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청심원 (2).
원장실의 소파.
소파 위를 굴러다니는 장난감들을 한쪽으로 밀어 놓은 어머니는 나를 소파에 앉히고 그 옆에 나란히 앉으셨다.
“방이 조금 정신없지? 좀 전까지 애들이 놀다 가서 아직 정리를 못 했네.”
“아니요. 정신없긴요. 되려 어릴 때가 생각나던데요.”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어머니의 방은 항상 이랬다.
버젓이 놀이방이 따로 있음에도 우리는 항상 이곳에서 놀았으니까.
형들과 누나들이 어머니 귀찮게 하지 말라며 우리를 혼냈지만, 어머니는 항상 웃으시며 괜찮다고 형, 누나들을 만류하곤 하셨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손은 어쩌다가 이랬어? 다친 거야?”
어머니는 붕대를 감은 내 왼손을 보시곤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험한 일 한다더니…. 좀 조심하지 않고.”
쿤타우리족의 발모제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서 나는 찰랑거리는 손등의 털을 가리기 위해 여전히 붕대로 감싸고 다녔다.
“아. 이거 그냥 사정이 있어 붕대로 감아둔 거예요. 상처 입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손이 괜찮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에이. 엄마 뭘 또 그렇게 다 큰 아들내미 걱정을 하셔. 뭐 타투나 이런 거 하나 했나 보지. 요즘 애들 그런 거 많이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시던 어머니는 정혜 누나의 말을 듣고서야 얼굴을 펴셨다.
“그런 거니?”
“아. 네.”
“그럼. 다행이네. 그래도 항상 몸조심해야 해. 혼자 살면 밥도 잘 챙겨 먹어야 해. 끼니 거르지 말고 항상 잘 챙겨 먹고.”
이것이었다.
어머니의 걱정과 사랑은 서른 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공평했다.
단지 어린 나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스스로 벽을 세우고 거부했을 뿐.
그렇게 이어지려는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끊은 것은 정혜 누나였다.
“에이. 엄마, 다 큰 놈이, 지 알아서 잘하겠지.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요.”
“하긴. 우리 현이야 어릴 때부터 똘똘했지. 엄마가 오랜만에 아들 만나서 조금 주책이었네. 미안해. 아들.”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에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들어찼다.
“괜…큼. 괜찮아요. 어머니.”
가슴속을 틀어막고 있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에 목소리에서 나도 모르게 물기가 묻어났다.
“어. 너 울어? 엄마 현이 울어!”
정혜 누나가 그런 나를 보곤 놀리듯 말했지만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2년 전에 우리 정혜 첨 왔을 때가 생각나네? 그때 얼마나 대성통곡을 하며 울던지. 엄마는 가슴팍이 다 젖었었지.”
“엄마?”
“엄만 그때 장마가 온 줄 알았지 뭐니.”
“아. 엄마아-! 동생 앞에서 이러기 있어요?”
“그럼 넌? 엄마 앞에서 동생 놀리기 있어?”
나는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깨달았다.
나에게 가족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걸. 그 누구보다 많은 가족이 있었지만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라는걸.
그것을 깨닫자 내 마음 한편에 있던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너는 평일에 웬일이야? 회사 안 가?”
“어. 그게….”
“그 헌터 협회인지 뭔지 때려치운 거야? 잘했어. 너무 위험해. 협회 인간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니? 어떻게 각성도 안 한 민간인을 던전에 집어넣어서 일을 시킨다니? 하여간 협회라는 것들은….”
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따발총처럼 쏘아져 나오는 정혜 누나의 목소리는 헌터 협회를 신랄하게 깎아내리고 있었다.
‘헌터 협회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누나. 나 각성했어.”
“…다 뜯어고쳐야. 응? 뭐?”
“나 각성했다고. 이제 각성자야.”
“뭐 진짜? 현이 네가 각성을?”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는 정혜 누나의 눈앞에 나는 조용히 헌터 와치를 내밀었다.
“어머? 진짜네? 엄마! 얘 각성했어!”
