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던전은 노다지다 (1).
소모품은 다 인벤토리에 들어있으니 갑옷만 챙겨입으면 준비는 끝이었다.
불암산 던전에 필요한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서 비워내 장롱에 욱여넣었다.
불안하긴 하지만 명색이 서포터로 던전에 가는 건데 저걸 다 들고 갈 수는 없었다.
물론 포션류와 버프 스크롤은 최대한 넉넉하게 챙겼다.
내 생명줄 같은 거니까.
그렇게 애물단지 같은 중갑을 차려입고 기다리기를 몇 분이나 지났을까?
우웅.
헌터 와치의 진동과 함께 떠오르는 메시지.
『최형석: 공고 보셔서 아시겠지만 페이는 40만 원입니다. 가능하시다면 최대한 빨리 던전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시지를 읽은 나는 재빨리 드론을 부르고 바닥에서 일어섰다.
끙.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스트랭스 스크롤을 잡아 찢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게감이 또다시 나를 짓눌러왔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고작 드론 타러 가는데 2천만 원짜리 스크롤을 날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쿵.쿵.쿵.
그렇게 힘겹게 계단을 내려와 빌라 앞에 나서자 정지 비행을 하는 드론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주택가에 내려선 드론과 그것에 올라타며 낑낑거리는 나.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끙.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엔 여력이 없었다.
이내 나를 태운 드론은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라 불암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제 유월로 접어든, 사냥하기 참 좋은 날이었다.
***
“뭐래? 온대?”
이루미의 물음에 최형석은 헌터 와치를 들어 강현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여 줬다.
“10분이면 도착한다고? 집이 근처인가?”
“몰라. 드론이라도 잡아타고 오려나 보지.”
“야, 고작 페이 40만 원짜리 던전 들어가는데 드론 타고 오는 서폿이 어딨어?”
맞는 말이었다. 집이 아무리 가까워도 드론 요금으로 20~30만 원은 나올 텐데 그런 서폿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걸 우리가 왜 걱정해. 본인이 10분 안에 오겠다잖아.”
“하긴 그건 그렇지.”
곧 최형석의 말에 수긍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루미.
“그런데 형 표정이 왜 그래요? 뭐 걱정 있는 사람처럼.”
이해찬의 물음에 최형석은 그제야 자신이 얼굴을 굳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그게…. 이번 서폿이 초보야.”
“아. 그것 때문에 표정이 그렇게 굳어 있었던 거예요?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서폿을 하겠다고 오는 사람인데 기본적인 건 공부하고 오겠죠. 설마 몸뚱이만 딸랑 오겠어요?”
“그래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왠지 안심이 안 되네….”
걱정 근심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해찬과 다르게 최형석의 얼굴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서울 도심 쪽에서 날아온 새하얀 드론 한 대가 던전 앞 공터 위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며 이루미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설마, 진짜로 드론을 타고 온 건가? 서폿이?”
그녀의 목소리가 일행의 귀에 들어온 순간.
푸쉭.
기체가 빠져나오는 소음과 함께 드론의 문이 열리며 검은 중갑으로 중무장을 한, 탱커로 보이는 각성자가 공터로 내려섰다.
쿵.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발소리.
“그럼 그렇지. 서폿이 무슨 드론을 타고 와.”
피식 미소를 지은 이루미가 이내 관심을 끊고 몸을 돌리자 파티원들도 하나둘 관심을 끊었다.
“그나저나 우리 서폿 씨는 언제 오시려나-? 아직 입장 시간 안 됐지?”
먼저 파티가 사냥을 끝낸 후 헌터 협회 소속의 던전 청소부들이 던전에 들어간 지 50분쯤 지났으니 아직 시간 여유는 있었다.
“응. 청소부들 나오려면 10분쯤 기다려야 할 거야. 그 뒤로 던전 코어도 부숴야 할 테니. 대충 20분쯤 남았나?”
그들보다 먼저 던전을 클리어한 파티는 이미 자리를 파했고 파티의 리더만이 남아 던전 코어를 파괴하기 위해 대기하는 중이었다.
“우리 서폿 씨-. 빨리와야 통성명이라도 하고 던전에 들어갈 텐데. 코빼기도 안 보이네-.”
그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쿵. 쿵. 쿵.
대지를 울리는 묵직한 걸음 소리와 함께 검은 중갑을 입은 탱커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 저분. 우리 쪽으로 오는데요?”
