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11화 (11/202)

11. 첫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4).

늙은 호랑이.

요즘 재계에서 강산호를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부정하고 싶었다. 지금 대청마루에 앉아 자신을 쏘아보는 저 노인은 결코 늙은 호랑이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 각성자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그간 내가 상대해왔던 어떤 헌터들보다도 무겁고 단단하게 나를 압박해왔다.

마치 거대한 프레스기가 사방에서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곳에 오면서 검색했던 강산호의 정보를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자수성가의 표본이며 뛰어난 통솔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지금의 대현을 만들어 낸 신화적인 남자.

강산호에 관한 수많은 정보 중 유독 나의 눈에 띄었던 것은, 어지간한 효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자신의 어머니에게 효를 다했으며 그런 어머니를 위해 70년 전 실종된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기사들이었다.

그 기사가 작성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으니 얼추 시기도 맞아떨어졌다. 강기영이 어린 아들과 아내만을 남겨두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시기와 말이다.

더군다나 그의 수첩에 적힌 아들의 이름이 강산호였으니, 나는 강기영의 아들이 대현의 회장인 강산호일 거라 확신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라면?

‘나 오늘, 살아서 여길 나갈 수 있을까?’

저렇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살기를 내뿜고 있는 호랑이 아가리 안에서?

***

강산호는 흥미로운 눈으로 자신의 앞에 선 청년을 바라봤다.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리는 꼴을 보니 크게 되기엔 그른 녀석. 하지만 이놈은 자신의 앞에서도 허리를 꼿꼿하게 새우고 있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고 지금의 대현을 만들기까지 75년.

수많은 인간군상을 겪어온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믿었고 또 그것은 사실이었다.

‘눈알 굴리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사기꾼인데…. 허리는 뻣뻣하다?’

돌이켜 보면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는 놈들은 언제나 당당했다. 저렇게 드러내 놓고 눈이 흔들리는 놈이 사기꾼일 확률은 오히려 적은 샘이다.

‘믿고 있는 게 있기는 한데 그게 확실치 않아 불안한 게로군.’

그렇게 강현의 상태를 파악한 강산호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나를 보자고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눈동자는 흔들리지만, 목소리는 또 떨지 않는다. 묘한 녀석이군.’

“내 아버님을 거론했다지?”

“그게…. 확실치는 않으나, 제가 우연히 얻은 물건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우연히 얻은 물건이라…. 그래, 그게 무엇인가?”

“낡은 수첩입니다.”

강현이 꺼낸 낡은 수첩이라는 단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산호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첫 계약을 앞두고 밤잠을 설쳤던 그때처럼.

하지만 강산호는 노련한 사업가답게 그런 기색을 숨긴 채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낡은 수첩? 흐음…. 그래 어디 한번 보도록 하지.”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응?”

“20년 전 약속하셨던 그 보상금은 아직도 유효한 겁니까?”

나는 지금까지 참고 있던 물음을 그에게 던졌다.

퀘스트를 마치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이득을 본다. 하지만 굳이 주겠다는 돈을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강산호 회장이 현상금. 혹은 보상금 명목으로 건 돈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으니까.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주는 자에겐 10억을. 그분의 행방이나 혹은 유해를 찾게 해 주는 자에겐 1000억을 주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그 발언은 수많은 불나방을 만들어 냈다.

돈은 물론이고. 잘하면 대현의 은인이 될 기회이니 누구라도 한 번쯤은 찔러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강산호 회장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감히…!”

잠시 적막이 흐르고, 내 옆에 서 있는 노인이 살기를 뿜어내며 노한 얼굴로 입을 열려는 찰나.

“하! 하하하하하!”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보던 강산호 회장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자네. 정말 재미있는 친구고만…. 줘야지. 주겠다 공표했던 것이니 안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나, 만일 그것이 거짓이라면 자네 또한 그 뒷감당을 해야 할 걸세.”

순간 강산호 회장의 호랑이 같은 눈이 살벌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내 몸을 짓눌렀다.

꿀꺽.

하지만 나는 이 말만은 꼭 해야 했다.

“회장님….”

“또 뭔가?”

“20년간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

“……?”

대청마루 앞에는 또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를 안내했던 노인은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강 회장은.

“크하하하하하.”

또다시 대소를 터트렸다.

내가 이런 딜을 하는 이유?

그것은 강산호 회장과 마주하고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닌 낡은 수첩 속 흑백 사진에 있는 강기영의 얼굴이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수많은 사진 중 하나에 버젓이 존재했으니까.

“하하. 그래. 물가가 많이 올랐지 지난 20년 동안 말이야. 그래서 자네는 보상금으로 얼마를 원하나?”

“100억. 100억을 주십시오.”

“주지.”

내 요구에 강 회장은 일체의 망설임 없이 그러겠노라 답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자 그럼 이제 그 수첩이라는 걸 좀 볼 수 있을까?”

