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새로운 기록 (1).
검은색 빛으로 일렁이는 던전의 입구를 지나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예의 그 개미 동굴이었다.
저번에 병정개미까지 포함해 한 번에 50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홀로 처치했다.
‘여왕개미만 없으면 껌이지 뭐.’
물론 여왕개미가 나타날 걸 대비해 아이템을 따로 준비해 두기도 했으니 놈이 또 나타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이제 나한테 방패만 있는 것도 아니고. 흐흐.’
***
어제. 나는 한가지 선택을 해야 했다.
절대적인 하나냐 범용적인 다수냐의 갈림길.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선택을 했다.
절대적인 하나.
말 그대로 일격필살.
가지고 있는 탈모제는 단 한 병.
E급으로 상점 등급이 오른다면 더 구매할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100㎖ 한 병에 불과했다.
그걸 내가 조금 사용하기도 했고.
그렇기에 나는 그 탈모제를 기함인 샤이닝 에로우 No 1에 모두 코팅하기로 했다.
그 선택을 한 이유는 단 한 번의 코팅으로 보여준 샤이닝 에로우의 업그레이드 위력 때문이었다.
무려 마법방어력과 물리방어력 그리고 전함의 내구성이 10% 이상 향상된 것.
여러 번 바르면 그만큼 경도와 강도가 올라간다는 시스템의 추가 설명처럼 코팅을 계속할수록 샤이닝 에로우 No 1의 방어력과 내구성은 향상되었고.
투웅!
마침내 테스트는 정면에 세워뒀던 타워 실드를 관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개미들의 이빨도 쉽게 뚫지 못했던 타워 실드를 종잇장처럼 뚫으며.
문제라면 있었다.
샤이닝 에로우는 원래라면 마하 10의 속력까지 내는 게 가능했지만, 행성 플리피와는 다른 지구의 중력과 공기밀도 때문에 지구 대기권 내에서의 속력은 고작 마하 1에 불과하다는 점과.
“이거 완전 돈 먹는 하마네….”
그 한 번의 엔진 가속으로 소모하는 마나석 양이 무려 F급 마나석 반 개 분량이라는 것.
도깨비 길드에서 물량을 풀어 마나석 가격이 급락한 덕에 지금 F급 마나석 한 개의 가격이 200만 원.
저 화살 한 발에 100만 원이 날아가는 거다.
마나석 가격이 원래대로 개당 300만 원으로 돌아가면 한 발에 150만 원인 샘이고.
그것만 제외한다면 강화된 샤이닝 에로우의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 어떤 궁수가 날린 화살보다 빠른데, 심지어 그 화살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비행궤도를 틀고 적을 요격까지 한다.
거기에 지금 업그레이드된 것은 한발에 불과하지만, 상점 등급을 올려 겔로드 족의 탈모제를 더 구매한다면 최대 50발까지도 업그레이드시켜 운용할 수 있다.
어쩌면 해피니스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여기에서 성능을 더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도 같고.
꽝인 줄 알았는데, 금전적인 부분만 뺀다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무기를 얻은 것이다.
마나가 없는 물품은 던전 내에서 제대로 된 위력이 발휘되지 않기에 총화기는 던전 내에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소리가 너무 크기도 했고.
하지만 여전히 필드의 몬스터를 막는 데는 총과 중화기가 사용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섬멸 자체가 불가능한 해양 몬스터를 막기 위해 해안포대가 설치되어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설치된 포대 또한 그런 용도고 말이다.
나는 그 총알보다도 빠른 화살을 얻었다.
무겁고 단단한 갑옷과 그 어떤 궁수가 쏜 화살보다도 빠른 화살.
인벤토리에 가득한 마나석과 포션, 그리고 버프 스크롤.
나는 오늘 무쌍을 찍을 준비가 되어있다.
***
던전의 입구를 통과한 후.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미리 인벤토리를 열어 버프 아이템을 꺼냈다.
그리고 내 손길에 따라 허공에 떠오르는 50개의 샤이닝 에로우.
“반갑습니다. 사령관님.”
어젯밤 콜팡에 주문한 마나석으로 밤새 전함들의 수리를 마칠 수 있었다.
등 뒤에 있던 입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즉시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이미 확실한 나만의 공략 방법이 있는 이상 고민은 무의미했다.
꽈아아앙!
