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새로운 기록 (2).
‘음? 뭐지?’
던전을 나선 나는 주변의 분위기에 잠시 멈칫했다.
‘분위기가 왜 이래?’
게이트 키퍼를 위시한 모든 사람이 왠지 당혹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뭐야 이거? 왜 나만 뭘 모르고 있는 거 같지?’
“저. 강현 씨. 맞으십니까?”
“네. 맞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니요. 없습니다.”
내가 던전에 입장할 때 나를 호명했던 게이트 키퍼는 어딘가 얼빠진 얼굴로 내 이름을 확인했다.
왠지 바보 같았다.
‘아니, 던전에 들어간 놈이, 나 혼잔데 다른 사람이 나올 수가 있어? 바보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앉았던 의자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이 맛에 던전 헌팅을 도는구나.’
그야말로 캐쉬템의 힘으로 헌팅을 하긴 했지만 내심 사냥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레벨도 3이나 올랐고. 개미를 상대하는 전투방식도 전보다 능숙해졌거든.
때리는 타격감이 뭐랄까.
더 찰져진 것 같은?
거기에 샤이닝 에로우의 성능도 확실하게 확인했고.
원샷 원킬.
역시 능동형 AI라더니 학습능력이 굉장히 좋았다.
나중엔 몬스터의 마나석을 채취하기 위해 사용하던 레이저를 압축해 스스로 관통력을 높이기도 했으니까.
하여튼 그렇게 사냥결과에 만족하고 있는 내 눈에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던전 청소부들과 게이트 키퍼들이 들어왔다.
던전에서 나온 지 오 분은 지난 것 같은데 그들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기분 나쁜 정적.
“저기요. 키퍼님.”
내가 손을 들며 게이트 키퍼를 부르자 그는 쪼르르 내게 달려왔다.
“네! 헌터님! 말씀하십시오!”
뭐지 이 반응?
왜 이렇게 힘이 들어간 건데? 눈빛은 왜 이렇게 초롱초롱하고?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키퍼들의 태도에 의아했다.
바짝 얼굴을 들이미는 키퍼를 피해 몸을 조금 뒤로 물리며 나직하게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청소 안 하시나요?”
“아! 청소요? 해야죠. 해야 하는데….”
잠시 말끝을 흐리던 그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 헌터님 죄송한데…. 던전에 청소부분들과 함께 들어가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미안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헌터님의 던전 클리어 속도가 기록적이다 보니, 혹여 잔여 몬스터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부탁입니다.”
“기록적…이요?”
“모르셨군요? 헌터님께서 불암산 F급 던전 클리어 기록을 경신하셨습니다. 기존 1시간 10분에서 40분으로 무려 30분이나 앞당기셨습니다.”
“에?”
‘기록을 세웠다고? 내가?’
“그것도 기존기록은 5인 파티 기록이었습니다. 해서 헌터님의 기록은 각성자 센터에 보고가 될 거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정식 기록으로 인정받을 겁니다.”
‘던전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록을 깰 정도였을 줄이야.’
뭔가 가슴 한가운데가 뜨끈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헌터님께서 꼼꼼하게 몬스터들을 처리하셨겠지만, 그…. 저분들 안전을 위해서라도 함께 들어가 주시면 안 될까 해서 부탁을 드려 봅니다. 헌터님.”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이런 게이트 키퍼가 있었던가?’
던전 청소부의 안전을 걱정해 주는 게이트 키퍼라니.
신유빈이 D등급에 오르자마자 수원의 D급 던전 기록을 1시간 앞당겼을 때도 이런 키퍼가 있었다면 내가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랬다면 내가 각성을 하지 못했겠지만.
“그렇게 하시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던전 청소부들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가 던전에서 나오는 일도 없었을 거다.
사실 헌팅이 별로 힘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 편하자고 던전 청소부들을 10시간 동안 대기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각성자 센터 소속의 게이트 키퍼들이야 원래 이곳을 지키는 게 일이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던전 청소부들은 이번 일만 마치면 귀가할 수 있다.
