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33화 (33/202)

33. 우주 전함 샤이닝 에로우.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내 물음에 대한 씨드의 대답은 장황했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건 많지만 정작 마지막엔 꼭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모든 전함이 완전하게 수리가 된다면’이라는 조건 말이다.

“지금 가동되는 전함이 몇 대라고?”

“총 다섯 대입니다.”

내가 부순 것 중에 가동 가능한 전함이 세 대가 끼어있었나 보다.

“그럼 지금 45대의 전함을 모두 수리해야. 네가 말한 이런 거 저런 거 다 가능하겠네?”

“그…렇습니다.”

중간에 약간 뜸을 들이는 대답이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한마디로 지금 저건 다 그냥 고철이라는 거잖아.”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49개의 화살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샤이닝 에로우는 고철 따위가 아닙니다!”

뭔가 발끈한 듯한 씨드의 목소리였지만 그냥 무시했다.

내 눈엔 그냥 고철로 보였거든.

“고철이 아니면 뭔데. 내가 보기엔 고물상에서도 안 가져갈 것 같구만.”

“본 전함을 만든 재원에 대해 아까 설명해 드렸지 않습니까. 본 전함은 절대 고철 취급을 받을 물건이 아닙니다! 플리피 인들의 마법과 과학의 결정체…….”

나는 이어지려는 씨드의 말을 끊어냈다.

“그래서 뭐? 퇴역했다며. 그럼 고철 아니야?”

“퇴역한 건 맞지만 고철은….”

“됐고. 그 잘난 재원이 뭔데? 들어나 보자.”

나는 또다시 이어지려는 씨드의 말을 끊어냈다.

고철에 불과한 화살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게 시간 낭비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씨드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샤이닝 에로우는 아다만티움 합금으로 뼈대를 세웠고 그 위에 오리하루콘 코팅으로 마법을 새겨넣었습니다. 외장갑은 전부 드래곤의 일종인 교룡의 외피를 사용해 물리 방어력과 마법방어력을 올린, 그야말로 마법과 과학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루콘.

메이킹에 대한 문외한인 나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금속이었다.

내가 입는 중갑에도 극히 미세하지만, 아다만티움이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20억이나 주고 구매한 거고.

교룡의 외피라는 건 처음 들었지만 일단 드래곤의 가죽이란 소리에 놀랐다.

“이게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루콘이 들어간 전함이라고?”

나는 휘어진 채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는 화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다만티움 합금이라고 보기엔 너무 쉽게 휘어버렸는데?”

“그건. 그 부분이 전함의 선수와 선미를 연결하는 접합부이기 때문입니다. 워낙 거대한 전함이기에 플리피 인들은 두 파츠로 나누어 전함을 설계했습니다. 당시엔 한 번에 전함의 뼈대를 완성해낼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화살이 중간 부분이 ‘똑’ 꺾여 있었다.

“그럼 이건 이제 못 쓰는 건가?”

똥인 줄 알았던 샤이닝 에로우가 알고 보니 황금보다 비싼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나는 걱정이 앞섰다.

이대로 분해해서 팔아도 손해는 아니겠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작동해서 내가 써먹는 게 가장 베스트니까.

“아닙니다. 자가수복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에너지원만 제대로 공급된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수리가 가능합니다.”

씨드의 말에 나는 반색을 했다.

“그래? 에너지원이 뭔데?”

“그게 좀 구하시기 힘든 물건이긴 한데….”

내 물음에 씨드는 왜인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뭔데? 말해봐 내가 구해줄 수 있는 거면 구해주고.”

“그… 마나석이 필요합니다.”

“응?”

“마나석 말입니다. 이게 거대 몬스터를 처치해야 나오는 거기 때문에 구하기가 매우 힘든 것은 알지만 샤이닝 에로우를 복구하기 위해선….”

설명을 이어가던 씨드는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마나석을 보곤 말을 멈췄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마나석 일곱 개.

최형석 파티와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은 F급 마나석이었다.

최형석과 파티원들은 차마 이것까지 받을 수 없다며 내게 양보를 했었다.