들어 올렸던 발로 있는 힘껏 땅을 내려치자. 곧 거대한 굉음이 동굴을 울리며 퍼져 나갔다.
‘이런 걸 진각이라고 하던가?’
키에에엑!
저 멀리서 내 부름에 화답하는 개미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두두두두.
나를 향해 달려오는 놈들의 발소리가 동굴을 뒤흔들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에게 화가 많이 난 모양.
그렇게 통로 저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개미들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라. 경험치들.’
오늘따라 거대 개미들의 면상이 참 반가웠다.
난 이제 내 안에 더는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놈들을 마주하고 확신할 수 있었다.
좌악-!
미리 꺼내둔 여러 스크롤과 포션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발생한 빛과 효과들이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힘이다. 이 새끼들아.
***
사냥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한번 해본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저번보다 더 찰떡 지게 개미들을 후드려 팰 수가 있었다.
키에엑!
돌진해 들어오는 개미를 보며 주먹을 꾸욱 쥐었다.
까드득!
판금 건틀렛의 손가락 마디가 금속음을 내며 꽉 조여들었다.
동시에 모든 힘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발을 굳건히 내디뎠다.
쿵!
“으압-!”
발에서 시작된 힘을 그대로 주먹에 실은 나는 짧은 기합과 함께 앞으로 내질렀고.
끼에엑-!
쾅-!
퍽!
그 주먹에 맞은 거대 개미의 머리는 해체되듯 터져나갔다.
후드득-.
나는 주먹에 묻은 진득한 초록빛 액체를 바닥에 한 번 털어준 뒤 전황을 살폈다.
주변엔 온통 여기저기 으깨져 죽어가는 개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허공을 선회하며 한 마리 한 마리, 내가 만든 빈틈을 파고들며 개미들을 요격하는 샤이닝 에로우.
쉬익!
푹-!
스스로 궤도를 비틀어 한 번에 한 마리씩. 대가리를 꿰뚫는 걸 보니 씨드도 사냥에 맛을 들인 모양이었다.
‘자식 곧잘 하네. 처음엔 전함을 무식한 방법으로 사용한다고 그렇게 기겁을 하더니.’
아, 소모한 연료는 어떻게 충전하고 있냐고?
남은 49대의 전함이 마나석을 들고 대기 중이다가 샤이닝 에로우 No 1이 돌아오면 바로바로 보충해주는 식으로 충전하고 있었다.
일종의 공중 급유랄까?
그렇게 처치한 개미의 숫자가 40마리.
풀 도핑 한 타임. 그러니까 10분 만에 첫 전투는 끝이 났다.
대충 계산해 보니 병정개미와 보스 방을 지키고 있는 놈들이 10~12마리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 정도야 껌이지.”
레벨도 2레벨이 올라 13이 되었다.
지난번에 병정개미와 50마리의 개미들을 쓸어버리고 올린 레벨이 5인 것과 비교해 보면 레벨이 오를수록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늘어나는 듯싶었다.
물론 아직 병정개미와 남은 개미들이 있었지만.
전투를 마친 나는 타워 실드를 거두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곤죽이 되고 잘려나가 널브러져 있는 개미들.
내가 던전 청소부일 적에 항상 봐왔던 광경이었다.
후우-.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 이 광경을 내가 만들었다니.
고블린 한 마리와 목숨을 걸고 엎치락뒤치락했던 게 불과 보름 정도 전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내가 감상에 젖어있는 사이 샤이닝 에로우 함대가 날아다니며 마나석 적출을 시작했다.
‘제법 쓸만한 녀석이야.’
그 모든 전함을 통제하는 건 유일한 관제 AI인 씨드.
‘제법 눈치도 있는 것 같고.’
마나석 회수를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작업하는 걸 보면 눈치라는 게 있는 놈인 듯싶다.
원래 했던 일이 거대 몬스터를 사냥해 마나석을 채취하는 거였다고 하더니 마나석 채취하는 게 제법 능숙하다.
그렇게 씨드가 작업하는 걸 지켜보던 나는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아직 치워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보스 방에 있을 병정개미와 그 똘마니들에게도 자본주의의 쓴맛을 보여줄 차례였다.
***
각성자 센터 소속의 공무원인 게이트 키퍼 한상훈은 좀 전에 들어간 헌터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F급 헌터가 솔로 플레이라니. 죽으려고 환장한 것도 아니고….’
그는 요즘 각성자 센터가 돌아가는 꼴이 영 마뜩잖았다.
