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7화 (17/202)

17. 청심원 (3).

땅 주인과 만나는 건 시간이 조금 걸렸다. 왜인지 웃돈을 준다는데도 그는 망설이는 듯했다.

그렇게 만난 땅 주인의 인상은 정혜 누나의 말과는 다르게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렇다고 인상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얼굴엔 보육원을 파는 데 일체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고. 우리 젊은 사장이 그 보육원 땅을 사려고 하신다고. 그래. 얼마 정도 생각하시나? 소문 들었으면 알겠지만 요즘 그 땅이 좀 비싸졌는데 말이야.”

한적한 커피숍에서 만난 땅 주인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마 내 행색이 30억이 넘는 돈을 가진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겠지.

“얼마 정도면 그 땅을 제게 파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명백한 비웃음.

“백억. 지금 이 자리에서 백억을 주면 내 그 땅을 젊은 사장에게 팔지.”

***

이동식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웃돈을 주고 땅을 사겠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약속장소로 나섰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그 땅을 살만한 돈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젊은 청년이었다.

손목에 차고 있는 헌터 와치가 걸리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청년의 옷차림은 뭐랄까? 깔끔하지만 너무 저렴해 보였다.

더군다나 지금 이 땅은 돈만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질러버렸다.

“백억. 지금 이 자리에서 백억을 주면 내 그 땅을 젊은 사장에게 팔지.”

말을 마친 이동식은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이제 저 애송이는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다.

처음 매입 의사를 보인 ‘대상그룹’에서도 30억이 최대치라고 못을 박은 땅이었다. 그 땅을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말에 얘기나 들어보자 싶어서 나오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어쩌면 자신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쯧쯧. 젊은 놈이 성실하게 일해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말이야. 어디서 못된 것만 처배워서는 선량한 사람 등을 치려고 해?’

이동식은 젊은 놈의 손목에 채워진 헌터 와치가 무서워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는 못했지만, 내심 강현을 사기꾼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그렇게 하시죠.”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뭐…뭐?”

“사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부동산 가서 계약하시죠.”

“아니. 그러니까 그 땅을 정말 백억에 사겠단 말이오?”

이동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의 강현을 바라봤다.

“안 파실 겁니까?”

“팔지. 팔 건데 내가 좀 당황해서 그래요. 정말 그 땅을 백억에 사겠다고?”

“네.”

“아니. 왜?”

***

재차 나의 의사를 확인한 이동식은 거만하게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는 목이 말랐는지 커피를 들이켰다.

“이보시오 젊은 사장. 내가 젊은 사장이 사기를 치는 줄 알고 백억을 부르긴 했지만, 그 땅 절대 삼십억 이상은 못 받아요.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 땅을 사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 봐요. 차라리 그 돈이면 다른데 더 좋은 땅을 알아볼 수도 있지 않겠소.”

이동식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

그러니까 백억을 주겠다는 내 말에도 저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사실 정혜 누나에게 땅 주인의 연락처를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보육원 땅을 매입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계약 기간이 끝나더라도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부탁을 하려 했을 뿐.

아무래도 새로운 보육원 부지를 찾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촉박했으니까.

하지만 보육원을 빠져나와 땅 주인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 나는 땅을 구매하고 싶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 때문이었다.

[특성 퀘스트: 던전을 확보하자.]

[등급: E]

[내용: 아공간 청소부 특성을 가지신 강현 님은 전 우주를 떠도는 유류(遺留) 아공간을 청소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약 없이 우주를 떠도는 아공간들이 잠시나마 머물 수 있는 던전을 만들도록 하세요.]

[진행상태: 진행 중.]

1. 아공간이 생성될 부지확보(진행 중).

[보상: 아공간 청소부 전용 던전.]

[제한시간: 98일 07:35]

-본 퀘스트는 강제 퀘스트입니다.

-퀘스트 내비게이션이 실행됩니다.

[퀘스트 내비게이션]

[목적지까지 2.5km 남았습니다.]

퀘스트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은 명확했다. 내가 나고 자랐던 ‘청심 보육원’.

‘하-. 이거 나 일부러 엿 먹이려는 거 맞지?’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제가 그 보육원 출신입니다. 사장님께는 그냥 보육원 땅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그곳이 고향이고 십오 년이라는 추억이 깃들어 있는 집이죠. 그러니 제게 그곳은 백억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고. 젊은 사장이 정미현 원장님 아들이셨구먼. 그래.”