불쾌하지는 않냐고?
전혀.
5인 파티 기록을 개인이 30분이나 단축했다면 나라도 의심을 먼저 했을 것이다.
혹시 놓친 몬스터가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나야 흘린 몬스터 따위 없다고 자신하지만, 저들의 입장은 다르지 않겠는가.
그렇게 던전 청소부들보다 먼저 던전에 입장하는 나의 등 뒤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위서는 안 써도 되겠네. 다행이다.”
***
청소는 빠르게 끝났다.
그냥 지켜보고 있기 뭐해서 나도 도왔다.
놀면 뭐할 거야 한 손이라도 거들어야지.
어제 뽑기에서 나온 힘의 묘약을 먹고 14레벨에 오르며 받은 스텟을 모두 힘에 몰빵하고 나니 내 힘은 무려 166이 되었다.
그렇다고 중갑이 경갑처럼 가벼워진 것은 아니지만 더는 끙끙거리며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는 말씀.
거기에 시스템에 표시되진 않지만 모든 액세서리도 힘을 올려주는 것으로 착용하고 있으니 단단한 개미의 키틴질 외갑도 내 손 앞에선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던전 청소부 생활 10년 동안 익혀놓은 지식과 손놀림도 한몫했고.
그렇게 불과 30분 만에 청소를 마친 던전 청소부들이 나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 채 던전을 떠났고, 나는 다시 던전에 홀로 남게 되었다.
“자. 그럼 이제 내 일을 시작해 볼까?”
이젠 내가 인벤토리를 청소해야 할 차례였다.
이게 던전을 10시간이나 예약한 진짜 이유다.
빗자루도 10개나 구매해놨고, 마나 포션도 넉넉하게 챙겨왔다.
아까 던전을 클리어하며 세어본 인벤토리의 개수는 대략 50~60개 사이.
저번처럼 포션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뚜두둑.
가볍게 몸을 푼 뒤 눈앞에 보이는 인벤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젠 시스템이 부여한 청소부 일을 할 시간이다.
***
인벤토리 청소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틈틈이 아공간 조작을 펼쳤다.
여전히 최대 크기는 지름 5㎝의 원이었지만, 노력한 덕에 길고 좁은 타원으로 변형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퀘스트가 없이 얻을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균열의 밖은 던전이었네.’
힘들게 내보낸 인벤토리의 아이템이 청소를 마치고 나오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청소를 마친 인벤토리는 약 50개.
그 50개의 인벤토리를 청소하고 얻은 건 고작 작은 만년필 하나였다.
물론 내 목적은 레벨업과 특성 레벨을 올리는 것이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유가족에게 찾아주기도 힘들겠네.”
만년필을 인벤토리에 챙기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남은 건 보스방 안에 있는 인벤토리들뿐이다.
[각성자 김상욱의 인벤토리]
보스 방에 들어서 제일 먼저 보이는 인벤토리에 손을 뻗을 때였다.
띠링.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퀘스트: 아버지의 유산]
[등급: F]
[내용: 각성자 김상욱은 불암산 F급 던전에서 사냥하던 중 파티원들의 배신 때문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사고사로 처리되었고 그 누구도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했다. 그의 유품을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억울하게 죽은 김상욱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내자.
[진행상태: 선택 중]
[보상: 포인트 20. 무작위 아이템 1.]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거부]
퀘스트를 수락하고 눈앞의 인벤토리를 바라봤다.
각성자 김상욱.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퀘스트 내용을 훑어보면 왠지 머더러들한테 당한 것 같기는 한데….’
던전과 관계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암암리에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파티를 이룬 머더러들이 신규 파티원을 받아들인 후 던전에 들어가 금품과 장비들을 갈취한 뒤 살해하고 사고사로 위장한 후 던전을 탈출하는 방식으로 시체를 처리한다는.
던전 청소부 생활 10년 동안 나도 한두 번 본적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의심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시체도 증인도 증거도 남지 않는 던전 살인.
내가 본 이들은 5명이 던전에 들어가서 세 명이 나왔다.
