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던전은 노다지다 (2).
키에에엑!
다시 한번 거대한 몬스터의 괴성이 울리고.
두두두두.
이곳으로 향하는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모두의 귓가로 전해졌다.
“전투태세!”
이를 악문 최형석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터져 나오자 일행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탱커와 검사가 앞으로 나서고 그 뒤에 힐러와 마법사가 자리한 대형.
그들은 등 뒤에 벽을 둔 채로 던전 곳곳에 뚫려있는 통로를 보며 경계를 했다.
나는 뭐 하고 있냐고?
멍하니 그들이 전투태세를 취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내디딘 한걸음이 만들어낸 괴멸적인 효과를 생생히 귀로 전달받으며 말이다. 갑자기 과거 고블린에게 죽을 뻔했던 기억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현 씨! 뭐합니까?! 빨리 합류하세요!!”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향해 최형석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미 던전의 모든 몬스터가 몰려오고 있는 마당이니 더는 목소리를 낮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의 목소리엔 짜증이 어려 있었다.
“아. 네!”
나는 급하게 정신을 차린 뒤 짧게
대답하며 서둘러 파티를 향해 뛰어갔다.
쿵. 쿵, 쿵.
커다란 발걸음 소리를 동굴 내부에 울리며.
“아주 우리 여기 있다고 광고라도 하지 그래요? 확성기라도 구해다 드릴까요?”
이루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는 파티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표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게 서폿 나부랭이가 감당도 못 할 중갑은 왜 입고 온 거예요?! 던전 내에선 숨소리도 죽여야 하는 거 몰라요?!”
그녀의 질책에 나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민폐를 뛰어넘은 폐급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이따가 나가서 봐요. 절대 그냥은 못 넘어가니까!”
이루미는 앙칼진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리며 나를 돌아봤다.
그렇다. 그녀는 나를 돌아봤다.
파티에서 최우선 보호되어야 할 힐러의 등 뒤. 그곳이 바로 내 자리였다.
한마디로 전력 외라는 소리.
“온다. 그만해.”
최전방에서 방패를 든 채 통로를 주시하던 최형석이 다시 입을 열려는 이루미를 만류했다.
그도 내 행동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닌 듯 날 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일단 전투가 우선이니까 그녀를 만류한 듯싶었다.
꿀꺽.
누군가의 목울대를 넘어가는 침 소리와 함께 이 던전의 주민들이 어스름한 어둠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키키킷!
둥글넓적한 머리와 이어진 단단한 가슴과 배. 기역자로 뻗은 두 개의 더듬이와 날카로운 턱.
단단한 키틴질 갑옷을 온몸에 두른 거대 개미였다.
“빌어먹을….”
거대 개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최형석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욕설이 토해졌다.
“어…. 형석이 형. 우리 좆된 거죠?”
“아…. 망했네.”
이해찬의 물음과 팽호의 절망 어린 목소리.
그들이 이렇게 좌절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1m 크기의 거대 개미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2m 크기의 거대 개미. 바로 병정개미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던전 보스로서 보스 방을 지키고 있어야 할 병정개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보스 방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은 바로 여왕개미니까.
내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던전이 나타나고 80년. 그동안 축적된 정보를 토대로 헌터 협회는 하나의 던전 가이드를 발행했다.
나도 던전 청소부로 일할 때 매년 그 책을 사서 읽어 봤다. 아니 숫제 외우다시피 했다.
가이드에는 각 던전의 몬스터 공략법은 물론 부산물 채취 방법과 잡템 수거 요령도 수록되어 있었으니까.
그걸 외우지 않는 이상 던전 청소부 일은 하기 힘들었다. 일단 요령을 알지 못하면 몸이 힘들어서 버티지 못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던전 코어를 부수면 던전은 리셋되고 몬스터의 개체 수와 위치는 랜덤하게 설정된다.
그렇기에 던전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루트 따위는 없다. 있다면 단지 해당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공략하는 방법뿐.
“일단 각개격파는 물 건너갔고….”
이해찬의 중얼거림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사태를 만들어 낸 건 바로 나였으니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탈출도 거의 불가능할 것 같죠?”
불암산 던전에 여왕개미가 나타날 확률은 대략 1%. 백 번 정도 헌팅을 하면 한 번은 여왕개미가 등장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법도 분명 존재했다.
