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9화 (19/202)

19. 불암산 F급 던전.

쿵. 쿵.

밤 9시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강북의 번화가 한가운데에서 난데없는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쿵.

마치 거대한 중장비가 땅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에 길을 걷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쿵.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나는 이 풀 플레이트 메일에 투구가 있다는 사실을 정말 감사해야 했다.

‘아. 그냥 내일 배달 받을 걸 그랬나?’

스토어 직원의 말대로 내일 배송을 받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스치는 것도 잠시.

‘아니야 그랬다가 도난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 20억짜리 아이템인데.’

도난, 파손 보험이 들어져 있다는 스토어 직원의 말에도 솔직하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트집을 잡아 20억을 모두 보상해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보상 절차도 까다로울 테고. 부자들에게도 녹록지 않은 게 이 세상이다. 하물며 나 같은 서민이야 오죽할까.

계좌에 5천억 가까이 있으면서도 고작 20억짜리 아이템을 분실할까 봐 입고 가는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멘탈은 아직 소시민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돈이 많았졌다고, 소시민적인 마인드가 갑부의 마인드로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냥 입고 나왔는데.

“아. 뭐야. 지 각성자라고 티 내는 거야?”

“그러게. 갑옷을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지 왜 입고 저 지랄함?”

“아-. 각성충 존나 극혐.”

“아이고-. 꼭 저렇게 티를 내고 싶을까?”

쪽팔리긴 진짜 쪽팔렸다.

‘인벤토리를 더 늘릴 방법이 없나?’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를 흡수한 지금, 인벤토리의 크기는 200칸이고 한계 중량은 200㎏이다.

하지만 이 중갑 세트의 무게만 해도 300㎏.

절대 인벤토리에 들어갈 수 없는 무게였다.

물론 부위별로 분해해서 넣는다면 몇몇 파츠들은 넣을 수 있겠으나 그래 봐야 남은 건 지금처럼 입고 가거나 들고 가야 한다.

그리고 애초에 쇼핑을 마쳤을 때 인벤토리엔 이 갑옷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

어제 구매한 뒤 아직 상점 창에 판매하지 못한 E급 D급 아이템이 50개나 남아있었다.

모두 80억이나 되는 아이템을 방에다 쌓아두고 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누가 훔쳐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라고.

그렇지 않아도 치안이 안 좋은 동네라 집에 귀중품을 두지 않는 편이기도 했고, 청소부 시절 때 듣기로는 원래 각성자들은 자신의 인벤토리를 개인 금고 식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오직 자신만 열어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상점창에 올리지 못한 아이템 50개에 추가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포션과 마법 스크롤들을 마구 사다 보니 이미 인벤토리는 가득 찼다.

‘어떻게든 빨리 드론 타는 데까지만 가자.’

강북의 번화가 한가운데에 자리한 각성자 스토어, 그곳에서 걸어 나와 번화가를 가로지르며 난데없는 갑옷 패션쇼를 하게 된 나는 그저 빨리 드론 정류소로 가자는 생각으로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이런 인구 밀집 지역엔 드론을 불러도 오지 않으니까.

헉. 헉.

온 액세서리를 힘으로 도배를 했음에도 여전히 오지게 무거운 갑옷의 무게에 입 밖으론 거친 숨이 끊임없이 토해져 나왔다.

하긴 갑옷 무게와 내 체중을 합하면 400㎏에 육박하니 숨소리가 거칠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쿵. 쿵.

나는 빠르게 걷는다고 걸었지만 내 걸음은 여전히 느리기 그지없었다.

그때 나 귓가에 들려오는 수군거림.

“아유. 꼭 저렇게까지 티를 내고 싶었을까?”

“놔둬라. 방구석 찐따가 각성해서 관심 좀 받고 싶었나 보지.”

‘나 방구석 찐다 아니었거든!’

나름 사회생활 건실하게 하던 10년 차 직장인이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스윽.

잠시 걸음을 멈춘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스크롤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순간 번화가 한가운데에 정적이 내려앉고.