그들은 히든 보스가 나타나서 어쩔 수 없이 코어를 부수고 탈출했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보기에 그들의 장비는 너무 깨끗했다.
격전을 치르고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답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다.
내가 아는 그 사건도 그저 훈방조치 된 거로 알고 있다.
그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각성자 센터에서는 던전 안에서도 작동하는 마나 캠을 만들어 내놓겠다고 말했지만.
글쎄.
그 얘기가 나온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소식이 없는 거 보면 못 만드는 거 아닐까?
‘인벤토리에 들어가 보면 이 퀘스트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알게 되겠지.’
나는 아직 자물쇠가 잠겨있는 인벤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특성 아공간 조작 F (LV1) 이 발현됩니다.
처커덕.
내 귀에만 들리는 소리와 함께 잠겨있던 자물쇠가 열리며 인벤토리가 녹색으로 빛났다.
***
김상욱의 인벤토리 안은 여느 각성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공을 부유하는 수많은 물건 속에서 김상욱의 가족들에게 전달할 유품을 골라야 했다.
그리고 그건 그리 힘들지 않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과 찍은 듯한 사진과 지갑 그리고 네모난 도화지 위에 그려진 낙서 같은 그림 하나.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세 개의 사람 형체 위로는 ‘언니, 아빠, 나’라고 쓰여 있었다.
아마도 막내딸이 그려준 그림을 소중하게 간직한 모양이다.
나는 사진을 들여다봤다.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순한 인상의 남자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
그리고 홀라당 빠져버린 앞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는 꼬마 하나.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님이겠지.
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진이고 그림이고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편부모 가정이었을 텐데 이젠 고아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허공을 올려다봤다.
‘대체 왜 이런 퀘스트를 주는 거냐?’
분명히 이 앞에 청소했던 인벤토리의 주인들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터인데 시스템은 왜 김상욱의 인벤토리를 만지려 할 때 퀘스트를 주었던 걸까?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겠지?”
조용히 물어봤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래. 그럼 직접 알아보도록 할게. 왜 이런 퀘스트들만 주는지 그리고 김상욱이란 사람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 올렸던 고개를 내려 인벤토리 내부를 둘러봤다.
따로 분류한 아이템을 제하고도 약 서른 개의 아이템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 안에 답이 있겠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찾으면 될 일이다.
대답 없는 시스템이 바라는 것이 그것일 테니까.
나는 아공간 조작을 이용해 균열의 틈을 벌렸다.
길이 10㎝ 너비 2㎝의 타원.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 중에서 틈을 통해 밖으로 빼낼 수 있는 아이템을 골라야 했다.
고심 끝에 고른 것은 지갑과 사진 한 장.
마나 포션을 마셔가며 유지한 균열을 통해 조심스럽게 두 개의 아이템을 빼낸 후, 청소를 마치고 시스템이 허락한 전달할 유품을 골랐다.
도화지에 그려진 삐뚤빼뚤한 낙서 같은 그림.
이걸로 내가 김상욱의 인벤토리에서 가지고 나온 아이템은 총 세 개.
이 중에 김상욱의 억울한 죽음을 풀 실마리가 있기를 바랐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녹색의 빛으로 사라져 가는 김상욱의 인벤토리를 보며 그의 명복을 빌어줬다.
“이제 남은 건 가족을 찾는 일이구나.”
아직 보스 방에 6개의 인벤토리가 남아 있었지만, 코어를 부수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예상보다 1시간 빠른 시간이었다.
하루를 투자해 얻은 건 고작 3레벨 업과 특성 레벨이 몇 단계 오른 것뿐이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제 E급 승급 테스트를 해도 될 것 같은데?’
적어도 나는 내가 더는 F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
그 시간 인터넷 포털의 한쪽 귀퉁이에 짤막한 기사가 떠올랐다가 묻혔다.
‘F급 헌터 강현, 불암산 F급 던전, 기존기록보다 30분 앞당겨 클리어.’
그리고 그 기사는 일반인들보다는 새로운 루키를 영입하고자 하는 길드의 시선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