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5화 (15/202)

15. 청심원 (1).

“음…. 가족이나 친구, 혹은 지인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전혀 없으신 거네요?”

“네…. 바쁘게 살다 보니….”

월요일. 정신의학과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예슬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상담사 선생님과 상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이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 인적사항과 가족, 친구, 그리고 지인들에 관해 하나씩 물어보던 ‘그’는 이내 쯧쯧 하고 혀를 차더니 말했다.

“아니 젊은 사람이 왜 이러고 살아?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도 없어?”

맞은편에 앉아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아…. 네. 여자 친구도…. 바쁘게 살다 보니 없네요.”

‘이예슬’이란 예쁜 이름을 가진 상담사 선생님은 놀랍게도 여든은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내가 이름에 편견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성함이 이예슬이라니…. 왠지 이름과 매치가 안된다고나 할까?

‘분명 인터넷에선 여기가 상담을 잘해준다고 했는데…. 쩝.’

“잠은? 잠은 잘 자고?”

조금 이상함을 느끼긴 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툭툭 질문을 하며 핀잔을 주시는 할아버지 선생님의 눈엔 따뜻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으니까.

마치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 같았다.

이것이 이 선생님 특유의 상담 스타일이신가 보다. 그렇게 이해한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을 이어갔다.

“네. 잠은 잘 자요.”

“악몽은 안 꾸고?”

“네.”

“그럼 뭐하러 여기 왔어.”

“네?”

“멀쩡한데 뭐하러 왔냐고. 여기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아. 그게…….”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 이곳에 온 이유를 처음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블린과의 싸움,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공포, 두려움.

덥석.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손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셨다.

“저런-. 그런 큰일을 겪었누. 아이고 짠하구만.”

마치 힘든 일을 겪은 손자를 바라보는 친할아버지처럼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아. 네 그래서…. 이걸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해서요. 제가 각성자다 보니 던전 관련 일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이런 상태로는 던전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있지!”

내 물음에 선생님은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으면서 명쾌하게 답을 하셨다.

“있어요?”

“응. 있지. 사람을 만나!”

“네?”

“사람을 만나라고! 여자 친구도 만들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 뭣이냐? 요즘 동호회라고 하나 그런 것들도 많더구먼, 그런 거 가입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봐. 그렇게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그런 마음의 상처를 지우는 거야.”

“사람들을….”

“여기 보니까 나이도 서른이구먼. 언제까지 일에 빠져서 살 참이야? 여자 친구 만들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해야지!”

선생님은 마치 오랜만에 시골집에 내려온 손자를 혼내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무인도처럼 혼자 살아가려고 하지 말고.”

그리고 그 말씀이 큰 울림이 되어 내 가슴을 두드렸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보육원에서 자라야만 했고 풍족하지 않은 보육원 사정에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분명 내 것임에도 나보다 큰 형, 누나들에게 물건을 뺏기기 일쑤였으니까.

원장 어머니가 계셨지만, 어머니 혼자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을 모두 완벽하게 보살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내 것은 내가 지켜야만 했다.

머리가 여물고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런 성향은 더욱 진해졌다.

나를 바라보는 학교 친구들의 시선. 동정과 연민 그리고 경멸과 우월감.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마음의 벽을 세웠다.

그 속에서 지옥 같은 6년을 버티고 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나오니 사회는 더욱 정글 같은 지옥이었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

나보다도 강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 아니 나 빼고는 모두가 강한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한가지.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

애초에 주위에 내 것에 욕심을 낼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나를 변하게 한 것이 바로 기적 형님. 이기적 팀장이었다.

날카롭게 세웠던 가시를 가라앉히고, 그래도 사람처럼 다른 이들과 조금이라도 어울릴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사심이라고는 일절 없는 기적 형님의 배려와 가르침 덕분이었다.

내가 쿤타우리족의 발모제를 보자마자 기적 형님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일상적인 대화나 안부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을 내보이고 교류한다는 것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뭐해?!”

“네?”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내게 선생님을 상담실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담 끝났어. 나가.”

“네? 그…. 약이나 처방전은…?”

“약은 무슨 약?! 너한텐 사람이 약이야! 나가서 사람들이나 만나 이눔아!!”

버럭 역정을 내시는 선생님의 호통에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후-.

“심리상담이란 게 원래 이런 건가? 되게 독특하고 무서운 분이시네….”

그래도 뭐랄까?

이곳에 오기 전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건물을 나서는 내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

덜컥.

상담실로 들어온 이예슬은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할아버지 또 오셨어요?”

자신의 의자에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할아버지.

