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22화 (22/202)

22. 던전은 노다지다 (3).

쿵! 콰직-!

나는 온 힘을 실어 한걸음에 한 마리씩 개미를 박살 냈다.

까드득. 까드득.

거대 개미들의 집게 같은 입이 갑옷에 막혀 미끄러지길 반복했다.

갑옷에 대한 확신이 생긴 순간부터 병정 개미를 제외한 개미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콰드득-!

왼쪽에서 달려든 개미가 왼팔을 물었을 때, 놓치지 않고 방패를 들어 머리와 가슴 사이의 연결부를 내려찍었다.

콰직-!

연결부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초록색 핏물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끼에엑-!

동료가 죽는 순간, 내 방심을 노리고 숨죽이고 있던 또 다른 개미 한 마리가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윽-!”

나는 즉시 왼손을 녀석의 입에 집어넣었다. 왼손에는 폭발형 스크롤이 들려있었다.

콰앙-!

곧 폭발과 함께 개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크하-!”

위기와 극복이 반복될 때마다 살아남았다는 데에서 고양감이 찾아왔다.

전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즐거움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흐흐흥-.

작게나마 콧노래가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중간에 한번 버프가 떨어져 버프를 다시 한 것만 빼면 나는 쉼 없이 걸음을 옮기며 체중을 실어 방패를 휘둘렀다.

방패의 무게까지 합하면 420㎏이 넘는 무게가 실린 묵직한 방패 질은 그 한 방 한 방이 거대 개미의 키틴질 외갑을 박살 내기에 충분했다.

내 방패질에 몸통이 박살 나버린 거대 개미 한 마리가 고개를 떨구며 죽음을 맞았고.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내 귀에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대 개미를 처치하셨습니다.

-1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사용자 강현 님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보너스 스텟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명 나게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방패를 휘두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레벨업.

게임처럼 화려한 이펙트도 없고 무언가 외형적으로 변한 건 없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보너스 스텟은 힘에 몰빵이다.’

눈으로 전달되던 시스템 메시지가 목소리로 바뀜과 동시에 나는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태창을 열고 스텟 포인트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지독하게도 사용자에게 불친절한 시스템이지만 그래도 전투 중엔 어느 정도 사용자를 배려하는 게 느껴졌다.

한 번의 레벨업에 지급되는 보너스 스텟 포인트는 5개.

왜인지 아이템 착용으로 올라간 스텟은 시스템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상태창에 1이었던 내 힘은 11이 되었고, 나는 내 힘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걸음이 가벼워지고 움직임이 빨라졌으며 방패질엔 더 큰 힘이 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각성자의 힘을 두 배로 증가시켜주는 스트랭스 스크롤의 효과 덕일지도 몰랐다.

힘이 1일 땐 두 배라 해봐야 2지만 힘 스텟이 11이 된 지금은 무려 22니까.

레벨업에 신난 나는 더욱 빠르고 힘차게 방패질을 했다. 동시에 폭발형 스크롤 여러 개를 개미들이 밀집된 곳에 투척했다.

콰앙-! 쾅쾅!

끼에엑-!

이번 폭발로 한 무리의 개미들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하-!”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호쾌한 폭발음이 왠지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어느새 남아 있는 건 거대 개미 스무 마리에 병정개미 한 마리.

‘저게 다 경험치구나. 노다지구나 노다지!’

던전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두려웠던 몬스터가 이젠 경험치 덩어리로 보였다.

그것도 먹음직스러운.

파티원들이 나를 돕겠다고 전투에 끼어들기 전에 나는 더 많은 경험치를 먹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흘끗.

하지만 중간중간 눈치를 보니 내 생각과는 다르게 파티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내 전투를 관망하고 있었다.

하긴, 저들이 끼어들 실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나 혼자 날뛰게 놔뒀을 리가 없지.

그렇게 한 번의 버프 타이밍이 더 지나가고. 그 효과가 끝나갈 무렵.

“키이익….”

나는 넝마가 된 병정개미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내 방패질에 여섯 개의 다리가 모두 뜯겨나가고 머리, 가슴, 배, 가릴 것 없이 여기저기 터지고 찢겨나간 놈은 내장과 검붉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키익….”

저만한 상처를 입고도 여전히 살아있는 걸 보니 괜히 보스 몬스터가 아닌 모양이다.

히든 보스로 등장한 여왕개미가 아니라면 보스방을 지키고 있었을 녀석.

놈은 반쯤 날아간 머리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계속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키, 키익!”

“음…. 의사소통이 가능한 개체인 건가? 그런데 보통 개미는 더듬이로 대화를 하지 않나?”