“…….”

“이걸로 부족해? 아! 가동하지 못하는 전함이 마흔다섯 대니까 부족하려나?”

“…….”

이어지는 내 물음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씨드.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씨드는 아주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저. 혹시 사령관님께서는 ‘신’이십니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씨드의 물음.

‘고작 F급 각성잔데 신은 무슨?’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씨드는 나를 완전히 신으로 착각한 듯 나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으며 플리피 인들에 대한 썰을 풀었다.

씨드의 말대로라면 일단 플리피 인들은 작다.

다 자란 성인의 신장이 0.5㎜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인간들이라고 했다.

그런 플리피 인들의 입장에선 길이 80㎝ 지름 1㎝에 불과한 샤이닝 에로우가 거대 전함이 맞았다.

나에겐 고작해야 화살 정도의 크기였지만.

하여튼 그런 플리피 인들이 만들어낸 우주 전함 샤이닝 에로우의 주된 임무는 행성 내에 존재하는 거대 몬스터를 처치하고 마나석을 수급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마나석이라는 게 몬스터를 잡는다고 해서 매번 나오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악전고투를 치르고도 마나석을 얻지 못하고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인벤토리에서 마나석 일곱 개를 턱 하고 꺼내 놓으니 놀란 것이었다.

‘거기에 이것으로 부족하면 더 구해주겠다고 말했으니 신으로 착각을 할 수밖에.’

씨드는 이 정도 크기의 마나석이라면 드래곤하트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고 연신 조잘거렸다.

‘그 동네 드래곤들은 지렁이냐?’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나는 샤이닝 에로우의 수리과정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봤다.

일단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화살 중 하나가 떠올랐다.

[아이템: 샤이닝 에로우 No. 1]

아무래도 저게 씨드가 머무는 기함(旗艦)인 듯싶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기함은 조심스럽게 내가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마나석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둥근 몸체에서 뻗어 나오는 수집 줄기의 머리카락.

안력을 집중해서 보니 그건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카락 굵기의 로봇팔이었다.

‘하하…. 뭔가 귀엽네?’

그 수십 개의 로봇 팔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마나석을 잘라 샤이닝 에로우 안으로 옮겼다.

마치 개미가 커다란 곤충의 사체를 분해해 집으로 옮기는 것처럼.

그렇게 마나석 한 개의 절반 정도를 갈아서 함 내로 이동시켰을 때였다.

“샤이닝 에로우 No. 1 에너지 수급을 완료했습니다. 사령관님 자가수복을 명령해 주십시오.”

씨드는 어딘가 사무적이고 딱딱한 어조로 내게 명령을 내려 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래. 자가수복 시작해.”

“마법진을 활성화합니다.”

“형상기억 마법을 활성화합니다.”

“파손된 부위를 복구합니다.”

“외장갑….”

그 뒤로도 씨드는 뭐라 뭐라 말을 했지만, 솔직히 하나도 알아먹기 힘들었다.

‘아…. 뭐 별거 없네. 뭔가 화려한 이팩트 같은 게 나타날 줄 알았더니.’

하지만 들려오는 씨드의 목소리와는 달리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는 샤이닝 에로우의 모습에 나는 곧 흥미를 잃었다.

“일단 여기 있는 마나석으로 수리할 수 있는 데까지 수리해봐. 부족한 건, 곧 구해다 줄게.”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씨드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곧장 몇 가지 물건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을 왜 왔냐고?

뽑기 때문에 열이 받아 잊고 있었지만, 샤이닝 에로우에서 뻗어 나오던 로봇 팔들을 보고 떠올랐다.

나도 처리해야 할 것이 있다는걸.

화장실로 들어온 나는, 천천히 왼손을 감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샤라랑-.

그렇게 꽤 긴 시간을 갑갑한 붕대 안에 짓눌려 있었으면 풀이 죽을 만도 하건만, 봉인이 풀린 녀석은 여전히 찰랑찰랑 생기가 넘쳤다.

