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9화 (9/202)

9. 첫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2).

『헌터 마켓 알림: 강현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제품의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헌터 와치 메시지를 보고 물건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우웅-.

묵직한 진동음이 손목에 전해졌다.

“기적 형님? 무슨 일이시지?”

발신자는 기적 형님. 이젠 이 형님의 전화나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혹시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털이 빠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나는 쪽으로 말이다.

“여보세요.”

“어. 현아. 나 기적이 형이야.”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밝은 기적 형님의 목소리.

“네. 형님. 지금 근무 중 아니세요?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다 주셨어요.”

“아. 별건 아니고. 너한테 할 말 있어서. 지금 통화 괜찮아?”

“네. 괜찮아요. 형님.”

내 말에 기적 형님은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네가 저번에 처치한 고블린 있잖아…. 그쪽 파티랑 이야기해 봤는데. 고블린 사체를 너한테 넘기는 건 힘들고 대신 현금으로 지급하겠다네? 아무래도 구설수 만들기 싫은 눈치더라고….”

내가 처치한 고블린의 소유권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던 나는 기적 형님의 말에 그 사실이 떠올랐다.

“아. 그래요?”

“응. 저번 사건에 대한 위로금 하고 보상금 그리고 고블린 사체 값까지 해서 오천만 원을 제시했어. 대신 저번 일을 비밀에 부치는 조건으로. 어떻게 할래?”

으득.

“제…. 목숨값이 오천인 거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오천만 원.

분명히 큰돈이다.

내가 각성을 하지 않았고, 발모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혹했을지도 모를 만큼 큰돈.

하지만 지금 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을뻔했다.

그것도 그들이 한 실수 때문에 말이다.

내가 그 고블린을 죽이지 못했더라면 같이 던전에 들어갔던 다른 동료들의 목숨도 위험했을 수가 있다.

그 고블린은 특이개체였으니까.

한마디로 그날의 상황은 내 목숨만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큰 잘못을 해 놓고도 정작 당사자는 찾아와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으면서 보상금과 위로금이라니.

“너무 고깝게 듣지는 말고…. 오천. 적은 돈은 아니잖아. 그쪽도 너한테 많이 미안해하고 있더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기적 형님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차분했다.

“미안해하고 있으면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죠. 지 잘났다고 언론사하고 인터뷰할 게 아니라!”

“…….”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내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기적 형님은 잠깐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현아. 이거 혹시 언론에 퍼트리고 그럴 생각은 아니지?”

“그럼 안 되나요?”

“…….”

전에 없이 날카로운 내 반응에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가 차가운 기적 형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흥분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디론가 자리를 옮기는 듯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기적 형님이 입을 열었다.

“현아.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알지?”

흥분한 나를 달래기 위한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

“…네. 알죠.”

하지만 나는 그런 형님의 목소리에도 좀처럼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그래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 나는 네가 이 돈 받았으면 좋겠다.”

“형님…?”

순간 나는 기가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좋은 어른. 본받을 만한 어른으로 믿고 따랐던 사람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으니까.

지독한 배신감이 내 머릿속을 채울 무렵.

“신유빈. 신성 그룹 차기 후계자야.”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기적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성 그룹이요?”

“그래. 신성.”

신성 그룹.

대한민국 10대 재벌 중 하나. 비록 10대 재벌 서열 말석을 차지하고 있다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누구도 무시 못 할 대기업임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거다.

그런 대기업의 차기 후계자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헌터질을 한다고? 뭐가 부족해서?

이해할 수 없는 정보의 오류로 내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

“아…아니. 그런 그룹 후계자가 왜……?”

아니. 막말로 10대 그룹의 후계자가 뭐가 아쉬워서 헌터질을 한단 말인가?

“나도 이번에 신유빈 씨 통해 들은 얘긴데. 길드·산업 분리정책 알지? 그게 요번에 규제가 완화될 거라고 하더라고.”

“그…. 길드업계가 재벌한테 잠식당하는 걸 막기 위해 만든 법 아닌가요?”

“그래. 그동안 길·산분리 법이 산업발전을 저해한다고 말이 많았잖아. 그래서 이번 정부가 그 규제를 완화하려고 준비 중인가 봐. 그룹 오너 일가 각성자에 한해서 길드 설립을 허가해 줄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암암리에 그룹 후계 중 각성자들이 헌터로 활동 중인 모양이야. 그중 신유빈 씨가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고.”

기적 형님의 설명을 들은 나는 그제야 내가 그 돈을 받았으면 한다는 형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 억울하고 화나는 거 이해하는데. 이거 공론화 못 시킨다.”

“그렇겠죠. 신성 그룹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막을 테니까요.”

“거기다 이 돈 안 받으면 저쪽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네 입을 막기 위해 네 목숨을 노릴 수도 있다는 말이야. 말하는 뉘앙스가 그랬어.”

“…….”

빌어먹을 재벌.

돈이면 못하는 게 없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재벌은 왕이고 황제다.

F급 각성자가 되었다고 준 귀족이니 뭐니 좋아했던 나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5년이면 끝이지만 재벌의 권력은 영원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니까.

