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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26화 (26/202)

26. 던전은 노다지다 (7).

가능성을 찾았으니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벤토리 곳곳에 만들어진 균열들.

그곳에서 흘러나온 파편.

지금, 이 인벤토리는 완전무결한 아공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공간 조작 특성을 이용해 그 균열을 더욱 크게 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틈을 벌려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외한 아이템들을 모두 인벤토리 밖으로 내보낼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인벤토리 안에 남아있는 아이템이 하나라면 랜덤 보상이 확정 보상으로 바뀌는 거니까.

생각을 마친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큰 균열을 찾고 그 균열에 손을 댄 채 아공간 조작으로 넓힌다는 상상을 했다.

그렇다 상상이다.

이 불친절한 시스템은 특성의 사용법 같은 건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단지 사용될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저절로’ 발현했을 뿐.

하지만 나는 10개의 인벤토리를 청소하며 자물쇠를 풀 때마다 아공간 조작 특성이 발현되는 걸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몸으로 느꼈던 마나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간절하게 상상했다.

균열이 벌어지는 것을.

그 순간.

-특성 아공간 조작이 발현됩니다.

특성이 발현됐다.

상황이 아닌 내 능력으로 특성을 발현하게 된 것이다.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마나가 조금씩 빠져나가며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파직-!/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균열의 틈이 벌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웅-.

‘됐다!!’

특성을 사용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기에 입을 열진 못했지만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곧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마나 소모량이.’

가득 채워놨던 마나가 순식간에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

급하게 마나 포션을 들이키며 균열의 틈을 벌리기 위해 애썼다.

그 상태를 얼마나 지속했을까?

갑자기 피부가 따끔거리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개미에 물어뜯기는 고통으로 뒤덮여 갔다.

“크윽-!”

과도한 마나 사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마나 번’ 현상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균열이 점점 크기를 불려 지름 5㎝ 정도 크기의 원이 되었을 때.

‘여기까지가 한계야.’

그렇게 나는 균열을 키우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나 번으로 인한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상급 마나포션 세 병이 전부였다.

이 세 병의 마나포션은 청소를 위해 남겨 두어야 했다.

‘실팬가?’

상급 마나포션 3병을 제외한 모든 마나포션을 사용했음에도, 만들어진 균열의 크기는 고작 지름 5cm 크기의 원에 불과했다.

패시브 스킬인 작은 마력의 샘 덕분에 마나가 차오르고 있지만, 아직 F급에 불과한지라 그 효과가 미미했다.

그렇게 내가 균열을 확장하는 것을 포기하고 손을 떼는 순간.

그 조그마한 원은 순식간에 크기를 줄여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느다란 실금과 같은 균열의 원래 모습으로.

“허….”

순간 허탈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내가 균열을 넓히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과 포션, 그리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으니까.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퀘스트 창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제한시간: 00:15]

남은 제한시간은 15분.

특성 아공간 조작은 분명 균열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직 F등급의 특성이기 때문인지.

혹은 원래 아공간을 임의로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발견한 것은 아공간 조작이 가진 약간의 가능성뿐.

이제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대한 빠르게 청소를 마치는 수밖에.

2㎝ 정도 남은 빗자루.

간당간당한 마나 포션.

이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청소하고 난 후 시스템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기도하는 수밖에.

“하하.”

톡.

나는 솔 부분이 모두 닳아 없어져 자루만 남은 빗자루를 집어던지며 허탈하게 웃었다.

결국, 특성을 사용해 다른 아이템들을 인벤토리 밖으로 내보내 버린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끝났네….”

모든 균열이 메꿔진 인벤토리.

그 안을 떠다니는 40여 개의 아이템.

이제 내가 추가 보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추가 보상의 지급방식은 랜덤.

이곳에 떠다니는 40여 개의 아이템 중 하나를 얻게 될 테니까.

한마디로 이젠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40분의 1의 확률에 기대해야 한다니….’

그렇게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허탈한 웃음과 함께 주변을 부유하는 아이템을 둘러보고 있을 때, 머릿속에 번쩍이는 번개가 내리쳤다.

‘만약 이 아이템들을 아이템이 아니게 만든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선을 돌려 주위에 떠다니는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낡은 안경과 잡동사니들, 그리고 해진 옷 한 벌. 마침 눈앞으로 둥둥 떠가는 안경이 보였다.

