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30화 (30/202)

30. 플렉스(FLEX).

아침 아홉 시.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치솟기 시작한 대현의 주가는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올라갔다.

덕분에 내 광대도 하늘 높이 치솟는 중이고.

장이 열린 지 30분도 채 지나기 전에 투자금의 10%가 올랐기 때문이다.

어제 해피니스 상점 창에 올린 아이템들도 순조롭게 팔려가는 중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후기를 받은 제품들로만 엄선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제품 후기도 좋고.

팔리는 것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다 팔리면 각성자 스토어에 한 번 더 다녀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돈이 아니라 해피니스 상점 포인트니까.

그렇게 상점 창을 확인하고 기뻐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우웅.

헌터 와치가 울리며 전화가 왔다.

『대현 그룹 강 회장님』

아무래도 차의 효과를 보신 모양이다.

“네 회장님.”

“자네…. 이게 대체 무슨 차인가?”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강 회장은 차의 정체를 물어왔다.

참 성질도 급하시지.

“일종의 회춘 찹니다.”

“회춘 차?”

“그냥 10년 정도 젊어지는 마법이 부여된 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차의 효능을 설명했지만, 강 회장의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거짓말하지 말게!!”

‘아이고.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나 귀청 나갈뻔했네.’

“어제 자네가 가고 그 찻물을 연구소로 보냈었네. 성분 분석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나?”

와 그걸 성분 분석까지 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타고난 장사꾼이다. 성분이 파악되면 특허 같은 걸 내실 생각이셨나?

강 회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내심 성분 분석 결과가 기대됐다. 정상적인 결과가 나왔다면 강 회장이 저리 놀란 반응을 내보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강 회장은 답답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단 말일세. 그저 쓰디쓴 맹물일 뿐이었어. 연구소에서 그러더군. 대체 이 맹물이 왜 이렇게 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헐.”

분석 결과는 예상외였다.

이어서 강 회장이 전해온 자세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번 사용한 티백으로 다시 찻물을 우려낼 순 있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전해왔다.

연구소에서 추론한 결과, 하나의 티백으로 우려낸 차를 두 사람이 동시에 마신다고 해도 한 사람만 효과를 볼 것으로 예측된다는 말도 더했다.

원리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말이다.

하긴 엘릭서 같은 물건도 파는 해피니스 시스템이니 이런 신기한 일도 별것 아닐 수도 있지. 유클리안 잎사귀 차도 나름 S급이기도 했고.

그렇게 우리 두 사람 사이엔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나도 그렇지만 강 회장도 생각할 게 많은 모양이었다.

“미리 성분 분석에 관한 허락을 구하지 못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진심일세. 하지만 이건…. 너무…….”

나는 말을 잊지 못하는 강 회장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마법보다도 말이 안 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으니까.

“그냥 믿으십시오. 회장님. 적어도 회장님과 저는 직접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차의 효과는 한 사람당 단 한 번, 10년 정도 회춘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끙….”

내 말에 강 회장은 앓는 소리를 냈다.

온갖 마법이 판치는 지금 세상에서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

하지만 자세한 얘기를 해 달라고 해도 말해줄 수 없었다. 단지 그런 아이템이라는 것밖에는. 지금까지 구축해 온 신뢰 관계에 서로가 기댈 수밖에.

“그나저나 회장님.”

“음…. 말씀하시게.”

“차의 효과를 보셨으면, 입금은….”

“…….”

“가격은 회장님께서 제대로 쳐서 보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칠 때까지 강 회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왜?

그리고 잠시 후.

『대한은행 입금 알림.

입금: 30,000,000,000원

06/10 09:15』

입금 알림 문자와 함께 강 회장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산호 회장님: 약속대로 차의 효능을 확인했으니 찻값을 입금하겠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말일세. 나도 명색이 장사치인데 이문을 좀 남겨야 하지 않겠나? 하여 소개비로 한 사람당 100억씩 700억을 빼고 보냈네. 이 일로 자네가 기분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네. 하하하.』

그리고 그 메시지 밑에는 7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쭈르륵 적혀 있었다. 미리 언질을 해 놓겠다는 말과 함께.

전직 대통령, 거물급 정치인, 전직 10대 길드 마스터, 그리고 재벌.

이들은 강 회장처럼 또 다른 나의 인맥이 되어줄 터였다.

그나저나.

“소개비를 받으실 줄은 몰랐는데, 정말 대단한 어르신이네. 하하.”

오늘 난, 강 회장에게 또 하나를 배웠다. 장사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재벌이 되고자 하는 내게 이것만큼 좋은 가르침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700억이라는 수업료는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강 회장과 통화가 끝난 뒤 어머니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아직도 놀란 마음을 진정 못 하신 듯한 어머니는 왜 이 귀한 걸 쓸데없이 자신에게 줬냐며 안타까워하셨다.

뭐랄까…. 어머니다웠다.

그 안타까워하는 말속에 나에 대한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 아이템이 많이 남아있다는 말로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렸다.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한 아들의 선물이라는 말도 함께.

