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첫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1).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퀘스트 내비게이션을 종료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시스템이 제공해 주던 내비게이션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단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졸졸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가 귀에 익숙해질 때까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전투의 흔적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80년 전 전투 흔적이 아직 남아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헌터 와치의 불빛에 의지해 주변을 뒤지기를 한 시간.
내가 찾은 거라곤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과자봉지와 음료수병들이 전부였다.
10년을 던전 청소부로 일하며 잡템 수거와 부산물 채취에 이골이 난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강기영이라는 헌터의 유품이라 불릴만한 물건이 없다고 보는 게 옳을 터.
털썩.
결국, 유품은커녕 전투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한 나는 계곡의 바위에 주저앉았다.
“아니 여기서 유품을 어떻게 찾냐고. 있어도 진작 누가 주워갔거나 장마철 계곡물에 휩쓸려 가고도 남았겠구만….”
움직이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요. 들리는 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라.
“퀘스트가 잘못된 건가?”
바위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던 나는 다시 한번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시스템 창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특성과 스킬이 있었지.’
그렇게 상태창을 연 내 눈에 들어오는 특성과 스킬 목록.
특성: 아공간 청소부 F (LV1)
스킬: 버려진 아공간 찾기 F (LV1)
“설마…? 이건가?”
그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버려진 아공간 찾기라는 스킬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킬을 눌러보지만 묵묵부답.
“이건 또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스킬 버려진 아공간 찾기.”
…….
“스킬 발동 버려진 아공간 찾기.”
…….
“아…. 씨. 뭐 이렇게 불친절한 시스템이 다 있어?! 튜토리얼에서 스킬 사용법 정도는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시스템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했지만 결국 스킬 사용에 실패한 나는 허공에 삿대질하며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을 만든 존재가 눈앞에 있다면 한번 따져 묻고 싶었다.
사용자에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시스템이 과연 해피니스 시스템이 맞는지 말이다.
“아…. 쪽팔려.”
아무도 지켜보고 있진 않았지만, 자괴감에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이 서른 먹은 놈이 애들처럼 스킬 명이나 외치고 있으니 어떻게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하아.
“씨발. 다시 한번 해 보고 안 되면 내가 그냥 포기하고 만다.”
말로는 포기한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이제 겨우 시작한 사업을 이대로 말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 발모제 사업이 망한다면 나는 서폿이나 하며 목숨이 위험한 던전에 들락거려야 한다.
고블린에게 죽을 뻔했기 때문일까?
어제오늘 던전만 떠올려도 몸에 소름이 돋는다.
“스킬 사용. 버려진 아공간 찾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스킬 버려진 아공간 찾기 F가 사용됩니다.
-반경 50m 안에 버려진 아공간을 검색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며 내 몸 안에 존재하던 마나가 내 통제를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 이게 이렇게 움직이는 게 맞아?”
F급 각성자인 내 몸에 존재하는 마나는 고작해야 10.
각성자들 중에선 폐급이라 불릴 만한 마나 수치였다. 그런 마나가 스킬 사용 한 번에 모조리 빨려 나가자 짙은 탈력감이 찾아왔다.
“와…. 마나 조루는 스킬도 함부로 못 쓰겠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스킬이 사용된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둠에 내려선 계곡의 한구석.
거대한 바위 두 개가 마주하며 좁은 통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그곳.
별빛처럼 아름다운 빛무리가 그곳에서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F급 버려진 아공간 1개를 발견했습니다.
시스템의 메시지는 그것이 내가 찾던 아공간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고 말이다.
첨벙. 첨벙.
흐르는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간 나는 빛무리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내 눈앞에 떠오르는 선명한 글씨.
[각성자 강기영의 인벤토리]
그렇게 나는 강기영의 인벤토리를 찾았다.
“아. 정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
강기영의 인벤토리를 찾는 것으로 퀘스트를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퀘스트 창은 내게 또 다른 숙제를 내어주었다.
[퀘스트: 영웅을 가족 품으로]
[등급: F]
[내용: 80년 전 F급 각성자 강기영은 자신의 몸을 던져 F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 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장렬한 산화를 지켜보지 못했기에 그는 대한민국 역사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했다. 강기영의 유품을 찾아 그의 가족에게 돌려주자.]
[진행상태: 진행 중.]
강기영의 흔적 찾기(완료)
잠겨있는 아공간 열기(진행 중)
┗1. 고블린의 혓바닥. (0/1)
2. 코볼트의 발톱. (0/10)
3. 그렘린의 귀. (0/2)
[보상: 포인트 20. 무작위 아이템 1.]
“아니 이런 게 필요하면 미리 알려주면 좋잖아-.”
기껏 찾은 강기영의 인벤토리는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그 옆에는 빈 슬롯 세 개가 나란히 떠 있었다.
아마도 저 슬롯에 몬스터 부산물들을 채워 넣어야 자물쇠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야밤에 산중에서 어떻게 부산물을 구한단 말인가.
결국, 나는 퀘스트 클리어를 포기하고 산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
다음날.
어제 늦은 밤까지 산을 뒤졌던 여파일까? 내가 눈을 뜬 시간은 오전 9시가 훌쩍 넘은 후였다.
늦은 아침을 먹고 믹스 커피까지 한잔 마신 나는 여유롭게 헌터 와치를 조작해 콜팡의 판매자 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악성 댓글이었다.
