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첫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3).
내가 강기영의 낡은 수첩을 습득한 후.
[진행상태: 진행 중.]
강기영의 흔적 찾기(완료)
잠겨있는 아공간 열기(완료)
강기영의 가족에게 유품 전달(진행 중)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남은 것은 그의 유품을 가족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 손에 들린 낡은 수첩을 바라봤다.
낡고 헤진 빛바랜 가죽 수첩. 이 안에 그의 가족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으리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이걸 가족분들께 전해 드려야 하니까요.”
나는 고인의 유품을 함부로 읽는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내 마음이 고인이 된 강기영에게 닿기라도 한 걸까?
휘이잉.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며 내 손에 들린 수첩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마치 내가 그것을 읽는 것을 허락한다는 듯이.
수첩의 첫 페이지에 끼워져 있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20대 후반의 사내. 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아기와 부인으로 보이는 단아한 한복을 차려입은 미모의 여성.
강기영과 그의 가족이리라.
나는 손때가 탄 낡은 흑백 사진을 눈에 담고 페이지를 넘겨 그가 남긴 기록들을 읽어 내렸다.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는 게 이런 걸까.
일제 강점기 만석꾼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던 강기영.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가산을 모두 팔아치우고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가산을 팔아 독립군 운영자금을 대고 그 자신은 독립군에 소속되어 몇 가지 군사 훈련을 받고 전투에 참여했다.
낭중지추라 했던가?
그는 독립군 내에서도 빼어난 실력을 뽐냈고. 당시 최고의 항일 무장단체인 의혈단에 들어가 일본 정부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암살자로서의 생을 살아간다.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수많은 수라장을 거치고도 살아남았던 그.
마침내 1940년 광복의 그날. 던전의 발생과 함께 각성자가 된 그는 조국에 남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활동을 했다.
근 40여 년을 한반도를 지배했던 일본의 그림자는 크고 짙게 이 땅을 뒤덮고 있었고, 해양 몬스터들 때문에 바닷길이 막혀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의 반항은 거셌다.
거기에 독립했음에도 일본 제국주의의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일파들까지.
그의 손엔 단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그는 나라가 독립을 했음에도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의 상대는 일본인들과 친일파 내에 있는 각성자들.
그렇게 위험한 꼬리를 달고 가족들에게 돌아갈 순 없었기에 그는 독립 후 수년을 피와 살이 튀는 투쟁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적의 행적을 쫓아 이곳을 지나던 그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수락산 석림사 계곡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막고 장렬히 산화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던 아내와 아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수첩에 적혀 있는 그의 일기와 퀘스트 창이 보여준 내용을 조합하면 강기영은 말 그대로 영웅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산 남자였다.
꾸벅.
그렇기에 나는 그의 아공간이 머물던 자리에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존경받고 존중받아 마땅한 이 나라를 지킨 위인(偉人)이었으니까.
“이 수첩은 꼭 가족분들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휘이잉.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내 등허리를 봄날의 바람이 시원하게 훑고 지나갔다.
마치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이곳 정계산 자락에는 근래에 찾아보기 힘든 고택(古宅)이 한 채 자리 잡고 있다.
일만 평의 대지에 자리 잡은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고즈넉한 옛것의 아름다움과 현대의 편리함이 함께하는 이 집은 대현 그룹의 왕회장인 강산호의 생가이자 지금도 그가 머무는 저택이기도 했다.
“좋구나.”
밖이 훤히 보이는 대청마루.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5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너른 마당을 내려다보며 다탁에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까악 까악. 까악 깍.
“허어.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저놈이 아침부터 왜 저리 울어대누?”
차를 마시던 노인. 강산호는 높다란 정원수 가지에 앉아 우는 까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그의 나이 아흔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조국의 광복을 봤고,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친일파와 반일민족주의자들의 갈등과 대립을 몸으로 겪으며 가업을 세우고 일구어 온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다.
지금은 회장직에서 물러나 자신을 뒷방 늙은이라고 말하지만, 과거엔 그가 헛기침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들썩인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자신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이천이었다.
“까치가 울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아버님 생각이 나는구먼.”
인생을 살며 모든 것을 다 이룬 그에게도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으니, 자신이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아버지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석꾼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복하지 못했다.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아버지.
그는 낡고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에서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겨우 연명을 해야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를 두고 술과 도박에 미쳐 가세를 기울게 했다고 수군거리기 일쑤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항상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큰일을 하시는 분이니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 가난이 싫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어릴 때부터 유독 상재(商材)가 밝았고 돈의 흐름을 쫓는 재주가 남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이만한 대기업을 이루기까지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항상 남다른 재치로 돌파구를 찾아내 어려움을 극복하곤 했다.
