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던전은 노다지다 (6).
다시 돌아온 던전.
청소를 마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던전 내부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아! 무료 뽑기 이용권은 어떻게 됐냐고?
별거 없었다.
그냥 뽑기라는 걸 무료로 이용할수 있는 이용권이라는 설명이 전부였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사용해볼 생각이다. 뭔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집 밖에서 사용하기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눈앞의 인벤토리로 다가갔다.
[각성자 이형철의 인벤토리]
선명한 녹색으로 빛나는 인벤토리.
강기영의 인벤토리처럼 비어있는 슬롯 세 개가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 키 아이템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특성 아공간 조작이 발현됩니다.
-아공간이 열립니다.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인벤토리에서 뿜어져 나온 녹색의 빛이 나를 감싸고.
그 눈부심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던전의 통로가 아니었다.
네모반듯한 공간.
가로세로 높이 5m 정도 되어 보이는 정육면체의 공간엔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수십 개의 아이템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 어떤 광원이 없음에도 주변을 돌아보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이상한 공간.
“여긴…. 인벤토리 내부인 건가?”
-특성 아공간 청소부가 적용된 아공간입니다. 청소를 시작해 주세요.
내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들려오는 시스템의 목소리와 함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말총 빗자루 하나와 쓰레받기였다.
“설마…. 진짜 청소를 하라고?”
-특성 아공간 청소부 전용 아이템이 지급되었습니다.
-본 아이템은 단 1회 지급되며 분실이나 파손 시 사용자 강현 님께서 상점에서 직접 구매를 하셔야 합니다. 취급에 주의해주십시오.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다.
나는 내 손에 들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진짜, 정말로 여길 청소하라는 거네….”
조금 황당했다.
던전 청소부는 명칭이 그럴 뿐 하는 일은 일종의 도축 업자와 같았다.
몬스터를 도축해 잔여 마나가 존재하는 부산물을 빼내고 헌터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잡템 등을 수거하는.
명칭은 청소부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청소가 아니란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빗자루와 쓰레받기.
정말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 정말 청소부가 됐네?”
나는 진짜 청소부가 되었다.
***
[아이템: 아공간 청소부 전용 빗자루]
[등급: F 급]
[설명: 아공간 청소부 전용 빗자루. 아공간을 청소할 수 있다.]
[아이템: 아공간 청소부 전용 쓰레받기]
[등급: F 급]
[설명: 아공간 청소부 전용 쓰레받기. 아공간 파편을 담을 수 있다.]
무성의하기 그지없는 이름과 아이템 설명.
대충 만들어 던져준 것 같은 아이템 두 개를 손에 쥔 나는 내가 서 있는 공간을 눈으로 훑었다.
“이걸 가지고 여길 어떻게 청소하라는 거냐? 설마 저 아이템들 쓸어 담으면 되는 거야?”
톡.
마치 바다 위를 부유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처럼 내 주위를 부유하는 아이템 하나를 빗자루로 건드려 쓰레받기에 담아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건 아닌 것 같고.’
나는 쓰레받기 위에 올려져 있는 아이템을 털어낸 뒤 다시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여기저기 균열이 가고 깨진 아공간의 흔적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을 만한 작은 균열들.
실금이라 불러도 무방할 그것들에서 미세한 파편들이 느릿하게 떨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거네.”
빗자루로 그 파편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자 쓰레받기에 담긴 파편들이 마치 반딧불이처럼 녹색의 빛을 발하며 사라졌다.
신비롭다면 신비로운 광경이었지만 이미 감성 따윈 메말라 있는 내게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파편은 이렇게 쓸어 담는다 치고, 이 균열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실금에 불과하지만, 인벤토리 이곳저곳 거미줄과 같은 균열이 퍼져있었다.
그곳에서 계속해서 공간의 파편이 떨어져 나오고 있으니 그저 파편을 쓸어 담는 것만으로는 청소를 마쳤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쓱쓱.
하지만 난 곧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균열에서 새어 나오는 파편을 빗자루로 쓸어 담던 중, 내 몸 안에 있던 마나가 빗자루를 타고 흘러나가며 균열이 연해지는 것을 보았다.
“아….”
나는 인벤토리 곳곳에 있는 균열을 보았다.