[안경]

나는 이제는 빗자루라 부를 수도 없는 몽둥이를 주어 들고 안경을 향해 휘둘렀다.

캉-!

[@#$경]

힘찬 스윙에 박살이 나며 흩어지는 안경알 하나.

그리고 시스템 창에 표시되던 아이템의 이름이 텍스트가 깨친 채로 출력되었다.

‘이거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나는 크게 몽둥이를 휘둘러 아직 아이템 이름이 표시되는 안경을 마저 깨부쉈다.

챙그랑-!

이내 완전히 박살이 나는 안경.

그 위에 떠올라 있던 아이템 이름은 아이템이 박살 나자 먼지처럼 스러지며 사라졌다.

나는 지체 없이 다른 아이템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인벤토리 안에 아이템을 모두 제 기능을 못 하도록 만들면, 남은 아이템은 해례본 하나가 된다.’

깡-!

챙그랑-!

캉캉-!

[00:07]

제한시간을 7분 남겨 둔 시점이었다.

***

“하하.”

톡.

빗자루를 집어던지며 웃었다.

“끝났다.”

모든 균열이 메꿔진 인벤토리.

그 안을 떠다니는 단 하나의 아이템.

이제 내가 추가 보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얻을 확률이 100%가 되었다.

추가 보상의 지급방식은 랜덤이지만 랜덤이 아니게 만들었으니까.

“와…. 겁나 힘드네. 진짜.”

그도 그럴 것이 시간도 마나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자세도 잡기 힘든 이 공간에서 수십 번이 넘는 풀스윙을 해야 했으니 몸도 마음도 지치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전에 열 번의 예습을 한 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공간 청소 특성을 사용할 때 들어가는 마나의 이동 경로를 떠올려 몽둥이에 미약하나마 마나를 품게 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이템을 박살 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모든 아이템의 파편을 쓰레받기에 담아 없애는 것도 더 시간이 걸렸겠지.

[제한시간: 00:01]

그렇게 나는 제한시간 1분을 남기고 인벤토리 청소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청소 완료.”

-아공간 청소를 완료하셨습니다. 원래의 자리로 이동합니다.

청소 완료를 확인시켜주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던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각성자 한주영의 인벤토리]

녹색의 빛을 내며 사라져가는 인벤토리.

어쩌면 저 한주영이라는 분은 또다른 ‘위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나라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쓴 위인 말이다.

그의 인벤토리에 떠다니던 아이템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낡은 옷가지와 안경, 그리고 잡다한 아이템들.

그 모든 아이템이 인벤토리 안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너무 낡고 헤져 있었다.

인벤토리 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데도 말이다.

내가 이분을 위인으로 생각한 이유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이분께 보낸 한 장의 서신 때문이었다.

[아이템: 간송 전형필의 편지.]

비록 손으로 만질 수 없어 읽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 안의 내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간송 전형필 하면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해례본이었으니까.

나는 사라져가는 한주영의 인벤토리를 보며 절로 숙연해지는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위인.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분들만이 위인이 아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스러져간 이름 모를 분들 또한 충분히 위인이라 불리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분들이 계셔서 내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거니까.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잠시 묵념을 마치고 고개를 든 나는 고개를 들어 던전 내부를 살펴봤다.

좁은 개미굴 통로를 따라 녹색의 빛을 내며 존재감을 뽐내는 인벤토리들.

‘이것들 모두에 저마다 사연이 있을 테지.’

띠링.

-특성 퀘스트 ‘아공간을 청소하자’를 완료하셨습니다. 퀘스트창을 열어 보상을 수령하세요.

넋을 놓고 인벤토리들을 바라보던 나는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메시지는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특성 ‘아공간 청소부 F’의 레벨이 오릅니다.

-특성 ‘공간시 F’의 레벨이 오릅니다.

-특성 ‘아공간 조작 F’의 레벨이 오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세 개의 특성이 모두 레벨업을 했고.

-특성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직업 슬롯이 생성됩니다. 특성에 맞는 직업이 생성됩니다.

-상태창을 열어 직업을 확인해 주세요.

“뭐?”

생각지도 못했던 직업이 생성됐다는 메시지도 떠올랐다.

“이거 뭐지? 시스템이 나한테 이렇게 막 퍼줄 리가 없는데?”

하지만 나는 직업이 생성됐다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기쁘기는커녕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상태창을 열어보곤, 다시 허공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직업: 해피니스 청소부]

“와-.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그렇게 나는 시스템과 각성자 센터가 인정한 두 개의 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빌어먹을.”

