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첫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6).
다음날.
이른 아침 눈을 뜬 나는 멍하니 시스템 창을 들여다봤다.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 속에서 어젯밤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나의 묘약을 두고 다른 곳에 쓸 일이 생길까 고민을 했던 나는 ‘아끼면 똥 된다.’라는 격언을 떠올리며 마나의 묘약을 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찾아온 수마에 함락당해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잠이 깨고 상태창을 열어 묘약의 효과를 확인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 강현
종족: 인간
레벨: 1
힘:1 민첩:1 체력:1
마력:101 내구:1 지혜:1
보유 스탯 포인트: 0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1)
[스킬]
버려진 아공간 찾기 F (LV1)
작은 마력의 샘 F (LV1)
마력 스탯이 무려 100이나 올라있었고 작은 마력의 샘이라는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 상세 설명을 읽어보니 작은 마력의 샘 스킬은 마나 회복을 돕는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었다.
한마디로 같은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마력의 샘을 가진 나는 더 빨리 마나를 회복할 수 있게 된 셈, 거기에 느리게나마 마력 스탯을 증가시켜주는 부가 옵션이 붙어 있어 가뜩이나 마나통이 작았던 내겐 큰 도움이 될 스킬이었다.
“이게 마나홀인가…?”
마력 스탯이 1일 때는 있는지 없는지 느낄 수도 없었던 마나가, 마력 스탯이 100이 넘게 상승하자 간장 종지 정도 크기의 그릇 안에 찰랑거리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나 조루 탈출이다. 하하하!”
마나를 사용해 본 것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그때 느낀 탈력감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내 몸의 절반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내 마나홀이 워낙 작아 금세 마나가 차오르기 시작했기에 그 탈력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탈력감은 각성자들이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마나 역류 현상이 일어나 생명력이 고갈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이니까.
마나의 묘약 덕에 마나홀이 늘어나고 회복력 또한 빨라진 나에겐 이젠 남의 일이 되었지만.
그렇게 내가 마나홀이 늘어난 것에 기뻐하고 있을 때였다
우웅-.
묵직한 진동음이 내 손목을 타고 전해지며 헌터 와치 위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드론 도착 알림. 강산호 님이 보내신 드론이 고객님 댁 앞에 대기 중입니다. 신속하게 탑승해 주세요.』
그제야 나는 오늘 강 회장과 약속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아침 일곱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강 회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이 3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 씻지도 않았는데.”
강 회장은 나를 배려하기 위해 드론을 보낸 것이겠지만, 나는 씻지도 못한 채 옷만 걸치고 튀어 나가야 했다.
웅- 웅- 웅-.
주택가 한편에 나타난 드론은 나직한 공명음을 내며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서 조심스럽게 정지 비행 중이었다.
그런 드론의 주변에 꽤 많은 행인이 멈춰선 채 드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인가?”
“뭐 하는 사람이길래 드론을 타고 다녀?”
“빌라 사는 거 보니까 부자는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저거 개인용 드론이잖아.”
“헌터 와치 보니까 각성자네.”
“각성자가 왜 이렇게 후진 데 살아?”
“사정이 있나 보지.”
내가 빌라 밖으로 나서자 정지 비행 중이던 드론이 나를 인식하고 아스팔트 위로 내려섰고, 흥미로운 눈으로 드론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덤이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드론에 탑승했고 곧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타는 드론이었지만 이건 어째 타면 탈수록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아…. 쪽팔려.”
드론 자체는 편하기 그지없지만, 주변의 시선이 쏠리니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신유빈처럼 주변의 시선을 즐기는 관심종자는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생각이 어떻든 드론은 오월의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갔다.
***
다시 찾은 수락산.
맑은 계곡물이 흐르던 그곳은 많은 사람으로 때아닌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계곡 아래.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만나 작은 아치를 이루고 있는 곳을 바라보는 강산호의 눈은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며 일렁였다.
“이곳이라고?”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는 목소리.
“네. 이곳입니다.”
하지만 강현은 그런 강산호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가 믿든 믿지 않든 강기영이 이곳에서 사망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아버지. 이곳에서 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저 청년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현 그룹의 총수이자 현(現) 회장인 강태웅이 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위치는 심산유곡도 아니었고, 수락산 던전도 지척에 있었다.