“응?”
“우리한테? 왜?”
그들이 그렇게 다시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탱커를 바라봤다.
그 어떤 탱커보다도 느릿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탱커의 투구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저, 서폿 부르셨죠?”
“…?”
“…!”
그 물음과 함께 던전 앞 공터에는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그러니까…. 강현 씨?”
누가 봐도 탱커가 분명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네. 맞습니다. 최형석 씨 되세요?”
“아…. 네. 제가 최형석이 맞긴 한데…….”
“서폿 부르신 거 맞죠?”
“서폿을 부른 것도 맞긴 한데요…. 설마, 그렇게 하고 던전에 들어가실 건가요?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 보이시는데.”
최형석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이 사람을 믿고 던전에 들어가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갑옷에 경량화 마법이 안 걸려 있어서 조금 무거울 뿐이니까요. 사냥에 방해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그리고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최형석뿐만이 아니었다.
힐러와 마법사 그리고 검사로 보이는 40대 후반의 남자까지도 모두 난생처음 겪어보는 무언가를 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이렇게 중갑을 착용하고 던전에 들어가는 서폿은, 나도 던전 청소부 인생 1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일단 물품인계부터 하겠습니다. 수량 확인하시고요.”
못 미더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최형석은 이내 떨떠름한 얼굴로 묵직한 가방 하나를 넘겼다.
쿵.
소리만 들어도 100㎏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가방 안에는 헌터들이 사용할 여벌의 방패와 무기, 갑옷, 그리고 포션과 마법 스크롤 등의 소모품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최형석이 건네준 물품 리스트와 대조하며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때 수량 확인을 잘해야 한다. 사냥이 끝나면 남은 아이템은 다시 돌려줘야 하니까.
그때 수량이 맞지 않으면 골 아파지는 거다.
어젯밤 미리 인벤토리를 비우기도 했거니와 확장된 인벤토리를 가진 내게는 큰 무리가 없을 만한 수량이었다.
다 집어넣고 나서도 오히려 공간이 남았을 정도.
“…하급 힐링 포션 10개, 함정간파 마법 스크롤 10장…. 수량 확인 끝났습니다. 모두 맞네요.”
그렇게 물품인계를 마치고 나니, 최형석은 나를 이끌고 파티원을 한 명 한 명 소개해 줬다.
파티의 데미지 딜러를 맡은 20살 마법사 이해찬.
뭐가 못마땅한지 새침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26살 힐러 이루미.
그리고 검사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내 몸을 한번 훑어보고는 이내 관심을 꺼버리는 49살의 검사 팽호.
마지막으로 메인 탱커인 최형석까지.
그렇게 모든 파티원의 소개가 끝날 무렵 던전 입구가 부산스러워지며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산물과 잡템 수거를 마친 청소부들이 빠져나온 것.
후웁.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
던전 청소부 생활 10년 동안 거짓말 조금 보태면 100번은 들어가 봤던 불암산 F급 던전.
하지만 각성자가 되어 헌팅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니 긴장이 가득 차올랐다.
이제 이전 파티의 누군가가 들어가서 던전 코어를 부수면 던전은 리셋된다.
그 후엔 내가 저 빌어먹을 던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헌팅을 보조하기 위해.
긴장으로 인해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최형석 씨 파티! 입장하시면 됩니다!”
이전 파티원이 던전 입구로 강제 전송된 것을 확인한 게이트 키퍼가 큰 목소리로 최형석의 이름을 부르며 입장을 허가했다.
먼저 최형석이 굳은 얼굴로 방패를 치켜들고 입장하고 그 뒤를 이어 검사인 팽호가 날카로운 도를 뽑아 들고 던전에 들어갔다.
이것은 던전 진입 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해 파티의 힐러와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방어력이 약한 마법사와 힐러가 입장하기 전 탱커와 검사가 먼저 입장해 안전을 확보하고 만일 몬스터가 있다면 어그로를 끌어 놓는 것.
약 5분 후. 힐러인 이루미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 나를 흘끗 보더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서폿 아저씨. 우리 발목 잡지 말아요. 경고했어요.”
짜증 섞인 경고와 함께 다시 투덜거리는 이루미.
“대체 서폿이 중갑은 왜 입고 온 거야? 생각이 없어. 생각이….”
아마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갑으로 감싸고 있는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이해찬이 말했다.
“누나. 저 갑옷 엄청 튼튼하고 비싼 거예요.”