언뜻 본 것만 해도 수백 군데.
빗자루질 두 번에 흘러나간 마나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마나로 모든 균열을 복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나포션 안 챙겨 왔으면 큰일 날뻔했네.”
하지만 어젯밤 각성자 스토어를 털다시피 해서 소모품을 챙긴 덕에 포션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모든 종류의 마나포션이 내 인벤토리에 들어있으니 말이다.
인벤토리 청소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방법을 몰랐으면 모르되 방법을 찾은 이상 남은 건 단지 몸을 쓰는 일일 뿐.
쓱 쓱쓱.
그렇게 공간 곳곳에 퍼져있는 균열을 복원하고 파편을 쓸어 담기를 10여 분.
인벤토리 청소를 거의 마쳐 갈 때쯤 나는 10㎝에 달했던 빗자루의 솔 부분이 뭉툭하게 닳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
닳아서 사라져버린 솔의 부분은 대략 1센티미터쯤.
“설마 이거 열 개 청소하면 사라지는 거냐?”
그제야 퀘스트 내용을 떠올린 난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추가 보상: 추가로 아공간을 청소할 시 해당 아공간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하나를 랜덤하게 획득합니다.]
시스템은 단 10개의 인벤토리만 청소할 수 있는 빗자루를 던져준 뒤 추가 보상이란 미끼를 걸어둔 것이다.
“이건, 뭐 양아치도 아니고…. 추가 보상, 받을 수 있기는 한 거냐?”
당연하지만 시스템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해피니스는 개뿔. 헬피니스다!”
그렇게 나는 대답 없는 공허한 외침을 내뱉으며 첫 번째 청소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청소는 순조로웠다.
던전이 열리고 80년.
그동안 이 안에서 죽어간 수많은 헌터들이 남긴 인벤토리는 내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렇기에 인벤토리를 찾아 헤매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인벤토리에 들어가면 될 일이었으니까.
단지 문제라면 빗자루가 뭉툭하게 달아버린 것뿐.
띠링.
-퀘스트 [아공간을 청소하자]를 완료하셨습니다. 퀘스트 창을 열어 보상을 수령하세요.
10개의 인벤토리 청소를 끝내자 나타난 시스템의 메시지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추가 보상.
확인해 본 결과, 이 인벤토리 내의 아이템은 내가 만질 수도 가지고 나올 수도 없었다.
아이템을 건드릴 수 있는 건 오직 빗자루와 쓰레받기뿐이었다.
그럼 빗자루나 쓰레받기로 아이템을 내 인벤토리로 쓸어 담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건 불가능한 말이다.
인벤토리는 사용자의 신체 일부분에 닿지 않는 물건은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하여. 눈물을 머금고 그 모든 아이템을 남겨둔 채로 청소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빗자루의 남은 솔 길이는 2㎝ 정도.
약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인벤토리를 더 청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이것도 빗자루질할 때 마나를 조절하는 법을 깨닫지 못했다면 남아 있지 않았으리라.
“내가 오늘 어떻게든 네 빤스까지 탈탈 털어먹고 만다.”
나는 시스템을 향해 이를 갈며 11번째 인벤토리를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이번 인벤토리도 별다를 건 없었다.
부유하는 아이템들.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 균열들과 그곳에서 떨어져 나오는 아공간의 파편들.
하지만 그중 눈길을 끄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저건 뭐지? 무슨 비급 같은 건가?”
왜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허공을 부유하는 수많은 아이템 사이에서 유독 내 눈길을 끄는 그것은 낡디 낡은 한 권의 ‘서책’이었다.
내가 굳이 이것을 서책이라 부른 이유는 요즘 볼 수 있는 책들과는 다르게 조선 시대에나 볼법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극에서나 보던 서책들처럼 말이다.
부유하는 아이템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 낡은 책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이내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훈민정음 해례본 (訓民正音 解例本)]
[등급: S급]
[설명: 세종 28년(1446년) 위대한 대왕 세종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 반포한 훈민정음의 창제원리가 담긴 해례본이다.]
[추가설명: 훈민정음 해례본은 위대한 대왕의 백성을 향한 애민(愛民)정신이 담겨 있는 책으로 특별한 효과가 있다.]