헌터 와치를 본 정혜 누나는 호들갑을 떨었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걱정이 늘었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니니? 던전 들어가서 몬스터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걱정이었다. 각성자 하면 일단 떠오르는 건 헌터였으니까.
“에이, 엄마 그건 각성자 나름이지. 던전에 안 들어가고도 돈 잘 버는 각성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현이야 직업은 뭐야? 등급은?”
“메이커. 등급은 비밀.”
“메이커? 정말?! 뭘 만드는데?”
나는 곧이곧대로 모든 걸 말해줄 수 없어 내 직업이 메이커라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도 누나도 내 말을 일체의 의심 없이 믿었다.
“누나 스마트폰 있지? 줘 봐.”
“응? 갑자기 폰은 왜?”
내 요구에 정혜 누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폰을 넘겨주며 말을 이었다.
“현아! 누나가 예뻐졌다고 누나한테 반하거나 그러면 안 돼. 알지? 우린 가족인 거.”
아주 쓸데없는 말이었다.
“뭐래-. 나 눈 높거든?!”
나는 누나의 말을 웃어넘기며 누나의 폰을 조작해 자라나라머리머리의 제품 페이지를 띄운 후 건네주었다.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 히익-! 10㎖ 한 병에 천만 원?!!”
제품 페이지를 읽던 누나가 발모제의 가격을 보고 기겁해 소리쳤다.
“현아! 아무리 대머리들이 호구라지만 이런 사기 치면 안 돼!”
“사기 아니야. 거기 후기 안 보여?”
내 말에 후기를 터치한 누나는 이내 사진을 보곤 기함할 듯 놀라며 말했다.
“이게 10분 만에 자란 머리라고?! 아르바이트 쓴 거 아니야?!”
“아르바이트는 무슨? 없어서 못 팔고 있구먼. 벌써 두 번이나 전량 매진됐거든?”
“엄마! 여기 봐요! 현이 말 진짜야.”
탁자를 건너와 어머니 옆에 앉은 누나는 스마트폰을 어머니에게 건네며 말했다.
“우리 현이 이제 부자 되겠네!”
누나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소리쳤고 어머니는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으신 듯 다정하게 웃으시며 내 손을 토닥이셨다.
“현아 지금까지 얼마나 벌었어? 2억? 3억?”
정혜 누나의 물음에 나는 그저 싱긋 웃어 주었다.
오천억을 벌었다고 말해 줘도 믿지 못할 테니까.
***
“그럼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어머니.”
“그래. 항상 몸조심하고, 끼니 거르지 말고. 힘든 일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해. 이렇게 찾아오면 더 좋고. 알겠지?”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셨다.
“네. 어머니.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의 연세도 이제 곧 일흔.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돌보기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으셨다.
처음 나를 보고 책상에서 소파까지 걸어오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어머니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그래. 멀리 안 나갈게. 조심히 가거라 아들.”
그렇게 어머니와 인사를 한 뒤 정혜 누나의 손목을 잡고 슬며시 마당으로 나왔다.
“뭐. 왜? 너 눈 높다며?!”
아까 한 말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마당으로 나온 누나는 장난스럽게 내 손을 툭툭 쳐냈다.
나는 그런 누나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무슨 일 있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 있을 게 뭐 있어.”
내 물음에 누나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그랬다. 누나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내 질문을 듣는 순간 누나의 눈동자가 움찔거리며 흔들렸기 때문이다.
각성자가 되니 이런 건 좋았다. 오감이 예민해지는 것 말이다. 내가 일반인이었다면 깜빡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를 만큼 누나의 표정은 태연했다.
“누나. 나 각성자라고 말했지. 눈동자 흔들리는 거 다 봤어. 말해봐. 무슨 일이야?”
“얘는 무슨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고 그래. 생사람 잡지 말고 집에나 가.”
“누나가 말 안 하면 내가 직접 알아볼 수도 있어. 그러기를 바라는 거야?”
나는 짐짓 목소리에 힘을 줘 누나에게 말했다.
“와-. 쪼그만 게 컸다고 누나한테 눈 부라리는 거 봐. 너 지금 막, 누나 협박하고 막. 그러는 거야?”