“키이.”

내 물음에 녀석의 더듬이가 움찔거리며 파르르 떨렸다.

“뭐라는 거야. 살려달라는 건가?”

“키이이!”

어쩐지 억울해 보이는 녀석의 목소리.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내게 ‘넌 버프 빨 장비 빨이잖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다 방패를 들어올렸다.

“뭐라고? 노템 무과금러가 하는 말이라 안 들리는데?”

키에엑-!

쉬익. 쿵!

그렇게 떨어져 내린 방패의 모서리가 놈의 머리를 가슴에서 분리해내고.

띠링.

-병정개미를 처치하셨습니다.

-10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사용자 강현 님의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보너스 스텟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전투가 끝났습니다.

-압도적인 전투!

-본 시스템은 강현 님께 찬사를 표합니다.

-아이템: 무료 뽑기 이용권이 지급됩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 주세요.

털썩.

놈을 처치함과 동시에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스템이 무언가 주저리 떠들어 대는 게 들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아. 하아. 존나 빡세네.”

대략 50마리가 넘는 개미들을 혼자 처리하고 나니 진이 확 빠지는 느낌이었다.

온갖 버프로 도배를 했다곤 하나 그렇게 미친놈처럼 설쳐 댔으니 힘이 안 빠지고 배기겠는가.

그렇게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였다.

“저…. 강현 씨 괜찮아요?”

어느새 다가온 파티의 리더 최형석이 나의 등 뒤에 서 있었다.

***

“저게…….”

최형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전장을 바라봤다.

50여 마리의 개미 떼에 둘러싸인 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전투를 치르는 강현.

그의 모습은 도저히 서포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말 그대로 탱커의 로망 그 자체.

쿵.

한 걸음을 내디디고.

떠억!

한 번의 방패를 휘두를 때마다 강현은 정확하게 한 마리의 개미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거기다 듣도 보도 못한 폭발 스크롤의 사용방식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수천만 원짜리 스크롤을 물 쓰듯이 써대는, 진정한 돈 지랄러였다.

최형석은 그런 강현의 모습을 보며 떠올렸다.

‘개 부럽다. 시바.’

그가 처음 각성했을 때 그렸던 자신의 미래 그 모습을.

모든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어당기고 그 모든 공격을 버티며 파티의 가장 앞, 적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홀로 파티를 지키는 탱커의 모습.

지금 강현의 모습은 바로 최형석이 그토록 꿈꿨던 탱커 그 자체였다.

쿵.

물론 움직임은 투박하고.

퍼억!

온갖 버프로 풀 도핑을 하고도 거칠기 그지없는 방패 공격은 무식해 보이기 짝이 없었지만 말이다.

털썩.

그렇게 그가 몽롱한 눈으로 강현의 전투를 눈에 담던 중, 병정개미의 목을 쳐낸 강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절체절명의 위기라 생각했던 전투가 불과 30분 만에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바보같이 구경만 하고 서 있다니.’

그런 강현의 모습을 본 최형석은 자책했다.

던전 내에서 리더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리더인 자신이 멍하니 구경만 하고 서 있었으니 파티원들이 강현을 도울 리 만무.

그러다 보니 전투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것을 강현이 홀로 치르고 말았다.

물론 그것이 강현이 바라던 바였지만 말이다.

최형석은 미안한 마음에 빠르게 강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눈으로 강현의 상태를 살폈다.

갑옷이 조금 파이거나 자잘한 스크레치는 있지만 큰 타격은 없어 보였다.

지친 것인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강현을 보며 최형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강현 씨 괜찮아요?”

강현은 이 던전 내에서 더는 서포터가 아니었으니까.

“아. 최형석 씨. 전 괜찮습니다. 그…. 문제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일으킨 문제는 다 해결했습니다.”

최형석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서려는 강현.

“아. 앉아서 쉬세요. 그리고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강현 씨를 도와드리지 못해서 저희가 더 죄송한걸요.”

최형석은 일어서려는 강현을 만류하며 눈을 빛냈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여왕개미를 잡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시중에 풀려있는 여왕개미의 부산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일단 등장확률도 1%에 불과하고 여왕개미가 등장해도 도망치기 바쁠 뿐, 쉽게 공략하지 못하니까.

물론 거대 개미가 나오는 던전이 불암산 던전 하나만은 아니어서 가끔 여왕개미의 부산물이 시중에 풀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가끔이었다.

한마디로 여왕개미의 부산물은 희소성이 있다는 것이고, 등급을 떠나 희소성이 있는 물건은 가격이 비싸기 마련이었다.

