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아공간이 보여-6화 (6/202)

6. 자라나라머리머리 (2).

이 팀장의 집.

그의 성격을 보여주듯 잘 정리된 집은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은은한 꽃향기가 흐르는 거실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자 주방에서 마른오징어 한 마리와 술잔을 챙긴 이 팀장이 거실로 나오며 말했다.

“일단 이걸로 입가심 먼저 할까요?”

“아. 그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팀장님.”

나는 행여나 술을 마시고 발모제를 바르다 혹여 불상사가 일어날까 봐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래요? 실은 현이 씨한테 나도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네요. 그럼 먼저 이야기하고 술 마시는 거로 하죠.”

이 팀장은 자연스럽게 챙겨온 술잔을 내 앞에 놓으며 말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었다고요?”

“음…. 이건 현이 씨가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잠시 뜸을 들이던 이 팀장은 이내 입을 열었다.

“현이 씨 혹시 길드 들어갈 생각 있어요? 내가 아는 길드에서 신입 서폿을 구하는 데 연봉도 좋고 복지도 좋아요.”

그 이후로도 한참을 이어진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그가 아는 길드가 있고 현재 신입 서폿을 구하고 있으니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길드가 가지고 있는 던전도 초보 서폿이 활동하기에 크게 위험하지 않은 던전들이 주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지인이 길드의 중진으로 있으니 대접은 섭섭하지 않게 해줄 거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낸 그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 팀장은 참 좋은 사람이다.

그는 길드에서 문의를 해 왔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가 길드에 나를 추천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길드를 구하지 못해 프리로 뛰는 서폿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어떤 길드에서 신입 서폿을 협회에 문의 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 팀장이 자신의 인맥을 통해 서폿 자리를 구해 놓고 나에게 권유하는 것이리라.

그것도 내가 기분이 상하지 않게 돌려서 말이다.

나는 이 팀장의 말을 듣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좋은 사람. 좋은 어른.

아마도 아침에 출근했을 때 내 표정이 좋지 못해 신경이 쓰였던 거겠지.

분명 그에게 퇴직 통보를 받을 때 내 표정은 좋지 못했다.

고블린 한 마리 상대하면서도 사경을 헤맸던 내가 각성을 했다고 해서 당장 오크나 오우거 같은 고위험군 몬스터가 출몰하는 A급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A급이든 F급이든 서폿에게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반인보다 조금 뛰어난 신체 능력과 미약한 마나를 지닌 것만 빼면 서폿이라는 포지션은 무능력자나 다름이 없으니까.

나는 이 팀장의 배려를 가슴에 새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팀장님의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사업을 해 볼 생각입니다.”

“사업이라고요?”

“네. 오늘 팀장님을 뵙고자 한 것도 팀장님의 도움이 필요해서였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왼손을 감싸고 있던 붕대를 풀어 재꼈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의문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팀장은 이내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나는 왼손을 탁자 위로 올려 그에게 내밀었다.

움직이는 내 손을 따라 이 팀장의 눈동자가 또로록 굴러간다.

“이게. 진짜라고요?”

마치 늘어진 머리카락처럼 탁자 위에 흩어진 손등의 털을 보는 그의 눈동자는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못 믿으시겠으면 직접 만져 보셔도 됩니다.”

내 말에 크는 크게 용기를 낸 듯 떨리는 손으로 손등의 털을 쓰다듬었다.

“하나만…하나만 뽑아 봐도 될까요?”

마치 기적을 목도한 신자처럼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팀장의 눈은 습기에 젖어 있었다.

“아…. 네. 얼마든지.”

톡.

내 허락을 받은 이 팀장은 털을 한 가닥 붙잡곤 집중을 해 뽑았다.

“오오오-.”

이내 손등 위에 모공에서 뽑혀 나온 털을 확인한 이 팀장이 탄성을 내지른 것도 잠시. 그는 곧 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가 털을 뽑아낸 모공에서 새로운 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이건…. 이건 기적입니다!!”