[특수 옵션: 최초 소유자는 ‘스킬: 언어의 마술사’를 습득할 수 있다. 이는 최초 소유자에게만 부여되는 특수 옵션이며 최초 소유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유지된다.]
아이템 설명을 모두 읽은 입을 떡 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몇 년 전 모 각성자가 상주에 숨겨져 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고, 정부에 기증하는 대가로 천억을 요구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뉴스를 본 나는 그 사람을 욕했었다.
‘도동노무 쉐키’라고.
그도 그럴 것이 그 각성자는 다른 사람이 보관하고 있던 것을 훔쳐 간 거였거든.
하여튼 그런 훈민정음 해례본이 내 눈앞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F급 던전의 버려진 인벤토리 안에서.
“아…. 이거 골 아프네….”
나는 갑자기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 이거 무르면 안 되냐? 그냥 나갔다가 나중에 오면 안 돼?”
허공을 향해 소리쳐 보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빌어먹을 시스템 새끼. 벼락이나 맞아라. 제기랄.’
내가 속으로 시스템에 대한 욕을 퍼붓는 이유?
당연히 그 이유는 시스템이 내게 준 퀘스트 내용에 있다.
[특성 퀘스트: 아공간을 청소하자]
[등급: F]
[내용: 수많은 각성자들의 죽음으로 그들이 남긴 유류(遺留) 아공간이 넘치는 불암산 던전의 아공간을 청소하자.]
[진행상태: 완료.]
아공간 청소 진행도 (10/10)
[보상: 포인트 100 무작위 아이템 1.]
[추가 보상: 추가로 아공간을 청소할 시 해당 아공간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하나를 랜덤하게 획득합니다.]
[추가 보상: 0]
[제한시간: 00:59]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이 부분이다.
해당 아공간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하나를 ‘랜덤’하게 획득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이 인벤토리의 청소를 마치면 여기에 굴러다니는 40여 개의 아이템 중 하나가 내게 랜덤하게 주어지고 이 인벤토리는 그대로 사라진다.
지금까지 열 번의 청소를 마치고 그래왔던 것처럼.
그 말은 랜덤으로 획득한 아이템이 훈민정음이 아니라면 훈민정음은 인벤토리와 함께 소멸한다는 뜻이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국보급 보물이.
그러니 내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을 수밖에.
“하아-.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허공을 향해 탄식 어린 질문을 던져 보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묵묵부답이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제한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이제 다른 인벤토리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태어나 한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고민 한 번은 해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보물이 사라질 판이니 말이다.
물론 어딘가 신비로운 구석이 있는 ‘언어의 마술사’란 능력도 흥미를 끌었고.
지금껏 내가 봐왔던 해피니스 시스템 특유의 직관적인 네이밍과는 거리가 먼 이름이었으니까.
‘언어의 마술사라니…. 아공간 청소부보단 만 배는 좋은 것 같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다른 방법이라면 제한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아공간 안에서 버텨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미 퀘스트는 완료한 상태고 추가 보상을 얻기 위해 들어온 것이기에 강제로 인벤토리 밖으로 튕겨 나갈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
그러면 적어도 해례본이 있는 이 아공간이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제한시간이 지나고도 이곳에 계속 머물게 된다면 나는 40분의 1의 확률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얻을 기회 역시 놓치게 되는 것이었다.
[제한시간: 00:55]
[제한시간: 00:39]
[제한시간: 00:25]
제한시간이 줄어들수록 내 이마에 생긴 골만 깊어져 갈 뿐, 선뜻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며 바닥에 놓여 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볼 때, 불현듯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쳤다.
공간시는 아공간을 보게 해주는 역할이고, 아공간 청소부는 아공간을 청소할 수 있게 해주는 특성이다.
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는 그를 위한 도구이고.
그렇다면, 아공간 조작은 어떤 효과를 가진 것일까?
단지 인벤토리의 문을 여는 것이 아공간 조작의 전부인 걸까?
나는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를 처음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시스템 창을 통해 봤던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에 대한 설명.
관리자와 사용인이라는 존재에게 도망을 치기 위해 세계와 세계를 뛰어넘었다는 그 힘.
바르의 특성은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담겨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바르가 세계를 뛰어넘을 때 사용했던 그 힘도 그 안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가만히 결론을 내렸다.
‘답은 아공간 조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