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라나라머리머리 (1).
신아연과의 만남은 짧고 강렬했다.
주변의 이목을 끌어모으며 등장한 그녀에게 내가 한 것이라곤 고작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 그녀에게 포션이 담긴 상자를 건넨 것이 전부.
스토어에서 살 때만 해도 고급스러워 보였던 포션 상자가 그녀의 손에 들리자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고?
‘병신 같은 새끼! 은혜를 갚겠다고 와서는 헬렐레하는 꼴이라니. 이게 무슨 실례야?!’
좌절하는 중이다.
모쏠 인생 30년.
곧 대마법사가 될 예정인 나는 여자에 대한 면역력이 0에 수렴했고, 그런 나에게 그녀의 미모는 폭력과도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그녀에게 실례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아우…. 모쏠 찐따새끼….”
쿵.
“생명의 은인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야….”
쿵.
각성하며 예민해진 나의 감각에 주변의 시선에 내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내겐 그런 것에 신경 쓸 만큼의 여력이 없었으니까.
쿵.
***
강현과 만남을 끝낸 신아연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별다방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강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풉. 재미있는 사람이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연신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강현의 모습.
강현의 그런 행동은 그녀의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그녀가 이 자리에 나온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제 신유빈 파티가 클리어했던 던전. 그리고 그들이 남겨 놓은 몬스터로 인해 사망할 뻔한 피해자인 강현.
만약 일반적인 헌터나 길드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언론에 대서특필될 만한 사건이었다.
처음 강현의 연락을 받았을 때, 신아연은 강현을 이용해 매스컴이 열과 성을 다해 띄워 주고 있는 신유빈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현과 만나러 오는 중 신아연은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신유빈을 밀어주기로 한 이상, 자신의 발악과도 같은 행동은 신유빈에게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으며 설혹 잠시 이슈화가 된다고 해도 곧 다른 이슈에 묻혀 버릴 거란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신아연은 강현을 이용하려던 생각을 접고 그와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강현은 그녀의 예상보다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옷차림을 한 그가 그녀에게 건넨 것은, 그녀가 강현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던 중급 힐링 포션. 척 봐도 가난해 보이는 강현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의 물건이었다.
그래서 거절을 했지만, 강현의 표정을 본 그녀는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앙다문 입술과 굳어진 얼굴.
강현이라는 남자는 그녀의 생각보다 자존심이 강한 남자였다.
그녀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잘 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사람. 세파에 휩쓸려 휘청이더라도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강현이 그녀에게 내비친 눈빛은 그녀가 아는 사람의 눈과 닮아 있었다.
물론 그녀가 포션을 받아들자 곧 표정이 풀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신아연의 차창 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뭔가를 중얼거리는 강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식.
입가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 그녀는 차를 출발시켰다.
이대로 신유빈에게 차기 후계자의 자리를 내줄 수는 없으니 그녀도 자신을 지원할 지원세력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룹 전체에 뻗어 있는 할아버지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니.
그런데도 핸들을 잡은 그녀의 눈은 냉정하고 차갑게 반짝였다.
강현처럼 그녀 또한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니까.
***
내가 신아연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
이 팀장이 퇴근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팀장의 성향상 퇴근은 빨라도 밤 10시나 돼야 할 것이기에 아직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의 집은 내 집과 불과 10분 거리였으니까.
“뭐라고 설득을 한다…?”
나는 해피니스 상점에서 구매한 발모제를 손안에 쥐고 팀장을 설득할 방법을 고민했다.
대머리 족제비라 놀려도 허허 웃고 마는 팀장이었지만 나는 그가 탈모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탈모가 시작된 그는 머리카락을 사수하기 위해 안 해 본 노력이 없을 정도였고 결국 실패해 자의적 대머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탈모가 진행되는 것을 막지 못하자 머리카락을 모조리 밀어버린 샘.
간혹 집 근처 술집에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실 때면 한탄처럼 늘어 놓던 그의 탈모 탈출을 위한 무용담은 가히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걸쳐 지금은 달관해 버린 상태.
“어지간한 방법으론 설득이 안 될 텐데. 어떻게 하지?”
들어본 바론 식이요법부터 바르는 약, 심지어는 포션과 마법까지 사용해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날린 돈만 수천이라는 말에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해 주지 못했다.
솔직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 나를 보며 그는 외치곤 했다.
‘강현 씨 같이 풍성한 사람은 내 마음을 이해 못 해요!’
라고 말이다.
“말로는 설득하기 힘들 테고, 효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인데….”
나조차도 확신을 갖지 못한 발모제다. 실제 효과를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나한테 사용해 봐?”
그러기엔 내 머리숱이 너무 많으니 티도 안 날 테고.
퐁.
“손등이면 괜찮겠지?”
톡.
그렇게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흐르고.
“하아…. 하지 말걸…….”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내 손등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털이 자라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이렇게 자라나는 게 말이 돼?”