더는 내 장난질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강 회장.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도 느낀 것이리라. 내가 가지고 있는 수첩이 진짜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조심스럽게 강기영의 수첩을 꺼냈다. 순간 내 옆에 있던 노인이 움찔하며 내 앞을 막아섰지만, 강 회장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는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이게. 그 수첩입니다.”

내가 꺼낸 강기영의 수첩은 내 손에서 옆에 있던 노인에게, 다시 노인에게서 강 회장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띠링.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를 완료하셨습니다. 퀘스트 창을 열어 보상을 수령하세요.

시스템이 영웅 강기영의 아들이 대현의 강산호 회장임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

낡디 낡은 수첩.

강산호는 당돌한 젊은 놈의 인벤토리에서 수첩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떨림에 심장이 뜀박질 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수첩이 황 집사의 손을 거처 자신에게 전해지는 순간.

쿵.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손이 떨려왔다.

“첫 장을 열어 보시면 낡은 사진이…….”

수첩을 가지고 온 젊은 놈이 무어라 떠들어 댔지만, 강산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부스럭.

손때가 묻어 거뭇한 첫 장을 넘기자 빛바랜 흑백 사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인해 보이는 인상의 젊은 사내가 갓 백일이 지난 듯 보이는 아기를 안고 미모의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

뚝.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강산호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려 수첩 위로 떨어졌다.

“아, 아버지….”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요. 그 옆의 여인은 어머니라. 누가 보더라도 이 수첩은 아버지의 물건이 맞았다.

“회장님의 선친께서는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영웅이십니다.”

다시 강현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자 강산호는 고개를 번쩍 들어 그럴 쳐다봤다.

“영웅…. 이라고 하셨소?”

술과 도박에 미친 한량이며 계집질에 빠져 집안을 말아먹은 난봉꾼. 이웃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들어가던 말들이다.

“수첩을 읽어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현을 쳐다보던 강산호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첩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적혀 있는 아버지의 일기는 절대 파락호로도 난봉꾼으로도 부를 수 없는 영웅의 일대기였다.

“이, 이게 모두 사실이오?”

“선친께서는 가산을 모두 팔아 독립군을 지원하셨고, 본인 또한 독립군과 의혈단에 속해 일제와 총칼을 맞대고 싸우신 독립투사셨습니다. 가히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허어. 그랬구나…. 그랬어.”

어린 시절 자신이 아버지를 원망할 때면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는 큰일을 하시는 분이니 원망하지 말라고 그를 달래곤 하셨다.

하지만 강산호는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그저 아들에게 아버지의 흠을 내비치지 않으려는 말이라 여겼을 뿐.

“어머니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구나…….”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들을 달래기 위한 말도, 아버지의 흠을 가리기 위한 말도 아니었다. 모두가 믿지 않았을 뿐 어머니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주르륵.

다시금 눈가의 주름을 따라 흘러내린 눈물이 그의 앞섶을 적셨다.

“아버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강산호는 이내 마음이 진정된 것인지 고개를 들어 강현을 쳐다봤다.

“이, 이런. 내가 정신이 없어 은인을 여태 서 계시게 했구려. 황 집사 어서 자리를 만들어 주게.”

정신을 차린 강산호는 눈물을 흘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황 집사를 바라보며 강현의 자리를 만들라 채근했다.

“예. 회장님. 은인께서는 이쪽으로 오르시지요.”

잠시 후.

다탁을 사이에 두고 강현과 마주한 강산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먼저 선친의 유품을 이리 가져다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또한, 그간 선친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많아 은인을 앞에 두고도 무례하게 군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강현을 대하는 강산호의 태도는 정말 극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치 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산호의 인사에 놀란 강현이 벌떡 일어나 함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저 운이 닿아 수첩을 얻었고, 보상을 바라고 회장님을 찾아온 것이니 은혜를 입었다고 여기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아흔이 넘은 노인이 하는 인사를 앉아서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물론. 약속했던 보상을 드려야지요. 하지만 어떻게 그것만으로 은혜에 대한 보답이 되겠습니까? 혹여 다른 원하는 것이 있으시다면 은인께서는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강산호의 말에 여전히 선체로 몸을 비비 꼬던 강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씀 좀 편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보다 한참 어른께 존대를 들으려니 제가 아주 천하에 쌍놈이 된 것 같아서요….”

강현의 말에 강산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겠네.”

그도 그럴 것이 대현 그룹 왕회장이라 불리는 자신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다 했음에도 강현이 꺼낸 말은 고작 말을 편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재미있는 청년이구나. 물욕이 없는 것은 아니니 내가 한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보상금 10억을 100억으로 올린 것을 보면 물욕이 없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도 과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의 선이 확실한 청년이로군.’

아마도 그 이상의 보상은 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이런. 이 노인네가 정신이 없어 아직 은인의 이름도 묻지 못했군. 그래. 이름이 어찌 되시는가?”

“아. 제 이름은 강현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어르신.”

여전히 선 채로 다시 한번 인사를 하는 강현.

그런 강현을 바라보며 강산호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 그룹 왕회장 강산호의 머리에 강현의 이름이 크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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