분명 돈도 많이 벌었고 아이템도 많이 얻었고 레벨업도 했는데. 전혀 기쁘지 않은 건 왜일까?

내 생각에 이 시스템 관리하는 관리자라는 놈은 변태가 틀림없다.

남의 슬픔을 보고 본인은 즐거움을 느끼는 변태 말이다.

방 청소도 안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이젠 모든 던전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야 할 판이다.

***

코어를 부숴 던전을 나온 나는 센터의 직원이 상주하는 곳으로 가 던전 이용료 계산을 마쳤다.

이미 최형석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미리 결제해둔 덕에 나는 남은 금액을 돌려받기만 하면 됐다.

불암산 F급 던전 1시간 기본 이용료 1천만 원.

기본 이용료는 해당 던전의 평균 클리어 타임을 기본으로 잡는데. 이는 던전을 청소하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불암산 던전의 기본 클리어 타임은 2시간이고 청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다.

세 시간까지는 기본요금으로 계산이 되는 샘.

하지만 내가 던전에 머문 시간은 총 6시간이었고 남은 시간의 이용료는 매시간 천만 원이 추가된다.

3시간 기본 이용료 3천에 3시간 추가이용료 9천, 내가 결제해야 할 금액은 추가이용료 부분이었다.

남은 돈을 계좌로 입금받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돈을 버니 그런 바벨탑을 세웠겠지.”

높이만 800m가 넘는 각성자 센터.

F급 던전 하나에서만 버는 돈이 이 정도니 그런 건물을 세울 수 있었으리라.

드론을 타고 집에 돌아온 나는 무거운 중갑을 벗어 던지고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

시스템에 의해 힘 스텟이 50이 넘었지만 300㎏이란 무게는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기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털썩.

그립고도 정겨운 소파 위로 몸을 던진 후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지나있었다.

경매 시작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 상황.

헌터 와치로 대충 배달음식을 주문한 나는 소파에 널브러진 자세 그대로 시스템 창을 열었다.

힘들 만큼 힘들었고 시스템이 준 엿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젠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였다.

[특성 퀘스트: 아공간을 청소하자]

[등급: F]

[내용: 수많은 각성자들의 죽음으로 그들이 남긴 유류(遺留) 아공간이 넘치는 불암산 던전의 아공간을 청소하자.]

[진행상태: 완료.]

아공간 청소 진행도 (11/10)

[보상: 포인트 100 무작위 아이템 1.]

[추가 보상: 추가로 아공간을 청소할 시 해당 아공간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하나를 랜덤하게 획득합니다.]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락]

비록 내가 만들어서 먹은 고구마지만 고구마를 많이 먹었으니 사이다도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톡.

수락 버튼을 누르자 두 개의 룰렛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한 개는 천 개의 칸으로 나누어진 퀘스트 보상 룰렛이고 다른 하나는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룰렛이었다.

“…추가 보상도 룰렛이냐?”

이 정도면 관리자라는 놈이 도박 중독인지 정신상태를 의심해 봐야 한다.

‘아. 시스템을 만든 존재는 관리자와는 또 다른 존재이려나?’

천 개의 칸으로 나뉘어있는 룰렛은 각 칸에 쓰인 글자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았으나, 황금색 일색인 추가 보상 룰렛에는 커다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訓民正音 解例本)

정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얻기는 했지만, 그 고생을 해서인지 황금색으로 빛나는 룰렛의 빛이 더없이 찬란해 보였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선생께서 공개하신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본이라고 불리고 상주의 그 각성자가 숨겨둔 것은 상주본이라 불린다.

“그럼. 이건 훈민정음 주영본으로 불러야겠군.”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한주영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스러져간 그의 죽음을.

“중요한 건 아껴둬야지.”

찬란하게 빛나는 훈민정음 룰렛에서 눈을 뗀 나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칸으로 나뉜 보상 룰렛을 바라봤다.

칸의 구성은 처음 보상을 받을 때와 같았다.

빨간색이 889개 주황색이 100개 노란색이 10개 그리고 푸른색이 한 개.

당연하겠지만 푸른색이 가장 가치가 높은 아이템이리라.

“자. 그럼 돌아라!”

나는 힘찬 외침과 함께 태블릿처럼 매끈한 느낌을 주는 시스템 창 위의 버튼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띠리리리리.

어차피 도박은 모 아니면 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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