그래서 헌터들과 관계자들이 그 던전을 빈번하게 방문하다 보니 불과 50m 근방에 대로가 들어섰다.
그리고 여름철이면 피서를 즐기기 위해 계곡을 방문하는 휴양객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 이곳 석림사 계곡이다.
그런데도 강현은 80년 동안 그 수많은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수첩을 이곳에서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믿기 힘들 수밖에.
“아버지. 형 말이 맞습니다. 이곳에 할아버님의 유해가 있었다면 그 많은 사람이 찾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둘째 강태산마저 강태웅을 거들고 나서며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강산호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발굴 현장을 내려다봤다.
“이 청년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30년이다. 그 큰 보상금을 내걸고도 30년 동안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단서를 이 청년이 가져온 게야. 거기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곳 또한 알려주겠다 했다. 내가 이 친구를 믿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나직하게 흘러나온 강산호의 목소리에는 강현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이자 또한, 그들처럼 사기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강태웅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사진과 필적쯤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거늘…. 아버님도 나이가 드셔서 혜안이 흐려지셨구나.’
그는 그렇게 속으로 한탄을 하며 도끼눈을 뜨고 강현을 노려봤다.
유명한 S급 추격자가 말하길 할아버님의 흔적은 분명 만주로 이어져 있다고 했다.
각성한 지 고작 4일, 이제 5일 차가 됐다는 F급 각성자의 말보다 S급 추격자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
‘워매-. 살벌하네….’
나는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 죽일 것 같이 노려보는 강태웅의 눈빛에 몸이 움찔 떨렸지만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누가 뭐라 해도 강기영은 이곳에서 사망했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시스템이 보증한 것이니 틀릴 리가 없었다.
문제는 강기영의 유해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괜히 재벌이 아니라는 건가? 각성자 백 명을 머슴처럼 부리네.’
지금 강 회장의 명령을 받아 계곡을 뒤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오감이 발달한 각성자들이었다.
저 각성자들의 연봉을 환산해 보면 최하 수천억에서 최대 수조.
그런 각성자들을 말 한마디로 부리는 강 회장을 보며 나는 재계 1, 2위를 다투는 대현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다.
백여 명의 각성자들이 벌써 한 시간째 땀을 뻘뻘 흘리며 계곡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지만 좀처럼 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 이거 좀 쫄리는데…. 설마, 돈 토해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재벌 체면에 이미 준 돈을 토해내라 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렇게 내가 강 회장 아들들의 도끼질 같은 눈빛을 버텨내고 있을 때였다.
“찾았습니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내가 강기영의 아공간을 발견한 곳은 수락 폭포와 석림사의 중간지점. 하지만 외침이 터져 나온 곳은 그보다도 한참 아래였다.
분주한 발걸음이 그곳으로 몰리고, 아들들의 부축을 받은 강 회장과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무렵.
먼저 도착한 각성자들에 의해 파헤쳐진 구덩이 안에는 새하얀 백골 한 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회장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강 회장의 뒤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황 집사가 강 회장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냈다.
이후의 일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백골에서 채취한 몇 가닥의 머리카락과 강 회장의 머리카락을 손바닥만 한 기기에 넣고 조용히 마나를 발산하는 각성자.
아마도 DNA를 대조하는 중인 것 같았다.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하아-.
기기에 마나를 불어넣던 각성자는 나직하게 날숨을 내쉬곤 손에 쥐고 있던 기기를 황 집사에게 건넸다.
순간 피부가 따끔할 정도의 살기가 사방에서 내게로 쏘아져 왔고 강 회장의 아들들 또한 다시 도끼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봤다.
‘어…. 좆 댄 거 같은데?’
각성자가 한숨을 내쉰 걸 보니 저 백골이 강 회장의 아버지가 아닌 것 같았다.
꼴깍.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강 회장의 손에 들린 검사 기기를 바라봤다.
일 초. 일 초.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아…. 아아…….”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벌리고 묘한 소리를 토해내던 강 회장이 비척비척 걸음을 움직여 유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탄식처럼 내뱉어지는 한마디.