“야 씨바 저거 마법 스크롤 아니야? 설마 우리 공격하려는 거야?”

“야! 경찰 전화해! 경찰!”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번화가.

‘아 진짜! 내가 드론만 구매할 수 있었어도 이런 개쪽은 팔지 않았을 텐데.’

대체 누가 드론을 테러에 이용한다고 제제를 걸어놨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한 귀로 흘리며 재빨리 스크롤을 찢었다.

찌이익.

그러자 내 몸으로 스며드는 한줄기 빛무리.

-아이템: 스트랭스 스크롤을 사용하셨습니다.

-10분간 힘이 2배로 늘어납니다.

던전에서 사용하려 장만한 2천만 원짜리 버프 스크롤을 번화가 한가운데서 사용한 나는 거의 뛰다시피 그곳을 벗어났다.

쿵쿵쿵쿵.

정말.

2천만 원짜리 스크롤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나는 쪽팔렸다.

***

집에 도착한 나는 애물단지를 보는 눈으로 좁은 방 한쪽에 자리한 중갑 세트를 바라봤다.

“하아-. 내일 던전은 또 어떻게 가냐?”

저 무거운 중갑 세트를 입고 던전까지 갈 생각을 하니 쏟아질 시선에 머리가 아찔하다.

이게 바로 각성자 무구에 경량화 마법이 필요한 이유였다.

이 제작자 놈은 뭔 생각으로 형태 변형 마법을 제외한 다른 마법을 부여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메이커가 완성품이라고 도장을 찍은 이상 아이템의 업그레이드나 마법 부여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저건 저대로 그냥 사용해야 한다는 뜻.

‘아, 어디서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 같은 거 또 안 떨어지나?’

정말 인벤토리의 확장이 마려운 순간이었다.

일단 있는 돈으로 더 넓고 보안등급이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야겠다.

그래야 집안에 뭐라도 두고 다니지.

우우웅.

묵직한 진동음과 함께 헌터 와치가 메시지를 토해냈다.

『콜팡: 안녕하십니까. 판매자 강현님…….』

정중한 인사로 시작된 콜팡의 메시지는 간단하게 줄이자면 이러했다.

‘네가 만든 발모제 존나 효과 좋더라. 근데 네가 워낙 소량생산을 해서 구매하지 못한 고객들의 불만 때문에 우리가 일을 못 하겠다. 그러니까 다음에 등록할 제품부터는 네 제품을 경매장에서 팔 테니 그렇게 알아라. 너도 돈 더 벌고 우리도 수수료 더 받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

저번에 보내왔던 메일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며 정중하게 보내온 메시지였지만, 내 의견 따위는 일체 반영할 생각이 없는듯한 메시지.

역시 세계 10위의 대기업다운 일 처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꼬우면 딴 데로 꺼지라는 거지.

하지만 이건 내게도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내가 F급 아이템 40개를 사기 위해 들인 돈은 20억. 그걸 팔아 번 포인트가 400포인트다.

그걸로 40개의 발모제를 사서 콜팡에서 판매한다면 내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고작 40억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게 경매장에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격이 어디까지 뛸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콜팡의 경매장은 아무 제품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검증된, 고객의 니즈가 확실한 제품만이 들어갈 수 있는 콜팡의 경매장, 그곳에 들어가는 건 나에게도 큰 기회였다.

“20억이 100억이 될 수도 있겠는데?”

나는 상점 창을 열어 쿤타우리족의 발모제를 구매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거실 한구석. 내가 벗어놓은 중갑 세트가 눈에 밟혔지만 어쩌겠는가.

내일 일은 내일 고민하면 될 터.

굳이 내일 고민을 오늘로 가져와 흥겨운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

이른 아침부터 불암산 F급 던전 앞은 많은 사람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이제 막 헌팅을 마치고 나온 듯 초췌한 몰골의 헌터들과 다음 헌팅을 대기하는 헌터들. 그리고 그사이 잡템과 부산물 수거를 위해 던전에 진입하는 던전 청소부들과 그들을 검문 검색하는 게이트 키퍼.