아무리 열 시간을 예약했다고 해도 F급 헌터 혼자 던전에 들어가는 건 예전이었다면 허가가 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요즘 돈에 미친 각성자 센터는 이런 자살행위와 같은 헌팅 허가도 아무렇지 않게 내주었다.
비록 말단에 불과하지만, 각성자 센터에 소속돼 국가에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 그에겐 탐탁지 않은 세태이기도 했다.
‘몇 시간이 걸리려나? 5시간? 6시간?’
혼자 들어갔으니 최대한 안전하게 공략한다면, 6시간은 걸릴 것이다.
불암산 F급 던전의 최단 시간 클리어 기록은 1시간 10분이었다. 5인 정규 파티로.
그러니 혼자 공략하려면 6시간은 잡아야 할 터.
그게 아니라면, 입구가 더 빠르게 열릴 수도 있다.
던전 안에 헌터가 전멸한다면 입구는 예상시간보다 빠르게 열리고 또 빠르게 닫히니까.
코어를 부수지 않아도 던전 스스로가 초기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망한 헌터들의 시체는 찾을 수 없다.
한상훈도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 일을 겪어봤다.
불과 몇 개월 전 이곳 불암산 던전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니까.
‘하. 답답하네.’
힘이 없으니 불합리한 일도 참고 넘겨야 했다.
한상훈이 그렇게 힘없는 말단 공무원일 뿐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였다.
“어?! 이거 뭐야?!”
같이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던 동료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한상훈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게 빛나는 던전의 입구.
강현이라는 헌터가 던전에 들어간 지 불과 4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사망 각이네. 이거…. 또 경위서 써야 하는 거야?”
한상훈은 투덜거리는 동료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말이 나와? 조용히 하고 센터에 연락해서 보고나 해!”
“아주…. 지만 정의의 사도지. 제기랄.”
투덜거리는 동료를 한상훈이 노려보자 동료는 입술을 삐죽이며 뭐라 중얼거리더니 스마트 폰을 들었다.
‘결국, 이렇게 됐네.’
또 사람이 죽었다.
이는 올해 들어서 시행된 F급 던전 이용 자율화 정책 때문이었다.
이 정책은 F급 던전에 한해서 파티 정규 인원을 채우지 않아도 입장을 허가해 주는 정책인데.
이는 F급 던전의 수익이 서포터를 배제한 5인 풀 파티를 기준으로 고작 2천만 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온 정책이었다.
F급 헌터들의 불만이 많았으니까.
각성자 센터는 F급 헌터들의 수익을 높이면서도 각성자 센터의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고 이 정책을 시행했다.
사용료만 인하해도 될 일을 자신들의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 파티 인원 제한 규정을 풀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올해 들어 F급 던전에서 사망 사고가 급증하고 있었다.
이곳 불암산 던전에서만 벌써 두 번째 사망 사고이니 다른 던전까지 고려하면 더 많으리라.
‘빌어먹을 대가리 새끼들.’
그렇게 그가 센터의 윗사람들을 욕하고 있을 때. 보고를 마치고 온 동료가 중얼거렸다.
“어? 이거 왜 안 사라져?”
“뭐?”
“아니. 벌써 1분 지나지 않았어? 왜 입구가 안 사라지냐고.”
던전에서 사망한 헌터들의 시체를 수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던전 내의 헌터가 전멸하면 던전의 입구가 열리고 1분 후에 사라지며 초기화가 진행되니까.
전멸한 헌터들의 유해를 수습하려면 던전 안에 들어가서 유해를 수습한 뒤 1분 안에 빠져나와야 하는 셈.
한마디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던전의 입구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분명 1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설마…. 클리어를 했다고? 40분 만에?”
“혼자 들어갔잖아…. 근데 그게 가능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리는 한상훈과 동료.
그들이 멍한 얼굴로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검은 중갑을 입은 헌터가 입구를 빠져나왔다.
“……?”
“……!”
순간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은 던전 입구 앞.
게이트 키퍼들이 떠들던 헌터 사망 소식에 웅성거리던 던전 청소부들마저도 움직임을 멈춘 채 입구를 바라봤다.
직전까지 치열한 전투를 치렀기 때문일까.
군데군데 초록색 피로 물든 중갑의 사내에게서 피어오르는 무거운 기세가, 사위(四圍)를 짓눌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