 그림자의 주인이 이곳에 이사 온 후부터 자신을 흘끔흘끔 쳐다보던 옆집의 변태라고 말이다.

그래서 냅다 소리를 질렀다.

“꺄아악-!! 꺼져! 이 변태 새끼야!!”

이 정도 소리면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 드물다고 해도 사람들이 나올 테고 그러면 저 변태 자식도 도망갈 테니까.

“…에?”

그런 그녀의 예상대로 당황한 듯한 그림자는 다가오려던 걸음을 멈춘 채 어벙한 소리를 내뱉었다.

“꺼지라고 변태 새끼야! 경찰 불러줘? 콩밥 먹게 해 줄까?!”

그녀는 그 기세를 타고 더욱 크게 외쳤다.

“언니…무슨 일 이써?”

그녀의 등에 업혀있던 김미나가 놀라서 잠을 깰 정도로.

그런 김미소의 의도가 먹혔는지 주변 낡은 집들에 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끼이익.

그리고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튀어나오며 외쳤다.

“미소 씨 괜찮아요?! 무슨 일입니까!!”

그 사내를 본 김미소의 얼굴은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일그러져 갔다.

그 사내가 바로 평소에 그녀를 훔쳐보던 옆집 남자였으니까.

‘그럼 이 사람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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