모든 몬스터를 무시한 채 빠르게 던전을 돌파해 여왕개미가 머무는 보스 방에 있는 던전 코어를 파괴하는 것.
그렇게 하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지만 단 하나,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다.
왜 보스를 공략하지 않냐고?
그야 여왕개미는 F급이 아닌 E급의 몬스터니까.
F급 헌터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정규 파티 두 개가 모여야 겨우 공략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한마디로 지금 파티로는 공략할 수 없다는 것.
‘저 몬스터의 벽을 뚫고 가야 하는 거지?’
지금 일행이 진형을 짜고 있는 곳은 지름이 10m 남짓한 공터의 한쪽 구석이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뚫려있는 세 개의 통로에서 튀어나온 수십 마리의 거대 개미가 파티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거기에 병정개미의 지휘를 받는 개미들은 일사불란하게 동굴의 천장과 벽을 타고 파티를 향해 진군해 왔다.
마치 잘 훈련된 군대처럼 말이다.
파티의 입장에선 절체절명의 상황.
‘역시 가이드에 나온 대로 지휘 개체가 있는 몬스터는 상대하기가 까다롭구나.’
하지만 나는 의외로 이 상황에 덤덤했다.
던전에 입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뛰어대던 심장은 직접 몬스터와 대면하게 되자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몬스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던 머리도 맑아지며 거대 개미들에 대한 정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거대 개미의 공격력은 21. 일반적인 F급 방어구라면 저 개미 떼에 뒤덮이는 순간 찢겨나가 고철이 되겠지.’
이게 헌터들이 여분의 방어구와 무기를 챙기는 이유다.
‘그래. 일반적인 F급 방어구라면 말이야….’
하지만 내가 입은 중갑 세트는 무려 D급의 방어력을 가진 F급.
위험하기는 하지만 버틸 수 있다.
괜히 내가 이 갑옷을 20억에 산 게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갑옷의 방어력만큼은 F급 중 최강이니까.
사사삭.
서서히 다가오며 파티를 옥죄는 거대 개미들.
파티의 탱커인 최형석과 서브 탱커이자 딜러인 팽호마저도 몬스터들이 보여주는 유기적인 움직임에 압박을 느낀 듯 주춤주춤 뒤로 걸음을 물렸다.
그렇게 파티원들의 얼굴에 절망의 그늘이 드리워질 무렵.
쿵.
나는 내 앞에 있는 이루미를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내가 앞으로 나서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일으킨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을 나 몰라라 하고 뒤에서 전투를 구경이나 하고 있을 만큼 나는 염치가 없지 않았다.
“어?”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라 탄성을 내뱉는 이루미를 지나치고.
쿵.
다시 한번 묵직한 걸음 소리가 울리는 순간, 파티를 조여오던 거대 개미도 그것들을 경계하던 파티원들의 시선도 일제히 나를 향했다.
“뭐 하는 거예요. 형?”
이해찬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 왔지만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물론 투구에 가려져 녀석에겐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쿵.
그리고 다시 한 걸음. 이해찬의 곁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는 내 손엔 한 장의 스크롤이 들려있었다.
찌이익.
마법 스크롤이 찢겨나가고 내 몸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무리.
-아이템: 스트랭스 스크롤을 사용하셨습니다.
-10분간 힘이 2배로 증가합니다.
쿵.
찌이익.
-아이템: 헤이스트 스크롤을 사용하셨습니다.
-10분간 민첩이 2배로 증가합니다.
쿵.
찌익.
-아이템: 디펜스 아머 스크롤을 사용하셨습니다.
-10분간 방어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마법 스크롤과 버프 포션을 사용하는 내 손은 바쁘게 움직였고.
척.
최형석과 팽호를 지나쳐 파티의 앞에 섰을 때 내 발소리는 더는 둔중하지 않았고 내 몸놀림은 몰라보게 경쾌해져 있었다.
“이게 무슨…….”
등 뒤에서 어이없는 듯한 최형석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엔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이 있으니까.
스윽.
나는 인벤토리에서 길이 2m 폭 1m가 넘는 거대한 은색 타워 실드를 꺼내 들고 개미들을 바라봤다.
완전 무장을 하고 개미들의 앞에선 내게, 더는 몬스터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는 남아 있지 않았다.
