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2화 (12/202)

12. 첫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5).

강현이 돌아가고, 다시 혼자가 된 강산호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떤 청년인지 알아봤나?”

그러자 아무도 없던 허공에서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지더니 강산호 앞에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이름 강현. 나이 30세. 4일 전까지만 해도 헌터 협회 소속의 던전 청소부였습니다.”

온통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한 사내. 그는 강산호가 오래전 대현을 지키기 위해 만든 비밀조직 비현(秘現)의 수장인 일현(一現)이었다.

“던전 청소부?”

“헌터들이 사냥을 마친 던전 내의 몬스터 부산물과 잡템 등을 수거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군. 그런데 4일 전까지라는 건 무슨 말인가?”

“4일 전 던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가 청소하던 구역에서 고블린이 나타났고 그것을 상대하던 중 심각한 상처를 입어 사경을 헤매다가 다행히 동료에 의해 발견되어 던전 밖으로 옮겨졌고, 다음 공략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헌터가 포션을 사용해 그를 살렸다고 합니다.”

“설마 그 일로 협회에서 해고된 건가?”

“강현은 고블린을 처치하고 각성을 했습니다. 협회 규정상 각성자는 던전 청소부로 일할 수 없기에 불가피하게 퇴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현의 보고에 강산호는 놀라움을 토해 냈다.

복장이나 기세를 봤을 때 각성자로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 각성했단 말인가? 그래. 차고 있던 헌터 와치가 가짜는 아니라는 말이구먼. 등급과 직업은 어떻게 되나?”

“등급은 F급이며. 직업은….”

일사천리로 막힘없이 말을 이어가던 일현은 강현이 각성한 직업 부분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청소부입니다.”

“청…소부? 그런 직업도 있던가?”

왠지 힘 빠진 듯한 강산호의 물음에 일현은 잠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조차도 청소부란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각성하기 전 그의 직업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각성이라는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강현이 각성과 함께 가지게 된 직업이 청소부라는 말에 강산호는 쓰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가족은 어떻게 되나?”

“25년 전 빅 웨이브로 조부모와 부모를 모두 잃고 현재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래로 갓 돌이 지난 여동생이 있었으나 빅 웨이브 당시 실종되었고 사망 처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몬스터에 먹힌 것으로 판단한 듯 보입니다.”

“빅 웨이브라….”

빅 웨이브.

25년 전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

전 세계 모든 던전이 일시에 몬스터를 토해 낸 빅 웨이브는 던전과 몬스터에 익숙해져 가던 인류에 큰 피해를 남겼다.

대한민국만 해도 10개의 도시가 초토화되었고 100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빅 웨이브는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경각심을 인류에게 심어 줬고 다음 대통령을 각성자로 뽑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동생이 살아 있을 확률은 없겠는가?”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매우 희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현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듯 탁자를 톡톡 두드리던 강산호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찾아보게.”

“네. 회장님.”

일현은 불가능에 가까운 강산호의 명령에 어떠한 반문도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회장님은 왜 이토록 강현이라는 자에게 관심을 두시는 거지?’

그의 주인은 각성자 특별법이라는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강현의 모든 정보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젠 그의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보라 말하는 것이다. 무려 25년이 지나 그 기록조차 확실하지 않은 동생을 말이다.

강산호는 그런 일현의 내심을 짐작한 듯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90년일세.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것이 90년, 보상금을 걸고 아버지의 행방과 흔적을 수소문한 것이 30년. 그동안 그 누구도 이렇게 확실한 결과물을 내 앞에 가지고 온 이는 없었네.”

그의 손은 자신의 앞에 놓인 낡은 수첩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런데 각성한 지 고작 4일밖에 안 된 이가 이 수첩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네. 그리고 내일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장소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어.”

아련한 눈으로 수첩을 쓰다듬던 강산호의 눈빛이 반짝이며 빛났다.

“그런 이가 평범한 각성자일 리 없지 않겠는가. 나는 그 친구에게 숨겨진 뭔가가 있다고 생각되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지만 내가 그 친구에게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하나일세.”

92년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그의 촉이 말하고 있었다.

“친해지고 싶어서.”

강현이라는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왠지 난, 그 친구가 아주 큰 인물이 될 것 같거든. 그래서 그 친구와 좀 친해지고 싶다네.”

그러니 그와 친분을 쌓아야 한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아쉬운 건 그가 아니라 나란 말일세. 하하.”

그가 웃음을 터트린 것도 잠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일현을 직시했다.

“그러니 찾아주게. 그 친구의 동생 말일세. 90년간 소식조차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소식을 내게 알려준 이이니, 동생의 행방 정도는 찾아줘야 형평성이 맞지 않겠는가.”

***

“와. 정말 호랑이가 따로 없네.”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다.

개인용 드론으로 집까지 보내준 강 회장의 배려는 감사하지만 나는 되도록 강 회장과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싶었다.

“어떻게 재벌이라는 사람들은 죄다 사람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냐….”

신유빈도 그렇고 강 회장도 그렇고, 마치 내 목숨을 자기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처럼 여기는 것을 보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앞으론 될 수 있으면 재벌들하곤 역이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입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잔액: 11,002,690,357원

헌터와치가 보여주는 계좌 잔액 110억.

평생을 일하지 않고 놀고먹어도 될 금액이었다. 그런 돈이 무려 이틀 만에 내 계좌에 꽂힌 것이다.

“역시 재벌이라 다른 건가.”

10억도 100억도 그들에겐 그리 큰돈이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척척 부르는 대로 내주는 것을 보면.

“돈을 얼마나 벌어야 십억, 백억을 이렇게 껌값처럼 쓸 수 있는 거지?”