어느새 원래의 길이로 자라난 털을 본 이 팀장은 흥분해 거실이 울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강현 씨가 이걸 만들어 낸 겁니까? 서포터가 아니라 메이커였던 거죠? 이런 줄 알았으면 그렇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네요. 당장 특허등록하고 제품 생산해서 판매하세요! 이건 정말 대한민국 일천만 탈모인들에게 기적과 같은 제품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네! 강현 씨 말씀하세요! 돈 빌려 드릴까요? 투자가 필요하세요?!”

나는 당장 집이라도 팔 기세인 이 팀장을 진정시키며 내가 오늘 그를 찾아온 용건을 꺼내 들었다.

“일단 재료 수급 문제로 소량만 생산할 거라 투자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좀 진정하세요.”

“아. 네…. 제가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을 했네요.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팀장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보증이라도 서줄 것처럼 열기를 토해 내며 눈을 반짝이는 이 팀장을 보고 말했다.

“그럼. 이 제품의 모델이 돼 주실래요?”

“엑?! 제가요?!!!”

***

잠시 후.

나는 술잔과 술병을 치운 테이블 위로 준비해 온 것들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놓았다.

크고 작은 붓들과 팔레트 그리고 발모제가 혹여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할 테이프. 우비와 고무장갑과 앞치마, 마스크와 고글은 혹여 발모제가 내게 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두 개씩 구매했다.

“현이 씨 이게 다 뭐예요?”

“발모제가 워낙 효과가 좋아서 잘못하면 애먼 곳에 털이 날 수도 있어서요.”

그리고 대망의 발모제와 생수까지.

생수는 발모제를 희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한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효과가 좋아요?”

이 팀장의 물음에 나는 다시 붕대를 감은 왼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셨잖아요. 이거. 고작 한 방울 떨어트린 건데 이렇게 됐어요.”

“아…….”

그렇게 준비를 마친 나는 헌터 와치를 사기 전 사용했던 스마트 폰을 거치대에 설치했다.

“일단 사용 전 사진 몇 장 찍을게요. 그리고 작업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을 건데.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얼굴 나와도 상관없어요. 내가 머리만 자란다면 뭔들 못 하겠어요.”

그렇게 의욕을 불태우는 팀장을 소파에 앉힌 나는 그의 두상을 헌터 와치로 촬영한 후 홀로그램으로 출력해 그에게 보여줬다.

“일단 헤어라인을 정하셔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자신의 머리를 극혐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팀장은 생기가 넘치는 눈으로 홀로그램을 터치해 헤어라인을 그렸다.

“이 정도 어때요?”

“그렇게 하면 이마가 너무 좁지 않을까요? 아까 보셨지만 자르거나 뽑아도 금방 다시 자라나서….”

“어…. 그럼 살짝 위로 올릴까요?”

그렇게 이 팀장과 헤어라인 조율 마친 나는 홀로그램을 이동시켜 팀장의 머리에 덮어씌웠다.

“그럼 이 라인대로 테이핑하겠습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팀장님.”

그렇게 테이핑을 마친 나는 준비해 온 고글과 마스크를 그의 얼굴에 씌우고 우비를 걸쳐 주었다.

‘이걸로 모든 준비 끝. 카메라 잘 돌아가고 있고. 방호 장비 다 착용했고.’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퐁. 조르륵.

스포이트를 사용해 조심스럽게 발모제를 팔레트로 옮긴 나는 붓을 적신 후 이 팀장의 머리에 발모제를 발라나갔다.

생수로 희석하고자 했던 시도는 실패해서, 결국 순도 백 프로의 발모제를 그대로 사용했다.

피부에 닿자마자 흡수되는 발모제를 보니 흘러내릴 걱정은 덜었지만, 그래도 내 손놀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5분의 시간이 지나고 정수리에서 시작된 발모제 도포는 구레나룻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으…. 두피가 간지러운데요. 현이 씨.”

“네. 아마 지금 모근이 자라고 있어서 그럴 거예요. 한 5분 정도만 참으시면 돼요.”

그리고 잠시 후.

“으아아아아!!”