내 말을 들은 이동식은 반색하며 기특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른 데 알아봐요. 젊은 사장 사정을 들어서 하는 말인데. 대상그룹 그놈들이 30억 이상은 안주겠다고 했소. 안 좋은 일 당하기 싫으면 뻗대지 말고 30억 받고 그 땅을 팔라고 대놓고 우악을 지르더라니까? 젊은 사장도 각성자라서 잘 알 거 아니오? 재벌이 어떤 놈들인지.”

안다. 너무도 잘 안다. 요 며칠 재벌들과 엮이며 그들이 가진 힘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으니까.

재벌 공화국 대한민국.

돈과 힘을 가지지 못하면 불합리한 일을 당하기 십상인 나라.

물론 30억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대상그룹에게는 껌값이나 마찬가지인 금액이다. 이동식에게 그 돈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힘으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노골적인 협박을 했을 것이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동식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나는 이동식과 만나기 전 대상그룹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재계서열 85위. 더군다나 일반인은 뉴스에 대서특필되지 않는 이상 직접 들어볼 기회가 적은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이었다.

정혜 누나가 말한 금강산 테마파크가 아니었다면 있는지조차 몰랐을 그룹이었다.

아무래도 테마파크와 나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테마파크 사업으로 재벌의 반열에 든 대상그룹은 전국에 12개의 테마파크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금강산 테마파크였다.

분명 재벌은 재벌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상그룹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지금 나는 재계서열 1, 2위를 다투는 대현 그룹 오너 일가와 연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나와 헤어지기 전, 한 가지를 약속해 줬다. 자신과 대현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딱 한 번, 전심전력을 다 해 도와주겠노라고.

그의 말에 현 대현 그룹 회장인 강태웅과 그 동생들마저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뜻을 비쳤었다.

그러니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뒷배 중 하나를 가지게 된 셈이었다. 딱 한 번이었지만.

그런 기회를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했었다. 어차피 아끼다 뭐 되니까.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의 부탁을 하는 게 옳았다.

“그럼. 40억으로 하시죠. 그래야 대상그룹에서 사장님께 별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 같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동식과 함께 부동산으로 향했다.

“젊은 사장. 그래도….”

“그래도 그놈들이 뭐라고 하면 각성자가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팔았다고 하세요. 그럼 별일 없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웃어 보였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재벌을 가장 잘 잡는 건 공권력도 정치 권력도 길드도 아니다.

그 누구보다 재벌을 가장 잘 잡는 건 바로 재벌.

재계서열 1, 2위를 다투는 대현이라는 큰 호랑이를 뒤에 둔 내게 대상그룹은 그다지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다.

일생에 한 번 있을 호가호위(狐假虎威)랄까?

***

“뭐 이 미친 새끼야?!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

불같이 노성을 토해내는 장년의 사내.

그는 바로 재계서열 85위 대상그룹 회장 주석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 포악한 늑대의 이빨 아래 놓인 가녀린 어린양처럼 몸을 떨고 있는 50대 사내는 그의 동생이자 그룹 사업 본부장직을 맡은 주철원.

그는 바로 이번에 새로 추진하는 각성자 테마파크의 총괄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게…. 조금 전에 최 장관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헌팅 아일랜드’ 허가가 취소됐다고….”

“너 이 새끼! 이번일 기름칠 하느라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알아?! 그런데 뭐? 허가가 취소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이 새끼야!!”

대상그룹에서 이번 ‘헌팅 아일랜드’. 그러니까 각성자 테마파크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게 뿌린 돈만 수백억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허가가 취소되었으니. 주석원 회장이 입에서 불을 뿜을 것처럼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최 장관 말로는 부지선정을 다른 곳으로 하면 다시 허가가 나올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주철원의 말은 주석원이 입에서 브레스를 뿜어내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뭐 이 새끼야? 입에서 나오면 다 말인 줄 알아?! 그럼 지금 사놓은 땅은? 대지 매입에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알면서 하는 소리냐고! 4조야! 4조! 그 땅에 농사지을래?! 모내기라도 할 거야?! 어!?”

후욱-. 후욱-.

한동안 거칠게 심호홉을 하며 숨을 고르던 주석원이 이내 조용히 물었다.

“이유는? 갑자기 허가가 취소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최 장관이 그건 말 안 했어?”

“슬쩍 떠봤는데, 지나가는 말로 대현을 언급하기는 했습니다. 대현한테 밉보인 게 있냐고….”

“대현? 대현이 여기서 왜 나와? 대현이 우리 같은 구멍가게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게. 아무래도 대현에서 정부 쪽에 힘을 쓴 게 아닌가 하는 게 비서실의 의견입니다.”