던전 입구 옆에 자리한 작은 컨테이너에선 던전의 몬스터를 잡고 나온 마나석을 판매하기 위한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아니 무슨 하루 만에 마나석 값이 그렇게 내려가요?”

마나석을 판매하려는 파티의 리더는 하루 만에 100만 원이 넘게 떨어져 버린 마나석 값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마나석을 매입하는 각성자 센터 소속의 담당 공무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어제 도깨비 길드에서 함경도에 있는 S급 던전을 클리어 한 건 아시죠? 그 일 때문에 시중에 마나석이 대량으로 풀렸습니다. 그러니 시세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죠.”

몬스터가 나타나고 80년. 인류는 석유와 가스를 대체해 마나석을 에너지원으로 삼았다.

해양 몬스터와 공중 몬스터로 바닷길과 하늘길이 막혀버린 지금, 부피가 큰 석유나 가스는 운송이 거의 불가능했고, 마나석과 비교하자면 그 에너지 효율이 극히 저조했으니까.

물론 던전 등장 후 초창기. 그러니까 1960년대까지만 해도 텔레포터들에 의해 운송되는 석유에 목숨을 걸 때도 있었으나. 이후 발명된 마나석 발전기로 인해 사양산업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살아남은 건 석유화학 산업 정도?

이러니 과거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조절하면 국제 유가가 널뛰기를 뛰었던 것처럼 길드의 마나석 반출량에 따라 마나석 값이 널뛸 수밖에.

“아 이번에 포션 많이 썼어요. 이대로 팔면 우리 적자예요.”

파티의 리더가 다시 담당자에게 사정을 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 각성자 센터가 정가입니다. 다른 곳에 판매하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가격보다 낮으면 낮았지, 높지는 않을 겁니다.”

“하아-. 알죠. 아는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리더는 어쩔 수 없이 마나석을 판매하고 컨테이너를 빠져나왔다.

거대길드를 따라 한답시고 마나석을 인벤토리에 묵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형석이 형! 배고프죠? 빨리 와서 한 숟가락 해요!”

파티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파티의 막내이자 마법사인 이해찬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최형석을 향해 손짓했다.

아무래도 서포터가 꺼내놓고 간 도시락을 먹는 중인 듯싶다.

“어? 우리 대장 표정이 별론데? 왜? 마나석 가격 내려갔어?”

동갑내기 힐러 이루미가 그의 표정을 보고 물어왔다.

“어.”

“얼마나?”

“백만 원.”

“미친!! 300짜리 마나석이 100만 원이나 떨어졌다고? 그게 말이 돼?”

“어제 도깨비 길드에서 마나석 대량방출했대.”

들고 있던 숟가락을 휘두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던 이루미는, 이어지는 최형석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참 이해가 빠른 아이다.

파티원들에게 헌터 일을 취미로 한다는 말을 듣는 금수저 해찬이 녀석은 마나석 가격이 내려갔다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그나마 걱정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해온 것은 파티의 서브 탱커이자 검사인 팽호 아저씨였다.

“그럼 우리 분배금은 어찌 되나?”

“F급 마나석 일곱 개 천사백만 원에 팔았고요. 잡템에 몬스터 부산물도 있고. 아이템도 하나 드랍돼서 적자는 아닌데. 그래도 좀 적죠. 던전 사용료랑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한 사람당 4백 정도 되겠네요.”

“도깨비 길드에서 마나석을 풀었으면 잡템이나 부산물도 같이 풀었을 확률이 높아. 아마 그것보다 더 적을 거야.”

“아 그렇겠네요….”

최형석은 팽호의 말에 수긍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한 바퀴 더 돌아야겠죠?”

저쪽에서 전투적으로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두 사람과는 다르게 팽호와 최형석에겐 돈이 필요했으니까.

“그럼 서포터가 문제인데….”

“아까 그분은 가셨죠?”

“던전 나오자마자 돈 받고 바로 갔지. 다른 던전에 또 들어가나 보더라고.”

“그분도 참. 바쁘게 사시네요.”