‘최하 10억. 어쩌면 그 이상.’

강현을 포함해 5명이 나누더라도 최소 인당 2억은 떨어진다.

F급 헌터가 한번 사냥으로 벌 수 없는 금액.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최형석의 눈이 점차 몽롱하게 변해갔다.

최형석이 단꿈에 젖어 눈을 빛내고 있을 때 강현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빨리 일하라고 말로 하면 되지. 왜 눈빛으로 쿠사리를 주는 거야.’

그렇게 최형석의 눈빛을 오해한 강현은 인벤토리를 열어 주섬주섬 아이템들을 꺼냈다.

강현의 손에 들린 것은 30㎝ 정도 되는 짧은 막대기와 단검, 그것은 던전 잡부인 서포터의 주 업무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짧은 막대의 이름은 마나석 스캐너. 이름에 나와 있듯 몬스터의 체내에 있는 마나석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아이템이었다.

띡.

마나석 스캐너에 전원이 들어오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최형석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강현을 쳐다봤다.

“지금 뭐 하시는….”

쉬라고 했더니 갑자기 일어서서 마나석 스캐너는 왜 꺼내 든단 말인가?

의문 섞인 최형석의 물음에 강현이 대답했다.

“서포터로 온 거니 서포터 일을 해야죠.”

최형석의 물음에 답하며 널브러져 있는 개미들의 사체를 향해 다가가는 강현.

그런 강현을 바라보는 최형석의 눈에는 당황함이 어려 있었다.

‘이 남자. 아직도 자기가 그냥 서포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애초에 서포터로 합류한 거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헌터가 무엇인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이다.

하면 몬스터를 사냥한 서포터는 서포터로 봐야 하는가 헌터로 봐야 하는가?

당연히 헌터로 봐야 한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각성자는 헌터니까.

강현을 헌터로 대하는 최형석과 자신을 서포터로 생각하는 강현 사이에서 발생한 작은 오해를 뒤로하고 강현은 묵묵히 자기 일을 이어갔다.

띠딕.

푹.

최형석은 그런 강현을 보면서도 차마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강현을 말리기엔 강현의 일 처리가 너무 능숙했으니까.

자신이 한다고 해도 쉽지 않을 마나석 채취, 그런데 자신을 초보 서폿이라고 소개한 강현의 손놀림은 숙련된 전문가와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용하는 기구의 차이가 있을 뿐 강현이 10년 동안 해 왔던 일은 마나석 채취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보 서폿이라며…?’

강현의 손놀림을 지켜보던 최형석의 머릿속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머더러?’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강현이 머더러라면 기회를 노려 뒤통수를 쳤으면 쳤지 자신들을 대신해 앞으로 나서서 싸웠을 리 없었으니까.

‘그럼 대체 왜 초보 서포터라고 거짓말을 한 거지?’

최형석은 강현이 자신의 정보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오해가 적립되며 강현과 파티원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파티원들의 생각도 최형석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

‘아…. 정말 텃세 오지네…. 그거 조금 실수했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나?’

마나석 채취를 마친 나는 미묘하게 나와 거리를 두는 것 같은 파티원들의 분위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애초에 내가 실수한 건 맞지만 내가 수습했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

물론 나 또한 파티원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내 실수 하나 때문에 저승 문턱 앞까지 다녀온 격이니 저런 태도도 이해가 됐다.

하아.

‘지은 죄가 있으니 말도 못 하겠고.’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파티원들의 뒤를 따라 걸음을 움직였다.

저벅저벅.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스트랭스 마법 스크롤을 사용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보스 방까지 가는 동안 일행의 앞에 개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여왕개미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일행의 앞에서 걸어가던 최형석이 걸음을 멈췄다.

챙-.

그리고 날카로운 검을 빼 들고 나를 향해 그 검을 겨눴다.

그러자 남은 파티원들도 분분히 나와 거리를 벌리며 내게 무기를 겨누는 게 아닌가.

‘아니 이건 또 뭔 황당한 짓거리야?’

난데없는 상황에 어이가 없어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최형석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체를 밝히시죠. 강현 씨.”

그러곤 어처구니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정체를 숨기고 우리 파티에 접근한 의도가 뭐죠? 마나석을 채취하던 당신의 솜씨. 절대로 초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실력을 숨기고 우리 파티에 접근한 의도를 말해주시죠.”

그렇게 개소리를 지껄이는 최형석의 목소리는 결연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일전을 불사할 것처럼.

뻐끔. 뻐끔.

그리고 나는 너무 황당하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이 병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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