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아버지의 유산 (1).
도깨비길드.
평양을 거점으로 평안도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
그 도깨비 길드의 스카우트인 임수철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수철. 너 기사 봤어?”
상대는 입사 동기인 조새벽, 평소엔 인터넷 검색하는 게 주 업무인 언론대응팀 소속의 배짱이 녀석이었다.
“무슨 기사? 네가 좋아하는, 한세연 열애설이라도 터졌냐?”
임수철은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가뜩이나 요즘 재벌들이 길드를 새우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신규 길드원 영입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그로서는 동기의 전화가 영 달갑지 않았으니까.
“어허-. 이렇게 귀찮은 티 팍팍 내면 곤란할 텐데-.”
하지만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동기의 반응은 능글맞기 그지없었다.
‘이 새끼 뭔가 물었구나.’
순간 조새벽이 무언가 소스를 가지고 있음을 감지한 임수철은 바짝 꼬리를 내렸다.
“어허-. 동기님 왜 이러시나. 내가 언제 귀찮은 티를 냈다고. 그래 무슨 기산데 말해봐.”
“맨입으로?”
“동기 사랑 나라 사랑 몰라? 우리 사이에 왜 이래?”
“그 동기 사랑을 금전적으로 실천해볼 생각은 없나. 동기님? 치킨 한 마리에 맥주 한잔이면 내 입에 달린 자물쇠가 좀 가벼워질 것도 같은데.”
조새벽의 너스레에 임수철은 피식 웃었다.
“알았다. 알았어. 이따 끝나고 시원하게 한잔 산다. 그러니까 이제 무슨 기산지 말해봐.”
“오케이 접수. 내가 말로 하는 것보단 기사를 보는 게 나을 테니까 기사 링크 보낼게. 치킨에 맥주 잊지 마라-!”
통화가 끝나고 조새벽이 보내준 기사를 확인한 임수철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어다!’
5인팟 기준 1시간 10분 기록을 30분이나 단축해 클리어했다.
그것도 혼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성자 센터에 올라온 불암산 F급 던전의 기록을 확인한 임수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불암산 F급 던전 클리어 기록: 40분. (강현)
이름이 달랑 한 개인 걸 보니 서포터도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단 거고.
‘강현….’
임수철은 강현이란 이름에서 슈퍼 루키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것을 느꼈다.
***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김상욱의 인벤토리에서 가져온 아이템들을 꺼내 놓았다.
“이것들은 다 뭡니까 사령관님?”
인벤토리에서 나온 씨드는 펼쳐놓은 김상욱의 아이템들 위로 날아다니며 질문을 던졌다.
전투를 마치자마자 내 명령으로 인벤토리에서 전함들을 수리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씨드는 왠지 신나 보였다.
“주인을 찾아줘야 할 물건들.”
반지갑과 사진 그리고 도화지에 그려진 낙서와 같은 그림.
그중 그림의 위에 멈춰선 씨드가 두려움에 가득 찬 어조로 물어왔다.
“저 몬스터들은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플리피에 있었다면 재앙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몬스터들입니다. 실존하는 몬스터들입니까?”
순간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올뻔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저 그림은 누군가에겐 추억이며 기억이고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사람이 남긴 소중한 유품이니까.
그런 물건들을 앞에 두고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
“죽은 사람이 남긴 유품이야. 그 그림은 그 사람의 딸이 가족을 그린 거고.”
“아….”
내 대답에 씨드는 잠시간 말을 잃었다.
“이곳 역시 몬스터 때문에 죽은 이들이 많은 모양이군요.”
아마 플리피 행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 모양인지 씨드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있었다.
‘생각보다 감성이 풍부한 녀석이네.’
녀석과 대화할 때면 가끔 녀석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씨드는 감성적인 면이 많았다.
지금처럼.
“아니. 몬스터보다 못한 놈들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야.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한테 말이야. 나는 지금부터 그 억울한 죽음의 내막을 풀어줄 생각이고.”
“설마, 동족에게 살해당했다는 말씀입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어조로 질문을 하는 씨드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공동의 적인 몬스터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동족을 해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게, 인간이니까.”
참담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욕망에 굴복해 동족을 해하는 인간.
지구의 역사는 그 피의 수레바퀴 속에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
나의 대답에 씨드는 말끝을 흐렸다. 내 짐작이지만 씨드를 만들어낸 플리피인 사이에서는 동족을 해하는 일이 흔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능동형 인공지능.
파악해 본 바론 자체적으로 학습하며 성장을 하는 씨드의 정신연령은 지구인으로 치면 사춘기 소년과도 같았다.