‘이젠 이별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하나 꺼내 세면대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템: 겔로드 족의 탈모제]

[등급: E 급]

[설명: 행성 이리아의 지배 종족인 겔로드 족은 고대로부터 자신의 피부를 단련하는 법을 연구했다. 겔로드 족이 수천 년간 연구한 피부 단련법을 집대성해 만들어 낸 탈모제.]

[추가설명: 여러 번 바를수록 피부의 경도와 강도가 올라갑니다.]

[주의사항: 해당 탈모제는 피부에 닿는 즉시 반응합니다. ‘한올 한올’ 모(毛)의 소중함을 아시는 분이라면 사용을 자제하세요.]

겔로드 족의 탈모제.

손등에 자란 이 흉측한 털들과 이별하게 해줄 아이템이었다.

준비해온 팔레트를 펴고 그 위에 탈모제를 소량 부었다.

발모제를 바를 때처럼 손등에 바로 떨어트리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가지고 온 미술용 붓에 바를 탈모제를 조심스럽게 털이 자란 손등 위에 펴 발랐다.

꼼꼼하게 구석구석.

발모제의 힘이 워낙 강하기에 혹시나 털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내 걱정은 그저 기우였다.

약 10분 후.

사라락.

탈모제의 등급이 발모제보다 더 높았기 때문일까?

약간 따끔하긴 했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던 손등 위의 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피부를 이탈해 떨어져 내렸다.

“하. 하하하.”

얼마 만에 보는 반들반들한 손등인지 모르겠다.

한 올의 털도 없는 미끈한 손등.

왠지 다른 피부보다 더 매끈하고 탄력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추가설명 중에 피부의 경도와 강도가 올라간다는 말이 있었지?’

그렇다면 저 매끈하고 탄력 있어 보이는 피부는 그에 따른 부가적인 효과일터.

나는 오른손으로 왼손등을 꼬집어 봤다.

뭐랄까.

느낌이 없는 건 아닌데 아프지가 않았다.

마치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꼬집는 느낌은 있는데도 말이다.

‘신기하네.’

나는 아직 팔레트에 남아있는 탈모제를 바라봤다.

‘이걸 온몸에 바르면 모든 피부가 손등처럼 된다는 거지….’

분명, 이 탈모제를 몸에 바르면 어지간한 칼빵은 겁내지 않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그보다 더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팔레트와 붓 그리고 탈모제를 챙긴 나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엔 그사이 수리를 마친 건지 14개나 되는 샤이닝 에로우가 허공에 떠 있었다.

“씨드. 샤이닝 에로우의 외장갑이 뭐라고 했지?”

“샤이닝 에로우의 외장갑은 드래곤의 일종인 교룡의 외피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리방어력과 마법방어력, 거기에 마나 전도율이 높아 기사들이 갑옷을 만드는 데 주로 쓰입니다.”

사족이 붙었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었다.

‘교룡의 외피. 외피라면 분명 피부를 말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겔로드 족의 탈모제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나는 확인을 위해 다시 한번 물었다.

“교룡의 외피라면 가죽이라는 소리지? 교룡이라는 놈의 피부라는 소리고?”

“네 맞습니다.”

씨드의 확답에 나는 일단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정 궁금하면 발라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탈모제가 조금 아깝기도 하지만 상점 등급을 올려 E급이 되면 살 수 있는 거니 크게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게 부족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공격력이다.

방어력은 지금 당장은 중갑하나로도 충분했지만, 공격 방식은 그저 무식한 방패질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샤이닝 에로우를 이대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만약 탈모제를 발라 강도를 높일 수만 있다면 나는 강력한 원거리 무기를 얻게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을 하고.

음속의 열 배인 마하 10의 속도로 비행을 하며.

날아가는 와중에 궤적을 틀 수도 있는 화살을.

빙긋 미소를 지은 나는 조용히 화살을 바라봤다.

애물단지라고 생각했던 샤이닝 에로우 들이 이젠 복덩어리로 보였다.

나의 부족한 공격력을 메워 줄 복덩이.

“씨드 이리 와 봐. 우리 테스트 좀 하자.”

그래서인지 씨드를 부르는 내 목소리는 전에 없이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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