이어지는 주철원의 보고에 주석원 회장은 그를 슬쩍 바라봤다.

“그 새끼들 전부 잘라버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머리에 우동사리만 가득 찬 새끼들도 그 정도 추리는 하겠다! 대현 이름이 나왔으면 대현이 뭣 때문에 정부에 힘을 써서 허가를 취소한 것인지 그걸 알아 와야 할 거 아니야?! 지금 이걸 보고라고 하는 거야?! 그 새끼들한테 주는 월급이 아깝다. 당장 잘라버려!”

“…….”

주석원의 호통에 주철원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동생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주석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해? 안 나가?”

“네?”

“그 대가리에 우동사리밖에 안 들어 있는 놈들 닦달해서 대현이 왜 우리 일에 훼방을 놨는지 알아 와야 할 거 아니야! 왜. 너도 일하기 싫어? 옷 벗겨줘?!”

주석원의 말을 들은 주철원이 몸을 돌려 회장실을 나서려는 순간 가시와 같은 말이 그의 등에 날아와 꽂혔다.

“일 제대로 해. 옷 벗기 싫으면.”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허리를 꾸벅 숙이는 주철원.

달칵.

문을 닫고 회장실을 나서는 동생을 보며 주석원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린 시절부터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참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동생이다.

“아오-! 저거. 동생만 아니면 확 잘라버리는 건데….”

동생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내쳤을 테지만 어쩌겠는가? 부모님이 남겨준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것을.

***

대현 그룹은 빠르고 거침없이 일을 진행했다.

내가 대현의 왕회장 강산호에게 도움을 청한 건 불과 하루 전.

“회장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전에 말씀해 주셨던, 딱 한 번 무슨 부탁이든지 들어주겠다던 말씀. 그거 지금 쓸 수 있겠습니까?”

그 부탁과 함께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렸다.

처음은 언론에서부터 시작됐다. 어제저녁 ‘상수원 보호구역에 테마파크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시작으로 대상그룹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곧 모든 매스컴이 대상그룹이 달라붙어 대상그룹의 헌터 아일랜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국토부 장관과 인허가권을 가진 남양주 시장의 전격적인 기자회견으로 방점을 찍었다.

바로 대상그룹에 준 테마파크 허가를 취소해 버린 것.

최준용이라는 국토부 장관은 서울시민의 생존권을 들먹이며 서울시민에게 안전한 상수원을 공급하기 위해 당연히 내렸어야 할 조치라고 떠들어 댔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재계 1, 2위를 다투는 대현의 힘이란 것을.

그리고 이어진 대상그룹 회장의 기자회견.

그는 회견장에 나와 해당 부지에 대한 적합성 조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며 사과하고 이미 구매한 부지에 친환경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 말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내 생에 첫 호가호위, ‘슈퍼을’질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해당 부지에 친환경 생태공원을 위한 조성사업 계획을 추진하기로….]

이어지는 뉴스를 보니 졸지에 보육원 옆에 생태공원이 생길 판이다.

뭐 시끄럽지만 않다면야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저기요-! 강 사장님!”

현장 소장님이 부르는 소리에 헌터 와치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나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봤다.

거기엔 설계도를 손에 쥐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건설사 현장 소장님이 서 있었다.

보육원이 너무 낡아서 그 옆 땅을 구매해 새 건물을 올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육원 자리는 던전이 생성될 자리이기도 하고 말이다.

위이잉-! 쿵-!

땅땅-! 땅!

각종 건설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와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물론 이것 또한 대현건설에서 진행해 주기로 했다.

부지매입과 건축까지 모두.

이번 건설건과 관련해서 전날 회장님과 나눴던 통화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회장님! 정말 이 정도는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닐세. 이걸로 남은 마음의 빚은 청산하는 거로 하면 되지 않겠나. 부디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 주게나.’

나야 뭐 공짜로 1000평이 넘는 땅과 건물까지 얻게 됐으니 나쁠 건 없었지만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운 건 사실 이었다.

하긴 일 년 순이익이 100조 원에 달하는 회사의 오너에게 이 정도쯤은 그리 큰돈도 아니겠지.

어제 부동산 계약을 마치고 계약서를 들고 다시 보육원에 방문한 나를 정혜 누나는 마치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바라봤다.

기존에 땅을 사버린 것은 물론이요. 그 옆에 새로 건물을 올리겠다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물론 원장 어머니가 기절할 듯이 놀라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어제 일을 떠올리며 현장 소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우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헌터 와치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출력됐다.

[콜팡 경매 요청과 관련한 메일 확인 요청 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