그는 그렇게 대현을 만들어 냈다.
“요즘 들어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자주 드는 거 보니 나도 죽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사실 그는 자신의 끝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한 병에 1억이나 하는 최상급 힐링 포션을 매일같이 마셔도 좀처럼 기력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대현의 늙은 호랑이는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회한 어린 눈으로 정원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회장님. 황 집사입니다.”
정원을 빙 돌아 대청마루 앞까지 다가온 60대 노인이 그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허허. 이 사람, 그렇게 인사하지 말래도. 그래. 무슨 일인가?”
강산호는 황 집사에게 그가 이곳에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잠시 생각을 할 게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 했음에도 그가 본채를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정문에 약간의 소란이 있다고 합니다.”
“소란?”
“한 청년이 회장님 아버님의 성함을 들먹이며 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설마…. 또 사기꾼 놈팡이 들인가?!”
크게 역정을 내는 강산호.
그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 강산호는 백방으로 아버지를 수소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의 작은 소식 하나라도 전해드리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2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도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기꾼들이었다.
마법으로 아버지를 찾아 주겠다는 마법사도 있었고, 신의 힘을 빌려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해 주겠다는 힐러 나부랭이도 있었다.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사이비 교주와 점사(占辭)를 본다는 무당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그중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은 자칭 추적자라는 사내였는데 만주 어디선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다는 소식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그 후 그는 그 추적자를 찾기 위해 스무 번이 넘게 만주로 사람들을 보냈으나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몬스터들의 천국이 된 지 오래니까.
그런데 인제 와서 아버지의 이름을 들먹이는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놈은 내가 사기꾼 놈들을 어찌했는지 소문을 못 들었나 보군.”
입술 밖으로 나온 강산호의 음성은 마치 화가 난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살기가 어려 있었다.
“소, 송구합니다. 회장님. 당장 내치겠습니다.”
강산호의 목소리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황 집사가 그렇게 말하곤 정문으로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들이게.”
“예. 예?”
“안으로 들이라고 했네. 과연 얼마나 간이 큰 놈인지 얼굴이나 보고 싶군.”
“…네. 회장님.”
꾸벅 고개를 숙인 황 집사가 다시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강산호는 여전히 정원수의 가지에 앉아 울고 있는 까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어디 네 녀석이 그리 울어 댔으니 얼마나 좋은 소식이 올지 한번 보자꾸나.”
***
‘대궐이 따로 없구나.’
일만 평의 대지 위에 지어진 수십 채의 기와집들.
처음 강산호를 찾아 이곳에 온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개인이 머무는 집이라기에 이 집은 너무 크고 넓었으니까.
높다란 성벽에 둘러싸인 저택.
‘재벌들은 모두 이런 걸까?’
마치 집이 아닌 하나의 성을 보는 듯한 느낌.
괜히 사람들이 이곳을 ‘대현궁(大現宮)’이라 부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 창경궁처럼 대현의 왕이 머무르는 왕궁이라는 뜻으로 별명처럼 붙은 그 이름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대현.
성삼과 함께 국내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
그 토대를 닦고 뼈대를 세운 왕회장이 머무는 곳답게 이곳의 경비는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각성자를 경비원으로 부리는 거야….’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들은 물론이고 정문을 지나 이곳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며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하나같이 살벌하기 그지없는 기운들.
그것은 자신의 앞에서 걷고 있는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아. 잘못 온 것 같은데…. 그냥 퀵 서비스나 택배로 보낼 걸 그랬나?’
환갑은 넘어 보이는 양반이 무슨 살기를 그렇게 뿜어 대는지 하마터면 바지에 지릴 뻔했으니까.
내가 그런 속내를 숨긴 채 노인의 뒤를 따라 걷기를 십여 분.
정문만큼 커다란 나무 대문이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집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조언하나 드리겠습니다.”
“예?”
앞서 걷던 노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입을 열었다.
“부디 회장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세요. 이곳에서 살아 나가고 싶으시다면 말입니다.”
슬쩍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은 차갑고 흉험하게 반짝였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발길 것처럼 말이다.
‘오매-. 씨바. 지리겠네.’
노인은 그 말을 남기곤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재차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거대한 대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앞서 걷는 노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나는 온몸이 으스스 떨렸다.
‘이거. 왜.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는 것 같냐?’
그만큼 대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흉포하고 거칠었다.
‘근데 정말 강기영의 아들 강산호가 왕회장이 아니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