해피니스 시스템을 이용해 재벌이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아직도 내 생각은 소시민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이 돈으로 뭐하지?”

당장 큰돈이 떡하니 생겼지만 어떻게 쓸지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기껏 생각한 것이라고 해 봐야 집과 차를 사는 것 정도.

“개인용 드론도 꽤 괜찮은 것 같던데.”

하지만 그건 돈이 있다고 해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개인용 드론의 판매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면 테러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나 뭐라나.

그 때문에 정부에서는 사회적으로 인망이 있는 인물이 아니고서는 개인용 드론의 판매를 금지했다.

한마디로 지금의 나로선 쳐다보지도 못할 그림의 떡이라는 말.

쩝.

쓰게 입맛을 다시며 생각을 정리한 난 시스템 창을 열었다.

훌륭하게 숙제를 마쳤으니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강 회장에게 100억이라는 돈을 받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등급: F]

[내용: 80년 전 F급 각성자 강기영은 자신의 몸을 던져 F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장렬한 산화를 지켜보지 못했기에 그는 대한민국 역사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했다. 강기영의 유품을 찾아 그의 가족에게 돌려주자.]

[진행상태: 완료.]

[보상: 포인트 20. 무작위 아이템 1.]

[보상을 수령 하시겠습니까?]

[수락]

‘당연히 받아야지.’

내가 손가락을 움직여 수락 버튼을 누르자 포인트가 지급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내 눈앞을 가득 채우는 회전판이 나타났다.

‘무작위 아이템이라는 게 이거였나?’

자잘하게 나누어진 회전판을 채우고 있는 것은 1천 개의 아이템들.

그중 100개의 칸은 주황색으로 또 10개의 칸은 노란색으로 마지막 1개의 칸은 푸른 하늘과 같은 파란색으로 선명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천분의 일의 확률?”

나머지 889개의 칸은 빨간색인 걸 보니, 보나 마나 꽝인 것 같았다.

“이건 또 무슨 사행성 게임이야? 해피니스 시스템이라며? 도박으로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 봤냐?!”

내가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무렵.

-버튼을 눌러 회전판을 돌려주세요. 10초간 움직임이 없을 시 시스템이 임의로 회전판을 회전시킵니다.

-10

-9

일방적인 메시지와 함께 줄어들기 시작하는 시간.

“그래도 이걸 남의 손에 넘길 수는 없지.”

나는 회전판 앞에 자리한 커다란 버튼을 쳐다봤다.

한쪽 옆으로 게이지 바 같은 것이 있는걸 보니 버튼을 누르는 힘에 따라 회전판의 회전하는 힘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모 아니면 도!”

나는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색 칸이 걸리기를 바라며 버튼을 강하게 내리쳤다.

뭐에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회전판에 하나뿐인 칸에서 나오는 아이템이니 다른 것들보다 좋은 것임이 확실하지 않겠는가.

띠리리리리.

마치 슬롯머신과 같은 소리를 내며 빠르게 회전하는 회전판.

어차피 어느 정도 힘으로 회전하는지 모르니 될 대로 되란 식으로 강하게 누른 것이긴 하지만 돌아가는 회전판을 보자니, 내 눈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그 속도가 빨랐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띠. 띠. 띠. 띠링-!

묘하게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멈춰선 회전판을 확인한 나는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소리쳤다.

“노란색!”

회전판의 바늘은 찬란하게 빛나는 노란색 칸 중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푸른색 칸은 진작에 빗나갔기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아이템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 주세요.

각성자 본인만 열 수 있는 인벤토리에 어떻게 아이템을 집어넣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마시면 신이 될 수도 있다는 포션을 판매하는 상점도 운영하는 시스템인데 F급 헌터의 인벤토리에 아이템 하나 집어넣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리라.

“내 인생에도 이제 봄이 오려는 건가? 요즘 왜 이렇게 운이 좋지?!”

그렇게 환호성을 지른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조심스럽게 아이템을 꺼냈다.

1000개의 칸 중 단 10칸밖에 없던 노란색 칸에 있던 아이템이다.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색 병.

나는 조심스럽게 손에든 포션의 설명을 읽었다.

그나마 해피니스 시스템의 좋은 점이 있다면 이것이었다.

조금 이상하고, 조잡스럽긴 하지만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는 점 말이다.

[아이템: 마나의 묘약]

[등급: D급]

[설명: 위대한 마도 문명 랑데르칸. 그 마도 문명의 시작을 연 것은 전설이 된 대마법사 쉬누아 툴킨이 만들고 배포한 마나의 묘약의 레시피였다. 전설이 된 쉬누아 툴킨이 만든 마지막 마나의 묘약. 복용 시 영구적으로 마나를 증가시킨다.]

[추가설명: 쉬누아 툴킨이 만든 마나의 묘약은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들도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만듦으로써 마도 문명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길고 긴 아이템 설명을 읽은 나는 다시 손을 들고 환호성을 외쳤다.

“마나 조루 탈출이다!!”

스킬 한번 사용하는 것으로 탈력감을 느끼는 마나 조루인 나에게 마나의 묘약은 그야말로 생명수나 다름이 없었다.

각성했으니 던전에 들어가 사냥을 하면 자연스레 등급을 올릴 수 있을 테지만, 어쩌겠는가? 던전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어진 것을.

지금도 고블린 면상만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한 손에 마나의 묘약을 든 채 환호성을 내지르던 나는, 이내 싸한 기분에 손을 내렸다.

“근데 어째. 이게 내 것이 아닌 것 같냐?”

왠지 내 손에 들린 마나의 묘약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걸 다른 사람에게 쓸 일이 있으려고….”

그리고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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