“아니 내가 또 무슨 협박을 했다고 그래. 내가 도와줄 일이면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나도 가족이고 어머니 아들이잖아. 나한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하자 누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너 이거 나한테 들었다고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그냥 어쩌다 보니까 네가 알게 된 거야.”
“알았어. 그러니까 말해봐. 무슨 일이야.”
재차 재촉하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동자를 굴리던 누나가 이내 입을 열었다.
“땅 주인아저씨가 올해 계약 끝나면 나가달래.”
“뭐? 왜?”
“너.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 테마파크 알지? 그 테마파크 만든 회사가 이쪽에다 각성자 테마파크를 만들 계획인가 봐. 이미 정부 승인은 떨어졌고 부지매입 중인데 우리 보육원 땅이 그 부지에 포함됐다더라.”
“그래서 보육원을 이전해야 하는 거야?”
“응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아저씨도 아직 땅을 팔지는 않았는데 그 회사에서 원래 가격보다 엄청 높게 부르니까 좀 고민이 되나 봐. 그래서 엄마한테 올해 계약이 끝나면 나가 달라고 말하더라고.”
아마도 내가 처음 어머니 방을 들어갈 때 어머니가 보고 계시던 서류가 그것이었나 보다.
서류를 보던 어머니의 안색이 무척 좋지 않으셨으니까.
“정부 지원금이나 그 회사에서 보상금 같은 거 나오지 않아?”
“나오지. 나오는데. 요즘 이 동네 땅값이 너무 올라서 그 돈으론 임대는 꿈도 못 꾼다는 게 문제지. 거기에 애들 학교문제도 있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는 것도 힘들고, 너도 알잖아. 우리 애들이 학교에서 어떤 취급 당하는지.”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나도 그 무시와 멸시 연민과 동정 그 외에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까.
“이 시골에서 그나마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애들도 그러는데 다른 학교로 전학까지 가면…. 아우-. 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기 땅값이 얼마나 되는데?”
“왜? 네가 사게? 아서라. 나도 듣고 깜짝 놀랐으니까.”
“그러니까. 얼만데?”
“30억.”
“…….”
누나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과 마당을 포함해 백 평 남짓한 땅.
그 말은 경기도 외곽의 시골 땅이 한 평에 3천만 원이 넘는다는 소리였다.
“나도 얼핏 들은 이야긴데, 여기가 그 테마파크의 중심지라서 그렇게 높게 책정됐다고 하더라고. 다른 데는 이렇게까지 오르지는 않았는데. 거기도 우리가 구매하기엔 많이 비싸지.”
땅 주인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원래라면 1억도 안 할 시골 주택이 30배가 넘게 뛰었으니 안 흔들리고 배기겠는가.
“땅 주인 연락처 알아?”
나직한 물음에 내 얼굴을 흘끗 쳐다본 정혜 누나는 이내 아무 말 없이 그 땅 주인이라는 사람의 연락처를 넘겨줬다.
“너…. 이거 정말 비밀이야. 엄마가 알면 나 정말 죽는다고.”
어머니에게는 비밀이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
이동식 그는 요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1억도 안되는 시골 땅이 무려 30억이 되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의 아버지는 이 지역의 유지였고 지역사회의 발전에 헌신했던 사람이었다.
돈보다는 명예를 좇는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그 덕에 시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 이동식은 그런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건물을 헐어버리고 카페라도 지으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땅을 고작 월 50만 원에 보육원으로 임대해 주고 있으니 어찌 이해가 될까.
“이래서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거야.”
하지만 지금, 이동식은 아버지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베푼 선행이 30억이 되어 돌아왔으니까.
“보육원은 다음 달 말에 나가기로 했으니까. 그때쯤 계약을 하면 되겠군.”
보육원으로서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 이전비와 지원금을 주기로 했고 땅을 매입하는 대상 그룹에서도 얼마 정도 보상금을 주기로 했으니. 그 돈이면 충분히 다른 곳을 임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동식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리링.
탁자 위에 놓여있던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