“응! 누나! 나 놀러 왔어. 나 오늘 착한 일 했으니까 사탕 줘!”

“그럴까요? 사탕 드실래요?”

“응. 사탕 좋아.”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누나라 부르며 맑은 미소를 지으시는 할아버지는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으신 분이었다.

“그럼 가운 벗고 사탕 가지러 갈까요?”

잘은 모르지만, 과거 꽤 유명한 심리 상담가였다는 할아버지는, 나이가 드시고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나자 가족들의 만류에도 자기 발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으시다며.

그리고 가끔 이렇게 요양병원을 빠져나와 자신의 병원을 찾아오곤 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운영하셨던 심리상담센터가 자신의 병원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음? 누가 다녀갔나?’

할아버지의 맞은편. 소파의 눌린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뭐. 별일이야 있었겠어?’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젓곤 할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누나-! 사탕! 사탕!”

자신의 팔에 매달린 할아버지의 재촉에 이예슬은 상담실 문을 닫고 탕비실로 향했다.

‘할아버지에게 사탕 드리고 요양병원에 모셔다드려야겠다.’

그렇게 강현이 엉터리 심리상담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른 채 잊혀 버렸다.

***

청심원.

내가 자란 보육원이다.

상담을 마친 뒤 곧장 드론을 타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이곳으로 향했다.

요금으로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나왔지만, 계좌에 오천억이 넘는 돈이 있다 보니 그 돈도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평일 오전.

머리가 좀 굵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 있을 시간이기에 보육원 마당은 한산했다.

‘여기에서 축구 많이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꼭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에서 고아라고 놀리는 친구들과 싸운 뒤 울고 들어올 때면 형들은 화를 내며 나를 놀린 친구들을 찾아가 때려주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원장 어머니의 사과로 끝이 나긴 했지만.

그렇게 든든했던 형들도 보육원을 나가고 나면 모두 연락이 끊겼다.

일 년에 한두 번 원장 어머니를 통해 형, 누나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 게 전부.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섭섭했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알겠더라.

비빌 곳도 기댈 곳도 없는 나 같은 무수저가 살아남기에 사회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걸.

그리고 형, 누나들도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란 걸.

그렇기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칠이 벗겨진 낡은 그네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 낡았네.”

어릴 땐 커다래 보였던 그네가 이젠 나 혼자 앉기에도 작고 낡은 모습이었다.

“누구세요?”

그렇게 내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 때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은 30대 초반 정도의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현이니?”

그 때문에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기억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도 선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 누구신지?”

“아! 내가 많이 변했지? 나 정혜 누나야. 김정혜.”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

“정혜 누나?!”

“그래 얘-. 이렇게 보니까 못 알아보겠다. 어쩜 이리 훤칠하게 잘 자랐니!”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정혜 누나.

“나보단 누나가 더 많이 변한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호호.”

그도 그럴 것이 내 기억 속의 정혜 누나와 지금 그녀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성형했어?”

“응. 티 많이 나니?”

“아니 전혀. 옛날 누나 모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못 알아채겠는데?”

성형했냐는 내 물음에 잠시 움찔하던 그녀는 이어진 내 말을 듣곤 곧 활짝 미소를 지었다.

“마법 성형이라 티 안 난다고 해서 대공사를 했지. 흐흐.”

성형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

외모는 변했지만 어린 시절 성격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정말 티 안 나네. 밖에서 보면 누난 줄 못 알아보겠어.”

“어머, 그 정도로 많이 고치진 않았어 야! 그냥 코 세우고 턱 깎고 앞트임 뒤트임 한 정도?”

“…그 정도면 얼굴을 다 고친 거 아니야?”

“그것도 옛날 말이지 요즘 이 정도는 수술 축에도 못 껴. 그냥 시술이지. 시술.”

정혜 누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들어가자.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누나의 손에 이끌려 원장 어머니 방에 들어섰다.

‘여긴 그대로네.’

원장 어머니의 방은 10년 전 내가 이곳을 떠날 때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장난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상장들 그리고 도화지에 그려진 어설픈 그림들.

모든 것이 낡았지만 어머니만의 따뜻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이 몽실몽실해지는 그런 느낌.

“엄마! 누가 왔는지 보세요. 현이가 왔어요.”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른 채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시던 어머니는 누나의 말에 고개를 드셨다.

새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과 눈가의 주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인 10년 전 그때보다 더, 그리고 왠지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현이 왔니?”

하지만 내 얼굴을 보고 활짝 웃으시는 어머니의 미소는 10년 전 그대로였다.

“네. 저 왔어요. 어머니.”

그 미소 속에서 전해지는 나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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