플리피인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의 문화와 관습, 습성 등을 아직 학습 중이기 때문인 걸로 생각이 됐다.
한마디로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소리.
지금 이 일이 씨드에게 어떤 충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익숙해져야지.’
앞으로 씨드가 살아가야 할 곳은 플리피 행성이 아니라 지구, 바로 나의 옆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을 잊은 씨드를 뒤로하고 지갑을 들어올렸다.
사진과 그림은 유품으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그것으로 김상욱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만약 내가 아공간 조작에 서툴러 아이템을 빼내지 못했다면 나는 당연히 이 지갑을 유품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지갑의 브랜드를 봤을 때, 그렇게 오래전에 출시된 브랜드는 아니었다.
‘꽤 클래식한 분이시네. 헌터 와치가 버젓이 있는데 지갑을 가지고 다니시다니….’
각성자에게 헌터 와치는 의무이자 족쇄였다.
신분증과 전화, 은행 업무, 일상생활에 관한 모든 것이 헌터 와치로 가능한 시대에서 각성자가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지갑에도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아내가 사준 지갑이라던가 하는.
때문에, 지갑을 집어 드는 내 손길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가족분들께 전해드려야 하니, 죄송하지만 제가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지갑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나는 반지갑을 조심스럽게 펼쳐 들었다.
나는 그렇게 김상욱의 지갑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익숙한 얼굴이 들어있는 신분증, 그리고 젊은 시절로 보이는 그가 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부인이신가 보군.’
그 외에 특별한 거라면 돈을 빌릴 때 쓴 차용증과 그 돈을 모두 갚았다는 영수증이었다.
그것 말고 지갑에 들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유일한 단서는 이 신분증 하나뿐이었다.
“흠…. 흥신소 같은 데 의뢰해야 하나?”
신분증에 주소가 적혀 있어도 과연 그 주소지에 가족이 그대로 살고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내가 이렇게 중얼거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차용증.
일반적인 대출 계약이 아니라 차용증을 썼다는 건 아는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는 뜻이고.
‘그렇다는 건 김상욱 씨의 자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물론 다 갚았다는 영수증을 받기는 했지만, 이 외에도 빚이 없을 거란 판단은 하기 힘들었다.
차용증에 쓰여있는 금액이 고작 1억에 불과했거든.
F급 헌터가 착용하는 장비의 가격은 평균적으로 3억 중 후반. 고작 1억이라는 금액으론 중고라 해도 모든 장비를 맞추기 힘들었다.
블랙마켓이든 개인이든 중고로 팔 때와 구매할 때는 또 가격이 다르니까.
다른 채무가 있다면 집이 넘어갔을 수도 있다.
미성년자에 불과한 두 딸이 은행이나 제2, 3금융권 사람들에게서 집을 지켜냈을 거란 기대는 하기 어려웠다.
그게 전세든 자가든 말이다.
“일단, 이 주소로 내일 찾아가 봐야겠네.”
그렇게 신분증의 주소를 보며 내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사령관님. 광역 네트워크 접속을 허락해 주시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말이 없던 씨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응? 광역 네트워크?”
“지구의 언어로는 인터넷이라고 하더군요.”
“아-. 인터넷. 그곳에 접속해 봐야 김상욱 씨에 관한 정보는 찾기 어려울 거야. 각성자 특별법 때문에 각성자에 관한 정보는 1급 기밀 처리돼서 보안이 철저하거든.”
각성자 센터의 각성자 정보 보호는 정말 엄중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안이 뚫렸다는 소문이 없었으니까.
이쪽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암암리에 들리는 그런 소문조차도 없는 걸 보면 정말 보안이 철저한 듯싶었다.
오히려 정보 탈취를 시도했던 어떤 단체가 다음날 세상에서 그 존재 자체가 증발했다는 소문은 있었어도.
그렇게 단언하는 내게 씨드가 말했다.
“그건 각성자 김상욱에 관한 정보지 인간 김상욱에 관한 정보까지 그 정도로 보안을 철저히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어?”
“일단 사진을 가지고 계시니 본인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어 보입니다. ‘SNS’라는 것도 있고.”
“…어…엉?”
인스타그램이니 페이스북이니 하지 않다 보니 깜빡하고 있었다.
지금 시대만큼 개인 정보가 인터넷에 범람하는 시기가 없다는 것을.
그 개인 정보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말이다.
“그럼…. 한번 해 볼래?”
“맡겨만 주십시오. 사령관님.”
씨드는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인터넷 접속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근데 쟤는 지구에 온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됐는데 SNS를 아는 거야?’
어쩌면 씨드의 적응력은 내 생각보다 뛰어날지도 모르겠다.
