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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4화 (14/202)

14. 구매. 그리고 판매?!

그날 밤.

집 근처 단골 호프집에서 기적 형님과 만날 수 있었다. 양복 차림으로 앉은 형님에게 내가 물었다.

“일요일인데도 출근하셨어요?”

내 물음에 기적 형님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하루 쉬었으니 하루 더 일해야지. 나는 누구처럼 계좌에 십억이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하하.”

돈이 많아졌는데 막상 뭘 할지를 모르겠다는 나를 놀리기 위한 말이었다.

말총머리를 하고 삐죽거리며 웃고 있는 형님의 얼굴엔 나를 향한 질투나 시샘 같은 건 없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당연하지. 난 네 계좌에 십억보다. 이 머리카락이 더 좋다.”

난데없는 물음이었지만, 찰떡같이 알아듣고 답을 하는 기적 형님.

그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여 내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어요? 일하고 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아. 별건 아니고, 이거 전해주려고.”

서류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는 기적 형님.

한데 형님이 건네는 주머니가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이게 뭐예요?”

“그거. 네가 던전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쥐고 있던 거야. 네가 처치한 고블린에서 얻은 것 같기는 했는데, 알잖아. 던전에서 나온 건 모두 던전을 클리어한 헌터들 소유인 거. 그래서 ‘그’ 파티로 넘겨졌다가 다시 돌려받았어. 그쪽도 양심이 있는지 자기들이 잡은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정당하게 ‘헌팅’을 한 너한테 다시 돌아온 거지.”

형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기억이 떠올랐다.

상처를 입은 채 바닥을 기어가 손에 쥐었던 그것. 포션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손에 쥐었던 주머니. 이 주머니는 삶을 향한 나의 몸부림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처절한 기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거, 내가 잠깐 살펴봤는데 안에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 파티도 고작 고블린에서 나온 거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라. 그래도 네가 잡은 첫 몬스터에서 나온 아이템이니까.”

기적 형님의 말에 나는 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쿵덕쿵덕 뛰는 심장 소리가 내 귓가에 울린다.

언제 맺힌 것인지 모를 식은땀이 볼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덜덜덜 떨리는 손끝을 보니 나는 여전히 그날을 극복하지 못한 게 확실했다.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으니 말이다.

언제 날 잡아서 정신과에 찾아가 봐야겠다. 이건 내가 봐도 PTSD나 트라우마라고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덜덜 떨리는 손끝이 보라색 주머니에 닿을 때였다.

띠링.

시스템 알림음이 울리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인을 잃은 아공간을 획득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아이템 정보.

[아이템: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

[등급: A급]

[설명: 고블린 바르의 특성이 담긴 아공간 주머니.]

[추가설명: 고블린 바르는 공간을 보고 만질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담은 아공간 주머니를 만들었고 공간의 틈을 이용해 다른 세상을 넘나들며 보물들을 훔쳐 아공간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욕심 많은 그의 행동에 보물을 잃은 많은 세상이 혼란에 빠졌고 이에 분노한 관리자는 사용인에게 바르를 잡아 오라 명령했습니다. 사용인의 추격을 피해 공간의 틈으로 도망친 바르. 그는 지구의 던전에 불시착했고 던전을 공략하던 헌터들을 피해 몸을 숨겼으나 던전 청소부 강현을 만나 전투 중 사망했습니다.]

‘뭐?’

아이템 설명을 읽어내려가던 나는 한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죽인 고블린이 특이개체라고 생각은 했지만,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고블린이었다니. 그것도 주머니에 엄청난 보물들을 담아놓은 보물 고블린이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왜? 무슨 문제 있어?”

내가 황당한 눈으로 한참을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를 바라보고 있자, 기적 형님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어왔다.

문제? 있다.

아이템 설명 대로면 신유빈 파티는 던전에 있던 모든 몬스터를 처리한 게 맞았고, 난 그저 사용인이란 존재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는 우주 범죄자에게 운 없이 걸린 것이다.

한마디로 신유빈 파티의 실수라면 도망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치는 우주범죄자 고블린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고블린 한 마리를 놓쳤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 아니요. 별일 없어요. 그냥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요.”