“와우-.”
무려 3만 개가 넘게 달린 댓글. 그중 99%가 악플이었고 나머지 1%는 정중하게 사기를 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댓글이었다.
제품 페이지는 제품을 구매한 사람만 댓글을 달 수 있기에 판매자 페이지까지 넘어와 댓글을 단 모양이었다.
“반응이 아주 그냥 핫하네. 하하.”
하지만 이건 모두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격한 반응이긴 했지만, 이렇게 악플이 달릴 거라는 걸 예상했다는 말이다.
“역시 홍보대행사가 돈값은 하는구나. 어그로 잘 끌었네. 흐흐.”
내가 이렇게 기뻐하는 건 당연했다.
댓글이 3만 개라면 그 열 배 이상의 인원이 제품 페이지를 클릭했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으니까.
노이즈 마케팅도 마케팅의 한 방법이다. 이렇게 관심을 끌었을 때 반전시킬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이미 머리카락이 자라는 동영상까지 준비해 놓은 내게 3만 개의 악플은 희소식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 동영상을 올려 볼까.”
스마트 폰으로 찍은 동영상과 헌터 와치로 찍은 근접촬영 영상.
제품 페이지에 두 개의 동영상을 올린 나는 기분 좋게 판매자 페이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어제 내 발걸음을 돌리게 했던 몬스터 부산물을 구하는 것.
보통 몬스터 부산물은 길드에 소속된 헌터들은 그 길드에서 직접 거둬 가고 그렇지 않은 헌터들은 협회에 판매한다.
하지만 간혹 특정 부산물을 직접 챙겨 가는 헌터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주로 오프라인 마켓에 풀리며 주 고객은 몬스터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었다.
각성자라면 헌터 마켓을 이용해 구매하면 될 일이니 오프라인 마켓을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헌터 마켓 앱을 실행한 나는 곧 침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음….
“이러니까 헌터들이 떼돈을 번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구나.”
고블린 혓바닥 한 개에 20만 원.
코볼트 발톱 10개에 50만 원.
그렘린의 귀 2개에 40만 원.
최저가 검색으로 찾은 것들이다.
“세 종류 다 사면 합이 백십만 원. 실화냐?”
각성하고 헌터 마켓에 처음 접속해 본 나는 왜 그토록 던전 청소부들이 청소하러 들어가거나 나올 때 검문검색이 철저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나라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할 것 같았다.
“돈이 줄줄 새는구나 아주….”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떼돈을 벌기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배송은 얼마나 걸리려나?”
콜팡의 배송은 10분이면 되지만 헌터 마켓은 아날로그적인 감성 때문인지 아직도 택배나 퀵서비스로 주로 배송이 되기 때문에 짧으면 두 시간 길면 하루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몬스터 부산물 구매를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묵직한 진동음과 함께 헌터 와치가 떨리며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콜팡 알림: 제품명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 주문 1건이 접수되었습니다. 주문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드디어…. 터졌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발모제가 처음으로 팔리는 순간이었다
“하하하하하하!!!”
첫 판매가 시작되고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8개가 완판되고. 나는 제품 페이지에 곧 제품이 입고될 예정이니 기다려 달란 공지를 띄웠다.
5분 만에 8000만 원.
콜팡에 지급해야 할 배송수수료 800만 원을 제한다고 해도 7200만 원이 내 수중에 떨어졌다.
물론 텔레포터로 제품을 보내고 난 이후에 내 계좌에 입금될 돈이긴 하지만 나는 이미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러니 난다 긴다 하는 메이커들이 죄다 부자인 거겠지. 하하하.”
나는 너무 웃어 아픈 광대를 내리누르며 정성스럽게 A4용지에 뽑아 놓은 사용법과 주의사항까지 동봉해 제품 발송을 마쳤다.
발모제야 미리 스포이트로 10밀리리터씩 용기에 담아 고급스러운 상자에 포장까지 마쳐 놓은 상태였기에 더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빠르게 배송을 보낼 수 있었다.
“하아--. 매일 이렇게만 팔리면 원이 없겠네.”
나는 하늘 위로 승천하려는 광대를 내리누르며 한시라도 빨리 내가 주문한 몬스터 부산물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오늘 같은 기분을 계속 느끼려면 퀘스트를 빨리 클리어해야 했으니까.
***
핫이슈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이슈 인사이드 탈모갤.
그곳에 한 개의 게시글이 올라온 것은 오전 11시가 막 지난 시점이었다.
<저는 이제 탈모갤에 발길을 끊겠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그 글은 한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40대 중반은 넘어 보이는 50㎝는 넘을 듯한 장발을 찰랑거리며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는 사진과 ‘이제 저는 머머리가 아닙니다.’라는 짧은 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글의 밑에 달린 댓글 중 일곱 개였다.
자라나라머리머리.
그 뒤로 올라온 일곱 장의 사진은 탈모갤러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그들 모두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탈모갤러들이 그토록 욕하며 사기라고 말했던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의 모델과 같은 장발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자라나라머리머리 발모제 제품 페이지를 찾아간 탈모갤러들이 본 것은 완판돼 솔드아웃이 걸린 구매 버튼과 모공에서 머리카락이 솟아 나오는 것이 선명하게 찍힌 동영상뿐.
그렇게 강현이 만들어 낸 작은 바람이 일천만 탈모인들의 가슴에 태풍이 되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