그러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정미현 님이 마음이 담긴 당신의 말을 듣고 행복해합니다. 0.1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든 건 ‘유클리안의 잎사귀 차’라는 선물이 아니라 어머니를 걱정하는 ‘나의 말 한마디’였다.

새삼 시스템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마저도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어머니와의 짧은 통화가 끝난 후 정혜 누나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왜 자신에겐 그 차를 주지 않았느냐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거 마시면 마법 성형한 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답장은 한참 후에나 왔다.

『정혜 누나: 안 마셔!!』

정말 마법 성형이 풀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냐고?

나도 모르지.

10년 전의 육체로 회춘을 하는 거니 아마 돌아가지 않을까?

타타탁 타탁.

정혜 누나와 대화를 마친 나는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큰 욕심을 가지고 주식을 매입한 게 아니니 상승장이 끝나기 전에 주식을 모두 팔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해도 지금 10%가 넘게 차익 실현이 가능했다.

대충 계산을 해 봐도 오백억이 넘는 수익을 본 것이다.

수수료와 세금 등을 빼면 수익금에 변동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가격에 크게 영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주식을 조금씩 매각해 나갔다.

그렇게 사 놓았던 주식을 모두 매도하고 나자 내 계좌 잔액은 6천억을 넘어섰다.

이 돈으로 뭘 할 거냐고?

글쎄…?

좋은 일을 한번 해볼 생각이다.

***

세운 대학교병원 소아병동.

무거운 걸음으로 복도를 걷는 서민혁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그의 딸 지아가 백혈병 판정을 받은 것은 5개월 전이었다.

말 그대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서민혁은 그날 그대로 주저앉았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하나뿐인 딸이 백혈병이라니.

2년 전 아이 엄마가 죽고 홀로 금이야 옥이야 키워 왔던 아이다.

주위 동료에게서 딸의 나이대에 희소질환이 발병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흘려들었었다.

‘그때 흘려듣지 말걸….’

그런데 한없이 남 얘기만 같던 일이 딸에게 일어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서민혁은 그날부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의 간병에 집중했다.

딸의 완치를 기도하면서.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을 빼고 차도 팔아 병원비에 보탰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이에게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딸의 입원비와 치료비는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아마도 지금 원무과에서 그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아-.”

서민혁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병원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치료를 받으며 고통에 울부짖는 다섯 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이 앞에선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 왔는데…. 오늘따라 먼저 떠난 아내가 너무도 그리웠다.

‘힘내야지. 나는 아빠니까.’

다시 마음을 다잡은 서민혁은 힘을 내 원무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원무과.

평소라면 안쓰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을 원무과 직원은 따뜻한 봄 햇살 같은 미소를 띠고 자신을 맞이했다.

그리고 서민혁은 걱정스럽게 걸음을 했던 원무과에서 기적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그러니까… 기부를 해 주셨다고요?”

“네.”

“대체 누가….?”

“익명으로 기부를 하신 거라 그건 저희도 알 수가 없구요. 일단 미납되었던 병원비는 모두 정산되셨습니다. 앞으로는 그냥 잘 치료 받고 건강해지는 일만 남았네요.”

“그게 무슨?”

“아. 기부자께서 지아 병원비 일체를 기부하겠다고 하셔서. 앞으로는 마법 치료나 힐러 치료도 병행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법 치료, 힐러 치료.

효과가 좋지만,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엄두도 못 냈던 치료법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해졌다니.

서민혁은 꿈만 같은 소식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 나을 수 있어 지아야….’

그렇게 서민혁은 원무과 앞에 선 채로 한참을 울었다.

누구인지 모를 기부자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리고 같은 시각. 전국에 있는 수많은 병원, 사정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그 손길은 똑같이 전해졌다.

***

“후-. 깔끔하네.”

나는 계좌 잔액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잔액 천억.

병원, 요양원,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단체,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소년 소녀 가장들.

오전 10시에 시작한 기부는 밤 10시가 돼서야 끝낼 수 있었다.

재단을 설립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번거로웠다.

일단 사람도 구해야 할 테고 또 그들을 관리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투명하게 기부금 사용 내역을 공개하는 증명된 단체들을 골라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긴 했지만, 재단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에 비하면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용된 오천억이라는 돈은 지금 내게 그 결과를 보여 주고 있었다.

-심상철 님이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며 감사함을 느낍니다. 0.1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박소연 님이 치료받는 아들을 보며 감사함을 느낍니다. 0.1 포인트가…….

-지운철 님이……

-한지원 님이……

-……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메시지들.

나는 그 메시지들을 보며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내가 보는 세상은 황금빛으로 반짝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황금색 빛.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그것을 생각하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플렉스지.”

오천억이란 돈이 아깝지 않냐고?

전혀!

지금 그 대가를 충분히 돌려받고 있으니까.

-…0.1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오늘 오전에 강 회장에게서 배우지 않았던가.

장사치는 어떤 순간에도 손해를 보면 안 된다고 말이다.

나는 지금 계좌에서 썩어가던 돈을 포인트로 변환하는 중이었다.

조금 느리지만,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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