화장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이 팀장은 괴성과 같은 환호성을 내질렀고 나는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촬영 잘됐네.”

***

“으음…. 아-. 머리야.”

각성했음에도 전날의 과음이 몰고 온 숙취를 피해갈 수 없었다.

자의적 대머리에서 50㎝ 길이의 머리칼을 가진 장발 남이 된 이 팀장이 갑자기 급발진해 고이 모셔두고 있던 귀한 양주를 개봉했기 때문이다.

소주와 맥주 그리고 양주가 곁들여진 술판은 새벽 3시가 돼서야 끝이 났고. 이 팀장은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연차를 사용했다.

“아음.”

까슬거리는 목을 냉수로 달랜 나는 시계를 봤다.

오후 1시.

숙취 때문인지 잠을 길게도 잤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했으니 꼬박 10시간을 내리 잠만 잔 셈.

“음? 기적이 형님이 연락하셨네?”

참고로 어제 술을 마시며 이 팀장과 나는 호형호제하기로 했다.

10년간 한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하지 못했던 호형호제를 몇 방울의 발모제가 이뤄준 것이었다.

부재중 전화 1통과 메시지 1개.

나는 기적 형님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혹시나 부작용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내 염려와는 다르게 내용은 별것이 없었다.

그저 일어나면 해장하게 연락하라는 내용이 전부.

나는 기적 형님과 국밥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후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물로 샤워해야 몽롱한 정신이 좀 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 왼손의 털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대로 평생 살 수는 없잖아.

***

태평양 순대국밥.

저렴한 가격과 태평양같이 커다란 그릇에 한가득 순대와 내장을 담아줘서 내가 자주 이용하는 단골집이다. 메뉴는 단 하나 순대국밥뿐인,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고민을 덜어주는 가게였다.

딸랑.

“어서 와요. 총각. 순대국밥 하나?”

“아니요. 두 개요. 일행이 올 거라서요.”

가게에 들어서자 익숙한 사장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일주일에 일곱 번은 찾아오는 단골이니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테이블에 자리 잡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주머니는 펄펄 끓는 국밥 두 개를 내가 앉은 테이블에 놓으며 물었다.

“손은 어쩌다 그런 거야? 하는 일이 험하다더니 일하다가 다친 거야?”

“다친 건 아니고요. 피부병 같은 게 생겨서 보기 흉해서 붕대로 감아 놓은 거예요.”

나는 차마 손등에 털이 자랐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피부병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그럼 다행이고. 항상 조심해요. 험한 일 하는 사람들은 몸이 재산이자너.”

“하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딸랑.

문이 열리며 장발 머리를 질끈 동여맨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가게로 들어섰다.

기적 형님이었다.

“어서 오세요. 자리는 편하신 데 앉으시고요. 순대국밥 하나 드릴까요?”

나만큼이나 이 가게의 단골인 기적 형님을 사장 아주머니는 알아보지 못했다.

아마도 길게 자란 머리가 그 이유일 테지.

“이모님. 저 몰라보시겠어요?”

“누구…?”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는 기적 형님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던 사장님은 이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 소리를 질렀다.

“기적 씨?? 기적 씨 맞아요? 이게 무슨 일이래. 정말 몰라보겠어요-!”

“으하하. 그렇죠? 몰라보시겠죠? 이거 가발 아니라 진짜 제 머립니다. 하하하!”

기적 형님은 자랑스럽게 말총머리를 휘날리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랑했고 사장 아주머니는 그 말이 믿기 힘들었는지 그런 기적 형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어머.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며칠 전만 해도 대머리였잖아요? 무슨 남자 머리가 비단결같이 고와. 어쩜.”

그런 아주머니의 반응을 즐기던 기적 형님은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어젯밤에 ‘기적’이 일어났거든요.”

순간 나는 어제 마신 술의 숙취 때문인지 오바이트가 나올 뻔했지만, 크게 심호홉을 하며 내리눌렀다.

저 형님이 저래도 오픈마켓에 입점할 발모제의 홍보모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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