쿤타우리족의 발모제는 효과가 좋았다. 과할 정도로.
발모제를 바른 왼쪽 손등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5분 전쯤이었다.
조심스럽게 떨어트린 한 방울의 발모제는 손등을 넓게 뒤덮으며 흡수되었고, 5분 정도가 지나자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작은 털들이 손등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게 눈에 보였다.
여기까지였다면 나는 정말로 기뻐했을 거다.
단 한 방울의 발모제를 바른 것만으로 털이 자라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라니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래서 보호장구를 착용하라고 쓰여 있었구나…. 젠장.”
나는 10분 전의 나를 원망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왼손의 손등을 뒤덮고 있는 수북한 털.
문제라면 그 털이 오전에 만났던 신아영의 머리칼처럼 생기발랄하게 찰랑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오십 센티미터는 되겠는데?”
다행인 점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한 털은 50㎝ 정도의 길이가 되자 성장을 멈추었다는 것 정도.
쿤타우리족이 무슨 종족인지는 모르겠지만 털에 관한 한 진심인 종족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런 털을 온몸에 기르고 다닌다니….”
멍한 눈으로 손등의 털을 바라보던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거…. 잘리긴 하겠지?”
이토록 털에 진심인 종족이라면 털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발모제를 개량하지 않았을까?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불길한 생각에 나는 빛처럼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악! 씨바알!!”
절망에 빠진 나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계속 자라는 건데!!”
이 빌어먹을 털이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났으니까.
마치 정해진 생장점이 있는 식물처럼 50㎝ 남짓한 길이가 되면 더 자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설마. 나 계속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냐?”
나로서는 쿤타우리족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종족이었다.
아이템 설명대로라면 수만 년간 축적한 지식으로 발모제나 만들어 낸 것이었으니까.
“가죽을 도려내고 포션으로 치료하면 사라지려나?”
머릿속에 언젠가 들었던 화상 환자의 치료법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안 되면…?”
***
늦은 저녁.
퇴근을 앞두고 있던 이기적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오늘 퇴직한 강현.
그동안의 보답으로 주고 싶은 게 있으니 술 한잔하자는 강현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기에 그는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다.
‘아마도 좋은 직업을 얻지 못한 거겠지.’
그의 머릿속엔 이른 새벽부터 회사로 출근했던 강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각성했음에도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던 얼굴.
그는 강현의 표정을 보고 그가 좋은 직업을 얻지 못했음을 짐작했다.
‘설마 청소부나 이런 직업은 아니겠지.’
80년 전. 처음 각성자들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는 각성자들의 직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몰랐지만, 세월이 지나며 각성자들의 직업이 결정되는 조건이 서서히 밝혀졌다.
검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이들은 검사가 되었고 총을 잘 쏘던 이들은 궁수가 되었다. 하다못해 메이커 계열도 평소에 공학을 공부하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재능이 있는 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기에 이기적의 걱정은 타당했다.
그가 아는 강현은 자신만큼이나 던전 청소부 일에 진심인 일 중독자였으니까.
“위로주라도 한잔 사 줘야겠네.”
공적인 일이기에 강현을 퇴직 처리하긴 했지만, 그도 강현의 처지가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장에서 강현은 성실하고 일 잘하는, 챙겨 주고 싶은 부하직원이었으니까.
“괜찮은 길드에 서포터 자리라도 알아봐 줘야겠어.”
그렇게 이기적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퇴근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
이 팀장의 집 근처 편의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저 멀리서 뛰는 듯이 걸어 오는 이 팀장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이 팀장님 여깁니다.”
내가 손을 흔들자 그도 나를 발견했는지 발걸음이 숫제 뛰는 것처럼 빨라졌다.
가로등 불 아래를 걸어오는 그 모습을 보자니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머리에 눈길이 간다.
“강현 씨.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저도 좀 전에 도착했어요.”
“손은 왜 그래요? 다쳤어요?”
깎아도 깎아도 다시 자라나는 털을 가리기 위해 붕대를 감아 놓은 내 손을 본 그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아…. 이거 다친 거 아니에요. 그냥 좀 가릴 필요가 있어서 붕대로 감아 놓은 거예요. 좀 있다가 보여드릴게요. 하하.”
나는 차마 대로변에서 붕대를 풀 용기가 없어 어물쩍 웃어넘겼다.
“다친 게 아니라면 다행이네요. 그럼 술은 어디서 할까요? 매번 가던 거기?”
“아뇨. 괜찮으시면 팀장님 댁에서 마실 수 있을까요? 드릴 것도 있고….”
말끝을 흐리는 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는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편의점에서 소주하고 맥주 사서 들어가죠. 안주는 치킨 괜찮죠?”
“아우-. 치킨이면 황송하죠.”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술 사 올게요.”
말을 마친 이 팀장은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고 나는 편의점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머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자라나라머리머리.”