하지만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해피니스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빼면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설명할 방법 따윈 없었으니까.

기적 형님에겐 미안하지만, 해피니스 시스템은 기적 형님에게도 말할 수 없다.

비밀은 항상 아는 사람이 적을 수로 좋은 법이다.

보물을 지킬 힘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보물을 노리는 사냥꾼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니까.

물론,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게 힘이든 권력이든, 나를 지킬 힘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말을 얼버무린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여 아공간 주머니를 인벤토리에 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아공간이 있습니다. 보유하고 계신 아공간에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를 흡수하시겠습니까?

-[Y/N]

아무래도 빨리 집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YES 버튼을 눌렀다간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 터질지도 모르니까.

***

“그래. 안색 보니까 집에 들어가는 게 맞겠다. 내일은 꼭 병원에 한번 가봐. 요즘은 마법적 치료도 한다니까. 예전에야 정신병 하면 이상한 눈으로 봤지 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한두 가지 정신병은 달고 산다더라.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꼭 병원에 가봐. 알았지?”

내가 몸이 안 좋아 들어가 봐야겠다고 말하자 기적 형님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네. 형님 안 그래도 내일 병원 한번 가보려고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형님.”

기적 형님의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빠르게 걸음을 놀려 집으로 돌아왔다.

쿵.

등 뒤에서 현관문이 거칠게 닫혔지만 개의치 않고 소파로 직행해 주저앉았다.

헉헉.

거친 숨이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오고 두 방망이질 치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기적 형님과 헤어진 뒤로 거의 날 듯이 전력을 다해 집으로 뛰어 왔다.

한시라도 빨리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있는 보물들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실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혼란을 가져온 보물들이라니. 당연히 기대될 수밖에.

잠시 소파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손을 들어 시스템 창을 클릭했다. 그러자 내 손에 들려 있던 아공간 주머니가 서서히 허공에서 회전하며 보라색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를 흡수합니다. 인벤토리가 확장됩니다.

-100→200.

-인벤토리 무게 한도가 증가합니다.

-100㎏→200㎏

-바르의 특성을 흡수합니다.

-특성 ‘공간시(空間視) EX’를 흡수합니다.

-특성의 등급이 높아 특성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사용자의 능력 한계에 따라 특성 ‘공간시’의 등급이 하향 조정됩니다.

-특성 ‘공간시 F’를 흡수했습니다.

-같은 종류의 스킬이 존재합니다.

-스킬: 버려진 아공간 찾기 F (LV1)가 특성 공간시에 흡수됩니다.

-공간시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공간시 F (LV1)→공간시 (LV2)

-특성 ‘아공간 조작 A’를 흡수합니다.

-특성의 등급이 높아 특성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사용자의 능력 한계에 따라 특성 ‘아공간 조작’의 등급이 하향 조정됩니다.

-특성 ‘아공간 조작 F’를 흡수했습니다.

-모든 특성을 흡수하셨습니다. 바르의 아공간 주머니가 분해됩니다.

-아공간에 보관 중이던 보물 ‘히메르의 성검’이 본래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아공간에 보관 중이던 보물…….

“뭐…. 이런…….”

그 뒤로 수많은 메시지가 이어졌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뭐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맹이는 쏙 빼서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고 껍데기만 받은 격이 아닌가.

하물며 나는 껍데기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EX급 특성과 A급 특성, 두 가지 모두 F급으로 하락하여 흡수되었으니까.

그리고 그중 공간시는 내게 둘밖에 없는 스킬 중 하나를 흡수해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누굴 탓하기엔 ‘사용자의 능력 한계에 따라’라는 메시지가 유독 가시처럼 눈에 박혔다.

한마디로 내 능력이 F급이라 이것만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빌어먹을 F급 인생…….”

그렇게 조용히 욕을 내뱉는 내 눈앞에 시스템은 다시 메시지를 띄웠다.

-사용자의 등급이 상승할 경우, 특성 공간시와 아공간 조작의 등급 또한 함께 성장합니다.

“억울하면 레벨업 하라 이거냐?”

나는 그렇게 투덜대며 상태창을 열어 새로 얻은 특성을 확인했다.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1)

공간시 F (LV2)

아공간 조작 F (LV1)

레벨업을 하는 방법도, 사용하는 방법도 알 수 없는 특성을 두 개나 더 얻었다.