“아버지…….”
강 회장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주변은 모두 정적에 휩싸였고 강기영의 유해 앞에 무릎을 꿇은 강 회장은 심장을 토해내기라도 할 것처럼 커다란 울음을 쏟아냈다.
“으어어어어-!”
그리고 나를 향해 쏟아지던 살기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애초에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하아…. 다행이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아흔두 살의 노인을 쳐다봤다.
90년 만에 만난 아버지.
한량과 난봉꾼인 줄 알았던 아버지는 독립투사였으며 영웅이었다.
강 회장은 90년간 묵혀뒀던 한과 설움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한참을 그렇게 울었고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강태웅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안아드리세요.’
내 입 모양을 읽은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움직여 주저앉아 있는 강 회장의 등 뒤에 무릎을 꿇고 그를 감싸 안았다.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안아주는 환갑이 넘은 아들.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인지를 하지 못했던 남은 세 아들도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등을, 형제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함께 울음을 터트리는 아버지와 아들들을 보며 장내에 있던 모든 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영웅 강기영이 90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강기영의 귀환을 축복이라도 하듯 그들의 머리 위로 5월의 햇살이 내리쬐며 포근하게 그들을 감싸 안았다.
띠링.
-특별한 업적!
-사용자 강현 님은 시스템을 이용해 강산호 외 다수의 사람에게 행복을 느끼게 했습니다.
-특별한 업적을 세운 강현님께 1000의 선업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역시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보답을 받는 모양이다. 시스템이 이렇게 인정해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로써 내 선업 포인트는 2000이 되었다.
***
그날 오후.
대한민국은 강기영의 소식으로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무려 9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아버지. 하물며 그는 독립투사이며 영웅이었다.
그러니 어찌 대한민국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 그 영웅의 아들이 대현 그룹 왕회장임에야.
며칠 동안 헌터계의 신성 신유빈의 기사에 떠들썩했던 매스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바꿔 강기영과 강산호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지상파와 공중파를 가리지 않고 그의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는 것을 보면 대현의 이름과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냐고?
강기영의 행적을 두고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며 토론하는 유명 토론프로그램을 틀어 놓은 채 계좌를 확인하는 중이다.
잔액: 511,002,690,357원
강 회장은 무려 오천억이라는 거금을 일시금으로 내 계좌로 쏴주었다. 물가상승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런 강 회장에게 그의 아버지가 왜 이곳에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줬다.
그것은 수첩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니까.
80년 전, 일어났던 수락산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
학림사를 향해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기 위한 강기영의 분투와 희생.
나는 강 회장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도 영웅이었노라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나는 홀로그램으로 계좌를 띄워 놓은 채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면서 오천억이라는 큰돈을 가지게 될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뭔가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집은 고작 전세 6천짜리 투 베이를 살고 있으면서 계좌에는 오천억이 있다니.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우우웅.
그렇게 내가 계좌를 보며 넋을 놓고 있을 때 손목에 채워진 헌터 와치가 부르르 몸을 떨며 묵직한 진동음을 토해냈다.
기적 형님이었다.
“아…. 여보세요…….”
“현아, 오늘 나 퇴근하고 잠깐 볼까? 전해 줄 물건이 있어서.”
“네….”
어딘가 정신이 가출한 듯한 내 목소리가 걱정스러웠던 걸까? 기적 형님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어왔다.
“현아. 괜찮아? 혹시 무슨 일 있니?”
“아…. 너무 큰돈이 생겨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내 대답에 수화기 너머에서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십억이 큰돈이긴 하지. 하하. 그럼 이따 퇴근하고 보자.”
껄껄 웃으며 통화를 끝내는 기적 형님.
이 양반에게 내 계좌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내 계좌에 있는 게 겨우 10억이라고 생각하니 저런 속 편한 소리가 나오는 거다.
쩝.
입맛을 다신 나는 다시 계좌를 확인했다.
선명하게 내 눈을 가득 채우는 숫자.
오천억.
역시 돈은 너무 많아도 문제고 너무 없어도 문제다.
특히 나 같은 무수저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