하아-.

“씨….”

“현아…. 받을 거지? 보상금.”

“받아야죠…. 받긴 받는데…. 액수를 좀 더 높여야겠어요.”

“금액을?”

“십억. 제 머릿속에서 이사건 깔끔하게 지우는 조건으로 십억 달라고 하세요. 그 정도는 받아야 제 목숨값 아닐까요?”

“…….”

잠시 말이 없던 기적 형님은 이내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 정도는 받아야 목숨값이지. 내가 그쪽에 그렇게 말해보마.”

그렇게 형님과 통화를 끝낸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이다. 나도 기적 형님도 그것을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돈도 빽도 힘도 없는 내가 재벌과 맞선다는 건 자살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실한 사과 한마디 없이 돈으로 모든 걸 덮으려는 신유빈에게, 그리고 그것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게.

“다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다시는 너희의 그 같잖은 저울에 내 목숨을 올리는 일 따위 없을 거다.’

돈을 벌어야겠다.

되도록 많이.

강해져야겠다.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오늘 나는 결심했다. 어중간한 부자가 아닌 재벌이 되기로.

***

기적 형님과 통화를 끝내고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우웅.

묵직한 진동과 함께 헌터 와치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한은행 입금 알림.

입금: 1,000,000,000원

05/26 10:15

잔액: 1,002,745,158원』

우우웅.

그리고 다시 한번 울리는 헌터 와치. 이번엔 기적 형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통화를 끝낸 지 30분 만에 10억이 넘는 거금이 입금된 것도 당황스러운데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기적 형님의 메시지였다.

게다가 보상으로 10억을 요구한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안심하는 눈치였다나?

금액을 조율하려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크게 실랑이는 하지 않았고 확실한 입막음을 요구했단다.

만일 내 입에서 이 사건에 대한 말이 나오면 강경한 대응을 하겠다는 적절한 협박과 함께 말이다.

역시 재벌이란 놈들의 뇌 구조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반인들은 평생 모으기도 힘든 거금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걸 보면 말이다.

공돈이 10억이나 생겼지만, 여전히 내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싸우기로 마음먹은 재벌이란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고나 할까?

“십억은 껌값이라 이거냐?”

내 앞을 가로막은 지독하게 높은 벽. 그 벽의 일부를 본 느낌에 현타가 왔다.

그렇게 소파에 널브러진 채 얼마의 시간을 보냈을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아마도 내가 주문한 것들이 도착한 모양이다.

“그래.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돈으로든 힘으로든 권력으로든 짓밟히지 않으려면 내가 더욱 강해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해피니스 시스템.

나는 그것에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게 해피니스 시스템이 주어진 게 우연이 아니라면 말이다.

***

다시 찾은 석림사 계곡.

낮에 찾아온 그곳은 어젯밤에 찾아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 초록의 잎으로 뒤덮인 신록의 숲. 그 사이로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이 새들의 지저귐과 어우러져 수려한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밝은 빛무리.

“안 사라졌네?”

그것은 강기영의 인벤토리였다.

첨벙. 첨벙.

계곡물을 건너 그곳에 다다른 나는 잠시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내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인벤토리가 이토록 환하게 빛을 내고 있다면 헌터든 일반인이든 누군가의 눈에 띄고도 남았을 터.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주변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체발광을 하는 이상 현상 주변에 사람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지만, 인적은 찾을 수 없었다.

“내 눈에만 보이면 땡큐지….”

그렇게 안심을 한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몬스터 부산물을 하나씩 꺼내 자물쇠 옆에 달린 슬롯에 끼워 넣었다.

철컥. 철컥. 철컥.

부산물 하나를 끼워 넣을 때마다 미약한 기계음을 토해 내던 자물쇠가 마지막 그렘린의 귀를 끼워 넣자 철커덕 소리와 함께 풀리더니 허공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강기영의 인벤토리.

보통 각성자의 인벤토리의 한계는 100칸. 그리고 100㎏의 무게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한 칸에 같은 물건 100㎏을 담을 수도 있고, 100칸에 나눠서 담을 수도 있지만, 전혀 재질과 모양이 다른 물건은 같은 칸에 담을 수 없다.

이것은 F급 각성자나 SSS급 각성자나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게 헌터들이 서포터를 필요로 하는 이유였다.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던전이다. 되도록 많은 포션과 장비를 들고 들어가는 게 생존에 유리한 것이 당연했다.

“와-. 이 양반은 어디서 전쟁이라도 하고 온 건가?”

강기영의 인벤토리를 연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권총과 소총 그리고 수류탄과 폭발물. 그리고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총알과 작은 단도.

무기가 아닌 물건은 낡은 수첩 한 권뿐. 그것을 제외한 모든 칸은 무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살벌하네….”

유품으로 챙길 물건은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저 살벌한 무기들을 가져다 강기영의 유품이라고 전해준다 한들 누가 알아볼 것인가?

그렇게 내가 강기영의 인벤토리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든 순간.

띠링.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퀘스트 창을 열어 진행상태를 확인하세요.

반가운 알림음과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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