“뭐 서포터가 돈 벌려면 그 수밖에 없지.”

서포터든 헌터든 던전은 하루에 한 번만 도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한번 던전에 들어가면 극도의 긴장감을 두 시간, 세 시간이고 유지하며 던전을 공략해야 하니 그것은 당연하였다.

신경이 계속해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으면 언젠간 끊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항상 크든 작든 사고를 불러오니까.

하지만 오늘같이 들인 시간 대비 적자를 보는 날이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빠르게 한 번 더 도는 수밖에.

구인·구직 앱에 서포터를 급구한다는 게시글을 올린 최형석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괜찮은 사람이 와야 할 텐데.’

이렇게 2트째(2트랙째) 던전을 공략할 때면 아무리 무던한 사람도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번에 올 서포터는 그런 신경질까지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

어젯밤 40개의 쿤타우리족의 발모제를 구매해 400개의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를 만들어낸 나는 경매 시각을 정하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뜬 아침.

나는 어제 바로 경매를 진행하지 않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홍보대행사에서 보내준 링크를 따라 그들이 홍보한 사이트 하나하나를 찾아가 본 결과.

모든 사이트가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 이야기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 위쪽에 뜬 사이트의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불꽃남자 : 하…. 이날만 기다려 왔다.

┘ㅇㅇ(121.49.1) : 네다대.

┘불꽃남자 : …님 어디 사세요?

-흙수저지만괜찮아 : 아…. 결국 소득 격차에 따라 모량도 차이나는 시대가 오는구나….

┘이젠돈으로심겠어 : ㅋㅋㅋ저 먼저 탈출해 봅니다.

┘흙수저지만괜찮아 : [사진]

┘이젠돈으로심겠어 : 이런 시바. 풍성충이었네

┘ㅇㅇ(228.492.32) : ㅋㅋㅋ흙수전데 괜찮은 이유가 있었엌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

어제 바로 경매를 진행했어도 발모제는 내가 정한 가격보다 비싸게 팔렸을 테지만, 이렇게 하루 뜸을 들이니 화력이 더 거세지지 않는가.

지금 보이는 반응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에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를 모르는 탈모 환자는 없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판매자님! 콜팡 마케팅 부서의 김이서 부장입니다. 아직 식전인데 혹시….]

그리고 콜팡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서도 따로 메일이 왔을 정도니. 이 경매의 중요성은 현재 콜팡 내부에서도 회자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근데 태도가 이렇게 급변하다니. 콜팡이 약은 것 같으면서도 그 처세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본주의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20억이 400억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되면 순이익이 380억.

콜팡 배송비 10%를 제하더라도 무려 순이익이 340억이다.

40병을 구매해 400병을 만들어 파니 이렇게 이윤이 남는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창조경제!

그리고 어쩌면 저 관계자 메일을 보니, 이후에 다른 제품을 판매하게 되더라도 콜팡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흐흥-. 기분 좋은 아침-.”

그렇기에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밤 10시에 시작될 발모제 경매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펌프질한 것처럼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거실 한구석에 놓여있는 흑색의 중갑을 보는 순간, 내 기분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아…. 던전. 시바…….”

생각만으로도 손이 떨리는 그곳에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암담해진다.

“그래도…. 가야지….”

내 목표는 엘릭서.

엘릭서는 무려 신급의 아이템이다.

불로불사, 금강불괴, 만독불침의 재벌이 되기 위해서는 꼭 엘릭서가 필요했다.

오래오래 있는 돈 다 쓰고 살려면 말이다.

그렇게 구인·구직 앱 프리몬을 연 내 눈에 한 개의 게시물이 들어왔다.

『급구! 불암산 F급 던전 서포터 구해요! 오시면 바로 출발함.』

불암산이면 내가 사는 강북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거기에 던전 청소를 위해 몇 번 들어가 본 경험이 있기에 던전의 구조 또한 내게 낯설지 않다.

한마디로 나한테 딱 맞은 던전인 셈.

물론 몬스터는 별개이지만.

나는 서둘러 게시글을 올린 게시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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