평소 잡다한 정보에 빠삭한 이해찬의 말에 이루미가 답했다.
“음… 그럼 인정.”
이루미는 그 말을 남기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아하하. 우리 파티가 지금 2트 째라 루미 누나가 신경이 많이 날카로운가 봐요. 이해해 주세요. 형.”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이해찬은 넉살 좋게 웃으며 내 마음을 달래주려 했다.
“네. 틀린 말도 아닌걸요. 기분 나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 이루미의 말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두근.
헌팅을 하기 위해 던전에 들어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부터 존재감을 드러낸 심장박동 소리가 온통 내 머리를 울리고 있어 다른 것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니까.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바로 따라 들어오세요.”
말을 마친 이해찬이 던전 입구로 사라지고.
후읍.
깊게 숨을 들이쉰 나도 그의 뒤를 따라서 던전의 검은 입구로 걸음을 움직였다
쿵. 쿵.
심장 소리인지 발걸음 소리인지 모를 묵직한 울림과 함께.
어둠을 통과하자 모습을 드러낸 익숙한 동굴.
내가 던전에 들어서자 검은빛을 뿜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던 입구가 사라졌다.
이제 던전의 보스를 죽이기 전까지 출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던전 클리어를 판단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던전의 보스를 처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던전 코어를 파괴하는 것.
헌터들은 당연히 후자보다 전자를 선호한다.
후자는 코어의 파괴와 함께 던전이 리셋되므로 몬스터 부산물과 잡템을 포기한다는 뜻이었으니까.
후우.
두둑.
긴장으로 뻣뻣해진 목을 풀며 고개를 돌리자 먼저 들어온 파티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무기를 빼 들고 주변을 경계하던 파티는 내가 던전에 입장한 것을 확인하곤 천천히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일행의 뒤를 따라 걸음을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띠링.
-신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시스템은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로운 퀘스트를 던져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여기서?’
하지만 나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내가 던전에 입장하고 나서야 퀘스트를 던져주는 시스템.
불길한 느낌에 한번 심호홉을 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퀘스트 창을 열었다.
[특성 퀘스트: 아공간을 청소하자]
[등급: F]
[내용: 수많은 각성자들의 죽음으로 그들이 남긴 유류(遺留) 아공간이 넘치는 불암산 던전의 아공간을 청소하자.]
[진행상태: 진행 불가.]
아공간 청소 진행도 (0/10)
[보상: 포인트 100 무작위 아이템 1.]
[추가 보상: 추가로 아공간을 청소할 시 해당 아공간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하나를 랜덤하게 획득합니다.]
[제한시간: 05:59]
-본 퀘스트는 강제 퀘스트입니다.
-퀘스트 실패 시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1) 의 레벨이 하락합니다.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1) 의 레벨이 이미 최하 레벨입니다. 퀘스트 실패 시 특성이 소멸합니다.
-현재 던전 안에 몬스터가 존재함으로 퀘스트의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원활한 퀘스트 진행을 위해 불암산 던전 안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세요.
그리고 내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와. 해도 해도 너무하네. 강제 퀘스트 진행도 억울한데 그걸 실패하면 특성이 소멸한다고?’
퀘스트 창에 떠올라 있는 보상이나 추가 보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특성의 소멸과.
[제한시간: 05:58]
줄어들고 있는 제한시간이었다.
던전 안에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지 않으면 진행조차 불가능한데 시간제한까지 있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내가 잠시 퀘스트 창에 정신을 팔린 사이.
“형. 뭐 하세요? 빨리 오세요.”
어느새 저만치 앞으로 이동한 파티의 후미에서 이해찬이 나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어? 응. 미안.”
나는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대답했지만, 이해찬의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른 파티원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뭐 저런 폐급이 서폿이라고 온 거지?’라는 생각이 눈빛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안전한 곳에서 버프 스크롤을 써야 했다.
따가운 그들의 눈빛을 의식하면서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순간.
쿵.
400㎏에 가까운 묵직한 무게가 만들어 낸 둔중한 울림이 동굴 벽을 따라 메아리를 치며 퍼져 나갔고.
찌릿.
일행의 날카로운 눈빛이 당장이라도 나를 도륙 낼 것처럼 쏘아져 왔다.
그리고.
키에에엑-!!
마치 나의 부름에 답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 멀리서 들려온 몬스터들의 괴성이 동굴의 벽을 따라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