막연한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은 그 공포를 마주하는 것.
각성한 후,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해진 내 머리는 냉정하게 눈앞의 적을 분석했다.
본래 불암산 던전에 등장하는 거대 개미의 수는 평균 50마리. 매번 던전이 리셋 될 때마다 개체 수가 랜덤하게 설정되기는 하나 그 편차가 2, 3마리는 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병정개미의 지시에 따라 파티를 압박하고 있는 개미들의 수는 대략 50마리.
가이드에 따르면 여왕개미가 보스로 나올 경우에는 거대 개미의 숫자가 두 배로 증가한다고 했으니 나머지 50마리는 여왕개미의 곁을 지키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전력 파악을 마친 뒤 조용히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까딱.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까딱까딱거리며 병정개미를 도발했다.
“와라. X 밥.”
***
쿠쿵!
콰직!
퍼퍽. 후드득.
거대한 굉음과 함께 동굴이 몸서리를 치는 것처럼 진동했다.
“이게…대체 무슨 일이야…….”
50여 마리의 개미 떼.
그 한가운데에서 마치 성난 사자처럼 날뛰는 한 남자.
이루미는 일방적으로 개미들을 학살하고 있는 강현을 보며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런 사람이 서폿이라고? 대체 왜?”
그녀로서는 강현이 이해되지 않았으니까.
그녀를 지나친 강현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용한 소모형 아이템은 10여 개.
그 하나하나가 최소 2천만 원은 넘는, F급 서폿이 사용하기엔 비싼 고가의 버프 아이템이었다.
한마디로 눈앞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강현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꼴랑 40만 원 받는 서폿으로 와서 한 번에 3억이 넘는 돈을 몸에 처바른 채로 전투를 하는 중이란 뜻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헌터 생활 6개월.
아무리 각성자 중엔 또라이가 많다지만 저런 또라이는 또 처음이었다.
“누나 몰랐어요?”
“뭘?”
“저 형이 입은 중갑이요.”
“엄청 튼튼하다던 저거? 저 거무튀튀하고 멋대가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갑옷이 왜?”
이해찬은 그녀의 반응에 이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정말 몰라서 그렇게 막말을 하신 거였구나……. 전 또 누나 성격이 원래 그래서 알면서도 그러시는 줄 알았네요.”
“해찬아 내 성격을 그렇게 잘 알면 그냥 빨리빨리 말해줄래? 누나가 지금 화가 나려고 그러거든?”
이루미는 쥐고 있는 지팡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분명 눈과 입은 웃고 있지만, 그녀의 이마 위엔 불룩하게 혈관이 솟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해찬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여기서 더 놀렸다간 저 지팡이가 자신의 정수리와 조우하게 될 테니까.
“저 갑옷 나름 강북 각성자 스토어에서 유명한 갑옷이잖아요. 만든 사람이 뭔 생각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옵션이라고는 꼴랑 형태변형 마법 하나 달려 있고 나머지는 방어력에 올인한 변태 갑옷이에요 저거.”
“엑? 그런 걸 어떻게 입어? 최소 경량화 마법이라던가 에어 프레쉬 마법 정도는 달려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것뿐이게요? 저 갑옷 나름 아다만티움이 섞여 있어서 가격도 비싸고 무게도 상당해요.”
“얼마나?”
“처음 제가 봤을 땐 30억 정도였는데 안 팔려서 가격이 내려갔다고 해도 20~25억 사이일걸요. 무게도 300㎏은 나가고요.”
이해찬의 설명을 들은 이루미는 그제야 강현이 걸을 때마다 내는 둔중한 걸음 소리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변태적인 저 갑옷의 무게 때문이리라.
“보니까. 저 형. 저 갑옷 입으려고 액세서리도 모두 힘에 올인한 것 같던데 그것까지 합하면 장구류에만 최소 50억은 썼을걸요? 거기에 저렇게 물 쓰듯이 버프 아이템 사용하는 걸 보면 핵 다이아몬드 수저가 확실해요.”
이해찬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린 이루미의 눈에 버프 아이템을 사용하는 강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가난한 F급 헌터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제대로 돈 지랄이네요.”
“…부럽다.”
버프 시간이 끝났는지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쭈그려 앉아 다시 풀 도핑을 하는 강현의 모습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