***
그렇게 씨드에게 인터넷 접속을 허락한 뒤 콜팡의 판매자 페이지로 접속했다.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 카테고리 아래로 새롭게 만든 제품 카테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저게 뭐냐고?
제품명이다.
작명 센스라고는 쥐뿔도 없는 내가 저 제품명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를 거다.
제품 설명은 발모제보다 더욱 단출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네’라는 제품 설명 문구와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담긴 새끼손톱 크기의 단약(丹藥) 하나가 담긴 사진 한 장.
그게 전부였다.
한 개의 가격은 1000만 원으로 설정했다.
솔직히 내가 테스트를 해 본 게 아니라서 확신이 없었던 게 가장 컸다.
일단 개당 천만 원에 팔고 나중에 성능이 확실하게 검증되면 또 모르지. 발모제처럼 경매장에 들어갈지도.
물론 나는 해피니스 시스템을 믿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판매 개수를 확인하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 팔렸네?”
어젯밤에 올려놓았던 활성단 100개가 하루 만에 모조리 팔려나갔다.
천만 원은 새끼손톱만큼 작은 단약 하나의 가격치고는 상당히 고가인데도 말이다.
‘역시 정력에 좋다고만 하면 바퀴벌레도 진작 멸종했을 거라는 학계 정설이 사실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스크롤을 아래로 내린 나는 제품 후기 100개가 올라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콜팡의 제품 후기는 실구매자, 그것도 구매 결정자들만 올릴 수 있다.
그런데 100개의 후기가 올라왔다는 건 실구매자 100명이 모두 후기를 올렸다는 뜻이었다.
“근데 이건 또…뭐야?”
후기를 클릭한 나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왜 여기서 음식 자랑을 하고 있어?”
순간 내가 다른 제품 페이지를 클릭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기 내용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스크롤을 아래로 내린 나는 왜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제품 후기페이지에 밥상 사진이 올라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文pia덕후: 밤이 무서웠던 50대 아잽니다. 어젯밤 발모제가 언제 입고되는지 궁금해서 판매자님 페이지에 접속해 봤는데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가 있는 것을 봤습니다.
솔직히 보는 순간 눈으로 욕했습니다.
발모제나 만들지 쓸데없는 거나 만든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하나 구매했습니다.
처음 발모제가 출시됐을 때 욕하면서 안 산 걸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니까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밤이 무서웠던 50대 아재니까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구매한 제품.
저는 신세계를 맛봤습니다.
이게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혹시나 못 믿으시는 분들을 위한 인증사진을 올립니다.
(사진)
오늘 아침 밥상입니다.
추신: 판매자님 ‘남자한테 참 좋은데’ 이 제품도 정말 감사하지만, 발모제는 언제쯤 입고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첫 제품 후기인 이 글을 시작으로 모든 제품 후기는 밥상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상다리 부러지겠는데…?”
솔직히 조선 시대 임금님수라상도 저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싶은 사진들이 줄을 이었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아….
하룻밤 만에 10억을 벌었다.
몇 주 전이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
분명 기쁘고 좋은 일인데. 왜 난 슬픈 걸까?
그렇게 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상점 창을 열어 다시 활성단을 구매하려 할 때였다.
-경이적인 업적!
-2022년 6월 11일 21시 12분.
-본 해피니스 시스템은 전(全) 우주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기록을 세운 사용자 강현 님의 업적에 찬사를 보냅니다.
-사용자 강현 님이 세운 업적은 업적 창에 기록되며, 즉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강현 님이 세우신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선업(善業)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선업 포인트는 차후 오픈될 업적 상점에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사용자 강현 님의 업적에 찬사를 보내며 본 시스템은 강현 님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업적 메시지였다.
거기다가 보상으로 주어진 선업 포인트는 무려 10만. 지금까지 1천 포인트 단위로 선업 포인트를 받아왔는데 무려 100배가 넘는 숫자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업적 창을 눌러 그 내용을 확인했다.
[업적: 민족의 자긍심]
[사용자 강현 님은 해피니스 시스템을 이용해 천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긍심을 일깨웠습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문자 창제의 원리를 가진 나라’라는 자긍심이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속에 좀 더 뚜렷이 깃듭니다.]
[현재 자긍심을 느낀 대한민국 국민 수: 10,020,135명]
[경이적인 ‘속도’로 기록을 세운 사용자 강현 님의 업적은 세계수에 기록되며 보상으로 100,000의 선업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보유 선업 포인트: 103.000]
10만 3천의 선업 포인트.
아직 업적 상점이 열리지 않아 어떻게 사용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기뻤다.
다다익선, 자고로 포인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