“이런 게 계륵이라는 거겠지?”

투덜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불친절한 시스템은 사용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이거라도 얻은 게 어딘가?

아예 아무것도 못 받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상태창을 닫았다.

그리고 내가 연 것은 상점창.

계좌에 오천억이 넘는 돈이 있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너무 큰 돈이라서 그런지 오천억이라는 돈이 전혀 내 돈 같지가 않았다.

모두 인출 해서 현금다발로 쌓아두면 내 돈 같으려나?

그렇게 시스템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며 ‘쿤타우리족의 발모제’ 구매를 마친 후 상점 창을 닫으려 할 때였다.

“이거…. 판매도 할 수 있었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구매 버튼 옆에 버젓이 존재하는 판매 버튼.

상점 창을 연 것이라고 해봐야 처음 발모제를 구매할 때 한 번뿐이었으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 내가 이곳에 무언가를 판매하겠다는 생각을 못 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사서 이곳에 판매해서 포인트를 얻을 만큼 나는 돈이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지.’

톡.

판매 버튼을 누르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며 푸른색 원반이 허공에 나타났다.

-판매할 물건을 올려 주십시오.

메시지를 읽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탁자 위에 뒹굴고 있는 리모컨을 집어 들어 원반 위에 올렸다.

-등급을 측정합니다.

-…….

-등급외. 판매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그렇게 리모컨이 등극 외 판정을 받은 이후로 집안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을 모두 원반 위에 올려보았다.

결과는 모두 등급외 판매 불가.

하지만 덕분에 나는 시스템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등급 F. 판매하실 포인트를 입력해 주십시오.

좀 전에 상점에서 구매한 발모제를 올려놓자 시스템이 출력한 메시지.

“마법이나 마나가 들어간 물건만 판매할 수 있다는 말이네.”

그것은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헌터 와치를 풀어 올려놓자 더욱 명확해졌다.

-등급 F. 판매하실 포인트를 입력해 주십시오.

시스템은 헌터 와치도 판매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내일 각성자 스토어에 들러야겠네.”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포인트를 수급할 방법을 찾은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며칠 전이라면 몰라도 계좌에 오천억이라는 현금이 있는 내게 각성자 스토어의 문턱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일이 점점 재미있어지네. 하하.”

목표는 첫날 검색했던 보라색 포션.

1조 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던 엘릭서다.

그걸 마신다면 적어도 눈먼 칼에 맞아 죽는 일은 없겠지.

아 그전에 콜팡에 쿤타우리족의 발모제를 먼저 올려야겠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

“이런 씨발!”

바르디 에죠프는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들고 있던 헌터와치를 집어 던졌다.

무려 1000만 루블이나 주고 산 스위스 명품 헌터 와치였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A급 헌터인 그에게 1000만 루블은 그다지 큰돈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

그 이유는 그가 집어던진 헌터와치가 띄운 홀로그램 화면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솔드아웃’이란 마크가 찍힌 제품 페이지.

강현이 운영하는 ‘자라나라머리머리’의 제품 페이지였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주변 기물들을 때려 부순 바르디는 이내 거친 숨을 삭이며 바닥을 뒹구는 헌터와치를 거칠게 집어 들었다.

“이런 제품은 경매해야지! 정가에 파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그가 이토록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발모제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A급 탱커 바르디 에죠프, 그는 애석하게도 대머리였다.

평소에는 강인한 남성성의 상징이라 말하고 다니는 그였지만, 내심 탈모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그에게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는 그야말로 구원이자 빛이었다.

하지만 판매자가 공지한 대로 발모제는 소량생산인 듯 며칠째 제품 페이지에 물건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며칠 동안 헌팅마저도 내팽개친 채로 발모제의 판매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제품이 입고되었다는 알림을 받은 그가 콜팡에 접속했으나 발모제는 순식간에 팔려나가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그것은 강현이 제품을 올린 지 고작 1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토토토토톡.

분노에 휩싸인 바르디는 소시지같이 두꺼운 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자판을 두드렸다.

내용은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의 판매를 경매방식으로 진행해 달라는 항의성 글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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